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즉위 300주년 기념…글과 그림 통해 만나보는 '탕평책'
발행일 2024.01.25. 09:10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세밀하고 화려하게 기록한 ‘화성원행도’ ©박분
2024년 새해가 밝았다. 2024년은 영조(재위 1724~1776) 즉위 3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한 '탕탕평평蕩蕩平平 - 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을 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영조와 정조는 탕평 정치를 통해 국사를 풀어나간 임금으로 유명하다. 이번 특별전은 두 임금이 탕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글과 그림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전시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과 궁중 행사를 담은 의궤 등 궁중 서화의 화려한 품격을 자랑하는 88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영조와 정조는 탕평 정치를 통해 국사를 풀어나간 임금으로 유명하다. 이번 특별전은 두 임금이 탕평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글과 그림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전시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과 궁중 행사를 담은 의궤 등 궁중 서화의 화려한 품격을 자랑하는 88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탕탕평평(蕩蕩平平) - 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을 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전경 ©박분
영조와 정조는 왕위를 계승한 정통성과 붕당의 폐단을 알리기 위해 ‘감란록', '어제대훈' 등 많은 책을 간행했다. ©박분
제1부 ‘탕평의 길로 나아가다’와 제2부 ‘인재를 고루 등용해 탕평을 이루다’에서는 서적과 그림을 통해 탕평책을 소개하고 있다. ‘탕평’은 싸움이나 논쟁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뜻한다. 치우침 없이 무리를 만들지 않아야 왕도가 탕탕하고, 평평하다는 의미다.
조선시대는 왕과 신하들 간 대립과 파벌 간의 세력 다툼이 많았다. 특히 영조가 왕위에 오른 18세기 초 노론과 소론 등 붕당은 왕위 계승 문제를 두고 대립했다. 전시실에는 ‘감란록', '어제대훈' 등 두 임금이 왕위를 계승한 정통성과 붕당의 폐단을 알리기 위해 간행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영조가 올린 게장을 먹고 경종이 사망했다’는 정적들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영조의 반박과 정조가 세손 시절 정적들로 받은 위협과 정적 처벌의 정당성을 담은 책들이다. 이중에는 더 많은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한글로 제작한 언해본도 있다.
조선시대는 왕과 신하들 간 대립과 파벌 간의 세력 다툼이 많았다. 특히 영조가 왕위에 오른 18세기 초 노론과 소론 등 붕당은 왕위 계승 문제를 두고 대립했다. 전시실에는 ‘감란록', '어제대훈' 등 두 임금이 왕위를 계승한 정통성과 붕당의 폐단을 알리기 위해 간행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영조가 올린 게장을 먹고 경종이 사망했다’는 정적들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영조의 반박과 정조가 세손 시절 정적들로 받은 위협과 정적 처벌의 정당성을 담은 책들이다. 이중에는 더 많은 백성이 볼 수 있도록 한글로 제작한 언해본도 있다.
1742년 영조가 탕평의 뜻을 새겨 만든 비석 ‘탕평비 탑본’ ©박분
영조가 노년에 그린 ‘바위그림’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쳐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박분
1750년(영조26)에 그려진 김중만 분무공신 초상 ©박분
1742년 여덟 살인 사도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행사에 당색이 다른 유생들은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영조는 유생들을 훈계한 뒤 탕평의 뜻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탕평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른 인재의 등용으로 지혜를 모아 백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탕평비 탑본(1742년)'은 탕평의 뜻을 담은 비석으로 탕평의 뜻을 전하려는 영조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영조가 노년에 그린 ‘바위그림’에서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쳐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탕평'에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분무공신들의 초상화도 흥미롭다. 영조는 자신에게 큰 위기였던 무신란(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신들을 ‘분무공신’이라 칭하고, 그들의 초상화를 제작해 선물했다. 분무공신들은 탕평 정치에 있어서도 올곧은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22년이 지나 영조는 분무공신들의 초상화를 다시 제작해 궁궐에 보관하라고 명했다. 그들의 공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에서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초상과 김중만의 초상이 대표적이다.
분무공신들의 초상화도 흥미롭다. 영조는 자신에게 큰 위기였던 무신란(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신들을 ‘분무공신’이라 칭하고, 그들의 초상화를 제작해 선물했다. 분무공신들은 탕평 정치에 있어서도 올곧은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22년이 지나 영조는 분무공신들의 초상화를 다시 제작해 궁궐에 보관하라고 명했다. 그들의 공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에서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초상과 김중만의 초상이 대표적이다.
