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밀정'…현충원에서 만난 영화 속 주인공들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4.06.19. 14:53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국립현충원을 찾는 발길도 많아진다.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73) 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국립현충원을 찾는 발길도 많아진다. 국립현충원의 역사는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으로 많은 전사자가 생겨났고, 이들을 모실 묘지의 조성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탄생 배경과 이곳에 모셔진 분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이력
동작동에 국립묘지가 자리를 잡기 전 이곳에는 조선 왕실의 묘소도 있었다. 14대 왕 선조의 할머니가 되는 창빈(昌嬪) 안씨(安氏:1499~1549)의 묘소로, 현재에도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창빈의 사망 후 묘소는 처음 경기도 양주(楊州) 서쪽 장흥리에 조성되었으나,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1551년 지금의 자리인 과천(果川) 북면 동작리(銅雀里) 언덕으로 이장했다. 그때부터 이 무덤은 ‘동작릉(銅雀陵)’이라 불렸다.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으로, 영양군과 덕흥군의 2남과 정신옹주를 낳았는데,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선조가 되었다. 선조는 적통이 아닌 방계 출신으로 처음 왕이 된 인물로서, 이후 조선의 왕은 모두 선조의 후손들로 이어졌다. 흔히 무덤을 잘 쓰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창빈 안씨의 무덤을 현재의 동작동 국립묘지에 쓴 것이 효험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창빈 안씨의 묘역 바로 옆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부부가 안치되어 있다.
창빈 안씨는 중종의 후궁으로, 영양군과 덕흥군의 2남과 정신옹주를 낳았는데,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이 선조가 되었다. 선조는 적통이 아닌 방계 출신으로 처음 왕이 된 인물로서, 이후 조선의 왕은 모두 선조의 후손들로 이어졌다. 흔히 무덤을 잘 쓰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창빈 안씨의 무덤을 현재의 동작동 국립묘지에 쓴 것이 효험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창빈 안씨의 묘역 바로 옆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부부가 안치되어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에 설치된 태극기, 커다란 태극기가 멀리서도 잘 보인다
유해를 찾지 못하거나 후손이 없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위패가 모셔진 무후선열제단.
6·25 전쟁으로 생겨난 전사자를 모시는 묘지로 1953년 동작동이 선정되었고, 이에 의해 1955년에는 국군묘지관리소가 창설되었다. 1965년에는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하였는데, 군인만이 아니라 독립유공자, 경찰관, 전직 대통령, 향토예비군도 안장 대상에 포함하였다.
1985년 대전에 국립묘지가 조성되면서 위상에 변화가 왔고, 1996년에는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5년의 국립묘지법 개정으로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분리되었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동안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대전현충원은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여 주관 부처가 달랐는데, 올해 7월부터는 서울현충원도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게 된다. 2024년 6월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은 국방부 소속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마지막 현충일 행사가 되었다.
1985년 대전에 국립묘지가 조성되면서 위상에 변화가 왔고, 1996년에는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5년의 국립묘지법 개정으로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분리되었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 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동안 서울현충원은 국방부가, 대전현충원은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여 주관 부처가 달랐는데, 올해 7월부터는 서울현충원도 국가보훈부에서 관리하게 된다. 2024년 6월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은 국방부 소속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마지막 현충일 행사가 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 구성
국립서울현충원에는 1965년 애국지사 묘역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무후선열(無後先烈) 제단(祭壇), 1993년 임시정부 묘역, 2002년 대한민국 무명용사 위령탑을 세웠고 이를 아울러 ‘독립유공자 묘역’이라 하였다. 2019년에는 국립묘지법이 개정되어, 1965년에 조성된 애국지사 묘역만을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칭하게 되었고, 임시정부 묘역, 무후선열 제단은 독립된 명칭을 갖게 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대형 태극기가 양쪽에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독립유공자 묘역은 이곳에 조성되어 있다.
독립유공자묘역에 있는 무후선열제단
장군 묘역에는 광복 이후 국군의 창설과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대간첩작전 등에서 전공을 세운 장성들이 안장되어 있다. 장병 묘역에는 창군 이래 1948년 여순 사건,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대간첩작전 등에서 순국한 장병들이 안장되어 있는데, 53개의 묘역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파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던 채명신(蔡命新:1926~2013) 장군은 ‘나를 파월 장병의 묘역에 묻어 달라’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장성 묘역이 아닌 장병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장병 묘역에는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서 순국한 장병들이 안장되어 있다.
현충원에서 만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최근 영화 속 실제 모델이 되었던 인물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것도 주목된다. 2015년 1,27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배우 전지현)의 실존 인물은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南慈賢:1872~1933)이었다.
남자현 의사는 46세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주해 서로군정서에 가입, 군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사코의 암살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는 등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2016년 7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밀정’의 앞부분에는 일경에 맞서 단신으로 쌍권총을 쏘며 총격전을 벌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김장옥(배우 박희순)이라 하였지만,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1889~1923)의 실제 모습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후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자, 신출귀몰한 탈출을 해나갔다. 마지막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는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최후까지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형사부장 등을 사살하였다. 총알이 떨어지자 마지막 1발을 스스로 머리에 쏘고 현재의 대학로 부근에서 순국하였다.
