흔한 풀꽃의 반전! 민들레는 민들레가 아니었다?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4.29. 14:27

흔한 풀꽃, 민들레의 한 종. ‘민들레 속(genus)’에 2,000종(species)이 속해 있다.
53화 2024년에 진짜 민들레가 된 민들레
봄이 되면 산과 들에는 많은 꽃이 핀다. 그 많은 꽃 중에서 서울을 상징한다고 할 만한 꽃은 무엇일까? 매화, 목련, 벚꽃이 많이 피는 지역이 서울에도 곳곳에 있지만 서울 전체를 상징한다고 할 만한 꽃을 고르자면 그중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흔한 봄꽃으로는 진달래, 개나리를 떠올릴 수도 있겠는데 이런 꽃들은 산에서 잘 자라나기에 사람이 많은 거대한 도시인 서울의 상징으로 딱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 화단마다 많이 심는 편인 ‘철쭉’ 정도면 아파트 단지가 많은 서울에서 익숙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한 일간지 보도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에서 생산된 철쭉은 총 2,201만 그루라고 하니 2년 반마다 전 국민 한 사람당 철쭉 한 그루씩을 안겨 주고도 남을 정도의 철쭉이 매년 한국에서는 생산되는 셈이다. 게다가 갈수록 철쭉 재배량은 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건물 주변에 철쭉을 많이 심곤 하는 서울은 철쭉의 도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2000년대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서초구의 우면동, 내곡동 등에 있던 농업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철쭉이 생산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의 변화와 도시 개발로 상황이 변했다. 요즘 철쭉을 생산해 판매하는 산업을 자랑하는 고장은 전라남도 순천시다. 2020년대 초 기준으로 전국 철쭉 생산량의 80%가량을 순천에서 생산하고 있어서 2023년에는 특허청의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에 공식적으로 ‘순천철쭉’이라는 명칭을 등록하기도 했다. ‘순천철쭉’이 유명하다고 해서 서울 거리의 그 많은 철쭉 빛이 바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상징이라고 하자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봄이 되면 산과 들에는 많은 꽃이 핀다. 그 많은 꽃 중에서 서울을 상징한다고 할 만한 꽃은 무엇일까? 매화, 목련, 벚꽃이 많이 피는 지역이 서울에도 곳곳에 있지만 서울 전체를 상징한다고 할 만한 꽃을 고르자면 그중 하나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흔한 봄꽃으로는 진달래, 개나리를 떠올릴 수도 있겠는데 이런 꽃들은 산에서 잘 자라나기에 사람이 많은 거대한 도시인 서울의 상징으로 딱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 화단마다 많이 심는 편인 ‘철쭉’ 정도면 아파트 단지가 많은 서울에서 익숙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한 일간지 보도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에서 생산된 철쭉은 총 2,201만 그루라고 하니 2년 반마다 전 국민 한 사람당 철쭉 한 그루씩을 안겨 주고도 남을 정도의 철쭉이 매년 한국에서는 생산되는 셈이다. 게다가 갈수록 철쭉 재배량은 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건물 주변에 철쭉을 많이 심곤 하는 서울은 철쭉의 도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2000년대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서초구의 우면동, 내곡동 등에 있던 농업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철쭉이 생산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의 변화와 도시 개발로 상황이 변했다. 요즘 철쭉을 생산해 판매하는 산업을 자랑하는 고장은 전라남도 순천시다. 2020년대 초 기준으로 전국 철쭉 생산량의 80%가량을 순천에서 생산하고 있어서 2023년에는 특허청의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에 공식적으로 ‘순천철쭉’이라는 명칭을 등록하기도 했다. ‘순천철쭉’이 유명하다고 해서 서울 거리의 그 많은 철쭉 빛이 바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상징이라고 하자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노원구 불암산 철쭉동산에 철쭉이 만개했다.
그렇다면 서울의 봄을 상징하는 꽃으로 ‘민들레’는 어떨까?
민들레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꽃이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라고들 생각한다. 사람들이 민들레라고 부르는 꽃은 전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민들레는 생명력이 강하기에 어디서나 잘 자라나고 도시 환경에서도 보도블록 한켠에, 가로수 옆에, 서울 시내의 작은 공원과 어린이 놀이터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겨울이면 줄기는 죽지만 뿌리는 살아남아 이듬해 다시 자라나는 것도 작은 풀치고는 강인해 보이는 습성이다. 다른 농작물을 애써 길러야 하는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너무 쉽게 자라나는 민들레가 잡초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대도시에서는 자주 눈에 뜨이는 야생화로 그 많은 민들레들이 충분히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민들레는 서울과 관련된 나름대로 깊은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한국어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개성적인 표현이 꽤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민들레에 ‘일편단심’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덧붙여 놓은 나라는 결코 흔하지 않다. 고결해 보이고 귀한 꽃이라면 그런 말을 쉽게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고전에서는 흔히 매화를 의지와 충성의 상징으로 자주 비유하곤 했다. 붉고 화려한 장미가 열정이나 사랑을 상징한다는 생각 역시 유럽에서는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지만 길바닥 어디에나 너무나 흔하게 보이는 민들레에 왜 한국 사람들은 일편단심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왜 하필 일편단심 개나리도 아니고 일편단심 진달래도 아니고 일편단심 민들레일까?
