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에서 구파발까지! 3호선 타고 떠나는 서울 역사 여행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10.21. 16:41

수정일 2026.10.21. 17:41

조회 179

AI 요약 AI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요약정보는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AI가 본문 내용을 기반으로 생성한 것입니다. AI가 요약한 내용으로 다소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본문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부터 구파발역까지 역명에 담긴 지명 유래와 역사·문화를 살펴본다. 두물개와 옥정수에서 유래한 옥수동, 장충단과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은 지역, 독립문과 경복궁, 진관사 등 역 주변의 역사적 인물과 장소를 통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신병주 교수의 사심 가득한 역사이야기
경복궁의 이름에는 ‘크나큰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경복궁의 이름에는 ‘크나큰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
  133화   3호선이 품은 역사와 문화(2) 옥수역에서 구파발역까지

수도권 전철 3호선은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남북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노선이다. 기점은 경기도 고양시 지축역, 종점은 송파구 오금역이며, 이중 서울에 속한 구간은 은평구 구파발역부터 송파구 오금역까지다. 지난 회에는 한강 남쪽의 3호선 역명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한강 북쪽으로 이동하며 역 이름에 담긴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옥수역에서 동대입구역까지

3호선 한강 북쪽의 첫 번째 역은 옥수역(玉水驛)이다. 동호대교 북단, 한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역으로, 경의중앙선과 환승할 수 있다. 옥수역이라는 이름은 역이 소재한 성동구 옥수동(玉水洞)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한강과 중랑천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 있는 나루터라는 뜻으로 ‘두물개’ 또는 한자로 두모포(豆毛浦)라 불렸다. 이 일대를 흐르는 한강을 동호(東湖)라고 한 데서 현재 동호대교(東湖大橋)라는 이름도 유래했다. 옥수동이라는 지명은 1930년대부터 옥정수(玉井水)라는 우물이 있었던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옥수정(玉水町)이라 불렸으며, 해방 이후 성동구 옥수동이 되었다.

금호역(金湖驛)은 성동구 금호동에 소재하고 있다. 금호동의 동명은 이곳을 무쇠마을, 한자로 수철리(水鐵里)라 부른 것에서 시작한다. 무쇠로 물건을 만들던 대장장이들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쇠 금(金)자와 호수 호(湖)자를 딴 금호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

다음은 약수역(藥水驛)이다. 중구 신당동에 소재하고 있으며, 6호선과 환승할 수 있다. 1985년 10월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에서 양재 구간이 개통하면서 영업을 시작한 역으로, 역명은 버티고개에 있는 약수가 유명했던 데서 유래했다.

동대입구역(東大入口驛)은 중구 장충동(獎忠洞)에 있다. 처음에는 ‘장충역(奬忠驛)’이란 이름으로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3호선이 동국대학교 부지를 지나게 되면서 보상 차원에서 개통 직전 동대입구역으로 역명을 바꾸었다. 동국대학교는 1906년 불교계가 설립한 명진학교에서 출발했다. 이후 불교계 교육기관으로 발전해오며 1946년에 동국대학이 되었고, 1953년 종합대학 인가를 받아 현재의 동국대학교가 되었다.
장충단은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됐다.
장충단은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됐다.
역이 소재한 장충동의 이름은 장충단(奬忠壇)에서 유래한다. 장충단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홍계훈, 이경직 등을 추모하기 위해 1900년 설치한 제단이다. 1967년 가수 배호가 부른 ‘안개 낀 장충단공원’은 지금까지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다.

충무로역에서 안국역까지

충무로역(忠武路驛)은 중구 필동(筆洞)에 소재하고 있다. 인근에 충무로가 있어서 정한 역명으로, 1946년 서울의 주요 도로에 역사 속 위인의 이름이나 호, 시호를 붙이는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를 도로명으로 삼은 것에서 유래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 또한 중구 건천동(현재의 인현동)으로, 충무로 일대에 있다. 현재 명보아트센터 앞과 신도빌딩 앞에는 이순신 생가터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필동은 조선시대 이곳에 부사무소(部事務所)가 있어 ‘부동(部洞)’으로 불리던 것이 ‘붓골’로 바뀌었고, 다시 한자 표기로 필동이 되었다. 특히 이 지역은 남산 자락에 붓과 먹을 잡은 선비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묵적동(墨績洞:먹이 쌓인 동네)이라고도 하였는데, 필동과 그 의미가 통한다.
충무로 명보아트센터 앞에는 이순신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충무로 명보아트센터 앞에는 이순신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을지로3가역은 중구 을지로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을지로 역시 해방 후 역사 속 위인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정하면서, 살수대첩을 이끈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을지로는 중구 소공동에서 시작해 중구 신당동까지 이어지며, 1가~6가에 이르고 있다.

