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타고 시간여행! 역 이름에 담긴 서울의 역사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10.07. 15:00

수정일 2026.10.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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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3호선은 고양 지축역에서 송파 오금역까지 이어지며, 1985년 개통 후 2010년 수서~오금 연장 구간이 추가됐다. 기사에서는 압구정역부터 오금역까지 각 역명에 담긴 유래와 주변 역사·문화 배경을 소개했다. 특히 압구정, 양재역 벽서사건, 가락시장역 등 역명에 얽힌 지역사와 상징을 짚었다.
신병주 교수의 사심 가득한 역사이야기
한명회가 세운 정자인 압구정을 비롯, 조선시대에는 한강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세웠다.
한명회가 세운 정자인 압구정을 비롯, 조선시대에는 한강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세웠다.
  132화   3호선이 품은 역사와 문화(1) 압구정역~오금역

수도권 전철 3호선은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노선이다. 기점은 경기도 고양시 지축역이며, 종점은 송파구 오금역이다. 지축역에서는 일산선으로 대화역까지 연결되는데, 서울시에 소재한 구간은 은평구 구파발역부터 송파구 오금역까지이다. 한강 남쪽의 첫 번째 역인 압구정역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이동하며 3호선 역 이름에 담긴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압구정역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

3호선은 1985년 두 차례에 걸쳐 개통됐다. 1기 지하철인 구파발에서 양재 간 23개 역이 연결됐으며, 1993년 양재역에서 수서역 구간이 연장 개통됐다. 이후 수서역에서 오금역 연장 구간이 2010년 2월 개통됐다.

옥수역에서 한강을 건너면 압구정역(狎鷗亭驛)을 만난다. 압구정역은 강남구 압구정동에 소재하고 있는데, 동명은 세조의 공신이자 성종의 장인 한명회가 세운 정자인 압구정(狎鷗亭)에서 유래하였다. 압구정은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뜻으로, 한명회의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선시대에는 한강변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왕실 소유의 정자들이 세워졌다. 현재의 잠실대교 부근에 세운 낙천정(樂天亭),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인근에 세운 화양정(華陽亭), 한남대교 부근의 제천정(濟川亭), 망원동 부근의 망원정(望遠亭) 등이 대표적이다. 신하의 신분인 한명회가 압구정을 조성한 것은 그만큼 이례적이었고, 그의 정치적 위상이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압구정역 다음은 신사역(新沙驛)이다. 강남구 신사동에 소재하고 있는데, 신사동은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신촌(新村:새말)과 모래가 평평하다는 뜻의 사평(沙坪)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사평원이라는 숙소와 주막이 있었고, 한강 건너편으로 가는 나룻배도 있었다고 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마을이 사라지고 다시 마을이 조성되면서, 한강의 모래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잠원역(蠶院驛)은 서초구 잠원동에 소재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누에를 치는 국립양잠소인 잠실도회(蠶室都會)가 설치되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송파구의 잠실동이 서울에 먼저 편입되면서, 잠실동이란 명칭 대신에 잠실과 신원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잠원동이라 하였다.

잠원역 다음은 고속터미널역이다. 서초구 반포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3호선·7호선·9호선이 환승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역명은 인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따왔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고속버스 터미널 공사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76년이다. 처음 가건물 형태의 승하차장으로 출발했던 터미널은 1978년 새로운 형태의 터미널 착공에 나서, 1981년 10월 완공되면서 본격적인 강남터미널 시대를 열었다. 역 주변에는 신세계백화점, 지하상가 등의 쇼핑몰이 많고, 지방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서울에서도 붐비는 역 중 하나가 되었다.

교대역에서 양재역까지

교대역(敎大驛)은 서초구에 소재하고 있으며, 2호선과 환승이 된다. 인근에 서울교육대학교가 있어서 붙인 역명이다. 역명에 ‘법원·검찰청’을 부기하였는데, 1989년에 서울고등법원과 서울지역 주요 법원, 검찰청이 교대역 인근으로 이전해 왔기 때문이다. 서초역과 함께 대표적인 법조타운으로 불린다.

교대역 다음은 남부터미널역이다. 인근에 남부터미널이 있어서 역명이 붙었고, 괄호에 ‘예술의전당’이 부기되어 있다. 남부터미널의 역사는 용산구 한강로 일대에서 1968년 8월에 개장한 용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한다. 1990년 7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남부터미널 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진로그룹에서 운영을 개시하였다. 남부터미널 전에 이곳에는 화물터미널이 있어서, 지하철 3호선 개통 당시 역명은 ‘화물터미널역’이었다. 화물터미널이 이전하고 남부터미널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역명으로 변경됐다. 현재 남부터미널에는 수도권, 강원권,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등에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양재역(良才驛)은 서초구 양재동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에 서초구청과 국립외교원 등이 있고, ‘서초구청’이 괄호 안에 부기되어 있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양재역이라는 역참(驛站)이 있었다. 역에 배치한 말에게 죽을 준 거리라는 뜻으로 ‘말죽거리’로 불리기도 하였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교통의 요지였고, 지금도 양재역 주변으로는 지방으로 가는 버스들이 대거 운행되고 있다. 1547년(명종 2) 양재역에는 문정왕후(文定王后:명종의 어머니)를 비판하는 붉은 글씨로 쓴 벽서(壁書)가 붙었다. ‘여주(女主)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李芑)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벽서 사건의 여파로 많은 선비와 학자들이 처형되었고, 이를 ‘양재역 벽서사건’이라고 칭한다.

