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게임 회사들, 서울 이 거리에서 태어났다!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6.10. 14:44

수정일 2026.06.10. 14:44

조회 142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강남구 테헤란로 전경
강남구 테헤란로 전경
  56화    한국 게임 산업의 고향, 테헤란로

벤처 기업이 큰 바람으로 불어닥치고 있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IT 창업의 꿈을 갖고 있는 풍운아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던 곳은 단연 서울의 테헤란로였다. 테헤란로라는 이름은 석유 파동으로 한참 경제가 어려워서 어떻게든 석유가 많은 중동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보려고 노력하던 1977년에 탄생한 이름이다. 그 해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시장인 골람레자 닉페이가 서울을 방문한 것을 기념 삼아 서울의 한 거리에 테헤란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이 지금도 테헤란로에 가면 “테헤란로”라는 말을 써 놓은 돌에 페르시아어로도 같은 말이 새겨져 있는 이유다. 요즘 이곳은 이란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가끔 기념 촬영을 하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석유 산업 때문에 생긴 이름이 세월이 흐르면서 엉뚱하게도 IT 산업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2000년 무렵에는 IT 기업들이 많이 있다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본떠서 서울 테헤란로 일대를 “테헤란 밸리”라고 부르는 기사가 신문에 자주 실리기도 했다. 그렇게 바람이 불었던 만큼 좋은 사업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만 있으면 하루아침에 회사를 크게 키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그 시절 테헤란로 거리에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품었던 젊은이들 중에는 지금 거대한 규모로 성장한 게임 회사를 창립한 사람들도 있었다.

‘테헤란 밸리’에서 싹튼 IT 창업의 꿈

초창기 테헤란로에 자리 잡은 사람 중에 가장 전설적인 인물로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미 업계에서는 꽤 알려졌던 인물이었던 ‘김택진 사장’을 꼽아 볼만 하다. 김 사장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초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부터 컴퓨터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잘 만들 줄 아는 천재 학생으로 유명했다.

그는 진작부터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글을 쓰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프로그램이 HWP라는 파일 확장자로 너무나 잘 알려진,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워드프로세서다. 김 사장은 ‘한메타자교사’ 등을 개발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창립에 뛰어들기도 했는데, 1990년대 초에는 전국민이 타자연습을 할 때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초창기 역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에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그는 학생 시절부터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성공할 꿈을 꾸곤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회사를 세워 소프트웨어 사업을 펼친 곳이 바로 테헤란로의 한 사무실이었다. 지금 김택진 사장이라고 하면 거대한 게임 회사의 경영자로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사실 그가 처음 회사를 키워 나갔던 분야는 다른 회사에서 쓰는 이런저런 업무용 프로그램을 대신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회사에서는 회사 사람들끼리 사용할 게시판이라든가 공지사항을 올려놓는 곳 같은 것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회사의 특별한 장부를 관리하거나 업무를 하면서 꼭 맞춰 봐야 하는 숫자를 계산해 주고 확인해 주는 프로그램 등등도 필요할 때가 많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일들을 해 주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시중에 나와 있지만 30여 년 전인 그 시절에는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러니 필요한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서 써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게다가 회사마다 각자의 사정으로 다른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의 기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작업들이 있기도 한 지라 회사 업무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수요는 항상 조금씩 있었다.

김택진 사장은 20대에 다른 사람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회사 업무에 필요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경험을 살려서 창업 초기에 어떻게든 회사가 돈을 벌고 먹고 살 길을 찾아 그런저런 일들을 했다. 이 회사에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일감이 생기면 그것을 따와서 돈을 좀 벌고 저 회사에서 일거리가 생겼다고 하면 그것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서 돈을 좀 버는 식으로 회사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버티면서 온갖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업에서 별별 경험을 쌓으며 잔뼈가 단단히 굵은 김 사장은 나중에 진출한 게임 사업에서 결국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

처음부터 게임 사업을 노리고 뛰어든 인물이라면 ‘김정주 사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만하다. 김 사장은 KAIST 대학원생 출신이었는데 KAIST와 서울대학교는 한국 인터넷의 발상지이기도 했고, 인터넷이 미국의 기술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간 초기의 역사에도 참여했을 정도로 인터넷이 빨리 보급된 곳이었다. ☞ [5화]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서울 '이 산'에서 시작됐다?!

그렇다 보니 KAIST 학생들은 1990년대부터 이미 컴퓨터를 이용해 학생들이 인터넷망에 접속하고 글을 올려서 서로 돌려 보거나 안부를 묻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이런 부류의 온라인 게시판을 그 시절에는 ‘BBS’라고 불렀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학교 내부의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는 일을 학생들은 속어로 “비비질을 한다”고들 불렀다.

그렇다 보니 인터넷을 통해 글자를 주고받으며 일종의 게임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게임이라고 해 봐야 대단한 것이 아니고, 그냥 글자로 “괴물이 있는 동굴에 들어왔다. 무엇을 할까? 1번 공격한다. 2번 도망간다. 3번 잠시 기다리면서 상태를 본다” 정도의 말이 나오면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오는 글자를 지켜보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인터넷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여럿이서 그런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 대화도 하고 의논도 하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때는 무척 묘한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프로 게임 대회.
서울에서 열린 프로 게임 대회.

