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시청 지하에서 만든 것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조선의 로켓' 이야기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3.18. 15:02

서울시청 지하 군기시 유적전시실
50화 조선의 로켓과 단종의 운명
조선 시대에 한국인들이 일찌감치 상당히 뛰어난 화약 무기를 개발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이 수많은 대포를 실은 배를 지휘하면서 적진을 무너뜨리는 모습은 이미 많은 TV 사극과 영화에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화약을 이용하는 여러 가지 조선 시대 무기들도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신기전이라는 무기가 조선 시대의 로켓이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신기전이라는 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신비로운 기계로 움직이는 화살이라는 뜻인데 실제 구조는 화약을 폭발시키는 반작용의 힘으로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전형적인 소형 로켓 형태로 되어 있다.
로켓이라고 하면 우주 로켓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요즘은 조금 낯설 수도 있는데, 원래 로켓이라고 하면 이런 소형 로켓을 실험용이나 군사 무기로 쓴 것이 우주 로켓보다 훨씬 더 먼저였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바주카’ 또는 ‘바주카포’라고 부르는 무기만 해도 사실은 작은 로켓을 발사해 적을 공격하는 장치다. 그러니 신기전은 조선의 바주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기였다.
신기전보다 더 앞선 시기에 개발된 무기도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화약의 원조이자, 한국 역사상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진 화학자라고도 볼 수 있는 고려 시대의 최무선이 개발한 ‘주화(走火)’라고 하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화는 말 그대로 옮기자면 주행하는 불이라는 뜻인데, 불덩어리가 스스로 달려갈 리는 없기 때문에 아마도 화약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로켓 형태의 무기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쉽게도 주화가 어떤 무기였는지 명확한 설계와 구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책인 ‘화포식언해’에 주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신기전과 비교하고 있는 내용이 남아 있으므로 로켓과 비슷한 느낌의 무기였음은 거의 확실하다.
조선 시대의 화약 무기 기술에 대해 의외로 덜 알려진 사실도 있다. 그것은 이런 무기들을 그냥 시험 삼아 특수하게 하나둘 만들어 본 것이 아니라 대량 생산해서 일선 병사들이 흔히 접했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로켓인 주화만 보더라도 ‘조선왕조실록’ 1447년 음력 11월 22일과 12월 2일 기록에 따르면 북부 지방에 총도합 3만 3,530개의 주화를 보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의 조선 병사들은 3만 발의 로켓을 쌓아 두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한국인들이 일찌감치 상당히 뛰어난 화약 무기를 개발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이 수많은 대포를 실은 배를 지휘하면서 적진을 무너뜨리는 모습은 이미 많은 TV 사극과 영화에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화약을 이용하는 여러 가지 조선 시대 무기들도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신기전이라는 무기가 조선 시대의 로켓이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신기전이라는 말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신비로운 기계로 움직이는 화살이라는 뜻인데 실제 구조는 화약을 폭발시키는 반작용의 힘으로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아갈 수 있는 전형적인 소형 로켓 형태로 되어 있다.
로켓이라고 하면 우주 로켓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요즘은 조금 낯설 수도 있는데, 원래 로켓이라고 하면 이런 소형 로켓을 실험용이나 군사 무기로 쓴 것이 우주 로켓보다 훨씬 더 먼저였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바주카’ 또는 ‘바주카포’라고 부르는 무기만 해도 사실은 작은 로켓을 발사해 적을 공격하는 장치다. 그러니 신기전은 조선의 바주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기였다.
신기전보다 더 앞선 시기에 개발된 무기도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 화약의 원조이자, 한국 역사상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진 화학자라고도 볼 수 있는 고려 시대의 최무선이 개발한 ‘주화(走火)’라고 하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화는 말 그대로 옮기자면 주행하는 불이라는 뜻인데, 불덩어리가 스스로 달려갈 리는 없기 때문에 아마도 화약을 이용해서 움직이는 로켓 형태의 무기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쉽게도 주화가 어떤 무기였는지 명확한 설계와 구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책인 ‘화포식언해’에 주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신기전과 비교하고 있는 내용이 남아 있으므로 로켓과 비슷한 느낌의 무기였음은 거의 확실하다.