애초에 그 말의 뿌리가 가장 먼저 언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비교적 근래의 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의 글에 민들레를 일편단심의 상징으로 활용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보다 명확히 말해 볼 수 있는 것은 1981년 한국 최고의 가수로 활동했던 조용필이 발표한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곡이 발표되었다는 기록이다. 적어도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표현이 퍼져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용필이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노래를 만들어 발표한 데에는 서울의 슬픈 역사에 얽힌 사연이 있다.
<일편단심 민들레야>의 작사자는 이주현 선생이다. 1981년 당시 이 선생은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시던 할머니였다. 시간을 거슬러 1950년으로 올라가면 이 선생의 남편은 서울의 어느 대형 신문사의 직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불과 3일이 지난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다시 3개월이 지난 9월 28일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기는 했지만, 한국전쟁의 혼란 중에 이주현 선생의 남편은 그만 북한으로 가게 되어 이 선생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그 탓에 이 선생은 노점상, 좌판 장사부터 시작해서 홀로 닥치는 대로 온갖 힘든 일을 하면서 3남매를 키우며 정신없이 30년을 살았다.
1980년 11월이 되어 이주현 선생은 꿋꿋하게 살았던 자기 삶에 대한 글을 모아 책을 냈다. 그리고 그 책에 붙인 제목이 바로 ‘일편단심 민들레야’였다. 이후 그 내용이 조용필에게까지 전해져서 탄생한 노래가 ‘일편단심 민들레야’였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할 때 그 민들레가 나타내는 것은 가난하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며 긴 세월 꿋꿋하게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이라고 보아야 한다.
민들레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꽃이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라고들 생각한다. 사람들이 민들레라고 부르는 꽃은 전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민들레는 생명력이 강하기에 어디서나 잘 자라나고 도시 환경에서도 보도블록 한켠에, 가로수 옆에, 서울 시내의 작은 공원과 어린이 놀이터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겨울이면 줄기는 죽지만 뿌리는 살아남아 이듬해 다시 자라나는 것도 작은 풀치고는 강인해 보이는 습성이다. 다른 농작물을 애써 길러야 하는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너무 쉽게 자라나는 민들레가 잡초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대도시에서는 자주 눈에 뜨이는 야생화로 그 많은 민들레들이 충분히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민들레는 서울과 관련된 나름대로 깊은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한국어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개성적인 표현이 꽤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서나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민들레에 ‘일편단심’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덧붙여 놓은 나라는 결코 흔하지 않다. 고결해 보이고 귀한 꽃이라면 그런 말을 쉽게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고전에서는 흔히 매화를 의지와 충성의 상징으로 자주 비유하곤 했다. 붉고 화려한 장미가 열정이나 사랑을 상징한다는 생각 역시 유럽에서는 널리 퍼져 있었다.
그렇지만 길바닥 어디에나 너무나 흔하게 보이는 민들레에 왜 한국 사람들은 일편단심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왜 하필 일편단심 개나리도 아니고 일편단심 진달래도 아니고 일편단심 민들레일까?
애초에 그 말의 뿌리가 가장 먼저 언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비교적 근래의 일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의 글에 민들레를 일편단심의 상징으로 활용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보다 명확히 말해 볼 수 있는 것은 1981년 한국 최고의 가수로 활동했던 조용필이 발표한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곡이 발표되었다는 기록이다. 적어도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표현이 퍼져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용필이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노래를 만들어 발표한 데에는 서울의 슬픈 역사에 얽힌 사연이 있다.
<일편단심 민들레야>의 작사자는 이주현 선생이다. 1981년 당시 이 선생은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시던 할머니였다. 시간을 거슬러 1950년으로 올라가면 이 선생의 남편은 서울의 어느 대형 신문사의 직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불과 3일이 지난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말았다.
다시 3개월이 지난 9월 28일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기는 했지만, 한국전쟁의 혼란 중에 이주현 선생의 남편은 그만 북한으로 가게 되어 이 선생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그 탓에 이 선생은 노점상, 좌판 장사부터 시작해서 홀로 닥치는 대로 온갖 힘든 일을 하면서 3남매를 키우며 정신없이 30년을 살았다.
