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때우기'에서 '맛집탐방'으로…외식의 변천사

시민기자 김창일

발행일 2023.11.29. 09:00

수정일 2023.11.29. 18:23

조회 1,007

2019년에 개관한 서울생활사박물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서울 시민의 생활을 보여준다. ©김창일
2019년에 개관한 서울생활사박물관. 해방 이후 현재까지 서울 시민의 생활을 보여준다. ©김창일

해방 이후 현재까지 외식 생활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서울 외식 이야기, 오늘 뭐 먹지?’를 2024년 3월 31일까지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연구 결과‘외식문화로 본 서울 시민의 식생활’ 연구보고서를 기반으로 한다. 연구에서는 서울의 외식 시대를 4기로 구분한다. ▴1기는 해방 이후 1960년대 중반까지 ‘강북 중심의 도시노동자 밥집 형성’ ▴2기는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인구 집중과 국수 음식점 증가’ ▴3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강남 개발과 고기구이 외식산업의 유행’ ▴4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세계화와 관광지 음식의 서울화’다.
3부로 구성된 서울의 외식 생활을 전시하고 있다. ©김창일
3부로 구성된 서울의 외식 생활을 전시하고 있다. ©김창일

전시는 연구 결과를 응축해 ▴1부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채우는 식탁’ ▴2부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나누는 식탁’ ▴3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즐기는 식탁’으로 구성했다.

19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외식은 졸업식, 입학식, 부모님의 생신, 환갑과 같은 날에 하는 특별한 가족 기념행사였다. 2004년 주 5일제가 확산되며 외식은 일상생활이 됐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금요일 저녁에 사람들이 만나는, 일명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주간 행사였다. '불금'을 안 하면 뭔가 허전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급여 이체가 일반화되기 전, 황토색 봉투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김창일
급여 이체가 일반화되기 전, 황토색 봉투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김창일

1970년대 강남 개발 이전, 1960년대 서울의 중심은 강북이었다. 노동자들은 봉급 생활자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종로와 청계천 일대에는 빈대떡, 곰탕, 설렁탕, 막걸리를 판매하는 음식점이 생겨났고, 을지로와 명동에는 밥, 국, 반찬을 제공하는 백반집이 생겨났다. 당시의 외식은 지금처럼 맛집을 찾아다니는 외식이 아닌, 한 끼를 때우는 식사였다.
한 끼 식사로 사랑받은 설렁탕 ©김창일
한 끼 식사로 사랑받은 설렁탕 ©김창일

노동에 지친 시민을 위로한 음식은 뜨끈한 국밥이었다. 종로 화신백화점 뒷골목의 ‘이문설농탕’, 무교동과 삼각동 골목에서 곰탕을 판매하던 ‘하동관’, 나무 시장이 열린 청진동에서 영업을 시작한 ‘청진옥’,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서 끓이는 추탕을 판매하는 ‘용금옥’ 등이 영업을 시작했다.

‘이문설농탕’은 현존하는 설렁탕 가게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설농탕’은 피마골 재개발이 결정되고 견지동으로 이전했다. ‘하동관’은 2007년 5월까지 삼각동 골목에서 장사하다가, 청계천 일대 개발로 명동 패션 골목으로 이사했다.
1964년부터 2022년까지 '하동관' 곰탕의 가격 변화 ©김창일
1964년부터 2022년까지 '하동관' 곰탕의 가격 변화 ©김창일

가격 변화를 살펴보면 1964년 50원이었던 설렁탕 가격은 1997년 4,500원, 2002년 4,800원, 2011년 7,000원, 2021년 1만 2,000원으로 올랐다. 1964년 50원이었던 곰탕은 1998년 5,000원, 2004년 7,000원, 2011년 1만 원, 2022년 1만 5,000원이 됐다.
1960~70년대에는 쌀 부족으로 혼분식장려를 정책적으로 강제했다. ©김창일
1960~70년대에는 쌀 부족으로 혼분식장려를 정책적으로 강제했다. ©김창일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혼분식장려운동으로 중국음식점과 분식집이 늘어났다. 혼분식장려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쌀 부족 때문에 생겨난 제도다. 당시 정부에서는 막걸리, 청주, 소주, 떡볶이 등을 미국산 밀가루나 외국산 곡물로 만들도록 했다.

1964년 1월 24일 혼분식장려운동을 실시했고, 같은 해 12월 10일 양곡소비절약 담화문을 발표했다. 양곡소비절약지침 12개조가 고시됐는데, 4조에서 ‘모든 식당, 음식점 등에서 2할 상당량의 잡곡을 섞고, 국밥에는 2할 상당량의 잡곡과 1할 상당량의 면류를 섞어 판매’하도록 했다.

