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못한 하루였다면, ‘외로움안녕120’에 전화해 보세요

시민기자 김윤경

발행일 2026.03.18. 15:01

수정일 2026.03.18. 16:58

조회 141

 ‘외로움안녕120 콜센터’ 안내 리플릿 ©김윤경
‘외로움안녕120 콜센터’ 안내 리플릿 ©김윤경
얼마 전 놀라운 이야기를 읽었다. 어느 아파트 현관에 ‘앞집 사람이 나오면 잠깐 기다렸다가 나와 달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주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세상, 점점 삭막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4월 서울시는 외로움을 예방하고 고립·은둔을 막기 위해 ‘시민 누구도 외롭지 않은 서울’을 표방하며 서울마음편의점을 비롯해 전화 상담 채널 ‘외로움안녕120’을 시작했다. 서울시 민원 서비스인 120번에 전화해 5번을 누르면 연중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신상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심각한 위기 상황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오늘 외로웠다면, 조금 위로받고 싶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관련 기사] 식구(19)일엔 가족에 안부 전해요~ '외·없·서' 시즌2 시작!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9개월 만에 연간 목표의 11배를 달성했고, 이용자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5점을 기록했다. 그만큼 그동안 말 걸 곳 없이 하루를 버텨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로움안녕120’은 서울시가 2024년 10월 전국 최초로 발표한 외로움·고립은둔 종합대책 ‘외로움 없는 서울’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운영은 서울시복지재단 고립예방센터가 맡고 있으며, 사회복지사 또는 상담 관련 자격을 갖춘 전문 상담원이 전화를 받는다. 통화하기가 어려운 시민을 위한 챗봇과 채팅 상담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서울 시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된 서울시복지재단 ©김윤경
서울 시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된 서울시복지재단 ©김윤경

'외로움안녕120' 운영 1년, 서울시 고립예방센터를 찾다

개소 1년을 앞둔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 고립예방센터를 찾았다. 9층으로 올라가 외로움예방팀의 이수나 주임과 김다정 대리를 만났다. 서울시 고립예방센센터 곳곳에는 ‘외로울 땐 얘기 나누면 좋을 수박(밖)에’, ‘참외로울 땐’ 등 익숙한 문구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운영 현황을 들은 뒤, 본격적으로 궁금했던 점들을 물었다.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 고립예방센터 외로움예방팀 담당자에게 그간 운영 현황을 들었다. ©김윤경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시 고립예방센터 외로움예방팀 담당자에게 그간 운영 현황을 들었다. ©김윤경
Q. ‘외로움안녕120’이 생긴 계기와 배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시민도 함께 늘고 있어요. 그동안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연락하거나 찾아갈 곳이 있었지만, 진단을 받지 않은 채 단순히 외로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거든요. ‘외로움안녕120’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치료 중심이 아니라 예방적 복지 차원에서 사회적 연결을 지원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어요.

