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백성의 뜻을 묻다! 596년 전 국민투표 이야기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05.20. 16:15

수정일 2026.05.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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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의 사심 가득한 역사이야기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122화    세종이 국민투표를 실시한 까닭

2026년 6월 3일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이다. 투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직접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치 행위이다. 그런데 왕조 국가에서도 백성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가 행해졌다. 지금부터 596년 전인 1430년(세종 12) 세종 시대에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공법(貢法) 실시의 찬반 여부를 묻는 방식이었는데, 투표로 백성들의 의견을 구했던 세종의 민본 사상이 잘 표출되어 있다.

공법 확정을 위한 국민투표

세종은 토지에 대한 세금을 내는 공법(貢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백성들의 찬반 여부를 투표 방식으로 물었다. 토지 1결당 일정한 세금을 내게 하는 방식으로, 토지의 품질 및 풍년·흉년에 따라 차등 있게 세금을 정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이전까지는 관리가 직접 논밭을 돌아보면서 농사의 수확량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정하는 방식인 답험손실법(踏驗損失法)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답험손실법은 관리들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되어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였고, 그 피해는 백성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세종은 공법 시행 이전부터 세금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문제의 해결에 나섰다.

1427년(세종 9) 3월 16일, 세종은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서 문과(文科) 시험의 논술 문제인 책문(策問)을 출제하였는데, 문제의 핵심은 공법에 대한 견해를 개진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의 실록 기록을 보자.

「왕은 이렇듯 말하노라. 예로부터 제왕이 정치를 함에는 반드시 일대(一代)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니, 방책(方冊)에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토지 제도의 법은 어느 시대에 시작되었는가. 하후씨(夏后氏)는 공법(貢法)으로 하고, 은(殷)나라 사람은 조법(助法)으로 하고, 주인(周人)은 철법(徹法)으로 한 것이 겨우 전기(傳記)에 나타나 있는데, 삼대(三代)의 법을 오늘날에도 시행할 수 있겠는가. … 백성을 사랑하는 시초란 오직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가 있을 뿐이다. 지금에 와서 백성에게 취하는 것은 토지 제도와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 」
세종은 세법 확정을 위해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다.
세종은 세법 확정을 위해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다.
세종은 공법 결정 이전에 과거 시험에 공법과 관련한 대책을 답안으로 제출하게 함으로써, 세금 문제 해결이 국정의 중대 과제임을 인식하도록 했다. 앞부분에 나오는 중국 삼대 시대의 토지 세법은 중국의 고전『맹자』「등문공(상)」편에도 인용되고 있는 부분으로서, 세종이 중국의 전례에도 밝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법 시행을 위한 치밀한 준비 작업

공법 시행을 하기 1년 전 세종은 예비로 공법을 시행하여 그 문제점을 살펴보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연전에 공법의 시행을 논의하고도 지금까지 아직 정하지 못하였으나, 우리나라의 인구가 점점 번식하고, 토지는 날로 줄어들어 의식이 넉넉하니 못하니, 매우 슬픈 일이다. 만일 이 법을 세우게 된다면, 반드시 백성들에게는 후하게 되고, 나라에서도 일이 간략하게 될 것이다. 또 답험할 때에 그 폐단이 막심할 것이니, 우선 이법을 행하여 1, 2년간 시험해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령 토지 1결(結)에 쌀 15두(斗)를 받는다면, 1년 수입이 얼마나 되며, 10두를 받는다면 얼마나 된다는 것을 호조로 하여금 계산하여 보고하도록 하고, 또 신민들로 하여금 아울러 그 가부를 논의해 올리도록 하라. (『세종실록』, 세종 11년 11월 16일 )” 기록에서는 세법 확정 전부터 세종이 치밀하게 준비해 나간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세법 확정을 위하여 세종은 신하와 유생들의 의견을 먼저 알아보았고, 과거의 논술 시험에서도 이를 출제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백성들의 의견을 구하는, 오늘날의 국민투표와 유사한 방식의 조사를 실시하였다. 1430년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 국민투표가 처음 실시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진행되었다.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전시관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전시관

1430년 국민투표를 실시하다

『세종실록』1430년 3월 5일의 기록을 따라가 보자. 먼저 재정 담당 부처인 호조에서 “매양 벼농사를 답험할 때를 당하면, 혹은 조관(朝官)을 보내기도 하고, 혹은 관찰사에게 위임하기도 하며, 또 많은 전답을 기한 안에 모두 조사하여 끝마치고자 하므로, 향곡(鄕曲)에 늘 거주하는 지방관으로 책임을 맡겼는데, 이들이 혹은 보는 바가 밝지 못하고 혹은 사정에 끌리어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며, 덜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며, 또 마감(磨勘)할 때는 문서가 번잡하여 관리들이 이루 다 살필 수가 없는 틈을 타서 간사한 아전들이 꾀를 부려서 뒤바꾸어 시행하게 되어, 비단 경중(輕重)이 적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지급하는 비용과 분주히 내왕하는 수고 등 폐단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공법에 의거하여 전답 1결마다 쌀 10말을 거두게 하고 … 자연재해로 인하여 농사를 완전히 그르친 사람에게는 조세를 전부 면제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세종은 “정부·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前銜)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수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조선시대 역사상 최대규모의 국민투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해 7월 5일 이 과정에서 호조판서 안순(安純)은 “일찍이 공법의 편의 여부를 가지고 경상도의 수령과 백성들에게 물어본즉, 좋다는 자가 많고, 좋지 않다는 자가 적었사오며, 함길·평안·황해·강원 등 각도에서는 모두들 불가하다고 한 바 있습니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에 대해 세종은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국민투표의 목적이 무엇보다 백성들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농작물의 잘되고 못된 것을 직접 찾아 조사할 때에 각기 제 주장을 고집하여 공정성을 잃은 것이 자못 많았고, 또 간사한 아전들이 잔꾀를 써서 부유한 자를 편리하게 하고 빈한한 자를 괴롭히고 있어, 내가 심히 우려하고 있다. 각도의 보고가 모두 도착해 오거든 그 공법의 편의 여부와 답사해서 폐해를 구제하는 등의 일들을 관리들로 하여금 깊이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록의 기록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세종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民若不可, 則未可行之)”고 천명한 점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백성이 찬성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세종의 선언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실록에서 주목되는 것은 세종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한 점이다.
실록에서 주목되는 것은 세종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한 점이다.

