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부터 자동화 기계까지…한잔의 커피를 만드는 기술 이야기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5.27. 16:03

수정일 2026.05.27. 16:03

조회 70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커피의 도시 서울. 한 커피전문점에 원두가 진열되어 있다.
커피의 도시 서울. 한 커피전문점에 원두가 진열되어 있다.
  55화    서울에서 시작된 한국의 커피 기술

서울은 커피의 도시다. 작년 말에 미국 언론사 뉴욕타임스가 서울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커피 가게가 있다는 사실을 기사로 보도했을 정도다. 이 기사에서는 미국에서 커피 문화가 발달한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과 비교해 보아도 서울에 커피 가게들이 더 밀집해 있고, 전통적으로 커피 가게가 많은 도시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파리의 커피 가게 밀집도가 서울과 비슷할 거라고 설명했다.

기사에서는 서울의 커피 가게 숫자를 1만 개 이상이라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포장만 전문으로 하는 곳 등등을 모두 합치면 서울의 커피전문점 숫자는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나무와 치자나무

전설에 따르면 커피는 지금으로부터 천수백 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이상한 열매를 먹은 양들이 잠을 자지 않고 날뛰는 것을 보고 어느 목동이 발견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열매가 열리던 나무가 바로 커피나무인데 커피나무치자나무아과로 분류되어 한국에서 예로부터 자라나는 나무 중에는 생물학적으로 치자나무와 비교적 가까운 관계인 식물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무를 보면 커피나무와 치자나무는 비슷하게 보이는 점도 있다. 커피나무와 치자나무, 둘 다 하얀 꽃이 피며 작은 열매가 맺힌다는 점 등은 공통점이다. 치자나무 열매를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진한 주황색 물이 나오고 커피는 진한 갈색인데 이것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치자나무 우려낸 물을 노랑색 염색을 하는 물감으로 사용했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음료로 사용했다는 점은 큰 차이다.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단무지의 노랑색을 낼 때 흔히 치자나무 열매를 사용한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커피를 만들 때에는 커피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통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피는 그 씨앗만을 빼서 사용하는 것이 기본으로 그 씨앗 부분을 흔히 커피 콩(bean)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커피 콩을 말린 뒤에 볶아서 사용하는데 볶는 과정을 ‘로스팅’이라고 부르고 볶기 전의 커피 콩을 ‘생두’, 볶은 후의 커피 콩을 ‘원두’라는 식으로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말도 우리나라에는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즐겨 마시는 믹스커피
우리나라에서 즐겨 마시는 믹스커피

다양한 커피 문화와 한국의 ‘믹스커피’

커피 문화를 널리 퍼뜨린 튀르키예 같은 곳에서는 볶은 커피 콩을 갈아서 가루로 만든 뒤에 물에 섞어서 끓여 마시곤 했는데, 지금도 튀르키예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커피를 파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터키쉬 커피’라고 하면 바로 이렇게 마시는 커피를 말한다. 이런 커피는 커피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을 때까지 마시곤 한다. 그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커피 콩에서 그 국물을 우려 내면 그것이 여러 가지 방식의 커피가 된다.

19세기 말 뉴질랜드의 데이비드 스트랭은 이렇게 물에 우려낸 커피를 가지고, 거기서 다시 물기만을 빼내고 굳힌 뒤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들고 다닌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러면 그 가루에다가 다시 뜨거운 물만 부으면 원래의 커피와 비슷한 상태로 돌아갈 거라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스턴트 커피’의 시작인데 원래 전통적인 커피와는 맛과 향이 좀 달라서 금방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세계 각국의 군대에서 전쟁 중에 간편하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인스턴트 커피를 보급하게 되면서 인스턴트 커피도 어느 정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국의 커피 문화는 조선 말기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더 넓게 퍼지며 급성장한 것은 역시 광복 이후다. 이때 미군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퍼져 나가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그냥 커피라고 하면 대개 인스턴트 커피를 다들 떠올렸다. 오히려 커피 콩을 갈아서 거기에서 물을 우려 내는 원래의 커피를 한국에서는 ‘원두 커피’라고 해서 좀 특수한 커피처럼 말을 만들어 부르곤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에서는 1976년에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 등등의 재료를 미리 다 섞어 놓고 물에 한 번에 부어서 만들어 먹는 ‘믹스커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성공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외국인들 사이에서 믹스커피는 맛도 좋고 독특한 제품으로 소문이 나서 한국에 가면 꼭 경험해 봐야 하는 재미난 문화라고 여길 정도였다.