조선 시대의 화약 무기 기술에 대해 의외로 덜 알려진 사실도 있다. 그것은 이런 무기들을 그냥 시험 삼아 특수하게 하나둘 만들어 본 것이 아니라 대량 생산해서 일선 병사들이 흔히 접했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로켓인 주화만 보더라도 ‘조선왕조실록’ 1447년 음력 11월 22일과 12월 2일 기록에 따르면 북부 지방에 총도합 3만 3,530개의 주화를 보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의 조선 병사들은 3만 발의 로켓을 쌓아 두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전쟁기념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무기들
가끔 사극 영화를 보다 보면 뛰어난 총과 대포를 갖고 있는 유럽 군대가 쳐들어오면 기술에서 뒤처진 아시아 군대는 창과 칼 따위만 들고 덤비다가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조선군을 예로 들면 그런 장면은 비현실적인 과장일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정반대로, 600년 전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량의 로켓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를 조선이 운영하고 있었다. 조선의 적은 로켓 같은 것을 보지도 듣지도 떠올려 보지도 못했을 텐데, 그런 적이 공격했을 때 로켓을 써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덩이를 이용해 방어하는 조선군을 보면 거의 마법과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조선 과학 기술의 위력이었다.
주화 다음으로 새롭게 개발되어 한동안 조선의 기본 무기로 활용되었던 신기전 역시 특별한 비밀무기가 아니라 대량으로 생산되어 자주 쓰던 무기였다.
‘조선왕조실록’ 1451년 음력 1월 4일 기록을 보면 신기전 7,000발을 평안도 한 곳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전국 팔도에 쌓아 놓은 신기전들을 모두 합치면 역시 몇만 발로 헤아릴 만큼 많은 신기전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 초기와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조선 후기에도 약간의 신기전이 꾸준히 쓰였기 때문에 약 300년 후인 18세기에 나온 ‘열하일기’에도 저자인 박지원이 중국 청나라의 불꽃놀이를 보고 ‘우리나라의 신기전 같다’고 표현한 내용이 있을 정도다.
박지원은 딱히 군사와 관련된 전문가도 아니었고 특별한 전투에도 참전한 적이 없는데 그런 그가 ‘신기전 같다’는 비유법을 쓴 것을 보면, 신기전은 어쩌면 조선 시대 내내 조선 과학 기술의 오랜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 잡은 발명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반대로, 600년 전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량의 로켓과 대포로 무장한 군대를 조선이 운영하고 있었다. 조선의 적은 로켓 같은 것을 보지도 듣지도 떠올려 보지도 못했을 텐데, 그런 적이 공격했을 때 로켓을 써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덩이를 이용해 방어하는 조선군을 보면 거의 마법과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조선 과학 기술의 위력이었다.
주화 다음으로 새롭게 개발되어 한동안 조선의 기본 무기로 활용되었던 신기전 역시 특별한 비밀무기가 아니라 대량으로 생산되어 자주 쓰던 무기였다.
‘조선왕조실록’ 1451년 음력 1월 4일 기록을 보면 신기전 7,000발을 평안도 한 곳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전국 팔도에 쌓아 놓은 신기전들을 모두 합치면 역시 몇만 발로 헤아릴 만큼 많은 신기전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 초기와는 상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조선 후기에도 약간의 신기전이 꾸준히 쓰였기 때문에 약 300년 후인 18세기에 나온 ‘열하일기’에도 저자인 박지원이 중국 청나라의 불꽃놀이를 보고 ‘우리나라의 신기전 같다’고 표현한 내용이 있을 정도다.
박지원은 딱히 군사와 관련된 전문가도 아니었고 특별한 전투에도 참전한 적이 없는데 그런 그가 ‘신기전 같다’는 비유법을 쓴 것을 보면, 신기전은 어쩌면 조선 시대 내내 조선 과학 기술의 오랜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 잡은 발명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기전과 종이
조선 사람들은 신기전 같은 로켓을 어떻게 해서 그렇게나 잘 만들 수 있었을까? 조선 시대에 멧돼지를 맨손으로 잡는다는 전설로 유명했던 이징옥은 의외로 신기전을 무척 중시했다. 우락부락한 힘센 장군 같은 전설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당시의 첨단 기술 무기였던 신기전에 밝았다는 뜻이다.
1451년 음력 1월 8일 실록 기록을 보면 이징옥이 조정에 보냈던 보고서가 있는데 그 보고서에서 그는 ‘신기전이 적에 대응하는데 가장 긴요한 물건’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징옥은 신기전을 자기가 더 생산하겠다면서 필요한 재료로 종이를 요청했다. 왜 로켓을 만드는데 종이가 필요할까? 종이 비행기도 아니고 종이로 로켓을 만든다니, 요즘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실 종이는 조선 시대 로켓의 핵심 기술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었다. 멀리 잘 날아 가는 로켓을 만들어 내려면 불에 타는 로켓 연료를 원하는 모양대로 정확히 담아 놓을 수 있는 연료통이 있어야 하고, 그 연료통에 연결되어 불타는 연기와 열을 내뿜을 수 있는 구멍, 즉 분사구를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
연료통은 가벼우면서도 질겨야 하고 또 열기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누리호 같은 현대의 최신형 로켓은 알루미늄 합금 기술을 이용해서 이런 로켓의 재료를 만든다. 그런데 알루미늄 대량 생산은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성공할 수 있었던 기술이다.