1967년 국내 식당 탕반 25% 이상 혼식, 1968년 음식 판매점에서 25% 혼식, 1969년 분식의 날(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 원료 음식 판매 중지, 1974년 쌀 소비 절약에 관한 담화문, 1973년 판매 음식 30% 이상 혼식 등이 시행됐다. 1977년 쌀 자급도 100% 가 달성되며 ‘분식의 날’은 폐지됐으며, 1980년대 접어들면서 절미 운동은 사라지게 됐다.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됐다. ©김창일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됐다. ©김창일
길거리 음식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순대와 떡볶이 ©김창일
길거리 음식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순대와 떡볶이 ©김창일

1953년 개업한 '신당동마복림떡볶이', 1965년 개업한 중국음식점 '신락원', 1972년 개업한 '철길떡볶이' 등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음식점들이다. 떡볶이, 중국음식 등은 현재까지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음식들이다.

산업화·도시화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이촌향도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해방 이후 약 100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1979년 800만 명, 1993년 1,1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 기념패와 기념 접시 ©김창일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 기념패와 기념 접시 ©김창일

1970년대 강북 국가중심(강북 도심) - 산업중심(여의도·영등포) - 금융업무중심(영동·잠실)의 3핵 도심 구상강남 개발이 이뤄지며, 서울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3핵 도심을 연결하는 지하철 2호선은 1980년 10월 31일 '신설동~종합운동장' 구간을 시작으로 1984년 5월 22일 전 노선이 개통됐다.

1980년대 주거를 위해 아파트 단지들이 생겨났고, ‘마이카’ 시대의 개막으로 자가용이 보편화되면서 가든형 갈빗집이 나타나게 됐다.
<선데이서울>에 소개된 서울의 맛집 ©김창일
<선데이서울>에 소개된 서울의 맛집 ©김창일

가족의 생일, 어린이날, 결혼기념일, 졸업식, 크리스마스 등 각종 기념일을 챙기며, 외식하는 횟수도 증가했다. 중산층의 외식 메뉴는 단연코 고기였다. 1980년대 양재‧태릉 일대에서는 숲속에 자리한 고기구이집들이 생겨났다. 육류 소비가 증가한 이유로는 고속도로가 건설되며, 물류 유통이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통계로 본 축산업 구조 변화’에서 연간 1인당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의 육류 소비량을 각각 살펴보면, ▴1980년 2.4kg, 6.3kg, 2.6kg, ▴1990년 4.0kg, 11.8kg, 4.1kg, ▴2000년 6.9kg, 16.5kg, 8.5kg, ▴2010년 10.7kg, 19.3kg, 8.8kg, ▴2018년 14.2kg, 27.0kg, 12.7kg이었다.

전체 육류 소비량을 계산해보면, 1980년 11.3kg, 1990년 19.9kg, 2000년 31.9kg, 2010년 38.8kg, 2018년 53.9kg으로 2018년은 1980년에 비해 약 4.7배 이상 육류 소비량이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맛집 거리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창일
서울의 맛집 거리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창일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새롭고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시대가 됐다. 외국인들의 한국 거주가 활발해지며 건대 양꼬치 거리가 생겨났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며 삼성동 음식문화 특화거리 등에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2000년대 이후 외식은 이전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1970~80년대 소고기구이는 양념이 대세였지만, 현재는 스테이크로 바뀌었다. 한정식집은 급격히 줄어들고,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음식점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외식문화로 본 서울시민의 식생활’ 연구보고서 ©김창일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외식문화로 본 서울시민의 식생활’ 연구보고서 ©김창일

서울생활사박물관 ‘외식문화로 본 서울시민의 식생활’ 연구보고서에서는 서울의 외식 생활을 ▴제1기(해방 이후~1960년대) 강북 중심의 끼니형 음식의 소비 스타일 ▴제2기(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 끼니형 소비와 함께 분식 음식의 소비 ▴제3기(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 일품요리와 고기구이 음식, 한정식 음식의 소비 스타일 ▴제4기(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일품요리 소비를 지속하면서 퓨전 스타일로 바뀐 한식과 국내외 유명 관광지의 음식을 서울화시킨 관광 음식(tourism cuisine)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외식문화로 본 서울시민의 식생활’ 연구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으며, 서울시 간행물을 판매하는 ‘서울책방’ 누리집을 통해 유료로 구매할 수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맛집 투어, 음식을 먹으며 방송하는 '먹방' 등 이제 외식은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근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유무형의 자산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누리집에서 총 54개의 음식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근현대의 감성을 느끼며 서울미래유산 맛집 탐방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생활사박물관

○ 위치 : 서울시 노원구 통일로 174길 27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
○ 운영시간 : 09:00~18:00(입장 마감 17:30)
○ 휴무 : 월요일, 1월 1일
○ 입장료 : 무료
서울생활사박물관 누리집
○ 문의 : 02-3399-2900

시민기자 김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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