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 1,723명의 호국영웅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시민기자 황준혁

발행일 2025.06.19. 13:00

수정일 2025.08.28. 16:47

조회 448

현충일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녀왔다. ©황준혁
지난 6월 6일, 제70회 현충일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많은 시민들이 현충원을 찾았는데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6.25 참전 전사자 유품 전시유가족 유전자 시료라는 현수막이 띄었다. 아직도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전사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무려 그 숫자는 12만 1,723명이나 된다.

‘유해 발굴’. 너무도 간단한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고도 비통했다. 현충탑 아래, 유골이 발견되지 않아 10만 4,000여 위의 호국 용사 위패를 모시고 있고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는 찾았으나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약 7,000명 용사들의 영현을 봉안하고 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휴대전화 카메라에 위패 사진을 남기려는 한 할아버지는 큰형님이 6.25전쟁에 나갔다가 돌아가셨는데 전사 통고지를 아버님이 화를 내시면서 받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절을 하는 할머니는 오빠 두 분이 전사했는데 두 분 다 유골을 찾지 못해 이곳에 위패만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유골이 발견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말씀하셨다. 참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희생되고 아직 유골도 발견하지 못한 현실에 가슴 아팠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121723 끝까지 찾아야 할 태극기’ 배지를 나누어 주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고, 현장에서 진행 중인 ‘DNA 시료 체취 캠페인’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12만 1,723명의 6.25 참전 전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그 수많은 이름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현실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날의 국립서울현충원은 단순한 추모의 공간이 아니었다. 기억을 넘어서 ‘책임’을 다짐하는 자리였고, 기다림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들을 끝까지 찾고, 기억하며, 이름을 다시 불러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태극기 아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현충일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6.25전쟁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안내하고 있다. ©황준혁
6.25전쟁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안내하고 있다. ©황준혁
위패봉안관은 유해를 찾지 못한 호국 용사 위패를 모시고 있다. ©황준혁
위패봉안관은 유해를 찾지 못한 호국 용사 위패를 모시고 있다. ©황준혁
고인의 위패가 새겨져 있는 위패봉안관 ©황준혁
고인의 위패가 새겨져 있는 위패봉안관 ©황준혁

국립서울현충원

○ 위치 :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 210
○ 교통 :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8번 출구에서 62m
○ 개방시간 : 정문·동문·통문(5개소) 06:00~18:00
※ 현충원 내 업무시설 개방시간 : 09:00~18:00
○ 휴무일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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