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어컨의 시작은 청계천? 시원한 여름을 만든 에어컨의 역사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6.24. 14:35

폭염을 피할 수 있는 냉방 쉼터 '해피소'(광화문광장)에 대형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57화 한국 에어컨의 고향은 청계천
만약 에어컨이 없었다면 여름을 보내기는 한결 힘들었을 것이다. 에어컨이 탄생했기 때문에 싱가포르 같은 열대의 도시가 지금 같이 산업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계적인 대도시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관점도 싱가포르 현지에서는 인기가 있다.
그러고 보면 중동의 아부다비에서부터 미국의 마이애미까지 많은 도시들이 덥고 습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사업의 중심지로 20세기 후반 이후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결국 에어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형태의 에어컨을 처음으로 개발해 퍼뜨린 인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다. 캐리어는 미국 뉴욕주 출신으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이런저런 공장용 자동 장치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던 중소기업 내지는 중견기업 직원이었다.
기이하게도 그가 그 시절 맡아 했던 일은 무엇인가를 차갑게 하는 기구가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바람을 다루는 기구를 만들어 내고 설치하는 일이었다. 캐리어는 주로 커피나 목재를 건조하는 장치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런 기계가 필요한 다른 회사에 판매하는 팀에서 일을 했다.
만약 에어컨이 없었다면 여름을 보내기는 한결 힘들었을 것이다. 에어컨이 탄생했기 때문에 싱가포르 같은 열대의 도시가 지금 같이 산업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계적인 대도시가 될 수 있었다고 보는 관점도 싱가포르 현지에서는 인기가 있다.
그러고 보면 중동의 아부다비에서부터 미국의 마이애미까지 많은 도시들이 덥고 습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사업의 중심지로 20세기 후반 이후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결국 에어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형태의 에어컨을 처음으로 개발해 퍼뜨린 인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다. 캐리어는 미국 뉴욕주 출신으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이런저런 공장용 자동 장치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해서 일하던 중소기업 내지는 중견기업 직원이었다.
기이하게도 그가 그 시절 맡아 했던 일은 무엇인가를 차갑게 하는 기구가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바람을 다루는 기구를 만들어 내고 설치하는 일이었다. 캐리어는 주로 커피나 목재를 건조하는 장치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런 기계가 필요한 다른 회사에 판매하는 팀에서 일을 했다.
습기 제거 장치를 개발한 캐리어
1902년의 어느 날 캐리어가 일하던 회사에 한 인쇄소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이 인쇄소에서는 급하게 작업해야 하는 잡지 인쇄 일을 받아 하곤 했는데, 잡지인 만큼 컬러로 인쇄해야 하는 일도 끼어 있어서 빠르게 작업하면서도 정교하게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여름철에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지면 인쇄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잉크가 잘 마르지 않고 번지는 문제도 있었던 것 같고 종이가 조금씩 울면서 인쇄할 때 정확한 위치에 찍히지 않는 문제도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인쇄소는 실내의 습기를 줄여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렇다 보니 커피, 목재를 건조하는 장비를 맡던 캐리어가 습도 줄이는 장치의 개발을 맡았다. 처음에 캐리어는 습기를 빨아들이는 약품을 깔아 놓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성분은 다르지만 지금도 김 같은 제품 안에 습기를 빨아들이는 약품이 들어가 있는데 그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보려고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약품의 반응 때문에 온도가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고 캐리어가 사용하려고 했던 약품에서 묘한 냄새가 풍겼는데 그 냄새를 인쇄소 직원들이 싫어했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 내야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캐리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떠올렸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캐리어가 미국 피츠버그의 어느 기차역에 출장을 갔다가 안개가 낀 모습을 보다가 새로운 습기 제거 방법을 떠올렸고 한다.
그가 떠올린 방법은 공기 중의 습기를 물방울로 맺히게 하고 그 물방울들을 따로 모아서 제거한다는 생각이었다. 습기를 물방울로 맺히게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온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름철에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지면 인쇄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잉크가 잘 마르지 않고 번지는 문제도 있었던 것 같고 종이가 조금씩 울면서 인쇄할 때 정확한 위치에 찍히지 않는 문제도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인쇄소는 실내의 습기를 줄여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렇다 보니 커피, 목재를 건조하는 장비를 맡던 캐리어가 습도 줄이는 장치의 개발을 맡았다. 처음에 캐리어는 습기를 빨아들이는 약품을 깔아 놓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성분은 다르지만 지금도 김 같은 제품 안에 습기를 빨아들이는 약품이 들어가 있는데 그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 보려고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약품의 반응 때문에 온도가 높아지는 문제가 있었고 캐리어가 사용하려고 했던 약품에서 묘한 냄새가 풍겼는데 그 냄새를 인쇄소 직원들이 싫어했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해결책을 찾아 내야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캐리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떠올렸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캐리어가 미국 피츠버그의 어느 기차역에 출장을 갔다가 안개가 낀 모습을 보다가 새로운 습기 제거 방법을 떠올렸고 한다.
