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에 딱! 단장 끝내고 걷기 좋아진 '환구단 가는 길'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3.12.28. 09:20

수정일 2024.01.02. 18:12

조회 460

환구단(圜丘壇) 시민광장의 철제 울타리가 사라지고 환하게 드러난 환구단 가는 길 ⓒ이선미
환구단(圜丘壇) 시민광장의 철제 울타리가 사라지고 환하게 드러난 환구단 가는 길 ⓒ이선미

서울광장에서 소공동 방향으로 환구단(圜丘壇) 시민광장이 환해졌다. 지난 10년 동안 환구단 정문을 가로막은 철제 울타리가 치워져 마치 호텔의 부속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던 환구단 입구가 온전히 드러났다.

12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총 4회에 걸쳐 ‘환구단 정문 개방, 환구단 가는 길’ 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해서 '서울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을 통해 신청을 했다. 한파가 계속되는 날씨여서 따뜻하게 입고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정말 추운 날이었는데 예상 외로 많은 시민들이 참석했다.
추운 날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환구단 가는 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선미
추운 날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환구단 가는 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선미

환구단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옛 모습 사진과 환구단 추정 배치도가 있었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환구단은 제례공간인 환구단(圜丘壇)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皇穹宇), 제례공간의 부속건물인 어재실(御齋室)향대청(香大廳) , 그리고 석고각(石鼓閣)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있던 돌북(石鼓)만 남아 있다.
환구단(圜丘壇) 추정 배치도 ⓒ이선미
환구단(圜丘壇) 추정 배치도 ⓒ이선미

계단을 올라 제실이 있었을 것으로 유추되는 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1897년 아관파천(俄館播遷)에서 경운궁(慶運宮, 현 덕수궁德壽宮)으로 환궁한 고종은 그해 10월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를 올리며 황제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했다. 그것은 신료들의 강한 요청이기도 했는데, 그들은 ‘온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도 필요하다’고 상소를 올렸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황제국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어서 조선은 세조10년(1464년) 이후 제천의식을 중단했었다. 환구단을 건설하고 '환구대제(圜丘大祭)'를 복원한 것은 중국과의 단절과 자주독립국 수립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황궁우(皇穹宇)를 뒤로 하고 환구단(圜丘壇) 영역의 변화 과정 등을 듣고 있다. ⓒ이선미
황궁우(皇穹宇)를 뒤로 하고 환구단(圜丘壇) 영역의 변화 과정 등을 듣고 있다. ⓒ이선미

환구단은 중국 사신의 영빈관이던 남별궁에 지어졌다. 이는 중국에 대해 사대(事大)하지 않겠다는 선포이기도 했다. 남별궁은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의 집으로, ‘소공주(小公主)’가 사는 동네라 하여 오늘날까지 이곳은 소공동(小公洞)으로 불리고 있다.

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허물고 철도호텔을 세웠다. 중국 사신의 숙소였던 곳에 이제 다시 일본인들을 위한 숙소가 지어진 것이다. 묘한 역사의 아이러니에 쓴웃음이 나왔다. 1968년 노후된 철도호텔을 철거한 자리에 1970년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이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건축을 공부했던 영친왕의 아들 이구 씨도 설계에 참여했다고 한다. 
소공동(小公洞)의 유래를 전하는 표석이 호텔 앞에 놓여 있다. ⓒ이선미
소공동(小公洞)의 유래를 전하는 표석이 호텔 앞에 놓여 있다. ⓒ이선미

황궁우 영역으로 들어가 구운 벽돌로 지은 삼문(三門) 안으로 내려가 섰다. 제례공간인 환구단과 신위를 모신 황궁우 영역의 경계인 삼문 돌계단에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서수(瑞獸) 두 마리가 새겨져 있고 답도(踏道) 중앙에는 구름 속 용이 장엄했다.

사진을 찍기에도 여의치 않은 공간에 서서 계단 위쪽 아치 문으로 보이는 황궁우를 바라보았다. 뒤에 들어서 있는 호텔이 환구단이 있던 곳이다. 이 공간이라도 좀 여유 있게 남겨 놓았으면 어땠을까 많이 아쉬웠다.
환구단(圜丘壇)과 황궁우(皇穹宇)의 경계인 삼문(三門) ⓒ이선미
환구단(圜丘壇)과 황궁우(皇穹宇)의 경계인 삼문(三門) ⓒ이선미
삼문(三門) 아치 너머로 황궁우(皇穹宇)를 바라보았다. ⓒ이선미
삼문(三門) 아치 너머로 황궁우(皇穹宇)를 바라보았다. ⓒ이선미
삼문(三門)은 마치 호텔의 출입구처럼 보인다. ⓒ이선미
삼문(三門)은 마치 호텔의 출입구처럼 보인다. ⓒ이선미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인 황궁우는 외관은 3층이지만 내부는 천장까지 뚫려 있다. 환구단 건립 2년 후에 세운 황궁우는 환구대제의 대상인 하늘 신(황천상제, 皇天上帝)과 땅 신(황지기, 皇地祇), 그리고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등의 신위를 모셨다.

