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대신 정원! 지친 일상에 필요한 초록빛 건강처방

김현정 교수

발행일 2026.03.27. 15:13

수정일 2026.03.27. 15:19

조회 264

김현정 교수의 건강한 서울을 만드는 정원처방
서울시는 정원도시 정책을 통해 공원을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시민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한 생활 인프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정원을 ‘보기 좋은 공간’을 넘어 일상을 위한 생활 처방으로 소개하는 ‘정원처방’ 칼럼을 오늘부터 12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번 칼럼에는 서울시 시민건강위원회 5기 위원이자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인 김현정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 보라매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 보라매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1화   정원처방이란 무엇인가

서울시민의 하루는 늘 바쁘다. 출근길의 긴장, 화면 앞에 머무는 긴 시간, 줄어드는 걷기, 나빠진 잠,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불안과 외로움이 일상에 스며든다. 몸이 아프기 전부터 마음이 먼저 지치고, 병이 생기기 전부터 회복력이 닳아간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보다도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생활 속 회복법이다. ‘정원처방’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정원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건강 자원으로 다시 보자는 것이다.

정원은 약처럼 즉각적이고 강한 개입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몸의 긴장을 낮추고 마음의 속도를 늦추며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는 공간이다.

정원처방은 병원을 대신하는 치료가 아니라, 치료와 돌봄 사이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스트레스 완화와 정서적 회복을 돕는 공공보건의료이다. 서울형 정원처방은 정원산책, 맨발걷기, 숲요가, 꽃 활용 공예, 복식호흡 등 생활 속 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낮추도록 설계됐다. 서울시는 중부대 박은영 교수 등 전문가와 함께 이를 단순한 정원 체험이 아닌 지속 가능한 치유 모델로 제시하며, 2025년 12월 ‘서울형 정원처방 가이드라인 및 매뉴얼’을 발행하였다.
서울형 정원처방은 정원산책, 맨발걷기 등 생활 속 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낮추도록 설계됐다.
서울형 정원처방은 정원산책, 맨발걷기 등 생활 속 활동을 통해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낮추도록 설계됐다.
즉 정원은 ‘좋아 보이는 경관’을 넘어 건강이 증진되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가까운 공원과 정원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부작용 없는 건강증진 및 질병 예방의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의 도시는 외로움과 단절의 문제를 함께 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5년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우울뿐만 아니라 뇌기능 저하, 심혈관질환, 당뇨, 조기 사망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를 줄이는 해법으로 공원 같은 그린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원은 혼자 머물러도 어색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걸어도 좋은 공간이다. 아무 말 없이 나무를 바라보는 시간, 천천히 걷는 시간,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시간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지난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가드닝 체험 등 다양한 정원문화 프로그램을 열었다.
지난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가드닝 체험 등 다양한 정원문화 프로그램을 열었다.
서울의 탐색 임상시험 결과도 이를 보여준다. 서울시 정원도시국은 2024년 정원처방 시범운영 결과, 참여자 598명에서 프로그램 만족 96.5%,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 96.7%를 확인했다. 또한 고립·은둔 청년 39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정원 노출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 우울감 감소, 긍정점수 상승, 부정점수 감소도 확인하였다.

2025년에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서울 전역 144개 시설, 약 4,500회 규모로 확대 운영되었다. 정원처방이 낭만적 구호가 아니라, 서울시가 시민에게 건넬 수 있는 현실적이고 검증 가능한 회복의 방식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정원은 더 이상 ‘예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원은 잠시 숨을 고르고,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시 사람과 연결되는 회복의 공간이어야 한다.

"약 대신 정원"이라는 말은 약을 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약에 가기 전에 혹은 약과 함께, 우리 일상에 무해한 회복의 가능성을 더하자는 것이다. 서울시가 시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처방은 어쩌면 거창한 시설이 아니라, 집 가까이에 있는 한 조각의 초록 공원인지도 모른다. 정원은 무해한 회복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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