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쪽방촌 무료 치과 운영 "깍두기 제대로 씹어 드세요"

시민기자 강사랑

발행일 2022.12.28. 17:20

수정일 2022.12.28. 17:53

조회 1,377

쪽방주민들이 무료로 치과진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문을 열었다.
쪽방촌 주민이 무료로 치과진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문을 열었다. ©강사랑

쪽방촌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는 무엇일까? 바로 '치과' 진료이다. 치과진료는 우선 비용이 부담되고, 또 치료가 아플까 봐 가기를 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울시가 작년에 실시한 쪽방주민 실태조사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진료 1위로 치과진료를 꼽았다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돈의동 쪽방상담소 5층에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를 마련하고 12월 1일부터 진료에 들어갔다. 주민들이 치과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 우리동네구강센터로 찾아가 현장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돈의동 쪽방상담소에 문을 연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돈의동 쪽방상담소에 문을 연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강사랑

미로 같은 골목길이 얽혀 있는 쪽방촌 초입에 돈의동 주민공동시설 '새뜰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쪽방 주민들에게 소통, 교육, 보육, 일자리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 종합공간이다. 같은 건물 5층으로 들어서니 치과진료의자와 파노라마(x-ray) 등 전문 장비가 갖춰진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진료 대기실에 잠깐 앉아 있는 사이 주민 두 명이 잇따라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번 진료가 처음이신가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의료진의 질문에 주민은 본인의 치아 상태를 설명하고 곧바로 비어 있는 치과진료의자에 누워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 주민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를 찾아 진료 접수를 하고 있다.
한 주민이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를 찾아 진료 접수를 하고 있다. ©강사랑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서울시와 행동하는의사회, 우리금융미래재단이 협업해 공동 운영하고 있다. 행동하는의사회에서 자원봉사 의료진이 이곳을 찾아 치과 진료를 실시하고 있는데, 행동하는의사회의 설명에 따르면, 치과 자체가 낯선 쪽방촌 주민들은 구강 건강이 안 좋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워낙 상태가 나빠 발치해야 하는 주민도 적지 않다고. 경제적으로 힘들기에 초기 진료 시기를 놓쳐서 악화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당일 진료 현장에서 만난 쪽방촌 주민 A씨는 "치료비가 부담되어서 이가 상해도 치과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며 "동네에 무료로 치과진료를 해주는 곳이 생겼다고 해서 처음 와봤다"고 말했다. A씨는 당일 치석을 제거하며 괴사한 치아를 발치하는 진료를 받았다. 이미 치아가 몇 개 남지 않는 A씨는 틀니를 할 예정이다. 

또 다른 쪽방촌 주민 B씨도 치아가 다 썩고 뿌리만 남아 발치를 했다. 단순히 치석을 제거하는 스케일링을 받거나 간단한 충치 치료를 받는 주민은 드물었다.
치과 진료를 받는 쪽방촌 주민
치과 진료를 받는 쪽방촌 주민 ©강사랑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처럼 쪽방 시설에 자리를 잡고 보철치료까지 하는 건 전국 최초라고 한다. 이곳은 의사 5~6명이 매일 돌아가면서 진료하고 치과위생사 1명이 상근한다. 의료진은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의료진이 쪽방촌 주민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문 구강건강 관리서비스도 시작한다고 한다. 쪽방촌 주민에게 기본적인 구강건강관리법을 안내해 주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나 대학병원으로 연계하는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당일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며 "이런 곳이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파도 참고, 이가 없어도 참았는데 진료를 받으면서 나도 음식을 제대로 씹어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문을 듣고 왔는데 의사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궁금한 것도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이웃에게 꼭 치료 받아보라고 권할 예정이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료를 하고 있는 행동하는의사회 한동헌 이사장
진료를 하고 있는 행동하는의사회 한동헌 이사장 ©강사랑

문득 우리구강관리센터의 명칭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치과'가 아닌 '센터'다. 치과의 높은 문턱에 가로 막혀 치아를 방치했던 쪽방촌 주민들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명칭부터 고심한 결과라고 한다. 

우리구강관리센터 운영은 단순히 취약계층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계층간 구강건강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한동헌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은 “진료 때마다 5~6명 정도 예약이 차있다. 한 번 오시는 분들에게 꾸준한 치료를 권하고 있는데 건강한 치아를 위해서는 주민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우선 돈의동 주민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하고, 차차 확대하여 시내 5대 쪽방촌 거주자는 누구든지 센터를 통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쪽방촌 주민의 연령 및 건강, 수급 여부의 경제 상태, 치료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서 치료를 지원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남긴 감사의 메모들
주민들이 남긴 감사의 메모들 ©강사랑

길고 긴 코로나와 나날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쪽방촌에도 맹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어렵고 힘들수록 건강을 챙기는 일은 일종의 사치가 된다. 이가 없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해도 치과에 갈 수 없는 이유다.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는 치과진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쪽방촌 주민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고 있었다. 더 이상 추위와 무관심에 고통 받는 이가 없도록 다함께 동행할 수 있는 지원책이 꾸준히 이어지길 응원해 본다.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9가길 20-2 

시민기자 강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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