1980년 11월이 되어 이주현 선생은 꿋꿋하게 살았던 자기 삶에 대한 글을 모아 책을 냈다. 그리고 그 책에 붙인 제목이 바로 ‘일편단심 민들레야’였다. 이후 그 내용이 조용필에게까지 전해져서 탄생한 노래가 ‘일편단심 민들레야’였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할 때 그 민들레가 나타내는 것은 가난하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며 긴 세월 꿋꿋하게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이라고 보아야 한다.

민들레에 관한 놀라운 과학적 발견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친숙한 꽃인데 2020년대에 들어 민들레에 관한 한 가지 놀라운 과학적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에 사실은 민들레가 없다는 아주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 발견은 민들레와 비슷비슷한 종이 아주 많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보통 생물을 분류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분류 방법은 생물을 ‘종(species)’이라는 단위로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나무는 그냥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종도 있고 ‘해송’이라는 종, ‘리기다 소나무’라는 종, ‘테다 소나무’ 라는 이름이 붙은 종도 있다.
이렇게 종을 과학적으로 엄격히 구분할 때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혼란 없도록 라틴어로 되어 있는 공식적인 이름을 따로 쓰기도 해서 그런 명칭을 ‘학명’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그냥 소나무라는 종은 ‘피누스 덴시플로라(Pinus densiflora)’이고, 해송은 Pinus thunbergii, 리기다 소나무는 Pinus rigida, 테다 소나무는 Pinus taeda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여러 종 중에 비슷한 것들을 묶어서 ‘속(genus)’이라는 더 넓은 분류로 합쳐 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냥 소나무, 해송, 리기다 소나무, 테다 소나무 등의 종들은 서로 다른 종이지만 전부 ‘소나무 속(genus)’이라는 것으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보통 일상생활에서는 같은 속으로 분류되는 식물이면 엄밀히 따져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같은 속으로 분류되면 종은 달라도 같은 말로 불러도 그냥 넘어간다. 예를 들어 뒷산에서 리기다 소나무라는 종의 식물을 보았다고 했을 때에도 그냥 ‘소나무를 보았다’라고 말하면 다들 알아듣는다.
이 발견은 민들레와 비슷비슷한 종이 아주 많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보통 생물을 분류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분류 방법은 생물을 ‘종(species)’이라는 단위로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나무는 그냥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종도 있고 ‘해송’이라는 종, ‘리기다 소나무’라는 종, ‘테다 소나무’ 라는 이름이 붙은 종도 있다.
이렇게 종을 과학적으로 엄격히 구분할 때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혼란 없도록 라틴어로 되어 있는 공식적인 이름을 따로 쓰기도 해서 그런 명칭을 ‘학명’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그냥 소나무라는 종은 ‘피누스 덴시플로라(Pinus densiflora)’이고, 해송은 Pinus thunbergii, 리기다 소나무는 Pinus rigida, 테다 소나무는 Pinus taeda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여러 종 중에 비슷한 것들을 묶어서 ‘속(genus)’이라는 더 넓은 분류로 합쳐 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냥 소나무, 해송, 리기다 소나무, 테다 소나무 등의 종들은 서로 다른 종이지만 전부 ‘소나무 속(genus)’이라는 것으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보통 일상생활에서는 같은 속으로 분류되는 식물이면 엄밀히 따져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같은 속으로 분류되면 종은 달라도 같은 말로 불러도 그냥 넘어간다. 예를 들어 뒷산에서 리기다 소나무라는 종의 식물을 보았다고 했을 때에도 그냥 ‘소나무를 보았다’라고 말하면 다들 알아듣는다.

소나무, 해송, 리기다 소나무, 테다 소나무 등의 종들은 전부 ‘소나무 속(genus)’으로 분류된다. 경춘선숲길 소나무숲.
문제는 국제적으로 민들레 속으로 분류되는 식물들이 2,000종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길 가다가 우연히 민들레 비슷해 보이는 민들레 속에 분류되는 식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종인지 구분하려면 2,000개가 넘는 민들레 속 식물 중에서 따져 가며 정확한 종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 학계에서는 긴 세월 동안 라틴어 학명으로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Taraxacum platycarpum)’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이 바로 우리나라의 민들레라고 보고 있었다. 타락사쿰은 민들레 속이라는 뜻의 말이고 플라티카르품은 라틴어로 납작한 열매라는 뜻이니 아마 씨가 생길 때의 모양이 다른 민들레 종에 비해서 좀 납작해 보인다는 뜻으로 외국 학자들이 붙인 이름인 것 같다.