그가 떠올린 방법은 공기 중의 습기를 물방울로 맺히게 하고 그 물방울들을 따로 모아서 제거한다는 생각이었다. 습기를 물방울로 맺히게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온도가 필요하다.

공기 중의 습기는 차가운 온도에서 물방울로 맺힌다.
예를 들어 보자면, 냉장고에서 차가운 유리 물병을 꺼내서 바깥에 내어놓으면 물병 겉면에 이슬이 맺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기 중의 습기가 물방울로 변해 맺히는 현상이다. 캐리어는 그런 현상을 계속해서 기계 속에서 일부러 일으키고 물방울이 맺히는 족족 한쪽으로 뽑아낸다는 생각을 해냈다.
처음에는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 올려서 장치를 움직인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차가운 온도를 만드는 장치로 이미 냉장고가 개발되어 있었다. 캐리어는 냉장고에 공기를 빨아들이고 뿜어내는 장치를 결합하고, 냉장고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야외로 뿜어내는 장치도 연결해서 방 안의 공기에서 빠르게 습기만 뽑아내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에어컨의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에어컨은 공기를 차갑게 해 주는 장치라기 보다는 공기를 뽀송하게 해 주는 장치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에 공기 자체를 차갑게 해 주는 기능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에어컨에는 보통 제습 기능이 달려 있고 제습기가 에어컨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경우도 많으며 에어컨에는 물을 빼내는 관이 달려있는 수가 많다.
에어컨이라는 단어도 공기의 조건을 조정해 준다는 ‘에어 컨디셔너(air conditioner)’라는 말을 일본 업체에서 줄여서 만든 말이다. 그리고 공기 조건을 조정해 준다는 에어컨디셔너의 뜻을 그대로 번역한 ‘공조기’라는 말도 쓰이고 있고, 지금도 중국어로는 에어컨을 같은 한자 ‘空调机’를 써서 ‘콩티오지’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 올려서 장치를 움직인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차가운 온도를 만드는 장치로 이미 냉장고가 개발되어 있었다. 캐리어는 냉장고에 공기를 빨아들이고 뿜어내는 장치를 결합하고, 냉장고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야외로 뿜어내는 장치도 연결해서 방 안의 공기에서 빠르게 습기만 뽑아내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에어컨의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에어컨은 공기를 차갑게 해 주는 장치라기 보다는 공기를 뽀송하게 해 주는 장치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에 공기 자체를 차갑게 해 주는 기능이 점점 더 강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에어컨에는 보통 제습 기능이 달려 있고 제습기가 에어컨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경우도 많으며 에어컨에는 물을 빼내는 관이 달려있는 수가 많다.
에어컨이라는 단어도 공기의 조건을 조정해 준다는 ‘에어 컨디셔너(air conditioner)’라는 말을 일본 업체에서 줄여서 만든 말이다. 그리고 공기 조건을 조정해 준다는 에어컨디셔너의 뜻을 그대로 번역한 ‘공조기’라는 말도 쓰이고 있고, 지금도 중국어로는 에어컨을 같은 한자 ‘空调机’를 써서 ‘콩티오지’라고 부른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에어컨?
미국 뉴욕 못지않게 한국의 더위도 만만치는 않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에어컨이 처음 시작된 것은 언제였을까?
현대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조선왕조실록’의 1504년 음력 6월 25일 기록을 보면 얼음을 이용해서 잔치할 때 초대한 손님들을 시원하게 해 주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구리 내지는 놋쇠로 된 꽤 큰 장치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조선시대의 이 장치는 현대의 에어컨과 기본 원리가 비슷해 보이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널리 쓰이지도 못했고 계속해서 얼음을 보충해 주어야 작동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현대의 에어컨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한동안은 한국에 처음으로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경주의 ‘석굴암’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언론에서 꽤 많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 과장된 잘못된 정보다. 1960년대에 석굴암의 습도를 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설치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그 정도면 한국의 다른 곳에서는 에어컨이 거의 설치되지 않았던 초창기 사례다. 그렇다 보니 그 이야기가 변해서 석굴암이 한국 최초의 에어컨 설치 장소라는 식의 이야기로 변한 듯싶다.