매봉역에서 일원역까지

양재역 다음은 매봉역으로, 인근에 산봉우리가 매의 모양을 닮아서 이름을 붙여진 매봉산에서 따왔다. 매의 형상을 닮은 산은 매봉 또는 응봉(鷹峯)이라 하는데, 창덕궁의 북쪽에 있는 봉우리도 응봉이라 칭한다. 매봉역 인근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가려면, 버스나 매봉터널을 지나서 이동 수 있다.

도곡역은 강남구 도곡동과 대치동의 경계에 있으며, 1번과 4번 출입구는 도곡동에, 2번과 3번 출입구는 대치동 쪽에 있다. 도곡동은 과거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하였다. 1963년 1월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관할이었다가 1975년 10월부터 강남구에 속했다. 1988년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분구될 때 서초구로 넘어갔다가 1989년 다시 강남구로 환원되었다. 도곡동은 매봉산 자락 아래 유독 돌부리가 많은 마을이라 돌부리 마을에서 독구리 마을, 독골에서 독곡(道谷)이라는 한자명이 붙게 되었다는 설과 독(항아리)을 굽던 고을을 한자어로 도곡(陶谷)으로 했다는 설 등이 있다. 도곡역 남쪽으로 주상복합아파트를 대표하는 타워팰리스가 있고, 인근 양재천변은 걷기에 좋은 길이다.
대치역 인근 은마아파트
대치역 인근 은마아파트
도곡역 다음은 대치역(大峙驛)으로,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하고 있다. 대치동은 이곳에 큰 고개가 있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강남 8학군 학원가의 중심지로 꼽히는 곳이다. 인근에 1979년에 준공된 은마아파트가 있다. 은마아파트는 오랫동안 강남 재건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대단지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다.

학여울역(鶴여울驛)은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학탄(鶴灘)으로 불렸고,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도 학탄(鶴灘)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탄’(灘)의 한글이 ‘여울’이어서, 학여울이라는 지명을 역명으로 사용하였다. 인근에 있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를 위해 역이 건설되면서, 출구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방향 하나뿐이다.

학여울역 다음은 대청역이다. 강남구 일원동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본사가 있다. 개발되기 전 이곳에 위치한 자연 부락인 대청마을에서 역명이 유래하였다. 대청이라는 마을 이름은 대청(大廳)마루에서 나왔지만, 대청을 순우리말 지명으로 보고, 한자 역명을 표기하지 않았다.

일원역(逸院驛)은 강남구 일원본동에 소재하고 있다. 일원동은 본래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이었는데, 1963년 1월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성동구에 속하였다. 이후 1975년 10월 강남구에 편입되었다. 일원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옛날 이곳에 일원서원이 있었다는 설과 대모산이 사방을 감싸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숨은(逸)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수서역에서 오금역까지

일원역 다음은 수서역(水西驛)으로, 강남구 수서동에 소재하고 있다.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의 환승역이고, SRT의 시종착역이기도 하다. 수서동이라는 이름은 한강의 지류인 탄천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수서동 지역은 ‘궁말’ 또는 ‘궁촌’이라고 불렸는데, 조선 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과 방번의 봉사손인 광평대군, 그 자손들의 묘소가 있기 때문이다. 수서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대왕면 수서리였으며, 1963년 1월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관할이 되었다. 1975년 성동구에서 강남구를 분리, 신설되면서 강남구에 속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락시장역(可樂市場驛)은 송파구 가락동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서울 최대의 농산물시장인 가락시장에서 역명을 따 왔다. 2010년 2월 3호선 수서에서 오금 구간 개통과 함께 영업을 시작하였고, 8호선과의 환승역이다. 가락동의 동명은 한강이 범람하여 일대가 침수되자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가히 살만한 땅’이라는 뜻에서 가락리(可樂里)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中垈面)이었고, 1963년 1월 서울특별시 성동구 가락동으로 편입되었다. 1988년 송파구에 속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락시장 사거리
가락시장 사거리
가락시장역 다음은 경찰병원역(警察病院驛)이다. 송파구 가락동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에 국립경찰병원이 있어서 역명을 붙였다. 처음 경찰병원을 설립한 1949년 10월에는 중구 남대문로 2가에 있었는데, 1970년에는 성동구 홍익동으로 이전하였다. 1991년 현 위치인 송파구로 확장 이전하였다. 다음은 오금역(梧琴驛)으로 3호선의 종착역이다. 오금역은 2010년 개통한 3호선에 앞서 1996년에 5호선이 개통되었다. 오금동의 동명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가야금을 만드는 사람이 살았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길에 신하에게 오금이 아프다고 말해서 오금골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지역이었고, 1963년 1월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었다. 1975년 강남구, 1979년 강동구 소속이었다가, 1988년 송파구에 속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압구정역에서 오금역까지 3호선 구간의 역명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옥수역에서 북쪽으로 가는 3호선 역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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