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일 척척, '산업용 로봇'의 시작을 돌아보다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6.02.04. 15:43

수정일 2026.02.04. 15:43

조회 251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전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팔.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전시.
  48화    서울 홍릉에서 시작된 한국 로봇

서울에 흔히들 ‘홍릉’이라고 부르는 동네가 있다. 중심지에서 가까운 곳 치고는 의외로 고즈넉한 숲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채로운 곳이기도 하다. 홍릉이라는 지명이 생긴 이유는 그곳에 원래 명성황후가 묻힌 능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조선은 멸망했고 명성황후와 고종의 능묘는 경기도 남양주로 새로 바뀌게 되어 무덤 자리도 옮기게 되었다. 그곳이 요즘에는 홍유릉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이런 사연 때문에 현재 서울의 홍릉은 이름에는 ‘릉’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무덤 없이 그냥 옛 조선시대 능묘 주변에 있었던 숲만 넓게 남아 있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카이스트 전, 카이스가 있었다

현대의 홍릉은 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보다는 그 주변에 생긴 다른 시설 덕분에 유명한 지역이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인근에 생긴 여러 과학 연구기관이다. 특히 1971년에는 ‘카이스(KAIS)’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카이스트(KAIST)’가 홍릉에서 탄생하면서 한국 첨단 과학 기술 교육의 뿌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카이스트의 시설 대부분이 대전으로 옮겨갔지만 아직도 홍릉에 카이스트 일부 기관이 남아 있다.

그렇다 보니 홍릉 지역에서 탄생한 다양한 과학 기술 성과도 많다. 대표적으로 하나 골라 본다면 1980년을 전후로 카이스트의 변증남 박사가 한국 최초의 산업용 로봇을 개발했던 일도 이야기해 볼만하다.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산업용 로봇이라고 하면 1960년대에 미국 자동차 공장에 도입된 로봇을 꼽는 경우가 많다. 이후 1970년대에 한국에서 국산 자동차의 개발과 수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세계 수준의 품질과 효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의 자동차 공장에도 로봇과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인기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1978년에 울산의 자동차 공장에 처음으로 외국산 산업용 로봇을 도입했는데, 문병성 선생의 기고문을 보면 그 두 대의 로봇에 ‘복돌이’와 ‘복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나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 개발되는 한국 로봇에 한국스러운 느낌이 나도록 복철이라든가, 복식이라든가 하는 이름을 붙여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970년대 말이 되자 공장 작업을 도와주는 로봇을 한국 기술로 직접 개발해 보겠다고 도전하는 과학자들도 등장했다. 그렇게 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몇몇 로봇들이 개발되었다.
서울의 아름다운 숲 홍릉에 카이스트 일부 기관이 남아 있다.
서울의 아름다운 숲 홍릉에 카이스트 일부 기관이 남아 있다.

변증남 박사가 만든 로봇 ‘카이젬’

그중에 가장 널리 알려졌고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로봇이라고 볼만한 것이 바로 변증남 박사의 연구팀에서 개발한 ‘카이젬(KAISEM)’이라는 로봇이다. 이때 변증남 박사 연구팀에서 카이젬을 개발한 시설이 홍릉 인근 지역 중에서도 지금의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서울의 하월곡동은 모든 한국 로봇의 고향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카이젬은 기둥 모양으로 돌아가는 축에 길다란 집게가 달려있는 형태였다. 그래서 금속 재질을 가공해야 하는 작업장에서 물건을 집어서 장비 위에 올려 주거나 내려 줄 수 있는 역할이 그 기능이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쇳덩어리 재료는 무겁기도 하거니와 강력한 기계로 쇳덩어리를 깎고, 구부리고, 용접해야 하므로 손을 대기에는 일이 위험한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이런 작업을 도와주는 로봇은 상당히 실용적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초기부터 산업용 로봇이 많이 쓰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젬은 당시 언론에서도 많은 조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시절 초등학생이던 변증남 박사의 딸이 아버지가 한국 최초의 로봇을 개발했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구경을 오기도 했다고 한다. 변증남 박사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를 보면 이때 딸이 만화에 나오는 로봇 같은 것을 기대하고 아버지의 연구실에 찾아왔다가 축에 달린 집게 모습의 로봇을 보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 보면 만화에는 흔히 로봇을 개발한 박사로 남 박사나 김 박사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현실에서는 최초로 로봇을 만든 박사가 변 박사라는 것도 상식으로 알아 둘 만한 일 아닌가 싶다.

이후 변증남 박사는 후학을 널리 기른 것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2021년에 대한민국 과학기술 유공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이 로봇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정확히 전체 모습을 잘 촬영해 놓은 사진 자료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런 상황이 소중한 우리의 기술과 문화를 잘 보존하지 못하고 공유하지 못하는 사례인 것 같아 아쉽다.

