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긴장 '한타바이러스' 우리나라에서 이름 붙인 사연은?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5.13. 13:51

수정일 2026.05.13. 13:51

조회 140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이호왕 교수와 서울바이러스를 찾아낸 과학자들의 이야기
이호왕 교수와 서울바이러스를 찾아낸 과학자들의 이야기
  54화    서울바이러스를 찾아낸 과학자들

세상의 온갖 바이러스들 중에서도 한국의 수도인 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바이러스가 있을까? 답은 ‘서울바이러스라는 바이러스가 정말로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바이러스는 한국 과학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최근에도 다시 많은 조명을 받고 있는 바이러스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 즉 6.25가 한창이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휴전선을 두고 남북이 끝이 없어 보이는 공방전을 벌이던 무렵, 대한민국 국군과 함께 전투를 치르고 있던 UN군에서는 병사들이 아주 이상한 병에 꽤나 자주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를 흘리는 수수께끼 같은 병

얼핏 보면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앓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다 좀 병세가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악화되면서 몸에서 피가 쉽게 날 만한 부위에 갑자기 피를 흘리게 되면서 몸이 상하는 병이었다. 증상도 특이했고 그 당시에는 마땅히 치료할 방법도 없어서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는데, 질병관리청의 자료를 보면 그 시절 병사들 중에 출혈 증세를 보여서 연구 대상이 된 사람들이 3,2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비슷한 현상이 북한 인민군 쪽에서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에서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시절 돌아다니던 이런저런 풍문 중에는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두고 무서운 병을 옮기는 특수한 세균 같은 것을 개발해서 무기로 사용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자료들을 보면 이 병은 한국인 병사들 보다는 외국인 병사들에게 더 큰 문제를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중국 군대 입장에서는 상대방인 국군 병사들은 대체로 멀쩡해 보이는데 중국인 병사들은 병에 걸리니 중국인만 노리고 개발된 특별한 무기가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듯 보인다.

일본뇌염을 연구한 ‘이호왕’ 박사

이 수수께끼 같은 병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모인 세계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호왕 박사라는 서울의 한 과학자가 전쟁 후 20년이 넘게 지난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도 이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서울에 정착하기 전, 이 박사의 고향은 북한의 함흥이었는데 상상해 보자면 그런 그의 출신이 한국전쟁 때 주목을 받은 이 특이한 병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박사가 서울대 대학원생으로 지내던 1950년대에 미국은 전쟁 직후 피폐한 한국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원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소위 ‘미네소타 프로젝트’라고 해서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에 한국 인재들이 유학을 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과학이 발달된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의 인재를 기르면 그만큼 한국의 기술 발전과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테니 한국이 스스로 튼튼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동맹국인 미국에도 이득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게다가 이런 사업으로 탄생한 인재들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결국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데에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니 미국 입장에서도 해 볼 만한 사업이었다.

이호왕 박사는 바로 이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당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많이 퍼져 있었던 전염병인 ‘일본뇌염’이었다.

일본뇌염은 한국, 일본 지역에 있던 미국인들에게 낯설면서도 공포스러운 병이다. 일본뇌염은 모기가 일본 뇌염 바이러스를 옮기면서 퍼져 나가는 병으로 1980년대에 들어 대대적인 예방접종이 시행되기 전까지 한국에서도 많은 희생자를 낸 병이었다. 그랬기에 이호왕 박사는 1960년대까지도 일본뇌염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다.

그런데 이 박사는 일본뇌염 연구를 위해 미군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한국전쟁 당시 피해를 입힌 수수께끼의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병은 출혈이 생기고 열이 난다고 해서 ‘유행성출혈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1970년대까지도 종종 미군 환자가 나타나고 있어서 여전히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만한 병이었다.

이 박사는 자신이 미국의 최신 바이러스 연구 기술을 대학원에서 잘 배운 바이러스 학자이며, 동시에 한국인이라서 그 병이 생기는 지역에 대해 잘 안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미국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미군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 알 수 없는 병을 연구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호왕 교수는 일본뇌염을 먼저 연구했다. 일본뇌염 예방 방역을 실시하는 모습.
이호왕 교수는 일본뇌염을 먼저 연구했다. 일본뇌염 예방 방역을 실시하는 모습.

유행성출혈열 연구는 ‘쥐 잡기’부터

1970년 초부터 이 박사는 병에 걸린 사람들의 피를 관찰하고 다양한 동물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몇 년 동안이나 병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병을 잘 옮기는 흔한 동물로는 쥐가 있었기 때문에 이 박사는 미군 부대 주변의 여러 쥐들을 채집해 분석하고 연구하기도 했다.