그래서 조선의 과학자들은 질기고 튼튼한 종이를 잘 겹쳐서 두꺼운 판지로 만들어 가공하면 원하는 연료통의 모양을 쉽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열기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선 사람들은 조선이 세계 최고 품질의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시도해 볼만한 일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이익이 쓴 ‘성호사설’만 보더라도, 그는 조선의 ‘백추지(白硾紙)’라는 종이를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천하에서 보배로 여기는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주장할 정도였다. 이런 산업 기술의 바탕 위에서 강력한 로켓을 대량 생산한다는 국방의 성과도 이루어진 것이다.
1451년 음력 1월 8일 실록 기록을 보면 이징옥이 조정에 보냈던 보고서가 있는데 그 보고서에서 그는 ‘신기전이 적에 대응하는데 가장 긴요한 물건’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징옥은 신기전을 자기가 더 생산하겠다면서 필요한 재료로 종이를 요청했다. 왜 로켓을 만드는데 종이가 필요할까? 종이 비행기도 아니고 종이로 로켓을 만든다니, 요즘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사실 종이는 조선 시대 로켓의 핵심 기술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었다. 멀리 잘 날아 가는 로켓을 만들어 내려면 불에 타는 로켓 연료를 원하는 모양대로 정확히 담아 놓을 수 있는 연료통이 있어야 하고, 그 연료통에 연결되어 불타는 연기와 열을 내뿜을 수 있는 구멍, 즉 분사구를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
연료통은 가벼우면서도 질겨야 하고 또 열기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누리호 같은 현대의 최신형 로켓은 알루미늄 합금 기술을 이용해서 이런 로켓의 재료를 만든다. 그런데 알루미늄 대량 생산은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성공할 수 있었던 기술이다.
그래서 조선의 과학자들은 질기고 튼튼한 종이를 잘 겹쳐서 두꺼운 판지로 만들어 가공하면 원하는 연료통의 모양을 쉽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열기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선 사람들은 조선이 세계 최고 품질의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시도해 볼만한 일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이익이 쓴 ‘성호사설’만 보더라도, 그는 조선의 ‘백추지(白硾紙)’라는 종이를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천하에서 보배로 여기는 것’이라고 자신감 있게 주장할 정도였다. 이런 산업 기술의 바탕 위에서 강력한 로켓을 대량 생산한다는 국방의 성과도 이루어진 것이다.

신기전의 핵심 재료는 ‘종이’였다.
화약 대량 생산을 위해 모았던 ‘흙’
로켓의 겉을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그 안에 채워 넣는 화약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기 위한 준비도 다양한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화약의 핵심 재료는 예전에는 염초라고 불렀던 질소계 화합물이다. 지금이야 하버-보쉬 공정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대량의 질소계 화합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조선 시대에는 질소계 화합물을 쉽게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자주 사용하던 방법은 땅을 잘 뒤져서 일종의 썩은 흙을 구해 온 뒤에 그 속에 약간 섞여 있는 유용한 물질을 조금씩 추출해 가며 염초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화약을 만들어 내려면 막대한 양의 흙을 가공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록의 1450년 음력 9월 19일 기록을 보면 조정에서 각 지역의 흙을 배로 서울로 계속 실어 와서 가공하는 방식으로 염초를 대량 생산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과학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화약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기술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이징옥이 활약하던 때이자, 조직적인 염초 생산 계획을 가다듬던 무렵은 바로 문종이 임금이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마침 문종 임금은 직접 화약 무기의 개발과 실험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실록 1451년 음력 2월 13일 기록을 보면 문종의 지시 아래 ‘화차(火車)’라고 부르는 100발 가량의 신기전 로켓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고 시험했던 기록이 있다.
그리고 화차 역시 수십 대가 생산되어 실전에서 활용되었다. 조선의 남이 장군, 우공 화차장 등은 화차 같은 무기를 동원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북쪽으로 진격했고,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역에 근거를 두고 조선 국경을 침략하던 여진족 실력자 이만주 같은 인물을 완벽히 토벌하기도 했다.