그런데 2017년 경북대 박재홍 교수가 한국에는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이 살고 있지는 않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은 일본에 사는 민들레 속으로 분류되던 식물이다. 아마도 옛 학자들이 처음 한국 식물들을 분류할 때 일본에서 발견된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과 비슷해 보이는 꽃을 한국에서 민들레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한국의 민들레가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과 똑같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박재홍 교수는 한국에서 우리가 그동안 민들레라고 부르던 꽃은 사실은 ‘타락사쿰 몽골리쿰(Taraxacum mongolicum)’이라는 조금 다른 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마 그 식물이 몽골 쪽에서 처음 발견되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타락사쿰 몽골리쿰을 사전에서 ‘털민들레’라는 다른 종 이름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털민들레라는 종과 민들레라는 종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한국에서 눈에 뜨인 첫 민들레에게 ‘털민들레’라는 이름을 붙여 줬고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 있는 다른 식물을 ‘민들레’라고 부르는 착각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명확한 종 명칭 기준으로 따졌을 때, 그동안 ‘민들레’라는 식물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박재홍 교수의 의견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져서 2020년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심의회에서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은 자생식물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즉, 한국은 ‘민들레’라는 이름의 꽃이 살지 않는 곳이 되었다.
한국 학계에서는 긴 세월 동안 라틴어 학명으로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Taraxacum platycarpum)’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이 바로 우리나라의 민들레라고 보고 있었다. 타락사쿰은 민들레 속이라는 뜻의 말이고 플라티카르품은 라틴어로 납작한 열매라는 뜻이니 아마 씨가 생길 때의 모양이 다른 민들레 종에 비해서 좀 납작해 보인다는 뜻으로 외국 학자들이 붙인 이름인 것 같다.
그런데 2017년 경북대 박재홍 교수가 한국에는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이 살고 있지는 않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은 일본에 사는 민들레 속으로 분류되던 식물이다. 아마도 옛 학자들이 처음 한국 식물들을 분류할 때 일본에서 발견된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과 비슷해 보이는 꽃을 한국에서 민들레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한국의 민들레가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과 똑같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박재홍 교수는 한국에서 우리가 그동안 민들레라고 부르던 꽃은 사실은 ‘타락사쿰 몽골리쿰(Taraxacum mongolicum)’이라는 조금 다른 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마 그 식물이 몽골 쪽에서 처음 발견되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타락사쿰 몽골리쿰을 사전에서 ‘털민들레’라는 다른 종 이름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털민들레라는 종과 민들레라는 종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한국에서 눈에 뜨인 첫 민들레에게 ‘털민들레’라는 이름을 붙여 줬고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 있는 다른 식물을 ‘민들레’라고 부르는 착각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명확한 종 명칭 기준으로 따졌을 때, 그동안 ‘민들레’라는 식물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박재홍 교수의 의견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져서 2020년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심의회에서 타락사쿰 플라티카르품은 자생식물목록에서 삭제되었다. 즉, 한국은 ‘민들레’라는 이름의 꽃이 살지 않는 곳이 되었다.

그동안 종 명칭 기준으로, 민들레라는 식물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김민철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상황이 다시 바뀐 것은 3년이 지난 2023년 12월 22일이다. 이때 다시 국립수목원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털민들레’라는 이름 자체를 아예 ‘민들레’로 고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그때부터 ‘민들레’라는 이름의 식물이 과학적으로도 정확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이 모든 사연을 돌아보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민들레라는 너무나 친숙한 식물의 이름을 정확히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아주 흔한 대상에 대한 문제에서조차, 지금도 과거의 지식을 바꿀 발견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이 또한 과학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도시 지역에 흔히 보이는 민들레 중에는 ‘타락사쿰 오피치날레(Taraxacum officinale)’라고 부르고 한국어로는 ‘서양민들레’라고 하는 종이 그냥 민들레 이상으로 많다. 이 또한 사연이 많은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언제인가 또 달리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그때부터 ‘민들레’라는 이름의 식물이 과학적으로도 정확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 이 모든 사연을 돌아보면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민들레라는 너무나 친숙한 식물의 이름을 정확히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아주 흔한 대상에 대한 문제에서조차, 지금도 과거의 지식을 바꿀 발견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이 또한 과학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도시 지역에 흔히 보이는 민들레 중에는 ‘타락사쿰 오피치날레(Taraxacum officinale)’라고 부르고 한국어로는 ‘서양민들레’라고 하는 종이 그냥 민들레 이상으로 많다. 이 또한 사연이 많은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언제인가 또 달리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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