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이름도 알고 타면 재밌다! 4호선 역명 따라 역사 산책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11.04. 16:10
AI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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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4호선 충무로역부터 남태령역까지의 역명을 따라 역사와 문화를 살폈다. 충무로·명동·회현·서울역, 숙대입구·삼각지·이촌·동작·사당·남태령 등 각 역은 주변 지명, 인물, 유적, 교통의 변천을 반영한다. 명동성당, 국립서울현충원, 서울역 등 주요 장소의 유래도 함께 소개했다.
![명동대성당 [2021서울사진공모전 수상작]](/uploads/mediahub/2026/11/doYhzYnscRsVQMeqzVwWWyFhErFnXAsK.jpg)
명동대성당 [2021서울사진공모전 수상작]
134화 4호선이 품은 역사와 문화(1) 충무로역~남태령역
수도권 전철 4호선은 3호선과 마찬가지로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노선이다. 서울시를 통과하는 구간은 남쪽 남태령역에서 북쪽 불암산역(佛巖山驛)까지이다. 지난 회에는 한강 북쪽의 3호선 역명을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충무로역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면서 4호선 역명이 품은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수도권 전철 4호선은 3호선과 마찬가지로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노선이다. 서울시를 통과하는 구간은 남쪽 남태령역에서 북쪽 불암산역(佛巖山驛)까지이다. 지난 회에는 한강 북쪽의 3호선 역명을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충무로역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가면서 4호선 역명이 품은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충무로역과 명동역
충무로역(忠武路驛)은 중구 필동(筆洞)에 소재하고 있다. 3호선과 환승이 되는데, 3호선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인근에 충무로가 있어서 정한 역명이다. 충무로는 1946년에 서울의 주요 도로를 역사 속 위인들의 이름이나 호 또는 시호로 명명할 때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충무로역 4호선 1번 출구 앞에는 류성룡 집터라는 표지석이 보이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서애 류성룡의 집이 인근에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충무로역 다음은 명동역(明洞驛)으로,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 명례동(明禮洞) 또는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렸고, 북촌과 대비해 남촌으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明治町:메이지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 도심의 상징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명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 중의 하나는 명동성당이다. 명동을 대표하는 상징 공간이자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명동성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으로, 줄여서 ‘명동대성당’이나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다음 해인 1898년(광무 2년)에 고딕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근대 시기 명동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1867~1932)이 있다. 이회영은 1867년 한성부 남부 명례방의 저동(苧洞)에서 태어났는데, 저동은 현재의 명동성당과 을지로 3가 주변이다. 명동성당 앞 서울 YWCA 건물 앞에서는 ‘이회영 선생 집터’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충무로역 4호선 1번 출구 앞에는 류성룡 집터라는 표지석이 보이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서애 류성룡의 집이 인근에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충무로역 다음은 명동역(明洞驛)으로,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다. 명동은 조선 시대에 명례동(明禮洞) 또는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렸고, 북촌과 대비해 남촌으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명치정(明治町:메이지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 도심의 상징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명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간 중의 하나는 명동성당이다. 명동을 대표하는 상징 공간이자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명동성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으로, 줄여서 ‘명동대성당’이나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다음 해인 1898년(광무 2년)에 고딕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근대 시기 명동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1867~1932)이 있다. 이회영은 1867년 한성부 남부 명례방의 저동(苧洞)에서 태어났는데, 저동은 현재의 명동성당과 을지로 3가 주변이다. 명동성당 앞 서울 YWCA 건물 앞에서는 ‘이회영 선생 집터’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미나카이 백화점 전경
명동 일대에는 일제강점기 근대의 상징과도 같은 백화점들이 다수 들어섰다. 1929년 경성부 청사가 있던 진고개 입구(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미쓰코시 백화점이 지하 1층, 지상 4층의 근대식 건물로 들어섰다.
미쓰코시 백화점 맞은편 진고개 일대에는 히라타(平田)와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이 세워졌다. 히라타는 1906년 조선에 진출, 1926년 주식회사로 확대되어 본정 입구(현재의 명동)라는 좋은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미나카이는 포목점에서 출발해 점차 규모를 키웠으며, 1930년대 초에는 현대식 백화점 건물을 갖추었다.
조지야(丁字屋) 백화점은 1939년 현대식 건물을 신축했으며, 해방 후에는 미도파 백화점으로 불렸다. 현재 그 자리에는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가 들어서 있다.