남자현 의사는 46세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주해 서로군정서에 가입, 군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조선 총독 사이토 마사코의 암살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는 등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2016년 7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밀정’의 앞부분에는 일경에 맞서 단신으로 쌍권총을 쏘며 총격전을 벌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김장옥(배우 박희순)이라 하였지만, 독립운동가 김상옥(金相玉:1889~1923)의 실제 모습을 영화로 표현한 것이다. 1923년 1월 12일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후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자, 신출귀몰한 탈출을 해나갔다. 마지막 은신처가 발각된 후에는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최후까지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형사부장 등을 사살하였다. 총알이 떨어지자 마지막 1발을 스스로 머리에 쏘고 현재의 대학로 부근에서 순국하였다.
현충원 묘역에서 묘비를 닦고 있는 참배객의 모습
밀정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전거에 폭탄을 싣고 조선총독부로 들어가는 학생이 등장하는데, 이는 1921년 조선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투척한 김익상(金益相:1895~1925) 의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외에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박열’의 실존 인물 박열(朴洌:1902~1974)은 무후선열 제단에 모셔져 있다. 박열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무후선열 제단’은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만 남아 있는 선열을 모신 제단으로, 3층의 계단에 134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제단의 앞쪽에 ‘민족의 얼’ 글씨를 새긴 석비와 장엄한 조형물이 있다. 무후선열 제단에는 2019년에 개봉한 ‘항거’의 주인공 유관순(柳寬順:1902~1920) 열사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2023년 1,3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실존 인물 중 1979년의 12·12 쿠테타에 저항했던 특전사령관 정병주(배우 정만식)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전사한 김오랑(배우 정해인) 중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정병주는 장군 묘역에, 김오랑은 사후에 특전사령부 뒷산에 매장되었다가 국립현충원 29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쿠테타군에 의해 체포되었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배우 이성민), 수경사령관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장태완(배우 정우성) 등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데, 쿠테타군의 일원이었던 박준병, 유학성 등도 이들 곁에 안장되어 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외에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박열’의 실존 인물 박열(朴洌:1902~1974)은 무후선열 제단에 모셔져 있다. 박열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독립운동에 나선 인물이다. ‘무후선열 제단’은 묘소도 없고 자손도 없이 외로운 혼만 남아 있는 선열을 모신 제단으로, 3층의 계단에 134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제단의 앞쪽에 ‘민족의 얼’ 글씨를 새긴 석비와 장엄한 조형물이 있다. 무후선열 제단에는 2019년에 개봉한 ‘항거’의 주인공 유관순(柳寬順:1902~1920) 열사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2023년 1,3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실존 인물 중 1979년의 12·12 쿠테타에 저항했던 특전사령관 정병주(배우 정만식)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전사한 김오랑(배우 정해인) 중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정병주는 장군 묘역에, 김오랑은 사후에 특전사령부 뒷산에 매장되었다가 국립현충원 29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쿠테타군에 의해 체포되었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배우 이성민), 수경사령관으로 끝까지 저항했던 장태완(배우 정우성) 등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데, 쿠테타군의 일원이었던 박준병, 유학성 등도 이들 곁에 안장되어 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현충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충성 분수대'.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야외조형물이다.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대통령은 누구일까?
역대 대통령 중 사망한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분은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4명이다. 윤보선,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전직 대통령은 여러 사정으로 다른 곳에 묘지가 조성되었다.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사망한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대통령 중 처음으로 1965년 7월 27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1900~1932)는 1992년 3월 23일 이승만의 묘소에 합장되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陸英修:1925~1974) 여사는 사망 후 8월 19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5년 후인 1979년 10월 26일 사망한 박정희(朴正熙:1917~1979) 대통령이 국장(國葬)을 마친 후 11월 3일에 부인의 무덤 곁으로 왔다. 쌍분의 형식을 취한 묘소이다.
2009년 8월 18일에 사망한 김대중(金大中:1924~2009) 대통령은 국장 후에 8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9년 6월 14일 이희호(李嬉鎬:1922~2019) 여사가 이곳에 합장되었다. 김영삼(金泳三:1928~2015) 전 대통령은 2015년 11월 22일 사망 후 5일간의 국가장을 치르고 26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9년 후인 2014년 3월 11일 손명순(孫命順:1928~2024) 여사가 사망하면서,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다.
1965년 7월 19일 하와이에서 사망한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대통령 중 처음으로 1965년 7월 27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1900~1932)는 1992년 3월 23일 이승만의 묘소에 합장되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陸英修:1925~1974) 여사는 사망 후 8월 19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5년 후인 1979년 10월 26일 사망한 박정희(朴正熙:1917~1979) 대통령이 국장(國葬)을 마친 후 11월 3일에 부인의 무덤 곁으로 왔다. 쌍분의 형식을 취한 묘소이다.
2009년 8월 18일에 사망한 김대중(金大中:1924~2009) 대통령은 국장 후에 8월 2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2019년 6월 14일 이희호(李嬉鎬:1922~2019) 여사가 이곳에 합장되었다. 김영삼(金泳三:1928~2015) 전 대통령은 2015년 11월 22일 사망 후 5일간의 국가장을 치르고 26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9년 후인 2014년 3월 11일 손명순(孫命順:1928~2024) 여사가 사망하면서, 남편과 함께 합장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입구에 적힌 "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친척이나 지인 중 현충원에 모셔진 경우는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필자도 오촌 당숙 아저씨가 베트남에서 전사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어서, 현충원을 찾은 경험이 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국립현충원을 찾아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는 것도 의미가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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