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벗어나려면 건축가처럼! 다음세대를 위한 건축교육

지정우 건축가

발행일 2024.06.17. 13:10

수정일 2024.06.18. 08:52

조회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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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구상하고 만든 집의 단면을 설명하는 어린이. 어른들에게 같은 시간, 같은 재료를 준다면 결코 표현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구성했다.
자신이 구상하고 만든 집의 단면을 설명하는 어린이. 어른들에게 같은 시간, 같은 재료를 준다면 결코 표현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구성했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27)다음세대를 위한 건축교육

자신의 집이나 건물을 짓지 않는 이상 살아가면서 건축가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건축 안에서 생활을 하고 그에 영향을 받는다. 즉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공간의 사용자이자 소비자인 것인데, 그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을 창작하는 건축가의 역할을 해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이 공간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다음세대는 여러 면에 주도권을 갖기 쉽지 않기에 현재 만들어져 있는 공간 환경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건축가의 일은 꽤 전문적이긴 하지만, 초반 단계인 ‘건축가처럼 상상하기’는 다음세대들에게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서 달라질 수 있음을 경험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때로는 완벽한 계획이 아니어도 
각각의 과정에서 최선을 다할 때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건축가처럼 관찰하기, 상상하기, 짓기

최근에는 서울시 차원에서, 각 지자체에서, 뮤지엄이나 도서관에서, 그리고 건축 재단과 단체 등에서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건축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행사를 위한 행사라기 보다는 진정으로 다음세대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건축가, 조경가, 교육가, 디자이너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끌고 있어서 더 이상 멀리 있는 전문분야가 아닌, 생활 속 공간을 함께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필자가 참여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성동구의 ‘창의예술놀터: 아이사랑복합문화센터’에서는 3년째 어린이 건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단계별 진행과 함께 집에서는 해보기 어려운 대형 공간 작업까지 건축가인 필자와 긴 호흡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총 3주에 걸쳐서 진행이 된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 주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자신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입체적인 지도로 구성해보고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단면’으로 상상해보며 표현해 보았다. 두 번째 주에는 반복을 통해 건축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만들어보았으며, 세 번째 주는 1, 2 주의 작업을 바탕으로 서로 엮고 공간을 더하여 자신의 집을 입체적으로 구성해보았다.

이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보호자와의 ‘협업’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린이가 건축가의 역할을 하고, 부모 혹은 보호자는 직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정에서의 부모 자식의 관계와 다른 점이다. 직원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도를 잘 설명해야 하며 배려하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사전 몸 풀기 활동으로 자신의 키와 거의 같은 두 팔 벌린 길이를 연결하여 공간의 길이 재기, 서로의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고 긴 막대기를 협업하여 내렸다가 올리기 등을 통해 작업할 마음을 갖춘다.
사전 몸 풀기 활동으로 자신의 키와 거의 같은 두팔 벌린 길이를 연결하여 공간의 길이 재기, 서로의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고 긴 막대기를 협업하여 내렸다가 올리기 등을 통해 작업할 마음을 갖춘다.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를 자신만의 감각이 담긴 지도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창작이다.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를 자신만의 감각이 담긴 지도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창작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표현의 가이드를 따로 주지 않는 것이다. 대상과 재료는 주되 그것을 해석해내고 다시 창작해 내는 활동은 오롯이 어린이들의 몫이다. 재료가 가진 성질을 손으로 만져보고 이리저리 결합해 보면서 스스로 가능성을 탐구한다. 대상에 대해 떠올려 보면서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꿈을 조절한다. 그러므로 똑같은 것을 가이드에 따라서 조립하거나 만들거나 색칠해내는 단순 활동과는 차원이 다른 교육이다.
무언가를 창작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집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와는 또다른 소통의 훈련이다.
무언가를 창작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집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와는 또다른 소통의 훈련이다.

또 다른 가치 중 하나는 ‘과정’을 몸으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내부 장치가 감춰져 있는 스크린에 익숙한 세대에게 진짜 재료를 느끼고 몸으로 중력을 고려하며 창작하는 활동을 통해 현실을 느끼고 체감할 수 있게 한다. 한번에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거치며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다시 시간이 결합된 4차원으로 발전하며, 이전의 활동이 나중의 결과에 연결된다는 깨달음도 느낄 수 있게 기획된다.

