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초상화가 있던 자리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4.11.27. 13:40

수정일 2014.11.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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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측백나무

이장희의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5 –창덕궁 측백나무

측백나무는 모든 나무들이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앞 다투어 서려고 할 때, 서쪽을 지키려 했다는 고집스런 나무다. 이는 측백의 백(柏)자가 서쪽을(오행:동-청색, 서-백색, 남-적색, 북-흑색, 가운데-황색) 일컬은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 우직함 때문에 예로부터 사당의 정원수나 무덤가에 많이 심어 조상을 지켜주는 나무라 믿어왔다.

창덕궁의 전각들 사이에 있는 측백나무는 대략 200~300살 정도로 예상된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보통 궁궐 전각의 앞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측백나무를 떡하니 심은 누군가의 소신은 바로 건물 뒤로 보이는 선원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선원전이란 조선시대 어진, 즉 임금의 초상을 모시던 곳이다. 왕릉이 육신에 대해 그리고 종묘가 혼백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국가적인 차원의 공적인 곳이라면, 선원전은 그 인물 자체에 대한 인격에 제를 올리는 궁궐 안에 위치한 왕가만의 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신성했던 공간은 일제의 왕조 파괴정책의 일환으로 1920년 창덕궁 북일영 자리에 새로 선원전을 만들면서 강제 이전되었고 구선원전 건물로 이름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선원전이나 구선원전이나 지금은 모두 빈집으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신선원전으로 옮겨간 12국왕의 48어진들은 모두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즈음 부산 유물보관창고에 발생한 알 수 없는 화재로 어진과 궁중유물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고만 것이다. 이때 살아남은 어진은 영조의 것과 반 이상 타버린 철종의 것이라 하니 전주 경기전에 있어 다행히(?) 함께 피난가지 못한 태조의 어진을 합쳐 보아도 역대 조선의 국왕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사진으로 남은 고종과 순종을 포함하여 태조와 영조, 철종 그리고 익종 정도밖에 없다.

'궁궐지'에는 선원전 주변에 화용수를 담던 드므를 네 개나 설치하여 얼마나 화재에 신경을 썼는지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궁궐에 화재가 나면 가장 먼저 건져내는 것이 바로 선원전의 어진이라고 했을 정도로 중요시 했을까. 다시금 텅 빈 선원전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제 일이 없어진 구선원전이 측백나무하고라도 사이좋게 돈독한 친분을 다지며 오랫동안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 이장희

※ <사연있는 나무이야기>는 서울시 E-BOOK(http://ebook.seoul.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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