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정원에 간다! '외로움 없는 서울'을 위한 자연처방

김현정 교수

발행일 2026.05.29. 14:55

수정일 2026.05.29. 15:33

조회 169

김현정 교수의 당신에게 필요한 정원처방전
서울숲에서 정원을 감상하는 시민들
서울숲에서 정원을 감상하는 시민들
  5화   정원은 건강자원이다

서울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늙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혼자 남겨지는 사회'다. 1인 가구의 증가, 관계의 단절, 일상의 디지털화는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사람을 고립시키고 있다. 이제 도시의 과제는 단순한 건강관리나 복지 확대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자연처방(Nature-based prescription, Green Prescription)이다. 이는 약물이나 치료 중심이 아닌,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신체와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 전략이다.

영국에서는 의사가 공원과 정원 활동을 처방하는 사회적 처방이 제도화되어 있고, 미국과 뉴질랜드에서도 ‘Park Rx’와 ‘Green Prescription’이 생활습관 개선과 정신건강 관리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은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자의 스트레스 감소와 사회참여를 동시에 유도하고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자연이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건강자원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건강자원이다. 서초 길마중초록숲길
자연은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건강자원이다. 서초 길마중초록숲길

자연처방의 의학적 효과

정원처방과 같은 자연처방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리적·정신적 변화를 동반하는 의학적 중재로 검증되고 있다. 자연 환경에 노출되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회복되며, 교감신경 활성은 감소하고 부교감신경 활성은 증가하여 심박수와 혈압이 낮아진다.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감소하고, 우울·불안 지표가 유의하게 개선된다. 자연 속 걷기와 정원 활동은 신체활동 증가를 통해 인슐린 저항성과 염증 반응을 낮추고 면역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사회적 활동이 결합된 정원 프로그램은 외로움 감소와 사회적 연결 회복을 촉진하여 정신건강뿐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의학적 효과는 단기적인 기분 개선을 넘어, 만성질환 예방과 정신건강 유지에 기여하는 부작용 없는 중재로서 높은 가치를 갖는다.

정원은 단순한 녹지 공간이 아니다. 정원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며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가는 곳이지만, 정원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 혼자여도 괜찮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진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 같은 꽃을 바라보는 사람,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담 없는 연결이 시작된다.
정원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진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정원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공간이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진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서울의 정원, 연결하는 공간으로

특히 서울의 정원은 관계 회복의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함께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꾸며 계절의 변화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 공동체를 경험한다. 이는 단순한 여가활동이 아니라 정신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공동 산책 프로그램, 동네 정원 모임, 소규모 원예활동은 외로움을 줄이고 삶의 활력을 높이는 효과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서울은 이미 훌륭한 건강자원을 갖추고 있다. 동네 곳곳의 공원과 한강, 둘레길,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도시정원,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시민의식을 지닌 시민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들은 아직도 대부분 ‘이용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이 공간들을 사람과 사람, 건강과 돌봄, 정책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 예산 체계에도 새로운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정원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은 정원도시국이 담당하되,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임상연구와 정원처방에 특화된 정신건강 지표 개발은 시민건강국이 수행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나아가 지속 가능한 근거 기반 정원처방 정책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비용효과분석을 포함한 경제성 평가 예산도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오늘 집 근처 정원을 걸어보고, 그곳에서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작은 경험이 도시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서울이 진정으로 건강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함께 걷고, 그 효과를 정량화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도시정원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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