Q. 내담자가 상담원에게 전화를 하는 '인바운드 상담'과 상담원이 내담자에게 전화를 하는 '아웃바운드 상담' 서비스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인바운드 상담시민이 원할 때 언제든 전화해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단회기 방식이에요. 가벼운 외로움을 느끼거나 그날의 감정을 털어놓고 싶은 분들이 주로 이용하죠. 상담사는 랜덤으로 배정되며, 상담은 보통 20~30분 정도 진행됩니다. 매일 전화를 거는 분도 있고, 두 달 동안 꾸준히 통화하다가 스스로 해소됐다고 느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웃바운드 상담좀 더 깊이 있는 상담을 원하는 분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인바운드 상담 중 “이 문제를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 개인정보 동의를 받은 뒤 담당 상담사가 약속한 시간에 직접 전화를 드리는 방식이에요. 6회기~8회기 정도로 운영되며, 내담자의 상황에 맞는 상담사가 배정됩니다. 인바운드와 달리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돼요.
‘외로움안녕120’ 상담은 24시간 365일 언제나 가능하다. ©서울시복지재단
‘외로움안녕120’ 상담은 24시간 365일 언제나 가능하다. ©서울시복지재단
Q. 지난 1년 동안 '외로운안녕120' 이용건수가 3만 3,000여 건이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A. 저희도 이렇게 많은 전화가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곳이 없었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전화를 주시는 분들 중에는 “오늘 아무 하고도 얘기를 못했다”, “오늘 처음 꺼내는 말이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이런 얘기 누구한테도 못 하는데 여기에는 말할 수 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면접이나 시험을 앞두고 응원을 받고 싶어 전화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소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일이었던 거죠. 생각보다 외로움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20번에 전화해 5번을 누르면 연중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김윤경
120번에 전화해 5번을 누르면 연중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김윤경
Q. 실제 상담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외로움의 유형이나 패턴, 시간대의 특징이 있을까요?
A. 한 가지 이유만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보다는 경제적 어려움, 대인관계 단절, 구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무래도 생애주기별로 겪는 고민과 외로움의 양상이 비슷한 것 같아요. 청소년은 진로 고민, 친구 관계, 가족 문제를 많이 호소하고, 청년층은 취업 준비나 대인관계, 직장 적응과 관련된 어려움이 많습니다. 중장년층은 가족 갈등, 음주 문제, 퇴직 이후의 경제적 어려움이 주로 나타나고, 노년층은 건강 문제, 자녀와의 갈등, 사별 등을 많이 이야기하세요.
여성보다는 중장년 남성의 이용 비율이 높습니다. 여성은 상대적으로 대화를 나눌 창구가 더 많은 반면, 중장년 남성은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더 편하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전화가 집중되는 시간대는 평일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 사이입니다. 퇴근 후 혼자 남는 저녁 시간, 잠들기 전의 고요한 시간대죠. 요일별로 보면 주말보다 월요일에 전화가 조금 더 많습니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A. 취업을 준비하던 한 청년은 두세 달 동안 수시로 전화를 걸어오다가 결국 취업에 성공했다고 연락준 적이 있어요. 그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상담이 오전 9시에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9시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또 다른 분은 아웃바운드 상담 사례로 혼자 지내며 대화 자체를 낯설어 했던 중장년 남성이었는데요, 처음에는 “네”, “아니요”로만 답해서 상담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죠. 상담사가 다음 회기에 이야기할 내용을 달력에 미리 적어오자고 제안했고, 이후 8회기 이상 상담을 이어가면서 점차 용기를 얻어 결국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서울시는 외로움안녕120, 서울마음편의점, 365서울챌린지 등 ‘외로움 없는 서울(외‧없‧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김윤경
서울시는 외로움안녕120, 서울마음편의점, 365서울챌린지 등 ‘외로움 없는 서울(외‧없‧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김윤경
Q. 상담을 이어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상담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일단 듣는 것’, 즉 경청이에요. 처음에는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연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가장 큰 답은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더라고요. 처음에 “오늘 너무 외로워서 전화했다”고 말했던 분도 이야기를 깊이 듣다 보면 상사와의 의사소통 문제, 그로 인한 직장 내 고립감이 뿌리에 있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신뢰와 경청이 먼저 쌓여야 그런 깊은 이야기들이 비로소 나옵니다.

Q. '외로움안녕120'을 1년간 운영하면서 바라본 외로운 분들에게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상담사들과 활동 막바지에 “외로운 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이야기했는데, 답은 의외였어요. 바로 ‘자기 돌봄’이었어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구도 중요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든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외로움이 풀린다는 뜻이죠. 배고프다고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식사를 챙기고, 밖에 나가 10분이라도 걷고, 혼자 끙끙 앓는 대신 전화 한 통을 걸어보는 것, 자기 돌봄대화 창구, 이 두 가지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 1년 동안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Q. 끝으로 '외로움안녕120'으로 전화 걸기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A. 외로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에요. 부끄러운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니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 선택을 하셨다면 이미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편하게 전화 주시면 됩니다.
외로움·고립감을 느끼는 시민 누구나 전화 한 통으로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김윤경
외로움·고립감을 느끼는 시민 누구나 전화 한 통으로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김윤경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오래전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갑자기 외로워져 한국말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결국 현지 정보센터에 전화를 걸어 한국어를 하는 직원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됐던 기억이다. 외롭다는 이유로 어느 쇼핑몰 고객센터에 계속 전화를 걸던 사람도 결국 이곳에서 위로를 찾았다. 취업 소식을 전하려고 9시까지 기다렸던 청년도, 달력에 할 말을 적어온 중장년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또 다회기 아웃바운드 상담 대상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약속’이었다고 한다. 거창한 약속이 아니다. “오늘 달걀 두 개는 꼭 드셔야 해요”라고 챙겨주는 작은 안부 한마디가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다고 했다.

서울시복지재단은 지난 1년의 경험을 담은 기록집 <외로움안녕120 동행상담사 이야기>를 발간해 상담사 교육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외로움 없는 서울' 실현을 위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서울시 고립예방센터 ©김윤경
'외로움 없는 서울' 실현을 위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서울시 고립예방센터 ©김윤경
점점 고립되고 개인화되는 세상이다. 오늘 하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면 방법은 어렵지 않다. 120번으로 전화해 5번을 누르면 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로움은 한결 가벼워진다.

외로움안녕120 24시간 외로움 상담 콜센터

○ 이용대상 : 외로움을 느끼는 일반시민, 고립 당사자 및 가족·이웃 등
○ 이용방법 : 다산콜센터120 전화 연결 후→ ARS 안내에 따라 5번 누르면 상담사 연결
○ 이용시간 : 24시간 365일 언제나
○ 지원내용 : 외로움 대화 및 서비스 연계를 위한 기초 상담 등
서울시복지재단 누리집

시민기자 김윤경

정책부터 명소까지 직접 체험하며 역동적인 서울의 모습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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