지금은 커피 문화가 발달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믹스커피를 많이 제조하는 편이기는 한데, 돌아보면 한국에서 크게 발전해서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던 한국식 믹스커피가 저 멀리 뉴질랜드의 발명가가 만든 인스턴트 커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에티오피아의 원조 커피가 있고, 튀르키예와 미국에도 그 나름의 커피가 있듯이 믹스커피를 한국적인 개성으로 다양하게 발전시켜 내세워도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믹스커피와 관련된 관광이나 구경거리, 명소 같은 곳들이 잘 개발되어도 좋을 것이다.

10여 년 전에 내가 일하고 있던 회사에 인도 공장에서 인도인 동료 직원이 출장 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는 한국의 사무실에서 믹스커피를 한 번 맛 보더니 ‘이걸 많이 사서 인도에 갖고 가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래서 동네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몇 박스 사다 주었던 기억이 난다.
에스프레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에스프레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여러 기술이 담긴 에스프레소

요즘 한국의 커피전문점에서 많이 사용하는 ‘에스프레소’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에스프레소는 기계를 이용해서 높은 온도와 보통 대기 기압의 9배 정도에 달하는 9 bar 정도의 강한 압력을 가진 수증기를 내뿜어 커피 가루를 짜내듯이 하면서 커피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서도 독특하고 좋은 맛이 난다고 해서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거나 우유를 타거나 하는 방식으로 음료를 만들면 바로 그게 아메리카노, 카페 라테 등등의 제품이 된다. 이렇게 에스프레소를 활용해 만든 커피들은 요즘 서울의 커피 가게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서울의 어느 거리, 어느 커피 가게에서는 작동되고 있을 에스프레소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필요한 만큼 압력을 올릴 수 있는 좋은 펌프가 있어야 하고, 압력과 온도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감지기가 있어야 하며, 원하는 압력과 온도에 도달하면 기계를 멈출 수 있는 자동 장치나 전자 부품이 있어야 한다. 증기를 만들어 내는 부분은 흔히 강한 압력을 버텨내면서도 녹슬지 말고 오래가라고 구리나 황동 재질을 이용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커피는 문화를 즐기는 상품이자, 어찌 보면 요리사가 만들어 내는 요리처럼 감성이 깃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커피를 만들어 내는 도구들 중에는 여전히 전통을 내세우는 제품들이 인기가 많다.

10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옛날에 처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개발하고 발전시킨 루이지 베제라(Luigi Bezzera), 지오반니 아킬레 가찌아(Giovanni Achille Gaggia) 같은 사람들의 이름을 딴 브랜드들은 현재의 서울에서 자주 눈에 뜨인다.

그래서 지금도 이탈리아, 독일, 루마니아 같은 유럽 공장에서 에스프레소 기계를 제조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이런 브랜드들이 중국에 공장을 설립해서 대량 생산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중국 회사들은 커피 만드는 기계에 들어가는 압력, 온도 감지기 등등의 부품을 판매하면서 커피 기술에 조금씩 접근하는 방법도 사용하고 있다.

서울에 굉장한 숫자의 커피 가게가 영업 중인 것에 비하면, 커피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계나 장비를 살펴보면 아직 한국 제품이 세계에서 압도적이라고 할 만한 분야가 많지 않다. 한국이 이제는 커피 문화가 그런대로 발달한 나라가 되었고 제조업 기술 역시 발달한 나라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무척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1990년 무렵을 전후로 김용환 대표, 박원찬 대표 같은 사업가들과 그 직원들을 비롯한 여러 연구 개발 인력의 노력을 기울인 덕택에 몇몇 분야에서는 한국산 제품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한 박람회장에서 시연되고 있는 커피 로스팅 기계
한 박람회장에서 시연되고 있는 커피 로스팅 기계

깨 볶던 기계로 커피도 볶아볼까?

먼저 이야기해 볼만한 분야는 커피 콩을 불로 볶는 과정, 즉 로스팅 과정이다. 한국 로스팅 장비의 뿌리는 시장통의 참깨 장수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참깨나 들깨를 파는 곳에서는 흔히 깨를 볶아서 판매하거나 볶은 뒤에 기름을 짜기 마련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과정이면서 냄새도 무척 고소하고 좋기 때문에 한국어 표현 중에 금슬이 좋은 부부라든가 아주 재미가 있는 일을 가리켜 ‘깨를 볶는다’라고 하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깨를 균일하게 불에 볶는 과정은 매우 귀찮다. 그렇기에 1980년대 말에 자동으로 깨를 두루두루 일정하게 볶아 주는 기계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일에 도전해 본 회사가 출현했다. 이 회사는 1991년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당시 공구상가라고 부르던 곳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영업을 시작했는데, 이후 기름집, 방앗간, 건어물 가게 등등 무엇인가를 볶거나 건조하는 작업을 하는 곳에 기계를 만들어 팔면서 뜨거운 열기를 식재료에 일정하게 가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조득진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이 회사 사람들이 중국 공장에서 보리를 볶는 작업을 독일산 커피 로스팅 기계로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 후에 이 회사에서는 역으로 자신들이 갖고 있던 식재료 볶는 장비를 이용해 커피 콩 로스팅 기계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제품들이 2000년대 이후 서서히 퍼져 나가게 되었다.