나중에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병자호란 때에는 여진족 실력자 홍타이지에게 조선은 완패해 굴욕적으로 항복하게 된다. 그런 사건과 비교해 보자면 조선 초기에 긴 세월 이어지는 평화를 가져왔던 전투의 성과는 더욱 값져 보인다.
그렇지만 조선 시대에는 질소계 화합물을 쉽게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나마 자주 사용하던 방법은 땅을 잘 뒤져서 일종의 썩은 흙을 구해 온 뒤에 그 속에 약간 섞여 있는 유용한 물질을 조금씩 추출해 가며 염초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화약을 만들어 내려면 막대한 양의 흙을 가공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록의 1450년 음력 9월 19일 기록을 보면 조정에서 각 지역의 흙을 배로 서울로 계속 실어 와서 가공하는 방식으로 염초를 대량 생산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 과학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화약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기술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이징옥이 활약하던 때이자, 조직적인 염초 생산 계획을 가다듬던 무렵은 바로 문종이 임금이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마침 문종 임금은 직접 화약 무기의 개발과 실험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실록 1451년 음력 2월 13일 기록을 보면 문종의 지시 아래 ‘화차(火車)’라고 부르는 100발 가량의 신기전 로켓을 연속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고 시험했던 기록이 있다.
그리고 화차 역시 수십 대가 생산되어 실전에서 활용되었다. 조선의 남이 장군, 우공 화차장 등은 화차 같은 무기를 동원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북쪽으로 진격했고, 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역에 근거를 두고 조선 국경을 침략하던 여진족 실력자 이만주 같은 인물을 완벽히 토벌하기도 했다.
나중에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병자호란 때에는 여진족 실력자 홍타이지에게 조선은 완패해 굴욕적으로 항복하게 된다. 그런 사건과 비교해 보자면 조선 초기에 긴 세월 이어지는 평화를 가져왔던 전투의 성과는 더욱 값져 보인다.

군기시 유적 출토유물
조선 역사 속 과학·기술자들
문종 임금은 신기전을 활용하는 내용을 포함해 실제로 병사들이 싸우는 전술을 정리해 놓은 ‘신진법’이라는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책을 정리해 완성하는 작업을 부하들에게 시켰는데 그때 문종이 임무를 맡긴 인물이 김종서와 자신의 동생 세조였다. 아마도 신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인 김종서와 가족 중에서 유능한 인물인 세조에게 같이 일을 맡긴 것 아닌가 싶다.
세조는 나중에 단종의 임금 자리를 빼앗으려 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김종서는 세조의 반대편에서 단종을 지키려는 입장에 있었고, 세조는 그를 가장 껄끄러운 적수로 여겼다. 그래서 세조는 김종서부터 제거하면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 상황을 돌아보면, 나는 이런 상상도 한번 해본다. 문종은 아마도 동생인 세조와 김종서가 그렇게 사이가 나쁜 것을 미리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문종 임금이 ‘제발 서로 싸울 생각을 하지 말고 힘을 합해 나라를 지킬 생각을 하라’라는 뜻으로 같이 힘을 모아 ‘신진법’을 정리하는 일을 해보라고 명령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세조는 결국 단종의 임금 자리를 빼앗았다. 사실 문종은 김종서, 세조뿐만 아니라 정인지라는 사람을 붙여서 세 사람에게 ‘신진법’ 정리 임무를 맡겼던 것인데, 정인지는 세종 시절부터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르기로 이름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정인지는 하필 세조가 김종서를 공격할 때 세조 편을 들었다.
세조와 김종서가 다툴 때, 신기전에 밝았던 그 이징옥은 여전히 강한 병력을 데리고 든든하게 김종서를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조는 몰래 암살자를 보내 이징옥을 간단히 처치해 버렸다.
여기에 더해 세조는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독특한 기록을 남긴 박강이라는 과학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박강은 신기전과 같은 무기 생산에도 경험이 많았다. 온천의 목욕탕 공사 작업에서 좋은 소리가 나는 종을 만드는 일까지 온갖 기술에 밝았으며, 전설적인 조선의 과학자인 장영실과 같이 일했다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박강의 지식과 실력 역시 세조에게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역사의 큰 변화 뒤에는 과학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같이 엮여 있는 수가 많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조선의 역사에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볼 만하다. 종종 조선의 전통문화는 과학과 상관이 없고 심지어 과학과 조선의 전통은 반대라고까지 생각하는 수가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현대의 과학과 뿌리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조선 역시 그 나름의 과학 기술을 열심히 개발했기 때문에 나라를 유지하고 평화를 지켜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조선의 로켓에 얽힌 이야기들로부터도 잘 알 수 있다.
