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환희가 숨 쉬는 '이곳', 87년 전 그날의 감동 속으로!

시민기자 이정규

발행일 2023.08.28. 13:14

수정일 2023.08.28. 13:29

조회 1,009

지금으로부터 87년 전인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모인 수만 관중은 마라톤의 결승선을 향해 마지막 역주를 펼치는 한 선수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손기정, ‘2시간 29분 19초 2’라는 올림픽 신기록이자 국제 공식 대회에서 마의 30분 벽을 깨뜨린 대기록이었다.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는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라서서도 우승의 기쁨으로 빛나는 환한 표정이 아니었다. 고개 숙인 그의 얼굴엔 나라 잃은 슬픔이, 조국의 국기가 아닌 일본 국기가 게양되고 일본 국가를 들어야 하는 울분이 서려 있었다. 그는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수 묘목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만히 가리고 있었다. 마라톤 동메달리스트로 같이 시상대에 오른 동료 남승룡 선수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손기정 선수가 월계관수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다는 점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고.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제패는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라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방문한 손기정기념관의 여러 자료를 살펴보며, 우승 안에 담긴 여러가지 매력적인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손기정기념관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에서 열리는 상설 전시와 야외 전시, 특별 전시 등으로 구성된다. 제1전시실은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달리기를 좋아하던 손기정이 당시의 육상 명문인 서울 소재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마라톤 선수로서의 기량을 갈고 닦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고, 광복 후에는 마라톤 지도자로서 큰 활약을 펼쳤던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손기정 선수가 ‘준비된 우승자’였다는 점이다.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기 전 1935년에 조선과 일본에서 열린 여러 마라톤 대회에서 세 차례의 비공인 세계기록과 한 차례의 공인 세계기록을 세우는 등 마라토너로서 손기정 선수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선수였다.
손기정기념관은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옛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사(1918년 준공)를 리모델링하여 손기정 선수의 탄생 100주년인 2012년에 개관했다. 또한 신규 콘텐츠 도입과 노후 시설 개선을 완료한 후 2022년 6월에 재개관한 바 있다. ©이정규
손기정기념관은 손기정 선수의 모교인 옛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사(1918년 준공)를 리모델링하여 손기정 선수의 탄생 100주년인 2012년에 개관했다. 또한 신규 콘텐츠 도입과 노후 시설 개선을 완료한 후 2022년 6월에 재개관한 바 있다. ©이정규

올림픽을 전후해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손기정 선수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는 코리아에서 왔음을 당당히 밝히고, 사인 요청을 받을 때면 한글로 이름을 쓰고 사인 옆에 한반도 지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그의 행동은 일본 선수단 내부에서도 문제시되어 논의가 이루어질 정도였다.

또한 마라톤 우승 후 일본 선수단이 개최한 축하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고 손기정과 남승룡 등 조선 선수들은 베를린에 살고 있던 안봉근(안중근 의사의 사촌)의 집에서 열린 조선인만의 축승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손기정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광복 후 손기정은 남승룡 등과 함께 ‘조선 마라톤 보급회’를 창설하여 젊은 선수들을 육성했다. 그중에는 서윤복 선수가 있었으며 194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손기정은 감독으로서 그 현장에 함께했다.

제2전시실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우승 상장과 메달, 월계관, 부상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등을 중심으로 그날의 영광과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손기정 탄생 110주년 기념 특별전'다시 여는 축하회'가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마음껏 축하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했던 손기정 선수의 승리의 순간들을 후손인 우리들이 다시 축하하며 기쁨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체험과 전시 등으로 꾸며져 있다.