김홍도가 그린 ‘규장각도’와 정조의 명령인 수교가 적혀 있는 현판 중앙의 규장각 건물이 주위의 부속 건물보다 크게 묘사돼 있다. ©박분
영조에 이어 손자인 정조도 탕평 정책을 이어갔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바로 규장각을 건립하도록 지시했다. 전시에는 김홍도가 그린 ‘규장각도’가 나와 있다. 그림을 살펴보면 중앙의 규장각 건물이 주위의 부속 건물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정조는 뛰어난 젊은 문신들을 선발해 규장각에서 교육시켜 연구에 전념케 함으로써 규장각을 중추적인 학술기관으로 성장시켰다. 규장각 관원들이 탕평 정책을 뒷받침했음은 물론이다. 정조는 규장각 서리들이 머무는 공간 현판에 ‘수상사이서무득출입’이라는 왕의 명령인 수교(受敎)를 내리기도 했다. ‘상급 관청의 서리라 해도 출입할 수 없다’는 뜻으로 규장각 관원들을 보호하고 규장각의 위상을 세우기 위한 정조의 다각적인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정조가 신하들에게 써준 시와 편지 등을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박분
정조는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민시에게 분홍색 비단에 시문을 담아 새로운 출발을 격려했다. ©박분
심환지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밝힌 정조의 편지, 이 편지를 보낸 13일 뒤 정조는 49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박분
정조가 신하들에게 써준 시와 편지 글도 선보이고 있다. 편지를 통해 정조가 신하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려 했던 간절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민시에게는 모란, 박쥐 문양이 새겨진 분홍색 비단에 유려한 필치로 시문을 담아 신하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했다.
심환지에게는 ‘몸의 화기 때문에 쉬 잠들지 못해 답답하다"며 "여름 들어서 더욱 심해졌다’고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자신의 건강 상태까지도 털어놓을 정도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쉽사리 발길을 뗄 수 없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 편지를 보내고 13일 뒤 정조는 49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정조가 보낸 비밀 편지는 무려 297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에 발굴된 편지들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귀중한 사료이며 ‘정조어찰첩’으로 묶어 2016년에 보물 제1923호로 지정됐다.
심환지에게는 ‘몸의 화기 때문에 쉬 잠들지 못해 답답하다"며 "여름 들어서 더욱 심해졌다’고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자신의 건강 상태까지도 털어놓을 정도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 쉽사리 발길을 뗄 수 없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 편지를 보내고 13일 뒤 정조는 49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정조가 보낸 비밀 편지는 무려 297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에 발굴된 편지들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 귀중한 사료이며 ‘정조어찰첩’으로 묶어 2016년에 보물 제1923호로 지정됐다.
정조가 1795년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올린 금으로 만든 인장 ‘장조추상존호금인(보물)' ©박분
사도세자에게 존호를 올리는 정조의 글이 담긴 의궤에 화려한 색감의 청룡이 그려져 있다. ©박분
제3부 ‘왕도를 세워 탕평을 이루다’에서는 두 임금이 ‘효’와 ‘예’를 내세워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복형인 경종을 죽였다는 독살설에 시달렸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효(孝)’로서 복권하려 했던 정조의 노력 등 내밀한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정조는 1795년 반대 세력을 설득해 마침내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왕에 버금가는 존호를 올리게 된다. 금으로 만든 인장 ‘장조추상존호금인’이 그것이다. 사도세자에게 존호를 올리는 정조의 글이 담긴 의궤에는 화려한 색감의 청룡이 그려져 있다.
정조는 1795년 반대 세력을 설득해 마침내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왕에 버금가는 존호를 올리게 된다. 금으로 만든 인장 ‘장조추상존호금인’이 그것이다. 사도세자에게 존호를 올리는 정조의 글이 담긴 의궤에는 화려한 색감의 청룡이 그려져 있다.
화성 행사의 주요 행사 장면을 8폭 병풍에 담아낸 ‘화성원행도’는 조선시대 문화 절정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기록화로 꼽힌다. ©박분
화성행차 전 계획한 화성 행사를 미리 보여주는 45m 길이 ‘화성원행반차도’가 전시된 모습 ©박분
화성 행사의 전후 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금속활자로 간행한 최초의 의궤다. ©박분
‘혜경궁의 추억이 담긴 책’이라는 설명이 붙여진 ‘원행정리의궤도’ ©박분
‘화성원행도’를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영상실이 마련돼 있다. ©박분
두 임금이 꿈꾼 탕평한 세상은 제4부 ‘질서와 화합의 탕평’에서는 ‘화성원행도(華城園幸圖)’가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탕평책을 계승해 정치적 통합을 이룬 정조는 1795년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수원 화성의 사도세자 능을 찾는 능행에 나섰다. 회갑 잔치, 백성들 양로 잔치, 군사 훈련, 불꽃놀이 등이 펼쳐진 7박 8일간의 기념비적 행사였다. 이 능행의 주요 행사 장면을 8폭 병풍에 그림으로 담아낸 작품이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화성원행도’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화성원행도’에는 정조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고 편안한 모습의 신하와 백성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두 임금이 원했던 탕평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화성원행도’는 조선시대 문화 절정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기록화로 꼽힌다. 김득신, 최득현 등 당대의 화가 7명이 참여해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화성 행차 전에 행렬에 참여할 6,760명의 사람들이 각각 어떤 기물을 들고 어느 위치해 걸어야 하는가를 미리 보여주는 45m 길이 ‘화성원행반차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화성 행차의 예행 연습과 그 결과를 한자리에서 생생히 볼 수 있다.
