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 녹이는 하얀 가루, 염화칼슘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5.12.10. 13:45

수정일 2025.12.10. 13:45

조회 96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서울의 한 도로에서 제설 작업을 위해 염화 칼슘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도로에서 제설 작업을 위해 염화 칼슘을 사용하고 있다.
  45화    보석 연금술이 눈을 녹이는 가루를 만들어 내기까지

서울의 대표적인 조선 시대 고궁이라고 할 수 있는 창덕궁에서도 멋진 연못이 있는 ‘부용지’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원래 부용지 근처에는 조선 초기에 궁궐 안에서 쓸만한 우물 자리를 찾아서 건설했다는 우물이 네 개 있었다고 한다.

그 우물을 각각 마니정, 파려정, 옥정, 유리정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여기서, 마니, 파려, 옥 등등은 옛날에는 보석처럼 취급되던 귀한 물질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도 옥은 소중한 것의 대표로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물질이다. “금이야 옥이야 한다” 같은 속담은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니 우물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은 보석만큼이나 좋은 우물이란 뜻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 중에 지금 보면 이상한 이름이 하나 끼어 있다. 바로 “유리정”이라는 이름이다. 요즘 유리를 대단한 보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가짜 모조품 보석이 있으면 “그것은 그냥 유리다”라고 할 정도로 대단찮은 물질의 상징으로 생각할 때도 많다.

유리는 그만큼 흔하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가정집에 유리창이나 유리컵이 흔할 뿐만 아니라 아예 전망이 좋으라고 커다란 통유리를 달아 놓은 건물도 세상에는 많다. 서울 시내 중심가 건물을 보면 아예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부터 유리로 되어 있는 곳이라든가 높은 고층 건물 전체를 이리저리 유리로 모두 덮어 놓았다고 할 만한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한국에는 거대한 유리 공장도 건설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여주에 있는 한 판유리 공장은 건설 당시 기준으로 단일 판유리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에 가까운 곳이라고 할 만큼 큰 곳이다. 이 공장에서는 단 하루 만에 63빌딩 만한 고층 빌딩 4개를 모두 유리로 다 휘감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유리를 생산해 낸다.

보석만큼 귀했던 ‘유리’

그렇지만 조선 시대 초기에는 결코 유리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유리의 주재료는 산소와 규소다. 산소와 규소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금이나 은에 비하면 산소와 규소는 어디에나 널려 있다고 할 만큼 지구에 흔하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모래의 주성분이 바로 산소와 규소로 이루어져 있는 이산화규소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를 잘 가공해서 투명하고 단단한 덩어리 같은 재질이 되도록 만들어 내면 어디서든 유리를 얻을 수 있기는 하다. 실제로 지금도 깨끗한 모래는 유리의 주재료다.

그렇다고 모래를 그냥 굽거나 찐다고 해서 유리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연료를 태워 가며 모래에 열을 마구 가해봐도 어지간해서는 그저 뜨거운 모래가 될 뿐이다. 모래를 녹여서 그것을 유리와 같은 상태의 덩어리가 되게 해서 굳히는 변화를 일으키는 작업은 그렇게나 어렵다. 그랬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유리를 보석처럼 생각했다.

가끔 엄청난 힘을 가진 번개가 모래 위에 떨어지면 그때 모래가 번개 때문에 변화하면서 자연히 유리가 생길 때가 있다. 그렇게 생긴 유리질의 딱딱한 덩어리를 섬전암이라고 부른다. 유리를 저절로 얻으려면 이런 정도의 일이 벌어져야 한다. 그나마 섬전암은 대부분 거무튀튀한 덩어리이지 투명한 광택이 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갖가지 방법을 다 써서 뛰어난 장인이 여러 가지 재료를 동원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약간의 유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옛날에 유리를 만들던 기술이었다.
과거엔 유리를 보석처럼 생각했지만, 이제는 흔한 재료가 되었다.
과거엔 유리를 보석처럼 생각했지만, 이제는 흔한 재료가 되었다.

유리 만드는 법을 발명한 화학자 솔베이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던 이런저런 물질들 중에 모래를 쉽게 녹게 만들고 유리로 변하게 해 줄 때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핵심 성분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그 성분이 바로 소다회, 또는 소다 재라고도 부르는 탄산나트륨 또는 탄산소듐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그래서 유럽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명확히 알아낸 후에 유럽 사람들은 순수한 탄산소듐을 많이 구하기만 하면, 탄산소듐과 모래를 이용해서 유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과거보다 훨씬 더 쉽게 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세월이 흘러 1860년대에 벨기에의 화학자 솔베이라는 인물이 탄산소듐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값싼 방법을 개발해 냈다. 바다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소금의 주성분은 염화나트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염화소듐이다. 소금을 많이 먹으면 몸에 나트륨이 너무 많아져서 안 좋다고 하는 바로 그 성분이다.