한편 명동역은 2016년 7월부터 병기역명으로 ‘정화예술대’가 부기 되었다가, 2022년 9월부터 ‘우리금융타운’으로 병기 역명이 변경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맞은편 진고개 일대에는 히라타(平田)와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이 세워졌다. 히라타는 1906년 조선에 진출, 1926년 주식회사로 확대되어 본정 입구(현재의 명동)라는 좋은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미나카이는 포목점에서 출발해 점차 규모를 키웠으며, 1930년대 초에는 현대식 백화점 건물을 갖추었다.
조지야(丁字屋) 백화점은 1939년 현대식 건물을 신축했으며, 해방 후에는 미도파 백화점으로 불렸다. 현재 그 자리에는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가 들어서 있다.
한편 명동역은 2016년 7월부터 병기역명으로 ‘정화예술대’가 부기 되었다가, 2022년 9월부터 ‘우리금융타운’으로 병기 역명이 변경되었다.
회현역에서 숙대입구역까지
회현역(會賢驛)은 회현동이 아닌 중구 남창동(南倉洞)에 소재하고 있다. 남창동은 조선시대 선혜청의 창고가 있던 남쪽이라는 것에서 동명이 유래했다.
역 인근에 있는 회현동은 ‘어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다’는 뜻에서 호현동(好賢洞)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동래 정씨들은 회현동(우리은행 본점 근처)에서 대대로 살아오면서 여러 명의 정승을 배출하였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을 비롯하여, 선조 때 정유길, 고종 때 정원용 등이 대표적이다. 동래 정씨 가문에서는 12명의 정승을 배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현동의 동래 정씨들은 ‘회동(會洞) 정씨’라고도 칭한다.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정광필의 집은 회현방(會賢坊)에 있다. 은행나무가 있는데, 신인(神人)이 서대(犀帶:정1품, 종1품관이 착용한 띠) 열두 개를 이 나무에 걸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동리 가운데 살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회현동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 인근에 있는 회현동은 ‘어진 사람이 많이 모여 살았다’는 뜻에서 호현동(好賢洞)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동래 정씨들은 회현동(우리은행 본점 근처)에서 대대로 살아오면서 여러 명의 정승을 배출하였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을 비롯하여, 선조 때 정유길, 고종 때 정원용 등이 대표적이다. 동래 정씨 가문에서는 12명의 정승을 배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현동의 동래 정씨들은 ‘회동(會洞) 정씨’라고도 칭한다. 『동국여지비고』에서는 “정광필의 집은 회현방(會賢坊)에 있다. 은행나무가 있는데, 신인(神人)이 서대(犀帶:정1품, 종1품관이 착용한 띠) 열두 개를 이 나무에 걸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동리 가운데 살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회현동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옛 서울역사, 생활문화예술 플랫폼 '문화역서울284'
회현역 다음은 서울역으로, 1호선과 환승이 된다. 4호선 서울역은 용산구 동자동(東子洞)에 소재하고, 1호선 서울역은 중구 봉래동(蓬萊洞)에 소재하고 있다. 동자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서쪽 마을에 대비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처음 중구에 속하였다가, 1975년 용산구에 편입되었다.
서울역은 1922년 건립하기 시작한 새로운 역사가 1925년 완공되었다. 당시 동양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근대식 철도역사였다. 1947년에 현재의 역명인 서울역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축 양식으로 현존하는 건축물 중 뛰어난 외관을 갖고 있어서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숙대입구역(淑大入口驛)이 나온다. 용산구 갈월동(葛月洞)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역명이 유래했다. 1983년 갈월역으로 역명이 정해졌으나, 1985년 숙대입구로 역명이 바뀌었다.
갈월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칡이 무성했다는 설과 갈월도사(葛月道士)라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대한제국 시기까지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갈월리였다.
숙명여대는 1906년 용동궁(종로구청 건너편)에 명신여학교를 세운 것에서 시작하는데, 설립자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1912년 재단법인 숙명학원이 설립되었고, 1945년 11월 숙명여자전문학교로 재개교하였다. 1948년 5월 숙명여자대학으로 승격됐다.