국민투표 참여와 결과

1430년 호조에서는 공법 실시를 둘러싼 국민투표의 결과를 보고하였다. 17만여 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9만 8천여 명이 찬성, 7만 4천여 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찬반 상황은 지역별로『세종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국가의 역량이 집중된 사업이었다. 

당시 인구수를 고려하면 17만여 명의 참여는 노비나 여성을 제외한 상당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오늘날의 국민투표와도 흡사한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인터넷이나 전화로 여론조사가 불가했던 그 시절에 이처럼 많은 백성을 대상으로 일일이 투표에 참석하도록 한 점은 매우 눈길을 끈다. 관리들이 집집마다 백성을 찾아가며 의견을 물었을 가능성이 큰데 국가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면 수행할 수 없는 큰 사업이었다. 무엇보다 ‘민본’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세종의 강력한 의지가 596년 전 국민투표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실록에는 도별 찬반 현황도 기록되어 있는데, 충청도를 제외한 각 지역의 찬반 상황이 수령, 품관, 촌민 등으로 구분하여 나타나 있다. 특히 관찰사가 반대 입장을 보인 평안도, 함길도, 전라도는 별도로 기록하고 있다. 
도별 찬반 상황
도별 찬성 반대
경기 수령 29명, 품관·촌민 17,076명 수령 5명, 품관·촌민 236명
평안도 수령 6명, 품관·촌민 1,326명 관찰사, 수령 35명, 28,474명
황해도 수령 17명, 품관·촌민 4,454명 수령 17명, 품관·촌민 15,671명
충청도 수령 35명, 품관·촌민 6,982명 수령 26명, 품관·촌민 14,013명
강원도 수령 5명, 품관·촌민 939명 수령 10명, 품관·촌민 6,888명
함길도 수령 3명, 품관·촌민 75명 관찰사, 수령 14명, 품관·촌민 7,387명
경상도 수령 55명, 품관·촌민 36,262명 수령 16명, 품관·촌민 377명
전라도 수령 42명, 품관·촌민 29,505명 관찰사, 수령 12명, 품관·촌민 257명
총계 98,657명 74,149명
『세종실록』세종 12년(1430년) 8월 10일 기록
찬성과 반대의 이유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는 관찰사, 수원부사 등이 1결당 10두로 일괄적으로 정하면 토지의 비옥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토지의 비옥도를 고려하여 3등급으로 나눌 것을 건의하고 있다. 경상도에서는 경주부윤 조완 등이 1결당 19두의 세법을 정하는 것은 기존의 세법보다 3분의 2가 줄어드는 것임을 지적하고 국가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하였다. 전라도에서는 대부분 찬성하였지만, 풍년 15두, 중년 10두, 흉년 7두를 거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 

백성들의 찬반 의견도 팽팽했다는 점과 국가 시책을 담당할 관리의 반대 역시 적지 않았고, 이들의 의견까지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점도 오늘날의 대의 민주정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만큼 세종이 열린 마음을 갖고 정책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의 다양한 애민 정책을 알 수 있는 세종이야기 민본사상 전시 코너
세종의 다양한 애민 정책을 알 수 있는 세종이야기 민본사상 전시 코너

14년에 걸친 검증 작업

위와 같은 국민투표의 결과를 토대로 세종은 관리들과 백성들의 여론을 최대한 수집하였다. 그러나 결과에서도 보듯이 찬반 의견이 워낙 팽팽했고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에 세종은 바로 세법을 확정하지 않았다. 다시 면밀한 조사 작업에 들어갔다. 1436년(세종 18) 6월 15일에는 공법상정소(貢法詳定所)를 설치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공법 추진에 나섰다.

1437년(세종 19) 8월 전라도와 경상도부터 공법의 시범 실시가 이루어졌고, 1441년(세종 23)에는 충청도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444년(세종 26) 공법은 마침내 연분(年分) 9등법, 전분(田分) 6등법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연분 9등법과 전분 6등법은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으로 나누고, 해에 따라 풍흉을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의 9등급으로 나누는 제도였다. 그리고 1결당 20두에서 4두에 이르는 차등 세금이 적용되었다.  

전국적인 의견 수렴이 실시된 지 14년 만에 드디어 토지의 세법에 대한 공정한 잣대가 마련되었고, 공법은 이후 조선사회의 기준 세법이 되었다. 농업이 근본 산업이었던 당시 백성들이 경작하는 토지에 대한 세금 결정은 백성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세종은 오랜 시간을 두고 신하와 백성들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한 끝에 결정을 내리고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에 붙인 것이었다. 왕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왕조시대에 이처럼 광범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은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종의 강력한 의지와 이에 화답한 관리, 백성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596년 전 대규모 여론 수렴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신병주 #세종 #투표 #여론조사 #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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