거대한 게임 회사들의 탄생

그래서 학생들 중에는 그런 게임을 그림과 음악이 나오는 진짜 게임 같은 게임으로 개량해 본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냐는 꿈을 꾼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 중에 김정주 사장, 송재경 사장 같은 이들이 힘을 합해 1990년대 중반에 서울 테헤란로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가 나중에 거대한 게임 회사로 성장해 대표적인 한국의 IT 기업이 되었다.

참고로 얼마 후에 송재경 사장은 처음 시작했던 회사를 떠났고 세월이 흘러 나중에는 김택진 사장 쪽에 합류해 게임 사업을 벌이는 데 공을 세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임이 바로 김택진 사장의 히트작인 ‘리니지’였다.

창업 초기에 김정주 사장과 그 동료들은 회사를 버텨낼 일감이 필요해 다른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해 주는 사업을 했다. 1990년대에 인터넷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홈페이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일감을 따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김정주 사장과 동료들은 글자만 나오는 형태의 게임들도 만들었다. 그러다가 결국 1997년에 ‘바람의 나라’를 만들면서 정말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같이 그림과 음악을 즐기면서 모험을 하는 꿈속의 그 게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바람의 나라’는 이런 부류의 게임으로는 세계에서도 대단히 초창기에 나온 게임에 속하며, 지금까지도 운영이 계속되고 있어서 무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가동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상업용 온라인 게임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운영된 기록을 세웠다.

돌아보면 한국 게임 업계의 대표적인 두 회사는 모두 테헤란로라는 장소의 덕을 보았다고 할 만하다.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테헤란로는 교통이 편리해 젊은 직장인들이 출퇴근하기 좋은 곳이면서도 동시에 오피스텔 같은 곳에서 사무실을 차리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또 작은 회사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는 대기업, 중견기업 사무실에 가기에 좋은 위치였고, 투자를 받기 위해 만나야 하는 금융기관과 투자사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에는 양재동에서 개포동 사이에 이런저런 IT 기업 사무실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서초동에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있는 등 관련 협회, 단체, 시설들이 강남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는데 ‘테헤란로’는 그 사이에 있어서 사람들끼리 만나고 인재들이 오가기에 좋은 위치라서 유리하기도 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동안 게임 산업은 ‘게임 중독’과 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종종 사행성 논란이 문제가 될 때도 있는 분야다. 그렇지만 게임은 탄탄한 기술 기반이 필요한 첨단 산업이면서 동시에 음악, 미술, 문학적인 내용이 중요한 문화 산업이기에 그동안 한국 경제와 문화의 성장에도 직접적,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게임 박람회에 몰린 많은 사람들.
게임 박람회에 몰린 많은 사람들.

첨단 산업이자 문화 산업

지난 10년 간 자주 인용된 통계처럼, 한국의 문화 상품 중에 가장 많이 해외에 수출된 상품은 음악도, 영화도 아닌 게임이다. 2026년 2월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라는 자료를 보면 1년 동안 한국 영화가 4,190만 달러 어치 수출될 때, 게임은 한국 게임은 85억 350만 달러 어치가 수출되어 200배가 넘는 매출을 거두었다.

여전히 세계적인 게임 대국들과 한국 게임 사이에는 격차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세계의 많은 나라 중에 자기 나라의 게임이 한국만큼 자리 잡아서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나라도 결코 많지는 않다. 그렇다 보니 게임 산업은 그동안 한국에서 기술 분야에서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분야의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주기도 했다.

세계 게임 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는 과거와는 달라질 거라는 의견도 요즘에는 자주 들린다. 최근에는 웃긴 인터넷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이런 행동으로 사람들은 크게 애를 쓰지 않고 고민할 것도 없이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집중하여 머리를 써서 해야 하는 게임은 그만큼 수요가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게임의 역사도 이제는 오래되어 워낙에 복잡하고 규모가 큰 게임이 많이 나오다 보니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기에 질린 사람들이 게임 대신에 차라리 운동이나 예술과 같은 다른 취미를 더 찾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해 게임을 만들기가 더 쉬워지면서 업계가 격변하거나 혹은 더 진짜 같은 등장인물이 게임 속에 등장하여 게임이 질적으로 달라질 거라는 의견도 보인다.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 전경
강남구 테헤란로 및 선정릉 일대 전경

테헤란로의 미래 풍경은?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 게임이 앞으로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테헤란로가 신생 사업의 요람이라는 느낌이 옛 시절보다는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테헤란로에 꿈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를 위해 밤을 지새웠던 그 열정의 흔적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나는 이곳에 한국 게임 산업을 기념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재미난 장소가 몇 곳쯤 있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테헤란로 한켠의 사무실에서 창업하는 기술 스타트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니 테헤란로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더욱 발전해서, 언제인가는 세계 사람들이 한국 게임을 떠올릴 때, 나아가 한국 IT 산업을 떠올릴 때, 누구나 테헤란로의 쭉 뻗은 언덕길 풍경을 떠올리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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