현대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조선왕조실록’의 1504년 음력 6월 25일 기록을 보면 얼음을 이용해서 잔치할 때 초대한 손님들을 시원하게 해 주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구리 내지는 놋쇠로 된 꽤 큰 장치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조선시대의 이 장치는 현대의 에어컨과 기본 원리가 비슷해 보이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널리 쓰이지도 못했고 계속해서 얼음을 보충해 주어야 작동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현대의 에어컨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한동안은 한국에 처음으로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경주의 ‘석굴암’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언론에서 꽤 많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 과장된 잘못된 정보다. 1960년대에 석굴암의 습도를 조절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설치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그 정도면 한국의 다른 곳에서는 에어컨이 거의 설치되지 않았던 초창기 사례다. 그렇다 보니 그 이야기가 변해서 석굴암이 한국 최초의 에어컨 설치 장소라는 식의 이야기로 변한 듯싶다.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인 ‘부민관’(1935년 12월 완공)
그러나 그보다 앞서 1950년대 이전에도 서울 각지에는 에어컨이 설치된 기록들이 보이는 곳들이 있다. 찾아보면 관공서에 설치된 에어컨에 사고가 났다는 기사도 보일 정도이니 크고 작은 에어컨들이 20세기 중반 이전에도 조금씩은 설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민간 분야에서 에어컨을 발 빠르게 먼저 도입해 설치해 둔 곳은 어디일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면서 여름철에 문과 창문을 열어 두기 어려운 장소라면 에어컨이 있는 편이 영업하기에 좋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에어컨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에어컨을 초창기에 빨리 도입했다.
에어컨이 나오기 전의 여름 극장이란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문을 꼭꼭 닫은 건물 안에 사람들까지 여럿 모여 있는 장소라서 가기 싫은 곳에 가까웠다. 그러나 에어컨이 설치되면서 극장은 오히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서울 시내의 여러 극장 광고를 보면 냉방 시설을 설치해 두었다는 자료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이미 1938년에 지금의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인 ‘부민관’과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인 ‘명치좌’에 냉방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는 기사가 보이므로 에어컨을 한국인들이 처음 접한 것은 주로 서울의 극장을 통해서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여름철 블록버스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에어컨 덕택이다.
민간 분야에서 에어컨을 발 빠르게 먼저 도입해 설치해 둔 곳은 어디일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면서 여름철에 문과 창문을 열어 두기 어려운 장소라면 에어컨이 있는 편이 영업하기에 좋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에어컨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에어컨을 초창기에 빨리 도입했다.
에어컨이 나오기 전의 여름 극장이란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문을 꼭꼭 닫은 건물 안에 사람들까지 여럿 모여 있는 장소라서 가기 싫은 곳에 가까웠다. 그러나 에어컨이 설치되면서 극장은 오히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서울 시내의 여러 극장 광고를 보면 냉방 시설을 설치해 두었다는 자료들이 많이 보이는 편이다. 이미 1938년에 지금의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인 ‘부민관’과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인 ‘명치좌’에 냉방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는 기사가 보이므로 에어컨을 한국인들이 처음 접한 것은 주로 서울의 극장을 통해서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여름철 블록버스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에어컨 덕택이다.
청계천에서 탄생한 첫 국산 에어컨
그러면 최초의 국산 에어컨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원종기 사장이다. 원종기 사장은 원래 청계천에서 폐품 재활용을 하는 가게를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가게들이 남아 있지만 과거의 청계천 주변에는 각종 기계, 장비, 부품, 공장에 필요한 설비, 재료 등등을 판매하는 곳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서울 시내의 크고 작은 가게, 작업장,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을 청계천 거리의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뭐든 엇비슷한 것을 결국은 구할 수 있었기에 한때 ‘청계천에서는 붕어빵 틀에서 우주선까지 다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청계천의 한켠에서 못 쓰는 기계나 설비를 누가 가져오면, 싼값에 그것을 사들인 뒤에 그 기계를 해체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쓸 수 있는 상태의 부품들만 떼어 내서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하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가게들이 남아 있지만 과거의 청계천 주변에는 각종 기계, 장비, 부품, 공장에 필요한 설비, 재료 등등을 판매하는 곳들이 가득 늘어서 있었다.
서울 시내의 크고 작은 가게, 작업장,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갖가지 물건들을 청계천 거리의 가게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뭐든 엇비슷한 것을 결국은 구할 수 있었기에 한때 ‘청계천에서는 붕어빵 틀에서 우주선까지 다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청계천의 한켠에서 못 쓰는 기계나 설비를 누가 가져오면, 싼값에 그것을 사들인 뒤에 그 기계를 해체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쓸 수 있는 상태의 부품들만 떼어 내서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하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림상가 옥상에서 바라본 청계상가(2010)
원종기 사장도 바로 그런 사업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입수된 외국인들의 기계, 미군 부대에서 폐기 처분한 설비 등등을 특히 잘 다루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그는 1960년대에 재활용 부품들을 조합해서 최초의 에어컨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이후에도 에어컨 사업을 꾸준히 했으므로 이것을 최초의 한국 브랜드 에어컨의 뿌리로 보는 의견은 지금도 제법 널리 퍼져 있다.
