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스케치는 힘이 세다! 하루 한 장씩 그렸을 때 생기는 변화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28) 공간에 대한 태도를 성장시키는 스케치 건축가들은 스케치를 많이 한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데 시각화하기 위해서나, 발전과정에 서로 소통하는 수단으로도 많이 하는데 실제 건축 프로젝트와 상관없이도 지속적으로 그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별도로 스케치하는 방법을 배운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투시도나 도면 같은 드로잉의 작도하는 법은 배우지만 스케치는 대부분 그냥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만의 관점과 방법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경우를 경험하고, 종종 그런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어릴 때 이것저것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대로, 자기 머릿속에서만 떠오른 대로 그려보는 그림들과도 비슷하다. 건축가의 스케치도 천편일률적이거나 사실적인 것보다는 그렇게 ‘개인화’된 것을 더 가치 있게 본다.일기가 아이의 성장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스케치를 매일 정해놓고 하다 보면 스스로의 태도가 성장한다. 자신만의 지도, 스케치 흔히 광고나 미디어에서는 유럽의 성당 같은 건축 앞에서 그것을 보며 스케치를 하는 모습의 건축가를 보여주곤 한다. 실제로 많은 건축과 학생들이 그러곤 하며 르 꼬르뷔제나 루이스 칸 같은 역사 속 알려진 건축가들도 그랬다. 그 건축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보며 이해를 하려는 방식이 있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재해석해서 스케치를 하는 방식도 있다. 손마다 핸드폰 렌즈가 들려있는 시대에 자신의 재해석이 담긴 스케치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지도(Personal geography)처럼 이야기를 전해준다.상상의 툴, 스케치 있는 대상을 그리는 것만큼 스케치의 중요한 것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공간을 그려내는 것이다. 큰 도시 규모에서부터 작은 가구까지, 상상 속에 있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스케치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 많은 분들이 ‘스케치는 상상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건축을 배우는 학생들도 그렇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나는 ‘스케치를 해보기에 상상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옳다고 믿는다. 즉, 그려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케치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같은 대상도 여러 번 그려보며 상상하고 그것이 발전된 의도로 이어지는 상보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여러 각도를 보는 눈, 스케치 어린이에게 스케치를 해보라고 하면 이게 위에서 본 것인지, 옆에서 본 것인지 마구 합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기성화된 그림 방법을 배우지 않은 더 어린 아이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놀랍게도 건축가들 중에서도 의도적으로 평면(위에서 본)과 입면(옆에서 본)과 단면(잘라서 본)의 스케치들을 함께 표현하기도 한다. 얼핏 무슨 그림인지 헷갈리게 보일 수 있지만 찬찬히 보면 그 연관 관계가 더 잘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사람은 평면이 아닌 입체로 사고하기에 평면, 입면, 단면, 투시도를 동시에 그릴 수 있고 섞을 수도 있는 것이다.스케치는 스스로 이야기한다 사진도 잘 찍으면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스케치는 그린 사람의 생각이 더 많이 담겨 있기에 보는 사람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그린 사람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던져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볼 때마다 스케치를 그린 스스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해 낼 수 있고 거기서 새로운 스케치를 그리는 원동력이 생기기도 한다. 그 이야기에서 ‘사람’은 중요하다. 공간은 그 혼자 시적으로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이 반응하며 점유하고 있을 때 더 활기가 생기고 의미가 있다. 다음세대의 공간은 더욱 그러하기에 그런 공간을 설계할 때 사람을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그린 선과 그림 속 사람들이 상호 반응하는 것이 발전되며 공간의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사람과의 반응이 만들어내는 공간 건축의 역사에서 그것의 형태를 좌우하는데 많은 요소가 있어왔다. 시대에 따라 자본, 철학, 미학, 종교, 기술, 산업, 기능 등이 형태를 만든다는 분석이나 선언들이 있었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유명한 이야기를 한 것에 빗대어, '형태는 재료를 따른다', '형태는 가능성을 따른다'와 같은 새로운 명제로 수정하는 건축가들도 있다. 필자는 다소 길긴 하지만 ‘형태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따른다(Form follows human interaction)’로 바꾸고 싶다. 다음세대 공간의 경우 위에 이야기한 자본, 기술, 산업 등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특히 그동안 간과해온 기본적인 사항인 어린이들과의 상호작용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공간의 형태가 발전되려면 물론 어린이들을 잘 관찰하고 이해해야 한다.매일같이 그리는 스케치의 힘 필요할 때마다 그리는 스케치와 매일 일정하게 그리는 스케치는 조금 다르다. 그때그때 프로젝트에, 소통에 필요하여 여기저기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스케치북을 정해 놓고 거기에 하루에 한 장씩 스케치를 해 나가다 보면 위에 이야기한 스케치의 속성들 때문에 그리는 자신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는 마치 어릴 때 매일같이 쓰던 일기장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일기장이 단순히 그날그날의 기록이기에 매일 쓰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성장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스케치를 매일 정해놓고 하다 보면 스스로의 태도가 성장한다. 6개월이라는 정해진 기간 동안 하루에서 이틀마다 한 장씩 그려 총 100개의 스케치를 채운 건축가들이 그 스케치북을 전시하고 있다. ‘스케치게임’이라는 기획을 한 건축가 김국환의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총 81명의 건축 관련 분들이 시작했지만 24명만이 끝까지 완주하여 전시하게 된 이 전시에서 누군가는 건축 재료에 대해서, 누군가는 상상 속 공간에 대해서, 누군가는 디테일에 대해서 꾸준하게 스케치했을 것이고 필자는 다음세대와 공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100개의 스케치를 채웠다. 그 모두는 그렇게 한 걸음 성장했을 것이다. 건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100스케치북’이라고 해서, 하루에 한 장씩 스케치를 하게 했다. 총 15-16주인 한 학기가 지나고 나면 100개가 넘는 스케치를 채우게 된다. 처음에는 과제로서 하던 학생들도 학기가 지나면서 스스로 즐기고 있고 변화되고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해볼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해보는 것을 먼저 하다 보면 관심도 생기고 발전도 생기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AI가 그림을 그려주는 시대에도 다음세대에게 스케치가 중요한 이유이다.
지정우 건축가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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