야외 전시로는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청동 투구를 손에 든 채 가슴에는 태극기가 새겨진 손기정 선수 동상과 벽면형 조형물로 이루어진 ‘손기정을 위한 선물’,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한 감격과 기쁨을 표현한 심훈 작가의 시가 새겨진 심훈 시비, 손기정 선수가 우승의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수 묘목이 지금은 아름드리 큰 나무로 성장한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등이 있다.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은 육상 트랙을 모티브로 꾸며져 있어 이채롭다. ©이정규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은 육상 트랙을 모티브로 꾸며져 있어 이채롭다. ©이정규
준비된 우승자였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 ©이정규
준비된 우승자였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경성을 떠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다시 베를린에서 인도양을 거쳐 경성으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경성을 떠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다시 베를린에서 인도양을 거쳐 경성으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인북에 있는 손기정 선수의 사인. 한글로 ‘손긔졍’이라고 사인하였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인북에 있는 손기정 선수의 사인. 한글로 ‘손긔졍’이라고 사인하였다. ©이정규
마라톤 우승 후 베를린에 살고 있던 안봉근(안중근 의사의 사촌)의 집에서 열린 조선인만의 축승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손기정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정규
마라톤 우승 후 베를린에 살고 있던 안봉근(안중근 의사의 사촌)의 집에서 열린 조선인만의 축승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손기정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정규
당시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 전시 코너. 사회부 체육주임 이길용 기자가 주도한 이 사건 이후 관련인 8명은 일제에게 40여 일간 고문을 당했다. ©이정규
당시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상세히 다루고 있는 전시 코너. 사회부 체육주임 이길용 기자가 주도한 이 사건 이후 관련인 8명은 일제에게 40여 일간 고문을 당했다. ©이정규
1936년 10월 17일에 여의도 비행장으로 귀국했을 때의 모습을 다룬 전시 코너. 환영 행사를 일절 금지한 채 일본 경찰은 손기정 선수를 연행하여 남산의 조선 신궁으로 데려갔다. ©이정규
1936년 10월 17일에 여의도 비행장으로 귀국했을 때의 모습을 다룬 전시 코너. 환영 행사를 일절 금지한 채 일본 경찰은 손기정 선수를 연행하여 남산의 조선 신궁으로 데려갔다. ©이정규
제2전시실의 입구에는 대형 초상화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 머물 때 외국인들에게 해 주었던 사인이 전시되어 있다. 한글 ‘손긔졍’과 'KOREAN'이라는 글자가 감동을 선사한다. ©이정규
제2전시실의 입구에는 대형 초상화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 머물 때 외국인들에게 해 주었던 사인이 전시되어 있다. 한글 ‘손긔졍’과 'KOREAN'이라는 글자가 감동을 선사한다. ©이정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는 감격의 순간을 파노라마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이정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는 감격의 순간을 파노라마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상장(오른쪽)과 메달(왼쪽). 메달의 앞면은 승리의 여신 니케가 종려나무 잎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상장(오른쪽)과 메달(왼쪽). 메달의 앞면은 승리의 여신 니케가 종려나무 잎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부상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1986년에야 독일에서 손기정 선수에게 반환되었다. ©이정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부상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1986년에야 독일에서 손기정 선수에게 반환되었다. ©이정규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코스의 각 지점별 상황이 전시되어 그날의 역주가 생생히 느껴진다. ©이정규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코스의 각 지점별 상황이 전시되어 그날의 역주가 생생히 느껴진다. ©이정규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 사이에 있는 로비 공간에는 ‘1936년 배움터’가 조성되어 있다. 활동지를 이용한 체험, 관련 도서, 포토존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정규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 사이에 있는 로비 공간에는 ‘1936년 배움터’가 조성되어 있다. 활동지를 이용한 체험, 관련 도서, 포토존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정규
'다시 여는 축하회' 기획 전시는 일제강점기에서 마음껏 축하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했던 손기정 선수의 승리의 순간들을 후손인 우리들이 다시 축하하며 기쁨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여러 체험과 전시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정규
'다시 여는 축하회' 기획 전시는 일제강점기에서 마음껏 축하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했던 손기정 선수의 승리의 순간들을 후손인 우리들이 다시 축하하며 기쁨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여러 체험과 전시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정규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손기정을 위한 선물’은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청동 투구를 손에 든 채 가슴에는 태극기가 새겨진 손기정 선수 동상과 벽면형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정규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손기정을 위한 선물’은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청동 투구를 손에 든 채 가슴에는 태극기가 새겨진 손기정 선수 동상과 벽면형 조형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정규
벽면형 조형물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역주하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과 우승 메달, 상장, 월계관 등을 표현한 부조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정규
벽면형 조형물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역주하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과 우승 메달, 상장, 월계관 등을 표현한 부조가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정규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한 감격과 기쁨을 표현한 심훈 작가의 시가 새겨진 심훈 시비 ©이정규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접한 감격과 기쁨을 표현한 심훈 작가의 시가 새겨진 심훈 시비 ©이정규
손기정 선수가 우승의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수 묘목이 지금은 아름드리 큰 나무로 성장한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이정규
손기정 선수가 우승의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수 묘목이 지금은 아름드리 큰 나무로 성장한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이정규

손기정기념관

○ 위치 : 서울시 중구 손기정로 101-4. 손기정체육공원 내
○ 관람시간 : 10:00~18:00 (입장 마감 17:00)
○ 휴관 :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 관람료 : 무료
누리집
○ 문의 : 02-364-1936

시민기자 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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