모르기는 해도 서울대학교 의대에서 공부했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뛰어난 인재라는 사람이 허구한 날 쥐만 잡아서 살펴보는 모습을 보고 초창기에는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돌아보면 연구팀에서 동물 채집을 맡았던 김수암 선생이 특히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고생은 많았지만, 많은 시도 끝에 쥐를 겨냥했던 이 박사의 연구 방향은 정확했다. 연구팀 사람들의 노력도 차근차근 쌓여 나가고 있었다. 결국 이 박사의 연구팀은 1970년대 중반 무렵 그 많은 종류의 쥐 중에서 ‘등줄쥐’가 병과 관계가 있다는 감을 잡기 시작했고, 1976년 등줄쥐의 폐에서 문제의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발견해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길애경 기자의 기사를 보면, 1976년 그날, 형광 물질에 반응한 바이러스가 현미경 속에서 희미한 빛을 띄는 모양을 보고 이 박사는 ‘밤하늘의 은하수같이 노란 별이 반짝였다’고 회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탄강에서 비롯된 ‘한탄바이러스’

병든 쥐의 폐 조각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너무 기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때 이 박사 연구팀이 바로 한탄강 근처에서 등줄쥐의 바이러스를 찾으려는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의 이름은 ‘한탄강’이라는 지명을 따서 ‘한탄바이러스’로 붙이게 되었다.

그러니 전쟁 중에 희생된 그 많은 병사들에게 병을 옮긴 것은 조그마한 쥐들이었다. 쥐가 돌아다니면서 내뿜은 여러 가지 물질들이 바닥에 묻어 있다가 그것이 나중에 주변에 날릴 때에 사람이 그것을 들이마시면서 감염되는 수가 많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한탄바이러스나 그 비슷한 바이러스가 유행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는 쥐가 다닐만한 풀섶 같은 곳에 함부로 드러눕거나 뒹굴거나 앉는 것은 좋지 않다고들 이야기한다.

바이러스 발견 직후인 1970년대의 한국 기술 수준과 연구 수준을 낮게 본 외국 학계에서 그의 발견을 잘 믿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한탄바이러스는 미국 과학계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바이러스였고, 이호왕 박사 역시 몇 년 동안 연구를 진행하면서 숱하게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호왕 연구팀의 발견은 정확했던 것으로 밝혀졌고, 그 덕택에 한탄바이러스의 발견은 세계 과학계에 한국 과학계의 수준이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발견을 할 수 있을 정도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꼽히기도 한다.

‘서울바이러스’의 발견과 ‘한타바이러스’

이후에도 이호왕 박사의 바이러스 연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유욱준 박사의 기고문에 따르면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지 5년가량이 지난 1980년대 초에 이호왕 박사는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쥐를 잡던 경비원이 그 후에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연구팀은 이 병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했고 이것은 한탄바이러스와 매우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은 또다른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서울의 아파트에서 새롭게 발견된 그 바이러스에 ‘서울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연구팀은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여러 바이러스를 묶어서 부르는 명칭으로 ‘한타바이러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한타바이러스가 여러 바이러스를 묶은 과(family)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다.

고양이과 동물에 고양이도 있고 사자도 있고 호랑이도 있는 것처럼 한타바이러스 과에는 가장 먼저 발견된 한탄바이러스도 있고 나중에 발견된 서울바이러스도 있는 것이다.

한타바이러스 과에 속하는 여러 바이러스들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전 세계에서 더 많이 발견되었고,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여러 병을 일으키는 중요한 바이러스로 취급되고 있다. 이 박사 연구팀의 연구는 그 후에도 꾸준히 이어져서 1990년에는 한탄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백신이 생산되기도 했다.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는 지금도 크고 작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지역의 이름을 병의 이름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요즘은 비슷한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묶어서 ‘신증후군출혈열(Hemorrhagic fever with renal syndrome)’ 또는 HFRS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HFRS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여러 바이러스들 중에 서울바이러스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편이다. 2017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와 위스콘신주에서 여러 사람이 서울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많은 보도가 쏟아지기도 했다. 다행히 서울바이러스는 다른 한타바이러스로 분류되는 바이러스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볍고 금방 낫는 경우가 많아 피해의 정도는 크지 않은 편이다.
지난 4월 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에서 한타바이러스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난 4월 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에서 한타바이러스 희생자가 발생했다.

크루즈선 세운 ‘안데스바이러스’

지난 4월에 네덜란드 국적의 크루즈 선이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에 한타바이러스 희생자가 나왔다고 해서 다시 세계 각국에서 한타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로 분류되는 바이러스 중에서도 ‘안데스바이러스’라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질병청에서는 국내에서 퍼질 위험은 낮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도 남아메리카나 아르헨티나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병에 대해 유의해야 하며, 쥐나 쥐와 비슷한 동물이 다닐만한 곳은 피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과학자들이 앞으로 이호왕 박사의 업적을 잘 이어 나가서 여러 바이러스들의 위협을 더 튼튼히 막아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본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