세조는 나중에 단종의 임금 자리를 빼앗으려 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김종서는 세조의 반대편에서 단종을 지키려는 입장에 있었고, 세조는 그를 가장 껄끄러운 적수로 여겼다. 그래서 세조는 김종서부터 제거하면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 상황을 돌아보면, 나는 이런 상상도 한번 해본다. 문종은 아마도 동생인 세조와 김종서가 그렇게 사이가 나쁜 것을 미리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문종 임금이 ‘제발 서로 싸울 생각을 하지 말고 힘을 합해 나라를 지킬 생각을 하라’라는 뜻으로 같이 힘을 모아 ‘신진법’을 정리하는 일을 해보라고 명령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세조는 결국 단종의 임금 자리를 빼앗았다. 사실 문종은 김종서, 세조뿐만 아니라 정인지라는 사람을 붙여서 세 사람에게 ‘신진법’ 정리 임무를 맡겼던 것인데, 정인지는 세종 시절부터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르기로 이름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정인지는 하필 세조가 김종서를 공격할 때 세조 편을 들었다.
세조와 김종서가 다툴 때, 신기전에 밝았던 그 이징옥은 여전히 강한 병력을 데리고 든든하게 김종서를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조는 몰래 암살자를 보내 이징옥을 간단히 처치해 버렸다.
여기에 더해 세조는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독특한 기록을 남긴 박강이라는 과학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박강은 신기전과 같은 무기 생산에도 경험이 많았다. 온천의 목욕탕 공사 작업에서 좋은 소리가 나는 종을 만드는 일까지 온갖 기술에 밝았으며, 전설적인 조선의 과학자인 장영실과 같이 일했다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박강의 지식과 실력 역시 세조에게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역사의 큰 변화 뒤에는 과학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같이 엮여 있는 수가 많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조선의 역사에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했는가 하는 생각도 해볼 만하다. 종종 조선의 전통문화는 과학과 상관이 없고 심지어 과학과 조선의 전통은 반대라고까지 생각하는 수가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현대의 과학과 뿌리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조선 역시 그 나름의 과학 기술을 열심히 개발했기 때문에 나라를 유지하고 평화를 지켜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조선의 로켓에 얽힌 이야기들로부터도 잘 알 수 있다.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에 남아있는 화약창고 ‘번사창’
서울 한복판에서 발견된 역사적 장소들
문종, 단종, 세조 시기에 신기전과 같은 로켓을 만들고 화약을 개발하던 장소로 가장 중요했던 곳은 ‘군기감’ 또는 ‘군기시’라고 불렀던 관청이다. 이곳은 현대의 서울 시민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서울시청 건물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
비록 지금은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지금도 지하에 가 보면 600년 전의 건물터 흔적이 남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어쩌면 문종이나 세조의 손이 닿았던 로켓 부품 한 조각쯤은 아직까지도 한켠에 묻혀 있을지 모른다.
또한 그 시대에 생산된 화약을 대량 보관했던 장소로는 서울의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안에 지금도 남아 있는 ‘번사창’이 있는 곳도 유명하다. 원래 조선 초기에 있던 화약 관련 시설은 지금 완전히 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조선 말기에 그 장소에 건설한 무기 공장인 근대 건물이 번사창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기에 적어도 그 위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천무’, ‘천궁’같이 로켓을 이용한 무기를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 기술로 개발해 노르웨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등의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 기술의 성과가 빛나 보일 때에, 군기시 터와 번사창 같은 장소는 평화와 과학 사이의 오랜 관계를 생각하며 돌아볼 만한 곳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록 지금은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지금도 지하에 가 보면 600년 전의 건물터 흔적이 남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어쩌면 문종이나 세조의 손이 닿았던 로켓 부품 한 조각쯤은 아직까지도 한켠에 묻혀 있을지 모른다.
또한 그 시대에 생산된 화약을 대량 보관했던 장소로는 서울의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안에 지금도 남아 있는 ‘번사창’이 있는 곳도 유명하다. 원래 조선 초기에 있던 화약 관련 시설은 지금 완전히 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조선 말기에 그 장소에 건설한 무기 공장인 근대 건물이 번사창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기에 적어도 그 위치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천무’, ‘천궁’같이 로켓을 이용한 무기를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 기술로 개발해 노르웨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등의 여러 나라에 수출까지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 기술의 성과가 빛나 보일 때에, 군기시 터와 번사창 같은 장소는 평화와 과학 사이의 오랜 관계를 생각하며 돌아볼 만한 곳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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