한국이 로봇을 활용해 경제와 산업이 빠르게 발전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하월곡동에 카이젬 로봇의 동상을 세워 두고 근처를 로봇의 성지로 기념할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다.
한국은 로봇을 활용해 경제와 산업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한국은 로봇을 활용해 경제와 산업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산업 현장의 ‘로봇 밀도’, 독일·일본의 2배 넘어

카이젬이 나오고 지금까지 4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의 로봇 사용 수준은 대단히 빠르게 발전했다. 자주 인용하는 국제로봇연맹(IFR)의 로봇 밀도라는 수치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산업 현장에서 로봇을 단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보통 전통적인 로봇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제조업 현장 노동자 1만 명당 400대가 좀 넘는 로봇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그 두 배가 훌쩍 넘어 가는 1,000대 이상의 로봇을 배치해 두고 있다. 이런 기록이 나온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한국에서는 업종에 따라서 로봇 밀도가 2,800이 넘는 분야도 있다는 국내 보도도 있었다. 그 말은 요즘 한국 공장에서는 사람 서너 명당 로봇 한 대를 두고 일을 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근래에 한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다른 경쟁 국가들 보다 앞서 나가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로봇과 자동화 설비라고 해도 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봇 밀도 순위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던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단히 빠른 속도로 로봇 도입에 나섰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의 로봇 밀도가 3위까지 올라왔는데 이 역시 중국 제조업의 성장을 상징하는 숫자로 볼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로봇의 사용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 보다도 빠르게 미래에 와 있는 나라라고 볼 수도 있다. 요즘 인공지능 덕분에 로봇이 더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선진국에서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미래나, 로봇이 사람을 공격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은 이미 이런 일들을 한참 먼저 겪어 본 나라다.

만약 로봇 한 대가 사람 한 명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로봇 밀도가 2,800인 곳에서는 이미 사람 일자리의 20% 이상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는 로봇 한 대가 사람 여러 명 치의 일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 현실은 단순한 계산과는 또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몇십 년 전부터 꾸준히 벌어졌다.

로봇의 도입으로 ‘변화’하는 일자리

이런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의 숫자가 줄어든다고만 말할 수 있는 상황과는 또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면 21세기 초부터 국내의 산업 현장에는 다양한 물류 자동화 장치와 물류 로봇들이 다양하게 도입되곤 했다. 본래 물류 창고라고 하면 짐을 싣고 내리는 힘이 센 젊은 남자들이 주류가 되는 일터라는 인상이 강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자동으로 돌아다니는 기계 설비와 로봇팔이 설치되다 보니 더 이상 힘센 젊은 남자들이 일을 할 이유가 줄어 들었다. 그 대신 나이가 많은 직원이나 여성 직원이 일을 맡게 되는 경향이 더 늘어났다. 반대로 기계를 조작하는데 서툴거나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일자리가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일은 로봇이 퍼져 나가면서 산업 현장 곳곳에서 벌어졌다.
서울의 한 박람회장에서 관람객들이 로봇을 활용한 물류시스템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의 한 박람회장에서 관람객들이 로봇을 활용한 물류시스템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로봇과 자동화 시설의 영향에 대해서는 다른 어느 선진국 사례를 따라 하려는 것 보다, 우리 자신을 반성하며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온갖 사회 문제에 대해 일본이, 독일이, 다른 선진국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살펴 보고 그것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해 온 분야가 워낙에 많았다.

그러나 로봇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세상에 한국 보다 앞서 있는 나라가 없다. 오히려 요즘 외신 보도를 보면 반대로 한국의 상황을 다른 선진국들이 이야기하면서 고민하는 기사들이 자주 눈에 뜨일 정도다.

지금의 한국에는 청년의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문제, 일자리 간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문제 등등 고질적인 일자리 문제들이 자리 잡았다. 이런 문제들은 한국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문제가 생긴 과정과 그에 대해 세운 대책이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되새겨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갖가지 자동화 장치가 한국 산업계의 곳곳에 배치되는 동안 어떤 장점이 있었고, 반대로 무슨 단점이 있었는지 현장의 상황을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로봇 시대를 잘 대비하는 길을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인의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30일 코엑스에서 열린 AI SEOUL 2026 행사에서 AI 기반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 코엑스에서 열린 AI SEOUL 2026 행사에서 AI 기반 로봇을 시연하고 있다.

로봇 사용 분야를 넘어, 로봇 개발까지

다른 방향에서 보면 한국의 경쟁력인 로봇을 더 좋은 쪽으로 개발하는 기술 발전의 방향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웃 나라와 비교해 보자면, 중국은 로봇을 사용하는 분야뿐만 아니라 로봇 자체를 만드는 분야에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로봇 사용에 앞서 있는 데 비해, 로봇 자체를 개발하는 분야에서는 아직 일본과 같은 세계 정상 수준의 나라들과는 격차가 있다. 

최근에 서울의 마곡 연구단지의 로봇 생산 시설에서 세계 주요 첨단 로봇 개발사들에게 로봇에 필요한 정밀 부품을 공급하게 되었다는 등등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한국 산업계에는 로봇을 많이 사용해 오면서 어떤 로봇을 어디에 쓰면 좋은지에 대한 경험이 많다. 로봇팔에 사람이 맞는 일이라고 하면 SF 영화 속 장면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미 한국의 산업 현장에는 로봇을 사용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안전 문제나 로봇과 함께 일하면서 로봇에게 사람이 다치는 사고를 막는 방법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많다. 그런 만큼 우리의 산업 현장에서 얻은 현실적인 지식이 널리 공유되면서 로봇을 더 좋은 방향으로 더 잘 사용하는 길을 찾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 본다.

그렇게 된다면 홍릉의 숲 한켠에서 처음 태어난 로봇의 자손들이 그 어느 만화에 나오는 로봇보다도 세상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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