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와 북촌이 품고 있는 3·1 운동의 역사적 공간들

시민기자 박선홍

발행일 2024.02.29. 10:00

수정일 2024.02.29. 17:15

조회 1,545

대한민국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종로. 지금의 종로는 신구 조화를 이루며 서울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105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의 모습은 어땠을까? 당시 종로는 2024년처럼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다만 1919년 3월 1일 종로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 손에는 태극기가 쥐어져 있었고, 입으로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바로 일제로부터의 전복적인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3·1운동지금의 탑골공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3·1운동의 발상지가 탑골공원인 만큼 종로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다. 그래서 105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 삼일절을 기념하여 독립기념관독립운동 사적지 답사 코스'나라사랑 역사의 길''3·1운동의 시작 – 북촌' 코스를 참고하여 서울 종로가 품고 있는 다양한 독립운동 사적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 독립기념관 누리집에는 사적지 답사 코스 프로그램인 '나라사랑 역사의 길'이 소개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 누리집에는 사적지 답사 코스 프로그램인 '나라사랑 역사의 길'이 소개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 '나라사랑 역사의 길'의 '3·1운동의 시작 - 북촌'의 답사 코스 안내도 ©독립기념관
    '나라사랑 역사의 길'의 '3·1운동의 시작 - 북촌'의 답사 코스 안내도 ©독립기념관
  • 독립기념관 누리집에는 사적지 답사 코스 프로그램인 '나라사랑 역사의 길'이 소개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 '나라사랑 역사의 길'의 '3·1운동의 시작 - 북촌'의 답사 코스 안내도 ©독립기념관

'3·1운동' 계획과 준비의 중심, 종로 북촌

한옥들이 밀집한 북촌한옥마을은 서울로 여행을 온 관광객이라면 대부분이 들르는 필수 여행지이다. 특히 아름다운 모습의 한옥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좁은 골목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조선시대의 북촌으로 돌아간 듯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도 북촌을 상징하는 하나의 놀거리이다. 이렇게 놀거리가 많은 북촌에서 시선을 살짝 돌리면 3·1운동 사적지를 만나볼 수 있다. 북촌에 자리 잡은 3·1운동과 관련된 사적지는 여섯 곳. 그중 먼저 만나볼 사적지는 '중앙고보 숙직실 터''유심사','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김성수 옛집)'이다.
'중앙고보 숙직실 터'가 있는 중앙중‧고등학교로 향하는 북촌의 골목길 ©박선홍
'중앙고보 숙직실 터'가 있는 중앙중‧고등학교로 향하는 북촌의 골목길 ©박선홍
'3·1운동의 시작 – 북촌' 코스의 첫 번째 사적지인 '중앙고보 숙직실 터' ©박선홍
'3·1운동의 시작 – 북촌' 코스의 첫 번째 사적지인 '중앙고보 숙직실 터' ©박선홍

탐방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사적지는 '중앙고보 숙직실 터'이다. 이곳은 3·1운동 계획이 시작된 사적지로,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서'의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모여 3·1운동과 관련된 계획을 숙의했다고 한다. 현재는 중앙중‧고등학교 정문 안쪽에 복원된 숙직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숙직실 터를 보러 주말에 방문할 경우 학교 정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지 못하니 탐방에 흥미가 있다면 참고하기 바란다.
3·1운동 당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유심사' ©박선홍
3·1운동 당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유심사' ©박선홍
불교계의 3·1운동 참여를 확약한 장소인 유심사 ©박선홍
불교계의 3·1운동 참여를 확약한 장소인 유심사 ©박선홍
유심사 입구는 나무 문으로, 지붕은 기와로 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박선홍
유심사 입구는 나무 문으로, 지붕은 기와로 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박선홍

다음 만나볼 사적지는 '유심사'. 유심사는 불교 잡지인 <유심>을 발행하던 출판사로, 이곳에서는 불교계의 3·1운동 참여 확약을 받은 역사적 내용이 있다.
코스의 세 번째 사적지인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의 입구 ©박선홍
코스의 세 번째 사적지인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의 입구 ©박선홍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 입구 옆을 보면 3·1운동 관련 사적지임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박선홍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 입구 옆을 보면 3·1운동 관련 사적지임을 알리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박선홍

세 번째 사적지는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김성수 옛집)'로 이곳에서는 기독교계와 천도교계가 3·1운동 참여에 있어 간접적으로 단일화를 이룬 장소이다.

이 세 곳의 사적지 중 '중앙고보 숙직실 터'와 '3·1운동 단일화 합의 장소'는 아쉽게도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으나, 다행히도 '유심사'의 경우 세 곳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코스의 네 번째 사적지인 '손병희 집 터'는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크게 설치되어 있다. ©박선홍
코스의 네 번째 사적지인 '손병희 집 터'는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크게 설치되어 있다. ©박선홍

위 세 곳의 사적지를 지나 다음 사적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 앞서 탐방한 북촌보다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또 다른 북촌이 나온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많은 북촌의 길가에는 과연 어떤 사적지가 있을까?