솔베이는 소금 속의 염화소듐에서 소듐을 가져온다는 생각을 했다. 또 조개껍질 속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탄산칼슘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 성분은 석회석 광산에서 채굴되는 석회석 속에도 아주 많이 들어 있다. 자연히 솔베이는 석회석이나 조개껍질에서 탄산을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소금에서 가져온 소듐과 석회석에서 온 탄산을 반응시켜서 탄산소듐을 만드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했고 결국 거기에 성공한 것이다. 솔베이가 개발한 이 기술 덕택에 우리는 소금과 석회석 같은 흔해 빠진 물질로 탄산소듐을 대단히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탄산소듐을 이용해서 한 때는 보석이라고 생각했던 유리를 무궁무진하다고 할 만큼 쉽게 만들어서 현대 도시에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만약 조선 초기 창덕궁의 좋은 우물 이름을 유리정이라고 붙인 사람이 현대에 오게 된다면 꽤나 머쓱한 느낌이 들 정도로 유리는 값싼 재료가 되었다. 말하자면 옛날에는 보석이라고 생각했던 유리를 마치 연금술 부리듯 쉽게 뽑아낼 수 있는 마법사의 가루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 덕택에 솔베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거대한 화학 기업을 세웠다. 20세기가 되자 솔베이는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한군데에 모아 회의를 개최하는 활동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대학이나 과학관 같은 곳에 가 보면 마리 퀴리나 아인슈타인 같은 여러 노벨상 수상자들이 줄줄이 서서 같이 찍은 사진을 전시해 놓은 곳들이 꽤 여러 군데 있는데, 그 사진이 바로 1927년 솔베이 회의 기념사진이다. 말하자면 그런 대단한 회의를 솔베이가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 덕분에 세상이 유리를 쉽게 쓸 수 있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거리를 걷는 시민들
눈 내리는 거리를 걷는 시민들

유리를 만들고 남은 ‘염화칼슘’의 쓸모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겨울철 서울 시내 도로 위의 눈으로 이어진다.

솔베이가 발명한 기술을 다시 돌아보면 그는 ‘탄산-소듐’을 만들기 위해 그 원료로 ‘탄산-칼슘’과 ‘염화-소듐’을 이용했다. 그렇다는 말은 탄산-소듐이라는 제품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에 팔고 나면 자연히 원료로부터 남는 ‘염화-칼슘’이 생긴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세계의 고층 건물들이 유리로 뒤덮이면 뒤덮일수록 막대한 양의 염화칼슘이 공장에 남아 쌓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렇게 생긴 염화칼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는 없을까? 이것은 쓸모없는 부산물이니 다 갖다 버려야만 할까? 과학자들은 이 염화칼슘을 눈길에 뿌리면 눈을 녹이는데 효과가 좋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실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물에 녹아서 전기를 통하게 할 수 있는 물질들은 대체로 물이 얼어붙는 것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염화칼슘이 아니라 그냥 소금만 뿌려도 물은 덜 얼어붙게 된다. 강물이 얼어붙을 때도 바닷물이 잘 얼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닷물 속의 소금이 물이 어는 것을 방해하는 효과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어는점 내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염화칼슘은 이런 현상을 보통 소금보다도 더욱더 잘 일으킨다. 그래서 맹물이 얼어붙고 심지어 소금물까지도 얼어붙을 정도로 아주 추운 날씨에도 염화칼슘이 녹아 있는 물은 잘 얼지 않는다. 그러므로 눈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얼어붙어 있는 상태로 있기보다는 녹아서 물이 된 상태로 변하기가 훨씬 쉽다.

당연히 눈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으며 길을 빙판으로 만드는 현상도 염화칼슘을 뿌려서 막을 수 있다. 심지어 염화칼슘은 물에 녹을 때 약간의 열을 뿜어내는 성질도 갖고 있다. 그러니 눈길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여러모로 그 눈을 녹게 해서 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목동제설전진기지에서 염화칼슘 등 제설제를 점검하는 모습
목동제설전진기지에서 염화칼슘 등 제설제를 점검하는 모습
바로 이런 장점 덕분에 많은 유리가 생산되면서 부산물로 거저 얻은 염화칼슘을 세계 각지에서는 눈길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 덕택에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솔베이의 발명은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발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서울시 당국에서도 매년 수만 톤 단위의 염화칼슘 재고를 확보하며 눈이 많이 올 때는 한 번에 수백 톤에서 수천 톤 단위로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린다. 행정안전부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적으로 한 해에 76만 톤이 훌쩍 넘어 가는 막대한 양의 염화칼슘을 사용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 지역에 유리 공장이 들어선 적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때 인천에 유리의 원료인 탄산소듐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고 그 덕택에 2000년대 중반 무렵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염화칼슘이 생산되었다. 세상이 변해서 지금은 그 공장이 사라지고 공장 터에 아파트나 주상복합 같은 것을 짓는 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데,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 쓰는 염화칼슘은 대개 중국에서 수입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제 2의 ‘염화칼슘’ 탄생을 기대하며

동시에 기후변화로 점점 예상하기 어려운 날씨가 찾아오면서 염화칼슘보다 더 좋은 물질을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일단 염화칼슘보다 더 적게 뿌려도 더 추운 날씨에도 더 눈을 잘 녹일 수 있는 더 값싼 물질을 찾아내야 할 필요도 있다.

또 염화칼슘은 철을 녹슬게 하는 등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이 뿌리면 도로를 달리는 차를 더 빠르게 녹슬게 한다는 것도 오래도록 고민거리였던 문제다. 요즘에는 차뿐만 아니라 도로 주변의 시설 수명을 염화칼슘이 단축시킬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고, 도로의 포장을 망가지게 하는데도 염화칼슘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니 각종 시설을 안전하게 오래 쓰기 위해서라도 염화칼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염화칼슘이 가로수라든가 도로 주변의 식물이 사는 땅에 튀게 되면 식물이 자라나는 데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염화칼슘을 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기술 개발에도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또 예전에 유리를 싸게 만들기 위한 물질 개발 과정에서 염화칼슘이 탄생했듯이 미래에는 또 어느 새로운 분야, 어느 놀라운 연구의 결과로 더 값싸고 더 안전한 제설제가 탄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다양한 분야의 과학 기술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도 더욱더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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