1차시에 집의 ‘단면’을 상상했던 것이 2차에 만든 ‘구조’에 더해져서 3차시에 완성된 집의 형태를 갖춰가는 동안, 완벽한 계획만이 잘된 결과를 만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각각에 최선을 다한 과정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합쳐질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미리 앞서서 걱정’하는 세대에게 삶은 꼭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해주기도 한다.
마시멜로우와 이쑤시개를 재료로 같은 시간을 주어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전혀 다른 구조물들을 만드는 어린이들.
마시멜로우와 이쑤시개를 재료로 같은 시간을 주어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전혀 다른 구조물들을 만드는 어린이들.

또한 같은 재료를 갖고 전혀 다른 과정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다른 팀들을 보면서 생각의 다양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흔히 창의적인 공간은 ‘카페 같은 공간’이라고 말할 때 전형적인 요소들을 떠올리거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예산과 기능에 따라서 정답을 찾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건축도, 디자인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새로움과 다름이 기본이고 그 가치와 그것을 만든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 어릴 때부터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면 우리 사회의 환경이 달라지는 토대가 될 것이다. 
발표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과정을 경청하고 놀라움의 마음을 갖는 것 그것도 건축교육의 일부다.
발표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과정을 경청하고 놀라움의 마음을 갖는 것 그것도 건축교육의 일부다.

우리가 만든 공간 안에 들어가는 경험

다음세대가 생활하는 공간 중에는 집보다 더 중요한 곳들이 있다. 그들에 학교나 도서관, 놀이터 등이 포함될 수 있고 어린이들의 감각과 상상으로 그 공간들에 대해 구성해보는 것은 일상생활의 장소들이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인식의 확장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성동창의예술놀터에서 진행한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어린이들이 보호자와 놀이공간을 구성해 보는 작업을 했다. 

흔히 아는 놀이기구가 아닌, 공간으로서 새로운 재미와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를 상상해 보기 위해 여러가지 재료들 중에 세 가지를 골라서 작업해보도록 했고 이런 규칙 속에서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건축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안에서 노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재료가 달라지면서 그에 맞는 구축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전혀 새로운 유형의 공간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재료가 달라지면서 그에 맞는 구축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고 전혀 새로운 유형의 공간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축소된 스케일로의 모형은 그 안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공간의 전체적인 형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조절하고 만들어볼 수 있지만 우리가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은 사람의 ‘눈높이’이다. 새가 아닌 이상 공중에서 실제 공간을 내려다보는 경우는 일상 생활에서 어렵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더군다나 학교나 집과 같은 일상 공간에서는 실제 내 몸이 들어가는 공간을 만들어보기가 쉽지 않다. 어릴 때 부모님 책상이나 식탁 아래에 들어가서 새로운 아지트를 경험했듯이 새로운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는 경험은 뮤지엄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 장소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건축가들은 ‘파빌리온’이라고 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구조물을 지어보곤 하는데, 특정한 목적성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공간 그 자체를 새로운 구축법으로 만들어보고 그 안과 밖의 공간성을 느끼기 위함이다.
팸플릿 종이 재료를 재활용하여 휘어보고, 말아보고, 세워보고, 접어보는 등 구축 방식의 하나를 반복하여 점점 거대한 구조물이 만들어 지는 과정
팸플릿 종이 재료를 재활용하여 휘어보고, 말아보고, 세워보고, 접어보는 등 구축 방식의 하나를 반복하여 점점 거대한 구조물이 만들어 지는 과정

다음세대들도 자신이 직접 만든 공간에 들어가보거나 그 공간의 구멍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는 등의 경험은 어린시절의 특별한 기억이 된다. 당연히 스케일이 커지면서 더 체계적인 분업과 결정, 협업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면서 창작의 가치에 대해서도 더욱 느끼게 된다. 다른 공간의 느낌을 몸으로 느끼게 되면서 앞으로 이들이 성장하며 만나게 될 혹은 만드는데 관여하게 될 많은 공간들에 더 나은 환경을 꿈꾸고 기대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공간 안에 들어가 불을 끄고 손전등으로 빛을 달리 경험해 보는 것은 공간과 내가 상호반응하는 또다른 과정이다.
공간 안에 들어가 불을 끄고 손전등으로 빛을 달리 경험해 보는 것은 공간과 내가 상호반응하는 또다른 과정이다.
2021년 성동창의예술놀터에서의 반복된 구조로 공간 짓기 프로그램 후 단체 사진.
2021년 성동창의예술놀터에서의 반복된 구조로 공간 짓기 프로그램 후 단체 사진.

