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또 다른 재미 느껴보세요~ 이색 공간 2곳 추천!
발행일 2023.07.20. 14:40
오늘은 북촌에 위치한 이색적인 공간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근대 개량 한옥의 독특한 건축미를 느끼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시절의 추억에 미소 짓게 되는 ‘서울교육박물관’.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북촌 나들이를 한다면 부담 없이 방문해 북촌의 또 다른 멋을 느껴볼 수 있다.
빨간 벽돌 담장과 그 너머 단아한 한옥 지붕이 인상적인 원서동 고희동 가옥. ‘원서’는 창덕궁 후원의 서쪽이란 뜻이다. ©이정규
북촌 원서동,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춘곡 고희동 화백이 1918년 직접 설계해서 지은 한옥으로 40여 년간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2000년대 초반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북촌 주민과 시민 단체에서 보전 운동을 펼쳐 2004년 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록되었고, 2008년에 종로구에서 매입하여 지금은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1886년에 태어난 춘곡 고희동 화백은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수학한 후 1904년 대한제국의 관리가 된다. 이후 미술 연구 출장 명령을 받아 1909년에 일본의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다. 1915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한 후 서양화가와 도화교사로서 활동했으나 1920년대 후반에는 동양화의 길로 접어들어 전통적 수묵화법에 대상의 사실적 묘사, 원근법, 서양화식 채색법과 음영법 등을 가미한 절충 양식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다.
고희동의 현존하는 서양화는 단 3점으로 모두 자화상이다. 동경미술학교에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정자관을 쓴 자화상>(1915년)은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관을 쓴 조선 사대부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대한제국의 관리였던 자신의 신분과 민족적 자긍심을 나타냈다. 반면 <부채를 든 자화상>(1915년)은 한여름 휴식을 취하며 상의를 열고 부채를 든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는 조선의 전통적 자화상 형식의 틀을 깨며 개성 있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렇듯 고희동 화백의 자화상 작품들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시기 그 변화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희동 가옥은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 양식의 절충을 시도한 근대 개량 한옥으로, 채와 채 사이를 오가기 편하도록 한 긴 복도와 유리문, 툇마루와 대청의 실내 공간화 등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갈하게 꾸며진 앞뜰,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들리는 나무마루의 정겨운 삐걱거림, 안채와 사랑채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안마당. 고희동미술관에서는 미술 작품 감상과 함께 이러한 독특한 공간미에 빠져드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1886년에 태어난 춘곡 고희동 화백은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수학한 후 1904년 대한제국의 관리가 된다. 이후 미술 연구 출장 명령을 받아 1909년에 일본의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다. 1915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한 후 서양화가와 도화교사로서 활동했으나 1920년대 후반에는 동양화의 길로 접어들어 전통적 수묵화법에 대상의 사실적 묘사, 원근법, 서양화식 채색법과 음영법 등을 가미한 절충 양식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다.
고희동의 현존하는 서양화는 단 3점으로 모두 자화상이다. 동경미술학교에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정자관을 쓴 자화상>(1915년)은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관을 쓴 조선 사대부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대한제국의 관리였던 자신의 신분과 민족적 자긍심을 나타냈다. 반면 <부채를 든 자화상>(1915년)은 한여름 휴식을 취하며 상의를 열고 부채를 든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는 조선의 전통적 자화상 형식의 틀을 깨며 개성 있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렇듯 고희동 화백의 자화상 작품들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시기 그 변화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희동 가옥은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 양식의 절충을 시도한 근대 개량 한옥으로, 채와 채 사이를 오가기 편하도록 한 긴 복도와 유리문, 툇마루와 대청의 실내 공간화 등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갈하게 꾸며진 앞뜰,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들리는 나무마루의 정겨운 삐걱거림, 안채와 사랑채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안마당. 고희동미술관에서는 미술 작품 감상과 함께 이러한 독특한 공간미에 빠져드는 즐거움도 가득하다.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춘곡 고희동 화백이 1918년 직접 설계해서 지은 한옥으로 지금은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이정규
정갈하게 꾸며진 앞뜰은 방문객들이 즐겨 사진 찍는 곳이다. ©이정규
담장 너머로는 창덕궁 후원의 울창한 솔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정규
사랑방에서는 고희동의 시대와 생애를 조명하는 영상이 상영된다. ©이정규
고희동 화백이 동경미술학교에 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정자관을 쓴 자화상>(1915년) ©이정규
<부채를 든 자화상>(1915년)은 조선시대 전통적 자화상 형식의 틀을 깨며 개성 있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했는데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정규
고희동 화백은 1920년대 후반 동양화의 길로 접어들며 전통적 수묵 화법에 대상의 사실적 묘사, 원근법, 서양화식 채색법과 음영법 등을 가미한 절충 양식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다. ©이정규
고희동미술관은 안채에 있는 전시실 2곳, 사랑채에 있는 전시실 1곳과 자료실, 사랑방, 화실 등으로 구성된다. ©이정규
화실에는 춘곡 자화상 색칠하기와 같은 다양한 체험 활동이 마련되어 있다. ©이정규
안채와 사랑채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안마당 ©이정규
채와 채 사이를 오가기 편하도록 한 긴 복도와 유리문,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들리는 나무마루의 정겨운 삐걱거림은 고희동미술관의 공간미에 빠져들게 하는 독특한 멋이다. ©이정규
교육 변천사 한눈에, 서울교육박물관
정독도서관 내에 있는 서울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사를 시대별로 전시, 운영하고 있는 교육 전문 박물관이다. 그 터는 1900년 고종 황제 칙령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중등학교인 관립중학교가 건립된 중등 교육 발상지이며, 현 건물은 1928년 완공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관립중학교의 후신)의 본관 건물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교육박물관의 전시장은 크게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로 구성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발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교육 제도, 교육 과정, 교육 기관, 교육 활동 등에 관한 각종 도표와 사진,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실감나는 디오라마(전시 모형)가 전시되어 있어 관람의 즐거움을 더한다.
