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아래 골목에서 서울역까지… 건축으로 읽는 용산 시간 여행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6.05.18. 12:51

수정일 2026.05.18. 21:07

조회 543

용산도서관에서 김예슬 작가의 강연 ‘두텁바위 동네마실, 용산 한 바퀴’가 열렸다. ©윤혜숙
용산도서관에서 김예슬 작가의 강연 ‘두텁바위 동네마실, 용산 한 바퀴’가 열렸다. ©윤혜숙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가 사랑받는 이유는 거창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된 골목과 동네의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래된 담벼락과 계단, 작은 가게와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울시교육청 용산도서관에서 열린 ‘두텁바위 동네마실, 용산 한 바퀴’ 강연도 비슷했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 속에서 후암동과 갈월동, 서울역 일대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축과 골목의 시간을 따라가는 자리였다.

이번 강연은 <서울 건축 여행>의 저자이자 건축 여행자인 김예슬 작가와 함께 용산구와 인근 지역의 근현대 건축물을 여행하듯 만나보는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강연은 김 작가가 직접 준비한 사진과 자료, 신문 기사, 고전영화 장면 등을 함께 보여주며 진행됐다.
김예슬 작가가 시민들과 함께 후암동과 서울역 일대의 건축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혜숙
김예슬 작가가 시민들과 함께 후암동과 서울역 일대의 건축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혜숙

“건축 여행은 시선을 모으는 일”

김예슬 작가는 자신을 “건축 여행자”라고 소개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오래된 건물을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오며 <서울 건축 여행>을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 여행은 시선을 모으는 일”이라며 “건물의 정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을 사용했던 사람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시선을 함께 상상해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역서울284는 일제강점기의 시대 변화와 식민지 도시계획이 응축된 공간이다. ©윤혜숙
문화역서울284는 일제강점기의 시대 변화와 식민지 도시계획이 응축된 공간이다. ©윤혜숙
강연은 문화역서울284(구 서울역) 이야기로 시작됐다. 김 작가는 과거의 서울역이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시대 변화와 식민지 도시계획이 응축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1925년 경성역 개장 당시의 신문 기사와 이상의 소설 <날개>, 한국 고전영화 속 서울역 장면까지 함께 소개하며 건축을 입체적으로 읽어냈다.

특히 젊은 시절의 엄앵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속 서울역 카페 장면과 플랫폼 계단을 뛰어가는 장면 등을 보여주며 그는 “옛 건축을 바라보는 것은 사진첩을 넘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강연을 듣다 보니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문화역서울284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역사(驛舍)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이동과 기억이 겹쳐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남산 자락에 자리한 용산도서관은 후암동과 갈월동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다. ©윤혜숙
남산 자락에 자리한 용산도서관은 후암동과 갈월동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다. ©윤혜숙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후암동갈월동 이야기였다. 김 작가는 용산 일대의 오래된 주택과 골목을 “서울다운 여행지”라고 표현했다. 그는 서울시 자료집과 도서관 아카이브를 활용해 후암동·갈월동의 문화주택과 적산가옥의 흔적을 찾아다닌다고 소개했다. 특히 <후암동: 두텁바위가 품은 역사, 문화주택에 담긴 삶> 자료집을 추천하며 “골목 속 오래된 집에도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두텁바위는 지금의 후암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윤혜숙
두텁바위는 지금의 후암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윤혜숙
용산도서관 프로그램명이었던 ‘두텁바위 동네마실’이라는 표현도 눈길을 끌었다. 두텁바위는 지금의 후암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실제로 남산도서관 정류장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맞은편에 ‘두텁바위’라고 새겨진 표지석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두텁바위라고 불렀을까. ‘두텁’은 순우리말로 ‘두껍다’는 뜻이다. 남산 자락 아래 커다랗고 두툼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예부터 ‘두텁바위’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한자로는 후암(厚岩)이라 표기하는데, ‘두터울 후(厚)’와 ‘바위 암(岩)’을 쓴다. 지금의 후암동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후암동은 남산 남서쪽에 자리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인 신시가지로 빠르게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식과 서양식 구조가 섞인 문화주택이 대거 들어섰고, 지금도 후암동과 갈월동 일대에는 오래된 문화주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현존하는 문화주택과 적산가옥이 밀집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재개발과 다세대주택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후암동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된 담장과 슬레이트 지붕, 계단과 축대 같은 풍경이 눈길을 끈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 속에서도 이곳에는 오래된 생활의 시간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후암동 골목에는 경사진 언덕과 오래된 주택이 어우러진 서울의 생활 풍경이 남아 있다. ©윤혜숙
후암동 골목에는 경사진 언덕과 오래된 주택이 어우러진 서울의 생활 풍경이 남아 있다. ©윤혜숙

