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동의 과거를 아시나요? 조선 시대 '황'을 캐던 유황점 이야기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4.15. 15:21

수정일 2026.04.15. 16:41

조회 117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소격동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소격동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2화    소격동의 요정과 산성비를 이어 주는 황

여러 가지 냄새 중에서도 유황 냄새라고 하면 무슨 냄새를 뜻하는지 대강은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황, 유황은 친숙한 물질이다. 유황은 보통 황이라는 원소의 순수한 덩어리라는 뜻으로 흔히 사용하는 말인데, ‘유황(硫黃)’이라는 한자어에서 ‘유(硫)’ 역시 유황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황산(黃酸)’이라고 부르는 황으로 만든 산성 물질을 ‘유산(硫酸)’이라는 한자어로 자주 표기한다. 여전히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황산’이라고 하면 단순히 황색의 산성 물질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글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한자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워낙에 자주 쓰는 ‘황(黃)’자 보다는 다른 뜻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 ‘유(硫)’라는 글자를 가져와서 유산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도 황산을 ‘유산(硫酸)’이라고 쓸 때가 더 많다.

말뜻이 조금 헷갈리는 것을 따질 만큼, 황산은 산성 물질 중에서 굉장히 흔하게 쓸 수 있는 물질이다. 화학 실험을 하면서 산성 용액으로 무엇인가를 녹여야 한다거나 공장에서 산성 용액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에 가장 먼저 떠올려 볼 수 있는 물질이 황산이다.

황산과 황의 여러 쓰임새

그 밖에도 현대에 사용하는 여러 금속이나 광물들은 돌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뽑아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 돌을 녹일 때에도 흔히 황산을 쓰곤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온갖 재료 중에는 우리 손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황산을 한 번 만난 후에야 우리 손에 들어 온 것들이 대단히 많다.

황산 말고도 황이 들어 있는 물질을 요긴하게 사용하는 사례는 무척 흔하다. 일단 황은 단백질에 종종 포함되는 성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황 덩어리를 사람이 먹으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황과 관련이 있는 안전한 물질들을 어느 정도는 먹어 주어야만 생물은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이 잘 자라나라고 황과 관련된 성분을 비료로 뿌려 주는 예도 있다. 하다못해 비타민 B1을 만드는 데도 황 성분이 약간은 필요하다.

이것 말고도 고무로 된 제품을 만들 때에는 고무를 탱탱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황을 약간 넣어 주는 ‘가황’이라는 공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체육복에 들어 있는 고무줄에서부터 자동차 타이어까지 고무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황이 있어야만 한다.

조선 시대에 더욱 귀했던 ‘황’ 구하기

현대 산업 사회가 도래하기 이전에도 황은 꽤나 소중한 물질이었다. 특히 조선 사람들은 황을 구하기 위해 긴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갖가지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왜냐하면 조선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기로 중요하게 여겼던 화약을 생산하기 위해서 그 재료로 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은 대개 화산 근처나 온천 같은 곳에서 쉽게 발견되곤 한다. 지금도 온천 중에는 ‘유황온천’이라고 해서 황 성분 냄새가 좀 더 나는 독특한 온천물이 나는 곳들이 있다. 서울에도 광진구에 개발되어 있는 온천이 다른 여느 온천보다는 황 성분이 많다고 해서 유황온천이라고들 부른다.

그러니 그 비슷한 자연조건이 갖춰진 곳에서는 보다 풍부한 황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화산과 온천이 많은 나라로 유명한 일본은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 황이 풍부한 나라였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가장 쉽게 황을 구하기 위해 생각했던 방법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에서 화약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 였다는 점 때문에 문제는 골치 아파졌다.

애초에 고려의 화학자 최무선이 처음 화약을 개발한 이유부터가 당시 고려에 들끓고 있던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였고, 그 후로도 조선 시대에는 오랜 기간 바다를 통해 일본군이 조선을 침입해 올 경우 그 공격을 막기 위해 화약 생산 계획을 세울 때가 많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정말로 일본과 큰 전쟁을 치른 이후에는 더욱더 일본군을 막기 위해 화약을 만들고 그러기 위해서 황을 구해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일본에서 황을 구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을 잘 끌고 가서 황을 거래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괜찮은 기회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조선의 화약 생산과 관련된 정보가 일본으로 새어 나갈 지도 모른다는 점 또한 큰 고민거리였다. 그렇다 보니 조선에서는 비밀스럽게 황을 구한다든가, 심지어 밀수꾼을 이용해 황을 구하는 방법까지 사용해야 했다.

황 캐내는 광산 ‘유황점’

결국 조선에서는 조선 땅 안에서 어떻게든 약간이라도 황을 캐내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황이 조금만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 황을 있는 대로 캐내고 나름대로 그 시절의 화학 기술을 총동원해서 그 속에 있는 황 성분을 최대한 순수하게 뽑아내는 방법을 시도했다. 이런 식으로 황을 캐내는 일종의 광산을 조선에서는 ‘유황점(硫黃店)’이라고 불렀는데 1600년대 초부터 후반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유황점 개발이 벌어졌다.

당연히 이런 일이 쉽지만은 않아서 조선 시대 기록을 보다 보면 유황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했기 때문에 문제였다는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 시대는 요즘처럼 유황을 많이 캔다고 해서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조선 시대는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어떻게든 계획된 수량을 맞춰야 하는 복종의 시대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고통은 커지기 십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황에 대해 이상하고 신비로운 소문이 돌기도 했다. <승정원일기> 1625년 음력 10월 13일 기록을 보면 황을 얻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황, 즉 ‘생유황(生硫黃)’을 구한 뒤에 그것을 ‘유황고(硫黃庫)’라는 곳에 묻어 놓으면 땅속에서 황이 신비로운 힘으로 스스로 자라나서 새끼를 친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황이 돌 속에 들어 있는 화학 성분이 아니라 어떤 기이한 요정 같은 살아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나 조금이라도 많은 황을 구하고 싶었으면 그런 말까지 돌았을까?