전시 내용이 역사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지만 관람객의 눈길을 특히 붙잡는 건 아무래도 1970년대 이후의 전시물이다. 옛 시절의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전시물을 보며 관람 온 부모와 아이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부터 그 시절 운동회와 소풍, 점심시간과 신체검사를 깨알같이 묘사한 디오라마를 보노라면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현재 특별전시실에서는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독립운동가 김호'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관립중학교 제1회 입학생이자 제1회 졸업생인 김호는 미국에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가 되어 조국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특별전시실 옆쪽에는 옛 교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도 있으니 지나치지 말자. 관람객들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빠지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교육박물관의 전시장은 크게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로 구성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발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교육 제도, 교육 과정, 교육 기관, 교육 활동 등에 관한 각종 도표와 사진,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실감나는 디오라마(전시 모형)가 전시되어 있어 관람의 즐거움을 더한다.
전시 내용이 역사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지만 관람객의 눈길을 특히 붙잡는 건 아무래도 1970년대 이후의 전시물이다. 옛 시절의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전시물을 보며 관람 온 부모와 아이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부터 그 시절 운동회와 소풍, 점심시간과 신체검사를 깨알같이 묘사한 디오라마를 보노라면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현재 특별전시실에서는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독립운동가 김호'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관립중학교 제1회 입학생이자 제1회 졸업생인 김호는 미국에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가 되어 조국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특별전시실 옆쪽에는 옛 교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도 있으니 지나치지 말자. 관람객들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빠지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은 1928년 완공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관립중학교의 후신)의 본관 건물로서 교육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이정규
조선시대 선비의 문방(文房)을 책임졌던 서안, 연상(벼루, 먹, 붓, 종이, 연적 등을 넣어 정리하는 문방가구). 붓걸이, 백자묵호(먹물을 담아두던 그릇), 필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정규
조선시대 서당 모습을 재현한 디오라마. 골방에서 꿀단지를 탐내는 아이의 모습에 미소 짓게 된다. ©이정규
개화기 시기의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문학사 학위를 받은 독립운동가 김란사에 대한 것이다. 이화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는데 제자 중에는 유관순이 있다. ©이정규
김란사는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가들과 긴밀한 연락 관계를 유지했으며 고종 황제의 통역도 담당했다. ©이정규
1960~70년대 운동회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디오라마. 펄럭이는 만국기는 운동회의 상징이었다. ©이정규
우리나라에서 소풍은 개화기 이후 신교육이 도입되면서 실시되었다. ©이정규
1970년대 초등학교의 점심시간과 신체검사를 묘사한 디오라마 ©이정규
1970년대 초등학생이 사용하던 신발 주머니와 딱지 ©이정규
학교를 상징하는 다양한 배지와 버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주번 표찰도 눈에 띈다. ©이정규
점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옛 시절 학교 앞 문방구가 재현되어 있다. ©이정규
옛 교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 관람객 모두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빠지는 곳이다. ©이정규
현재 특별전시실에서는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독립운동가 김호'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관립중학교 제1회 입학생이자 제1회 졸업생인 김호는 미국에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가 되어 조국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정규
종로구립 고희동미술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5길 40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0:00~18:00(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휴관일 :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41-8424
○ 관람시간 : 화~일요일 10:00~18:00(관람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 휴관일 :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741-8424
서울교육박물관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5길 48
○ 관람시간 : 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00
○ 휴관일 : 매월 첫째‧셋째 주 수요일, 법정공휴일
○ 입장료 : 무료
○ 누리집
○ 문의 : 02-2011-5782
○ 관람시간 : 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00
○ 휴관일 : 매월 첫째‧셋째 주 수요일, 법정공휴일
○ 입장료 : 무료
○ 누리집
○ 문의 : 02-2011-5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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