자연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 짓기

서울시에서는 서울 도시건축센터에서 수시로 어린이 건축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2023년 가을에는 노들섬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건축가들을 초대하고 기획한 권현정 건축가의 주도로 어린이 80여명과 함께 ‘어린이, 건축가와 노들섬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열렸다.

이 프로그램에서 필자는 맹꽁이와 딱다구리 서식지로 잘 알려진 노들섬에서 어린이들이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장소를 생각해보도록 했다. 같이 맹꽁이 서식지를 조심스럽게 돌아보고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과 들려오는 새 소리를 느껴보게 하였고 그 마음을 담아 그들의 서식지를 구성해보고자 했다.
노들섬의 동측, 맹꽁이 서식지 탐방하기
노들섬의 동측, 맹꽁이 서식지 탐방하기
되도록 화학 재료를 쓰지 않고 어린이들이 자연의 서식지 건축을 구축해 보고자 했다
되도록 화학 재료를 쓰지 않고 어린이들이 자연의 서식지 건축을 구축해 보고자 했다
노들섬 어린이 건축 워크숍의 전경. 그 장소에서 실제 장소성을 느끼며 그곳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한 어린이들처럼 이곳에 건축을 할 전문가들도 그러길 바란다.
노들섬 어린이 건축 워크숍의 전경. 그 장소에서 실제 장소성을 느끼며 그곳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한 어린이들처럼 이곳에 건축을 할 전문가들도 그러길 바란다.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구성물이 모여서 집합적인 풍경을 이루는 과정으로 기획을 했기에 서로 다른 생각들이 모여서 다공성을 많이 가진 자연을 위한 환경이 되었다. 필자가 담당한 팀 이외에도 여러 다른 팀들의 서로 다른 주제와 해법을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 과정에 참여한 이 흔치 않은 기회가 그들의 성장에 작은 조약돌이 되길 바라본다. 

뉴욕과 도쿄의 어린이 건축 프로그램

해외에도 우리와 비슷한 어린이 건축 프로그램들이 있다. 뉴욕은 건축가협회에서 쓰는 건물인 Center for Architecture 내에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곳의 프로그램들은 정해진 건축의 유형들을 만드는 것이 수업처럼 이 센터의 교육 스텝들에 의해서 주로 이뤄지는 것이 우리의 경우와 다른 점이다.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눠봤을 때 건축가들을 초대하려 해도 참여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건축가들의 공공성은 꽤 높은 수준이다.
토요 이토(Ito Toyo) 건물 외관과 활동 모습을 담은 팸플릿
토요 이토(Ito Toyo) 건물 외관과 활동 모습을 담은 팸플릿

반면 일본의 경우 토요 이토(Ito Toyo)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훌륭한 건축가 중의 한 명이 설립한 사립 어린이 건축학교가 토쿄 외곽 주택가에 있다. 토요 이토와 그 제자들이 주로 가르치는 이 기관은 밀도 있게 짜여진 교육과정에 따라서 학기제로 진행이 되는데 이곳을 방문하여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꽤 고가의 수업료를 내고 진행되는 엘리트 건축교육기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세대 건축교육은 그들을 건축가로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간에 종속되지 않는 마음과 생각을 키우는 기회이기도 하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가치관을 키우기 위해서다. 

각자의 고유성과 잠재성을 위해

다음세대의 건축교육은 그들을 건축가로 키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공간의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 마음과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더욱 다양한 시각과 가치관으로 스스로 발전케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일반 수업과 달리 각자의 고유함을 찾는 여정을 통해 그들이 만들어 갈 미래가 현재의 환경보다 더 나은 세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필자도 건축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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