서울역은 1922년 건립하기 시작한 새로운 역사가 1925년 완공되었다. 당시 동양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근대식 철도역사였다. 1947년에 현재의 역명인 서울역으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축 양식으로 현존하는 건축물 중 뛰어난 외관을 갖고 있어서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숙대입구역(淑大入口驛)이 나온다. 용산구 갈월동(葛月洞)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역명이 유래했다. 1983년 갈월역으로 역명이 정해졌으나, 1985년 숙대입구로 역명이 바뀌었다.
갈월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칡이 무성했다는 설과 갈월도사(葛月道士)라는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대한제국 시기까지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갈월리였다.
숙명여대는 1906년 용동궁(종로구청 건너편)에 명신여학교를 세운 것에서 시작하는데, 설립자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1912년 재단법인 숙명학원이 설립되었고, 1945년 11월 숙명여자전문학교로 재개교하였다. 1948년 5월 숙명여자대학으로 승격됐다.

전쟁기념관
삼각지역에서 동작역까지
숙대입구역 다음은 삼각지역(三角地驛)이다. 용산구 한강로 1가에 소재하고 있다. 역명에는 인근에 있는 ‘전쟁기념관’이 병기되어 있다.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땅이 세모꼴로 생겼다는 설과 경부선 철도와 한강대로가 삼각형 모양을 이루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있다.
삼각지역이 위치한 곳에는 1967년 12월에 개통된 삼각지 로터리가 있었다. 한강로·백범로·이태원로가 교차하는 곳에 설치된 회전식 입체교차로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였으나 1994년 철거 되었다. 1967년 가수 배호(1942~1971)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이었으며, 삼각지역 주변에는 배호 동상과 노래비가 조성되어 있다.
삼각지역 다음은 신용산역(新龍山驛)으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소재하고 있다. 용산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지만, 용산역이 이미 1호선 역명으로 정해져서 신용산역이라 이름하였다. 용산역과는 150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도보로 1호선 용산역과 환승을 할 수 있다.
이촌역(二村驛) 역명에는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병기되어 있다. 조선시대 이촌동 지역은 사촌리계(沙村里契), 신촌리계(新村里契) 등으로 불렸다. 이곳은 한강에 홍수가 나면 마을 주민들이 자주 이주를 해서 이촌(移村)이라 하였는데, 한자로는 이촌(二村)으로 표기하였다. 현재에도 이촌동 지역은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나뉘어 동부이촌동, 서부이촌동으로 불리고 있다.
서빙고동은 조선시대에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 중 서쪽에 설치한 서빙고에서 유래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10월 28일 신축 이전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용산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이촌역 다음은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만나게 되는 동작역(銅雀驛)이다. 인근에 ‘국립서울현충원’이 있어 ‘현충원’이 병기역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작동은 한강과 인접하여 동작진(銅雀津)이라는 큰 나루가 있었다. 동작동의 유래는 이곳 강변 일대에 검붉은 구릿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아서, ‘동(銅)재기’라 불렸는데, 한자로 ‘동작(銅雀)’으로 표기를 한 것이다. 1946년 영등포구 동작동을 거쳐, 1973년 관악구 동작동, 1980년 다시 동작구 동작동이 되었다.
동작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국립현충원은 6·25전쟁으로 희생된 전사자를 모시는 묘지 조성에서 출발했다. 1953년 동작동이 부지로 선정되었고, 1955년에는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되었다. 1965년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하였고, 군인만이 아니라 독립유공자, 경찰관, 향토예비군 등으로 안장 대상이 확대됐다. 1996년에는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 대상에 포함되었다.
삼각지역이 위치한 곳에는 1967년 12월에 개통된 삼각지 로터리가 있었다. 한강로·백범로·이태원로가 교차하는 곳에 설치된 회전식 입체교차로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였으나 1994년 철거 되었다. 1967년 가수 배호(1942~1971)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이었으며, 삼각지역 주변에는 배호 동상과 노래비가 조성되어 있다.
삼각지역 다음은 신용산역(新龍山驛)으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소재하고 있다. 용산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지만, 용산역이 이미 1호선 역명으로 정해져서 신용산역이라 이름하였다. 용산역과는 150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도보로 1호선 용산역과 환승을 할 수 있다.
이촌역(二村驛) 역명에는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병기되어 있다. 조선시대 이촌동 지역은 사촌리계(沙村里契), 신촌리계(新村里契) 등으로 불렸다. 이곳은 한강에 홍수가 나면 마을 주민들이 자주 이주를 해서 이촌(移村)이라 하였는데, 한자로는 이촌(二村)으로 표기하였다. 현재에도 이촌동 지역은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나뉘어 동부이촌동, 서부이촌동으로 불리고 있다.