이곳에는 '손병희 집 터', '김승희 집 터', '옛 천도교 중앙 총부 터'가 있다. 아쉽게도 세 곳의 사적지 자리에는 현재 다른 건물들이 있기에 터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세 곳의 사적지는 3·1운동 준비 과정 속 혼선과 관련이 있다. '손병희 집 터'의 경우 3·1운동 전날인 2월 28일에 독립선언문 발표 장소 변경에 따른 혼선의 역사를, '김승희 집 터''옛 천도교 중앙 총부 터'는 기독교계와 천도교계 간의 독립운동 단일화 과정 속 혼선의 역사를 품고 있다.
'손병희 집 터' 입구 앞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석 ©박선홍
'손병희 집 터' 입구 앞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석 ©박선홍
'김승희 집 터'는 사적지 정보가 전혀 안내되어 있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은 카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박선홍
'김승희 집 터'는 사적지 정보가 전혀 안내되어 있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은 카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박선홍
'김승희 집 터' 뒷골목의 모습 ©박선홍
'김승희 집 터' 뒷골목의 모습 ©박선홍
'옛 천도교 중앙 총부 터'의 자리에는 지금 덕성여자중학교가 있다. ©박선홍
'옛 천도교 중앙 총부 터'의 자리에는 지금 덕성여자중학교가 있다. ©박선홍

북촌을 지나 탑골공원으로 가는 길 속 다양한 사적지

북촌 속 사적지 탐방을 끝내고 다음 사적지를 탐방하기 위해 조계사와 종로경찰서를 지나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탑골공원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사적지들은 탑골공원을 포함하여 네 곳으로 3·1운동 실행과 관련이 있다.
'독립선언문'을 대량 인쇄한 역사를 품고 있는 '보성사 터' ©박선홍
'독립선언서'를 대량 인쇄한 역사를 품고 있는 '보성사 터' ©박선홍
'보성사' 표석 주변에는 다른 사적지를 알리는 기념물과 공원이 있다. ©박선홍
'보성사' 표석 주변에는 다른 사적지를 알리는 기념물과 공원이 있다. ©박선홍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터의 태화빌딩 ©박선홍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터의 태화빌딩 ©박선홍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승동교회' ©박선홍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승동교회' ©박선홍
'3·1운동'의 핵심층이었던 학생단의 기지 역할을 한 '승동교회' ©박선홍
'3·1운동'의 핵심층이었던 학생단의 기지 역할을 한 '승동교회' ©박선홍

네 곳의 사적지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인쇄했던 인쇄소인 '보성사'와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 중 29인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장소인 '태화관', 3·1운동의 핵심층이었던 학생단의 기지 역할을 한 '승동교회' 그리고 거족적 독립운동이 시작된 장소인 '탑골공원이 있다.
 북촌과 달리 대로변 종로 도심은 여러 상가가 밀집해 있다. ©박선홍
북촌과 달리 대로변 종로 도심은 여러 상가가 밀집해 있다. ©박선홍

위 사적지들의 특징은 북촌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이다. 북촌은 한옥이 많았기에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모습이라면,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종로는 독립이 있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대한민국 현재의 모습이다.
코스의 마지막 사적지인 '탑골공원' ©박선홍
코스의 마지막 사적지인 '탑골공원' ©박선홍
'탑골공원' 중심에 있는 팔각정. 팔각정 뒤로는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유리에 보호되어 전시되어 있다. ©박선홍
'탑골공원' 중심에 있는 팔각정. 팔각정 뒤로는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유리에 보호되어 전시되어 있다. ©박선홍
'탑골공원'의 팔각정에 대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안내판 ©박선홍
'탑골공원'의 팔각정에 대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는 안내판 ©박선홍

여러 사적지를 지나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이번 코스의 종착지인 '탑골공원'. 탑골공원은 서울 도심 속 중심에 있는 공원으로 본래 원각사라는 절이 있던 곳이지만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근대식 공원을 만들기 위해 절을 없애고 근대식 공원을 세웠다고 한다.

탑골공원에 들어서면 다양한 독립운동 기념물을 볼 수 있는데, 그중 3·1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상징이 있는 기념물은 공원 중심에 있는 팔각정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30분, 저 팔각정 위에서 약 한 달 동안 치밀하고 은밀하게 준비한 독립선언문이 낭독되었다.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학생단 대표와 학생들은 낭독이 끝나자 품 속에 준비해 둔 태극기를 꺼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길가로 나갔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만세운동 행렬에 동참하는데, 그 규모가 어찌나 컸는지 탑골공원에서 덕수궁 대한문까지 독립운동 행렬에 참여한 군중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탑골공원 내에 있는 3·1운동을 기념하는 여러 전시물들 ©박선홍
탑골공원 내에 있는 3·1운동을 기념하는 여러 전시물들 ©박선홍

오늘 소개한 코스 외에도 독립기념관에서는 서울은 물론 전국 곳곳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와 국가수호 사적지를 코스로 만들어 안내하고 있으니 궁금하다면 독립기념관 누리집의 '나라사랑 역사의 길'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시민기자 박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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