다음은 종로3가역이다. 1·3·5호선이 환승하는 교통의 요지로, 종로구 돈의동(敦義洞)과 묘동(廟洞)에 소재하고 있다. 돈의동은 돈녕부(敦寧府)의 ‘돈(敦)’과 어의동의 (於義洞)의 ‘의(義)’자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돈녕부는 조선대의 왕과 왕비의 친인척을 관리하던 관청으로, 태종 때 처음 설치되었다. 어의동은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잠저(潛邸)였다. 묘동은 바로 인근에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宗廟)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탑골공원과도 가까워 역명에는 ‘탑골공원’도 부기되어 있다. 1990년대까지 종로3가역은 충무로와 함께 영화관의 성지로 불렸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 그리고 서울극장이 이 일대에 있었다.

안국역(安國驛)은 종로구 안국동(安國洞)과 삼청동(三淸洞)에 소재하고 있다. 역 이름은 조선시대 이 일대를 안국방(安國坊)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안국방은 조선 초기부터 유지된 한성부 북부 10방(坊) 중 하나였다. 안국역 일대는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조선시대 양반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북촌의 중심 지역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비롯해, 흥선대원군의 집인 운현궁, 헌법재판소, 계동 현대 사옥, 서울공예박물관, 우리소리박물관, 천도교 대본당과 수운회관 등이 인근에 있다.

경복궁역에서 무악재역까지

경복궁역(景福宮驛)은 종로구 적선동(積善洞)에 위치하며, 인근에 경복궁이 있다. 경복궁은 1395년 9월 북악산을 주산으로 세운 조선의 법궁(法宮)이다. 궁궐 조성의 책임을 맡은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가 궁궐의 완성을 기념해 잔치를 베풀면서 술에 취한 모습을 보고 『시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경복(景福:크나큰 복)을 모시리라’라는 구절이다. 정도전은 여기서 ‘경복(景福)’이라는 표현을 가져와 궁의 이름을 지을 것을 건의했고, 태조가 이를 허락했다. 경복궁역은 최근 서울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촌 지역을 탐방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다음은 독립문역(獨立門驛)으로, 서대문구 현저동(峴底洞)에 소재하고 있다. 현저동은 안산(鞍山)과 인왕산(仁王山) 사이의 고개인 무악현(毋岳峴)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 이름은 주변의 독립문에서 유래했다. 독립문은 독립협회가 자주독립의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세운 문이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迎恩門)을 철거한 자리에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대한제국 시기에 완공했다.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등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기념관들이 있다.
독립문역 인근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 전경
독립문역 인근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 전경
독립문역 다음은 무악재역으로, 서대문구 홍제동(弘濟洞)에 소재하고 있다. 역명은 인왕산과 안산 사이의 고개인 무악(毋岳) 고개, 즉 무악재에서 유래했다. 무악재는 해발 75m의 고개로, 무학재(無學岾)·무악현(毋岳峴)·모래재·길마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이 고개를 통해 인왕산과 안산을 오가면서 호환(虎患)의 피해가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홍제역에서 구파발역까지

홍제역(弘濟驛)은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으며, 동네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에 설치된 홍제원(弘濟院)에서 유래했다. 홍제원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나 여행객이 드나드는 길목에 설치된 숙박시설이다. 인근에는 북한산 자락에서 시작하여 평창동, 홍제동, 홍은동을 지나는 홍제천(弘濟川)이 있는데, 세검정 근처 홍제천에서는 실록의 기본 자료가 되는 사초(史草)를 씻는 세초(洗草)가 이루어졌다.

다음 녹번역(碌磻驛)은 은평구 녹번동 북한산 자락에 가까이에 있다. 녹번동의 이름은 녹번현(碌磻峴), 즉 녹번이 고개에서 유래했다. 녹번이 고개에는 관리들이 명절에 받은 녹봉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놓아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외에도 이 지역에 푸른 빛을 띠는 광물질이 많이 나와 녹번현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녹번역 다음은 불광역(佛光驛)이다. 은평구 불광동에 있으며, 6호선과 환승할 수 있다. 불광동이라는 이름은 불광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 바깥의 성저십리에 속했던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으며, 1949년 서울에 편입되어 서대문구 불광동이 되었다. 이후 1979년 은평구가 신설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불광역 주변은 주거지 밀집 지역으로, 최근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불광역 다음은 연신내역으로, 은평구 불광동·갈현동·대조동에 걸쳐 있다. 역명은 불광천을 가리키는 옛 지명 가운데 하나인 연신내에서 유래되었다. 연신내는 연서천(延曙川)의 순우리말로, 연(延)과 시내가 합쳐진 말이다. 지하철 6호선과 GTX-A 노선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진관사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진관사
구파발역(舊擺撥驛)은 3호선에서 서울에 소재한 마지막 역으로, 은평구 진관동(津寬洞)에 자리한다. 구파발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에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파발역이 이곳에 설치된 데서 유래했다. 진관동은 인근에 북한산을 대표하는 사찰 중의 하나인 진관사(津寬寺)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津寬祖師)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수륙재(水陸齋)의 근본 도량이었다.

지금까지 옥수역에서 구파발역까지 북쪽으로 이동하며 3호선의 역명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4호선 역명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뉴스레터 구독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