화성행사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도 선보이고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금속활자로 간행한 최초의 의궤다. 이해하기 쉽도록 주요 부분마다 확대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관람에 도움이 되었다.
작가 미상의 ‘원행정리의궤도’도 인상적이다. ‘혜경궁의 추억이 담긴 책’이라는 설명이 붙여진 이 의궤는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그림을 본떠 색칠한 그림들로 색상이 더 짙고 한글 설명이 붙여져 있음이 특징이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혜경궁이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따로 제작한 그림첩으로 전해진다.
전시실에는 ‘화성원행도’에 담겨진 긴 여정을 각 부분마다 클로즈업해서 미디어 아트로 보여주는 영상실도 마련돼 있어 앉아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잘 소통하고 있나?' 잠시 돌아보게 한 전시였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쓴 글과 화가들에게 주문한 그림을 확인할 수 있는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은 오는 3월 10일까지 이어진다. 교과서에서 배운 탕평 정책을 글과 그림으로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탕평책을 계승해 정치적 통합을 이룬 정조는 1795년 회갑을 맞은 어머니 혜경궁을 모시고 수원 화성의 사도세자 능을 찾는 능행에 나섰다. 회갑 잔치, 백성들 양로 잔치, 군사 훈련, 불꽃놀이 등이 펼쳐진 7박 8일간의 기념비적 행사였다. 이 능행의 주요 행사 장면을 8폭 병풍에 그림으로 담아낸 작품이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화성원행도’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화성원행도’에는 정조를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고 편안한 모습의 신하와 백성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두 임금이 원했던 탕평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화성원행도’는 조선시대 문화 절정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기록화로 꼽힌다. 김득신, 최득현 등 당대의 화가 7명이 참여해 그린 작품으로 알려졌다. 화성 행차 전에 행렬에 참여할 6,760명의 사람들이 각각 어떤 기물을 들고 어느 위치해 걸어야 하는가를 미리 보여주는 45m 길이 ‘화성원행반차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화성 행차의 예행 연습과 그 결과를 한자리에서 생생히 볼 수 있다.
화성행사의 이모저모를 꼼꼼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도 선보이고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금속활자로 간행한 최초의 의궤다. 이해하기 쉽도록 주요 부분마다 확대 그림과 설명을 곁들여 관람에 도움이 되었다.
작가 미상의 ‘원행정리의궤도’도 인상적이다. ‘혜경궁의 추억이 담긴 책’이라는 설명이 붙여진 이 의궤는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그림을 본떠 색칠한 그림들로 색상이 더 짙고 한글 설명이 붙여져 있음이 특징이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혜경궁이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따로 제작한 그림첩으로 전해진다.
전시실에는 ‘화성원행도’에 담겨진 긴 여정을 각 부분마다 클로즈업해서 미디어 아트로 보여주는 영상실도 마련돼 있어 앉아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잘 소통하고 있나?' 잠시 돌아보게 한 전시였다. 영조와 정조가 탕평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쓴 글과 화가들에게 주문한 그림을 확인할 수 있는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특별전은 오는 3월 10일까지 이어진다. 교과서에서 배운 탕평 정책을 글과 그림으로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태조(이성계) 어진 곤룡포에 그려진 용을 볼 수 있다. ©박분
고려시대의 종으로 윗부분에 용이 조각돼 있다. ©박분
이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용을 찾아라'를 주제로 용과 관련된 전시품 15건을 소개하고 있다. 태조(이성계) 어진, 경기도 여주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종 등 용을 찾아볼 수 이 전시품들은 1층에서 3층까지 상설전시관 각 층에 분포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과 전시장 키오스크에서 QR 소책자를 내려 받으면 안내 지도와 목록에서 보다 쉽게 전시품을 만날 수 있다.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아 알찬 전시 관람과 함께 다양한 전시품에서 용의 모습도 찾아본다면 더욱 값진 시간이 될 것 같다.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아 알찬 전시 관람과 함께 다양한 전시품에서 용의 모습도 찾아본다면 더욱 값진 시간이 될 것 같다.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
○ 기간 : 2023. 12. 8.~2024. 3. 10.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 교통 : 지하철 4호선‧경의중앙선 이촌역 2번 출구에서 309m
○ 운영시간
- 월‧화‧목‧금‧일요일 10:00~18:0 8회차 운영(1시간 단위)
- 수‧토요일 10:00-21:00 11회 차 운영(1시간 단위)
○ 휴무 : 2024. 2. 10.(설날 당일)
○ 입장료 : 어린이 및 청소년(7~24세) 3,000원, 성인 5,000원
○ 누리집
○ 문의 : 02-2077-9498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 교통 : 지하철 4호선‧경의중앙선 이촌역 2번 출구에서 309m
○ 운영시간
- 월‧화‧목‧금‧일요일 10:00~18:0 8회차 운영(1시간 단위)
- 수‧토요일 10:00-21:00 11회 차 운영(1시간 단위)
○ 휴무 : 2024. 2. 10.(설날 당일)
○ 입장료 : 어린이 및 청소년(7~24세) 3,000원, 성인 5,000원
○ 누리집
○ 문의 : 02-2077-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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