커피 맛은 어떤 종 또는 어떤 품종의 커피 콩을 사용하느냐와 함께 그 커피를 어떻게 로스팅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뜨거운 열기에 커피 콩 속의 단백질 성분과 탄수화물 성분이 분해 되었다가 다시 결합하는 반응을 거쳐 수많은 향기를 지닌 물질들이 생성되는 ‘마이야르 반응’이 로스팅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맛으로 커피 콩을 볶을 수 있는 장비가 있다는 것은 커피 문화에서 중요하다.

다행히 한국에 커피 전문점이 급성장하던 시기에 사람들이 원하는 로스팅 기계를 한국 회사들이 어느 정도 맞춰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택에, 지금은 로스팅 기계의 개발과 판매에 대해서는 몇몇 한국 회사들이 꽤 튼튼히 뿌리를 내린 상태다.

버튼 하나면 뚝딱! 자동 커피기계

또 하나 커피 기술에서 한국 기업이 성과가 뚜렷한 분야는 자동화 기계, 장비 분야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그냥 단추만 누르면 내부의 자동 장치가 차례대로 작동되면서 알아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제품들이 꽤 많이 나와 있다. 심지어 이런 기계를 이용해서 ‘무인 카페’를 운영하는 곳도 최근에는 굉장히 많아졌다. 이런 기술의 확산에서도 서울은 세계 어느 곳 못지 않게 앞서 있는 도시로 보인다.

커피를 자동으로 만드는 기계의 성공은 1980년대 말 무역 회사들이 꽤 많던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시작되었다. 윤희훈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창립 무렵에 처음 미국을 돌며 장사가 잘 될 만한 새로운 제품이 뭐가 있을 지 살펴보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미국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커피와 관련된 사업을 하면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커피 자동판매기 같은 것을 만들어 팔아 볼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초창기에 나온 제품이 사무실 건물의 휴게실 같은 곳에 작게 설치해 둔 뒤에 버튼을 누르면 커피 한 잔이 나오는 기계였다. 지금도 사무실이나 고기집 계산대 옆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후 한국 업체들은 이런 기계를 계속해서 발전시켜서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장치로 개발해 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내거나 에스프레소에 다른 재료를 섞어 카푸치노, 카페 라테 등을 자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다. 그 덕택에 지금은 차가운 음료부터 뜨거운 음료까지 한 기계가 다 자동으로 만들어 내는 커다란 장치도 보급되고 있다.

비록 에스프레소 기계는 브랜드의 전통이 있는 이탈리아 회사의 제품들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에스프레소 기계를 포함해서 모든 기능을 한 데 합쳐 놓고 컴퓨터를 사용해 자동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은 제품은 한국 제품이 비집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방식의 여러 가지 자동 커피 기계는 한국 제품이 국내에서 굳건히 자리 잡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요즘은 해외에도 어느 정도는 팔려 나가고 있다.

나는 ‘네팔 히말라야 산골짜기의 가게에도 자동 커피 기계는 한국 제품이 설치되어 있더라’는 제보를 받아 본 적도 있다. 앞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계속해서 자동화되는 추세라면 한국의 자동으로 돌아가는 커피 기계들 역시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밀집해 있다. 종로구 소재 카페 ‘초소책방 더숲’
서울에는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밀집해 있다. 종로구 소재 카페 ‘초소책방 더숲’

새로운 커피 기술을 기대하며

좋은 커피 맛을 내는 일을 연구해 보면 ‘열을 가하는 로스팅 과정에서 무슨 반응을 일으켜 어떤 향기 나는 물질들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문제와 ‘커피를 우려낼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그 향기 나는 물질들을 어떻게 물속에 담아내느냐’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중요하다. 두 문제 모두 화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다.

한국의 화학 기술이 탄탄하다는 장점과 이런 작업을 해 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내는 제조업이 발달했다는 장점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커피와 관련된 다른 여러 분야의 기술, 산업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로스팅 기계와 자동 커피 기계에서 성과를 얻었듯이 미래에는 서울에서 또 새로운 커피 기술에 도전하는 중소기업인들이 세계적인 커피 소비문화를 갖고 있는 서울에 어울리는 더 멋진 도전을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 비엔나커피나 터키쉬 커피가 유명하듯이, 언젠가는 전 세계에 서울 커피가 퍼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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