계단을 올라 팔각 월대(月臺) 위에 팔각형으로 들어앉은 황궁우 안으로 올라가 보았다.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돼 있는 공간이어서 발걸음이 설렜다. 가장 먼저 천장의 황금빛 문양 속에 새겨진 두 마리 용이 눈에 들어왔다. 용들은 여덟 개의 발톱을 가진 팔조룡(八爪龍)으로 표현됐는데 이 또한 황제국의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황궁우(皇穹宇)에 들어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황궁우(皇穹宇)에 들어서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선미
팔각형 황궁우(皇穹宇)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이선미
팔각형 황궁우(皇穹宇) 천장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이선미

황궁우는 세 개의 층 각 면에 세 개씩의 창을 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을 비춰주었다. 그 아래로 빙 둘러 하늘 신과 땅 신 등의 신위가 모셔져 있었다.

황궁우 앞 왼쪽에 환구단 난간석 석물 유적들이 놓여 있었다. 1897년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 환구단의 세 개 층의 원형 난간석 일부다. 그동안은 삼문 양쪽의 난간 석재로 쓰였다가 2019년 삼문 주변 담장을 복원하면서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있다. 고종황제가 제를 지냈던 당시 환구단의 실물이다.
황궁우(皇穹宇)는 하늘 신과 땅 신,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신위를 모셨다. ⓒ이선미
황궁우(皇穹宇)는 하늘 신과 땅 신,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신위를 모셨다. ⓒ이선미
환구단(圜丘壇) 난간석 석물들이 한곳에 놓여 있다. ⓒ이선미
환구단(圜丘壇) 난간석 석물들이 한곳에 놓여 있다. ⓒ이선미

돌로 만든 세 개의 북, 석고(石鼓)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원래는 독립적인 공간이었던 석고각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 석고각이 1935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세운 일본 절 박문사(博文寺)의 종루(鐘樓)로 쓰이면서 황궁우 쪽으로 옮겨 놓았다.

석고각의 정문인 광선문(光宣門) 역시 남산 조선총독부 아래 있던 일본 절 동본원사(東本願寺) 정문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원래 있었던 건물이 없어져 황궁우(皇穹宇) 영역으로 옮겨진 돌북 ⓒ이선미
원래 있었던 건물이 없어져 황궁우(皇穹宇) 영역으로 옮겨진 돌북 ⓒ이선미

황궁우를 돌아 나오니 더더욱 환구단의 존재가 아쉬워졌다. 풍전등화 현실 속에서 하늘과 땅의 보우하심을 간절히 기도하던 공간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환구단이 1897년 세워졌으니 이제 겨우 백 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대한제국의 자취인 환구단은 그 핵심공간은 헐어져 없어지고 황궁우와 석고 등만 남아 있다.
황궁우(皇穹宇) 옛 전경.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자료 다운로드
황궁우(皇穹宇) 옛 전경. '독일인 헤르만 산더의 여행' ⓒ국립민속박물관 공공누리 자료 다운로드

이제 환구단 정문 개방을 위해 철제 울타리를 철거하면서 서울광장과 덕수궁, 소공동 주변이 더 걷기 좋은 곳, 더 자유롭게 우리 역사를 만나며 걸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번 해설 프로그램 이후에는 기존 프로그램인 환구단 안내 해설 ‘한국의재발견’에 적용하여 운영(매주 토요일 10:30, 14:30)한다. 원하는 시간에 현장에서 합류하면 된다. ☞ '한국의재발견' 해설시간표 바로가기 (※'궁궐가는길'은 혹한기인 12~2월 운영 중지)
‘환구단 가는 길’은 매주 토요일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바로 참여할 수 있다. ⓒ이선미
‘환구단 가는 길’은 매주 토요일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장에서 바로 참여할 수 있다. ⓒ이선미

격동의 근대에 조선과 대한제국이 겪어온 역사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역사를 이어가는 주인이다. 당시를 돌아보며 애석한 부분들을 반면교사하는 것도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몫이다. 대한제국을 천명하며 하늘과 땅에 기도하던 조상들의 마음, 언덕 위에 남아 있는 제천의식의 자취 앞에서 그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환구단(圜丘壇)

○ 위치 : 서울시 중구 소공로 106
서울 중구청 누리집
문화재청 누리집
한국의재발견 누리집해설시간표 바로가기
○ 문의 : 1600-0064(문화재청 고객지원센터), 02-3396-5880(중구청 도시관리국)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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