서빙고동은 조선시대에 얼음을 보관하던 창고 중 서쪽에 설치한 서빙고에서 유래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10월 28일 신축 이전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용산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이촌역 다음은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만나게 되는 동작역(銅雀驛)이다. 인근에 ‘국립서울현충원’이 있어 ‘현충원’이 병기역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작동은 한강과 인접하여 동작진(銅雀津)이라는 큰 나루가 있었다. 동작동의 유래는 이곳 강변 일대에 검붉은 구릿빛 색깔을 띤 돌들이 많아서, ‘동(銅)재기’라 불렸는데, 한자로 ‘동작(銅雀)’으로 표기를 한 것이다. 1946년 영등포구 동작동을 거쳐, 1973년 관악구 동작동, 1980년 다시 동작구 동작동이 되었다.
동작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국립현충원은 6·25전쟁으로 희생된 전사자를 모시는 묘지 조성에서 출발했다. 1953년 동작동이 부지로 선정되었고, 1955년에는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되었다. 1965년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하였고, 군인만이 아니라 독립유공자, 경찰관, 향토예비군 등으로 안장 대상이 확대됐다. 1996년에는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 대상에 포함되었다.
총신대입구역에서 남태령역까지
동작역 다음은 총신대입구역으로, 동작구 사당동에 있다. ‘이수’가 병기 역명이다. 7호선의 역명은 이수역으로만 되어 있다. 4호선 건설 당시 초기 역명은 이수역으로 정했으나, 인근에 있는 총신대학교가 건설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여 역명을 총신대입구(이수)역으로 변경했다. 총신대입구역이지만, 총신대는 7호선 남성역에서 더 가깝다.
이수라는 지명은 ‘배물다리’를 한자음으로 고친 이수교(梨水橋)에서 유래하였다. 이수교는 다리 남쪽에 배나무골이 있고 동쪽에 한강이 흐르기 때문에 유래한 명칭이다.
총신대입구역 다음은 사당역(舍堂驛)이다. 사당동은 이수 교차로 인근에 사당(舍堂)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2호선과 환승이 되는 역으로, 과천·안양·수원 등 경기도 남부로 가는 관문이 되고 있다.
사당역 다음은 남태령역(南泰嶺驛)으로, 남태령은 남현동, 방배동과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사이에 있는 183m 정도의 고개로,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주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관악산을 넘나드는 여우가 많아서 ‘여우고개’라 불렸으며, 정조 때부터 남태령으로 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찾기 위해 이 고개를 넘을 때 과천현 이방(吏房)에게 고개 이름을 물었고, 이방은 여우고개라는 말 대신에 삼남대로에서 첫 번째 맞이하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남현동이라는 동명 또한 남쪽의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역 인근에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는데, 1991년에 남산 필동(현재의 남산 한옥마을)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지금까지 충무로역에서 남태령역까지 남쪽으로 가면서 4호선 구간의 역명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았다. 다음 회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4호선 역명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수라는 지명은 ‘배물다리’를 한자음으로 고친 이수교(梨水橋)에서 유래하였다. 이수교는 다리 남쪽에 배나무골이 있고 동쪽에 한강이 흐르기 때문에 유래한 명칭이다.
총신대입구역 다음은 사당역(舍堂驛)이다. 사당동은 이수 교차로 인근에 사당(舍堂)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2호선과 환승이 되는 역으로, 과천·안양·수원 등 경기도 남부로 가는 관문이 되고 있다.
사당역 다음은 남태령역(南泰嶺驛)으로, 남태령은 남현동, 방배동과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사이에 있는 183m 정도의 고개로,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주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관악산을 넘나드는 여우가 많아서 ‘여우고개’라 불렸으며, 정조 때부터 남태령으로 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찾기 위해 이 고개를 넘을 때 과천현 이방(吏房)에게 고개 이름을 물었고, 이방은 여우고개라는 말 대신에 삼남대로에서 첫 번째 맞이하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남현동이라는 동명 또한 남쪽의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역 인근에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위치하고 있는데, 1991년에 남산 필동(현재의 남산 한옥마을)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지금까지 충무로역에서 남태령역까지 남쪽으로 가면서 4호선 구간의 역명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았다. 다음 회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4호선 역명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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