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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지금 봐도 매력적! 60년 전 남산에 있었던 특별한 놀이터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8) 살아 숨쉬는 놀이터 고고학 필자의 사무실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에 위치한다. 곧 예순 살이 되어가는 1965년에 지어진 ‘정동아파트’인데 여전히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주민들이 머물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외부는 오래되어 낡았지만 일상의 풍경이 살아 숨 쉬는 매력 넘치는 곳이다. 더욱이 인근의 서울시립미술관(구 경성재판소, 1927), 정동제일교회 벧엘관(1897), 덕수궁 등도 있어서 서울의 시간을 간직한 대표적인 장소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왜 어린이 놀이터는 우리가 성장하고 나서도 그 자리에 나이 든 모습으로 남아있을 순 없을까?우리의 오래된 놀이터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은 어린시절 놀던 놀이터 중에 기억나는 장소가 있는지, 그 장소가 아직도 있는지 묻고 싶다. 왜 어린이 놀이터는 우리가 성장하고 나서도 그 자리에 나이 든 모습으로 남아있을 순 없을까? 30~40년 전의 놀이터를 다시 우리의 아이들과 찾을 수 있다면 오래된 아파트 만큼이나 도시는 더욱 풍부한 기억의 장소, 여러 층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서울 남산의 백범광장 근처에 아주 특별한 놀이터가 있었다. 남산 어린이 놀이터로, 완공은 1963년이었고, 1,500명의 어린이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어진 구조물로 지금 보아도 상당히 모던한 디자인이다. 지금의 일반적인 놀이터들에 비하면 더욱 진보적인 놀이풍경이라 할 수 있을 만하다. 이 놀이터가 언제 사라졌는지 기록이 없지만 필자도 이곳에서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세계의 오래된 놀이터 사실 1963년이면 앞서 이야기한 정동아파트보다도 더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존하는 오래된 놀이터들보다도 상당히 앞서있는 셈이 된다. 비슷한 개념의 미국 조경가 ‘폴 프라이드버그(Paul Friedburg)’의 Riis Park Plaza만 해도 1965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미국 아틀란타 Playscapes도 1976년에 완성되어 지금도 조금씩 고쳐가며 계속 어린이들과 시민들의 놀이 장소로 쓰이고 있다. 뉴욕에는 센트럴파크 주변에 건축가 리차드 다트너(Richard Dattner, 1937-)에 의한 여러 놀이터들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인 ‘모험놀이터 (Adventure Playground, 1967)’는 두 번에 걸친 리노베이션과 업그레이드를 거쳐서 현재의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원래의 디자인이 잘 살아있으며 뉴욕이라는 도시 풍경에 어린이 놀이풍경의 겹이 더해진 장소가 되었다. 남산 어린이 놀이터의 건축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앞서간 이 남산 어린이 놀이터는 누가 설계했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인근의 이광노 교수(1928-2018) 작품인 구 남산어린이회관(현 교육청 건물)은 1969년 작으로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로 지어졌고, 이해성 교수(1928-2008)의 남산도서관은 역시 콘크리트 수평 발코니가 강조된 모습으로 1964년에 완공되었다. 이 두 가지 근대 건축물들에 비해서도 남산 어린이 놀이터는 앞서 있는데 이 두 건축가 중 한 명이 이 놀이터도 설계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남산어린이회관 앞마당(지금의 백범광장)에는 역시 콘크리트 쉘(조개껍질 모양)로 된 ‘남산 야외음악당’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1962년에 남산공원 현상설계(남산 미화 설계)가 있었고 건축가 안병의(1927-2005)가 1등에 당선되어 이 야외음악당도 설계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1963년도에 완성된 야외음악당을 비롯해 남산공원이 조성될 때 놀이터도 완성이 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남산 어린이 놀이터는 별도로 설계자 기록을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건축가 안병의의 설계일 수 있다. 이렇게 추측한 이유에는 1969년도의 건축전문잡지 ‘공간’에서 안병의 설계의 주택 평면도에 ‘어린이 스페이스’라고 적힌 방이 특별히 눈에 띄었고 어린이에 대한 생각이 남다른 건축가여서 그럴 수 있겠다는 짐작도 더해졌다. 또한 건축가 안병의는 주한 프랑스대사관(1959-1962), 삼일빌딩(1970) 등을 설계한 거장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매제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며 김중업이 사사받은 세계적인 건축가 ‘르 꼬르뷔제 (Le Corbusier, 1887-1965)’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져온다. 세계적인 흐름 속의 남산 어린이 놀이터 디자인 르 꼬르뷔제가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설계한 현대 아파트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공동주택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 1952)을 보면 옥상에 어린이 놀이터와 유치원이 있다. 꼬르뷔제는 이것을 설계하며 콘크리트만을 사용하여 조형적인 동굴과 외부 교실 겸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벽을 만들었다. 남산공원의 놀이터가 콘크리트 벽체로 구성이 되었고 야외 음악당이 조형적인 쉘 모양인 것이 당시의 꼬르뷔제를 필두로 한 건축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지며, 근현대 기념비적 공공건축이 대거 세워지던 60년대 남산이라는 특성상 훨씬 대규모로 놀이풍경을 형성하게 된 점이 흥미롭다. 물론 놀이터는 수십 년 이상 사용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건축물만큼 꼼꼼한 유지 관리가 중요하다. 세계의 다른 도시보다 더 앞서갔던 60년 전 상상력 가득한 놀이터를 21세기 다음세대들이 즐길 기회가 없어진 것은 내내 아쉽다. 이 남산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는 분들의 제보도 환영한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새로운 놀이풍경 또한 앞으로 50년 60년이 지나며 유지되고 발전되길 꿈꿔본다.
지정우 건축가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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