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데 줄 서지 않게…쪽방촌 수요 맞춤형 가게 '온기창고'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3.08.09. 10:21

수정일 2023.08.09. 10:50

조회 2,370

동자동 골목에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문을 열었다. ⓒ이선미
동자동 골목에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문을 열었다. ⓒ이선미

서울역 건너편 동자동 쪽방촌에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문을 열었다. 서울역은 낯익은 곳이고 종종 후암동과 남산도서관을 오르내렸지만 동자동 쪽방촌을 가본 적은 없었다. 가만 있어도 숨이 헉헉거려질 만큼 더운 오후, 골목길을 따라 온기창고를 찾아가보았다.

온기창고는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생필품 가게다. 이전에는 후원 물품이 들어오면 공지를 하고 선착순 배부를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소식을 듣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물품을 받았다. 오랫동안 줄을 서서 물품을 받는 건 주민들에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식을 미처 모르거나 몸이 불편한 주민들은 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제 줄서기를 없애고 매장에 후원받은 생필품을 진열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온기창고 입구 게시판에 일자리 안내와 동행식당, 동행목욕탕 휴무 등의 소식도 게시돼 있다. ⓒ이선미
온기창고 입구 게시판에 일자리 안내와 동행식당, 동행목욕탕 휴무 등의 소식도 게시돼 있다. ⓒ이선미

온기창고는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등록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데, 주민들은 회원 카드를 발급받아 월 10만 점의 물품을 살 수 있다. 온기창고에 들어서면 먼저 회원 카드를 확인한다. 그리고 원하는 물품을 가지고 와서 계산을 한다. 1주일에 2만 5,000점의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가능한 한 번에 다 구매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주민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가능한 많은 주민이 골고루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이 온기창고를 이용하고 있다. ⓒ이선미
주민들이 온기창고를 이용하고 있다. ⓒ이선미

지금 온기창고 진열대를 채운 물품은 세븐일레븐과 노브랜드, 서울교통공사 등에서 후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세븐일레븐은 여름철마다 쪽방촌에 물품을 후원해왔는데 온기창고 개소를 맞아 앞으로 3년 동안 월 1,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온기창고 진열대는 세븐일레븐과 서울교통공사, 노브랜드의 후원으로 채워져 있다. ⓒ이선미
온기창고 진열대는 세븐일레븐과 서울교통공사, 노브랜드의 후원으로 채워져 있다. ⓒ이선미

진열대는 곳곳이 비어 있었다. 물품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나가기 때문이다. 일반 매장처럼 주문한 제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어떤 제품이 얼만큼 들어올지도 알 수가 없다. 예측하고 일을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물품을 받아 적절하게 정리하는 것도 큰일로 보였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가 온기창고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다. ⓒ이선미
서울역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가 온기창고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다. ⓒ이선미

“온기창고를 연 후로 어떤 물품이 가장 많이 나갔어요?” 워낙 무덥다 보니 선풍기가  잘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조리해서 음식을 먹기가 불편해 최대한 간편식을 이용하는 편이라고 했다. 진열대에 과자가 많이 보였다. “주민들이 과자는 별로 안 드세요.” 상담소 직원이 귀띔을 해주었다. “떡 같은 게 더 나은가요?” 아무래도 노년층이 많아서 물었는데 대답이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오. 간식 자체를 별로 안 먹죠. 대부분 하루에 한 끼 정도로 지내시다 보니 간식을 먹는 일도 별로 없어요. 게다가 당뇨 같은 지병이 있는 분들은 간식을 조심해야 하기도 하고요.”
집에서 조리하기가 불편하다 보니 간편식이 잘 나간다고 한다. ⓒ이선미
집에서 조리를 하기가 불편하다 보니 간편식이 잘 나간다고 한다. ⓒ이선미

가게 안이 워낙 바빠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다만 카페 운영에 대해 묻자 서울역 쪽방상담 소장이 잠깐 안내를 해주었다. 세븐일레븐의 지원으로 온기창고 한쪽에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세븐카페'도 운영한다. 지금은 좀 어수선하지만 카페 수익금은 온기창고 운영에 보탠다고 한다.
온기창고 옆에 세븐일레븐이 지원하는 '세븐카페도 자리하고 있다. ⓒ이선미
온기창고 옆에 세븐일레븐이 지원하는 '세븐카페'도 자리하고 있다. ⓒ이선미

끊임없이 주민들이 줄을 이었다. 온기창고를 찾은 주민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선착순으로 배부했을 때는 불필요한 물품을 중복해서 받기도 하고 정말 필요한 주민들에게는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고르고 구입하는 사소한 과정을 통해서 쪽방촌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즐거운 의욕을 얻으면 좋겠다. 온기창고가 쪽방촌 주민들에게 여러 모로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한 주민이 바구니 가득 물품을 골라 담았다. ⓒ이선미
한 주민이 바구니 가득 물품을 골라 담았다. ⓒ이선미

이제 막 문을 연 온기창고는 일주일에 사흘, 월, 수, 금요일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현재 전담 인력 1명과 공공일자리 참여자 주민 2명이 꾸려나가고 있는데, 온기창고가 잘 운영되면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이 일자리를 얻어 자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상담소 인력까지 모두 투입돼서 주민들에게 온기창고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려주고, 제품 구입에 대해 응대하고, 계산까지 하느라고 다들 바빴다.
온기창고는 전담 매니저와 공공일자리 참여자 등이 운영한다. ⓒ이선미
온기창고는 전담 매니저와 공공일자리 참여자 등이 운영한다. ⓒ이선미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동행스토어 '온기창고'를 운영하고, 주민들이 동행식당과 동행목욕탕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동자동, 창신동, 돈의동, 남대문로5가, 영등포동 쪽방촌이 5곳 있는데, 각 쪽방촌마다 10개소의 동행식당에서 하루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 5곳의 쪽방촌에서 각 10개소의 동행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이선미
서울 5곳의 쪽방촌에서 각 10개소의 동행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이선미

9월에는 온기창고 2호점이 돈의동 쪽방촌에 문을 열고 이후 1년 정도 운영 후, 평가를 통해 나머지 3개 지역으로의 확대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행할수록 여름은 더 시원해집니다.” 동행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시 슬로건처럼 동행을 통해 서울이 조금 더 시원하고 따뜻한 도시가 되면 좋겠다.

서울역쪽방상담소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 위치 : 용산구 후암로57길 3-14, 1층
○ 운영시간 : 주 3회(월, 수, 금, 09:00~18:00)  
⁲※ 주민 수요와 참여에 따라 운영 횟수 확대 예정
○ 운영방식 : 상담소 등록 쪽방주민에게 회원(적립금)카드 발행하여, 한도 내에서 월 10만점 만큼 구매 가능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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