마침 이때 황을 묻어 놓는 유황고의 장소로 이야기한 곳은 다름 아닌 서울의 ‘소격서동’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소격서동이 조선에서 알려진 황 생산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1661년 음력 6월 13일에도 조선의 황 생산지의 대표 격으로 소격서동의 유황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한때는 분명 서울이 대표적인 황 생산지였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은 조선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황이 온갖 산업에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에 커다란 황을 캐는 광산이 운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은 황을 어디에서 구할까?
90년대에는 대도시의 산성비 문제가 큰 화제였다.
90년대에는 대도시의 산성비 문제가 큰 화제였다.

90년대 도시의 산성비 문제

여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서울의 산성비 이야기로 옮아간다.

1990년대에 서울을 비롯한 한국 대도시에서 산성비 문제가 큰 화제가 된 것을 아직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산성비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심지어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잘 빠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 정도로 산성비는 큰 문제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때만큼 산성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 짚어볼 만한 사실은 산성비 문제가 어느 정도는 해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를 예로 들면 산성비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990년대에 걱정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악화되지는 않고 있다.

환경부의 ‘대기환경연보’ 자료에 따르면 평균 비의 pH 수치는 2015년 4.8에서 2024년 5.2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산성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므로 이 정도면 잘 방어해 낸 수준이다. 같은 기간 동안 대전 같은 도시는 5.0에서 5.8 정도로 꾸준히 향상되는 경향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걸러내는 기술을 다양하게 개발해서 활용하면서 시민들의 노력으로 산성비를 최대한 줄여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성비의 원인 물질은 연료를 태울 때에 나오는 연기 성분 중에 물에 녹아서 산성을 띌 수 있는 물질들이다.

다시 말해서 석유를 많이 사용하고 자동차를 많이 타고 다니면 그 연기가 떠다니다가 빗물에 녹아 들어서 산성비가 생긴다.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연기 속 오염 물질이 이산화황을 비롯한 황산화물이라고 부르는 몇 가지 물질들이다.

그렇다는 말은 우리가 굴뚝마다 이런 오염 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면 그만큼 산성비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애초에 석유를 기계나 자동차에 넣기 전에 원인이 되는 물질을 미리 제거해 놓고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즉, 애초에 태우고 나서도 오염 물질이 생기지 않도록 석유를 깨끗하게 가공해 놓은 뒤에 태운다는 뜻이다.

정유 과정 속 ‘탈황’과 재활용

그래서 현대의 정유 회사들은 석유를 정제해서 등유, 경유, 휘발유 등등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기름을 생산하는 와중에 그 속에 들어 있는 황을 잡아채서 뽑아내는 작업을 대규모로 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황을 탈락시킨다고 해서 흔히 ‘탈황’이라고 부르는데, 탈황을 잘 하면서 기름을 만들어 내면 그 기름을 태워도 황 때문에 생겨나는 황산화물이 줄어들고 그만큼 산성비도 줄어들게 된다. 그런 만큼 한국의 정유 회사들은 거대한 탈황 설비들을 갖추고 항상 가동하고 있다.

과학의 묘미는 이렇게 환경을 지키기 위해 황을 빼내는 작업이 그냥 착한 마음으로 희생해서 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빼낸 불순물이라고 할 수 있는 황을 그것만 따로 모아서 판매한다는 생각을 해냈다.

석유 속에서 골치 아픈 쓰레기, 찌꺼기로 나오는 황을 오히려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제품으로 재활용해서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조선 시대에는 요정의 힘이라도 빌려서 황이 새끼라도 치기를 바랄 만큼 귀한 물질이 황이었다. 석유에서 뽑아낸 황이라고 해서 왜 돈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현재 한국은 세계적인 황 대국이 되었다. 지하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나라이지만 이렇게 일종의 재활용 방법을 통해서 한국은 매년 수백만 톤 단위의 황을 생산하면서 대략 세계 10대 황 생산국에 꼽힐 정도다.

그만큼 한국의 정유 산업과 화학 기술이 발달해 있다는 뜻도 된다. 심지어 2021년에는 세계적으로 화산이 많고 황이 많이 나올 만한 인도네시아에 한국 회사가 황을 수출한다는 소식이 나올 정도였다.

기술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굳이 탈황을 하라고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기업에서는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산성비 원인 물질을 최대한 빼내려고 한다. 그렇기에 환경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 시대에 조정에서 황을 캐내라고 닥달하면 아랫사람들이 괴로워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지금은 일어나는 것이다.

그 덕분에 황과 황산을 이용하는 다른 수많은 산업도 한국에서는 잘 발달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요즘처럼 석유 가격이 높아지는 시대에는 그만큼 걱정거리도 많아진다.

석유로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의 가격이 높아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칫 상황이 길어지면 석유를 가공하다가 나오던 황을 구하는 것조차도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반도체에서 각종 금속 재료, 온갖 비료와 다양한 약품을 만드는 그 모든 일들이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현대 기술 산업은 그 정도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선 시대의 황 생산지가 있었다는 소격서동의 위치는 지금의 서울 종로구 소격동 지역이라고 보는 의견이 중론이다. 지금 이곳에는 황 광산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혹시 미술관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노란 빛을 띈 어미 황과 아기 황이 요정처럼 같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까? 그야말로 상상일 뿐이지만, 소중한 물질을 구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옛이야기를 떠올리며 해 볼 만한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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