1970년대가 되자 원종기 사장은 본격적으로 공장을 차려서 에어컨을 대량 생산하는 쪽으로 사업을 크게 키우는 데 성공했다. 초기에는 일본 회사와 협력하여 물건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자체 개발 제품도 대거 생산하면서 한국 에어컨 역사의 초기를 장식하는 상당한 규모의 기업으로 회사를 키워 나가기도 했다.
에어컨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체를 눌러서 압축할 수 있어야 하고, 압축된 기체를 필요할 때 다시 내뿜어 놓을 수도 있어야 하고, 기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위한 펌프를 작동시키는 등등의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
자연히 원종기 사장은 공기를 압축하는 기계나 펌프를 이용하는 다른 기계를 만드는 사업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 회사가 냉방이 아니라 난방에 사용하는 히트펌프를 만들거나, 심지어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먼지 들어 오지 않게 하는 장비를 만드는 등의 사업에도 나서게 되었다.
1970년대가 되자 원종기 사장은 본격적으로 공장을 차려서 에어컨을 대량 생산하는 쪽으로 사업을 크게 키우는 데 성공했다. 초기에는 일본 회사와 협력하여 물건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자체 개발 제품도 대거 생산하면서 한국 에어컨 역사의 초기를 장식하는 상당한 규모의 기업으로 회사를 키워 나가기도 했다.
에어컨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체를 눌러서 압축할 수 있어야 하고, 압축된 기체를 필요할 때 다시 내뿜어 놓을 수도 있어야 하고, 기체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위한 펌프를 작동시키는 등등의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
자연히 원종기 사장은 공기를 압축하는 기계나 펌프를 이용하는 다른 기계를 만드는 사업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 회사가 냉방이 아니라 난방에 사용하는 히트펌프를 만들거나, 심지어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먼지 들어 오지 않게 하는 장비를 만드는 등의 사업에도 나서게 되었다.
제조업은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한 가지 사업이 발전하면서 그 기술과 공장 운영 경험이 쌓이면 다른 사업들이 다 같이 발전하는 일은 곳곳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춰 주는 것이 경제 발전과 기술 혁신에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김치냉장고라는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크게 성공을 거둔 회사는 본래 자동차 에어컨을 비롯한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회사였다. 기술이 연결되어 있는 소비자용 가전제품을 개발하려고 하다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김치냉장고라는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크게 성공을 거둔 회사는 본래 자동차 에어컨을 비롯한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회사였다. 기술이 연결되어 있는 소비자용 가전제품을 개발하려고 하다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자 제품 매장에서 한 방문객이 에어컨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현재 한국의 에어컨 브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지키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보도를 보면 전통적으로 가정용 에어컨 수요가 많지 않은 유럽에서 한국 브랜드의 점유율이 10% 내외 정도를 보인다는 기사도 있었고, 중남미에서는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연속으로 한국 브랜드의 가정용 에어컨이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한국 최초의 에어컨이 탄생한 청계천의 그 작은 가계가 어디인지 위치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한국 에어컨 산업이 세계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만큼 청계천에서 최초의 장소를 다시 찾아 에어컨의 성지로 기념해도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쉽게도 최고의 전성기에 비하면 지금 한국의 에어컨 브랜드는 중국 브랜드에 밀리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한국 에어컨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해외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워낙 많기도 하다. 2024년 후지키메라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매년 220만 대의 에어컨이 생산될 때, 한국 브랜드가 태국이나 인도에서 생산하는 에어컨의 양은 각기 300만 대 이상으로 훨씬 더 많다고 한다.
해외 판매를 위해서 해외 생산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내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 그것 때문에 생기는 일자리 문제도 있고, 한 산업이 다른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새롭게 혁신이 벌어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그런 만큼 한국의 제조업을 꿋꿋이 지키면서도 새롭게 더 키워 나가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지금에 와서, 한국 최초의 에어컨이 탄생한 청계천의 그 작은 가계가 어디인지 위치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한국 에어컨 산업이 세계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만큼 청계천에서 최초의 장소를 다시 찾아 에어컨의 성지로 기념해도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쉽게도 최고의 전성기에 비하면 지금 한국의 에어컨 브랜드는 중국 브랜드에 밀리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한국 에어컨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해외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워낙 많기도 하다. 2024년 후지키메라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매년 220만 대의 에어컨이 생산될 때, 한국 브랜드가 태국이나 인도에서 생산하는 에어컨의 양은 각기 300만 대 이상으로 훨씬 더 많다고 한다.
해외 판매를 위해서 해외 생산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내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 그것 때문에 생기는 일자리 문제도 있고, 한 산업이 다른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새롭게 혁신이 벌어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그런 만큼 한국의 제조업을 꿋꿋이 지키면서도 새롭게 더 키워 나가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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