두텁바위라 불린 후암동 골목을 걷다

강연이 끝난 뒤 직접 후암동 골목길을 걸어봤다. 남산 배후에 자리한 동네답게 골목은 완만하게 이어지다가도 어느 순간 가파른 경사를 드러냈다. 계단과 담장, 오래된 축대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골목 사이로는 여전히 슬레이트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낮은 주택과 오래된 담벼락, 좁은 골목 풍경은 강연에서 본 <서울 건축 여행> 속 사진들과 겹쳐졌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후암동 골목길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다 보니 숨이 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천천히 발품을 팔아 걸으며 골목 곳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후암동에서 만난 새말교는 과거 남산 아래 물길과 골목을 잇던 생활 공간의 흔적이다. ©윤혜숙
후암동에서 만난 새말교는 과거 남산 아래 물길과 골목을 잇던 생활 공간의 흔적이다. ©윤혜숙
후암동에서 만난 새말교도 눈길을 끌었다. 낮은 골목 사이를 잇는 작은 다리처럼 보였다. 지금은 평범한 도로 같지만, 예전에는 남산 아래 물길과 골목을 연결하던 생활의 흔적이었다고 한다.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래된 골목과 생활 풍경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서울다운 장소처럼 느껴졌다.

문득 김예슬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건축 여행은 시선을 모으는 일”이라는 말처럼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어떤 시간이 쌓여 있을까 상상하게 됐다. 그렇게 사람과 건물, 골목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 서울 건축 여행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용산도서관 2층 맞은편 벽면에 설치된 부조 ©윤혜숙
용산도서관 2층 맞은편 벽면에 설치된 부조 ©윤혜숙

시간의 흔적 품은 용산도서관

강연이 진행된 용산도서관 역시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도서관 출입구에서 바라본 2층 맞은편 벽면에 설치된 부조가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 직원은 이 건물이 과거 박정희 정부 시절 민주공화당 중앙당사로 사용됐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용산도서관 건물은 1970년대 민주공화당 당사로 쓰이다가 1981년 도서관으로 개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연 말미에 김예슬 작가는 후암동과 회현동 일대를 걸어본 뒤 들르기 좋은 장소로 회현동 카페 ‘계단집’을 추천했다. 오래된 주택 구조를 살려 만든 공간으로, 골목 풍경과 함께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후암동과 갈월동 골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로 서울시 발간 자료집 <후암동: 두텁바위가 품은 역사, 문화주택에 담긴 삶>을 추천하며, PDF 형태로 공개돼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사람과 건물, 골목 이야기를 상상하는 순간 건축 여행은 시작된다. ©윤혜숙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사람과 건물, 골목 이야기를 상상하는 순간 건축 여행은 시작된다. ©윤혜숙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학습포털 에버러닝 누리집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에버러닝은 도서관·평생학습관·협력기관의 프로그램 정보를 한곳에서 제공한다. 서울 시민이라면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실제로 용산도서관에서는 ‘두텁바위 동네마실’처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결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독서문화 프로그램부터 건축·역사 탐방, 가족 체험 프로그램까지 다양하다. ‘두텁바위 동네마실’의 후속 프로그램도 기대된다. 후암동과 갈월동 골목, 용산 일대의 역사문화 공간을 주제로 한 탐방과 강연 프로그램이 계절별로 운영되고 있어, 에버러닝 누리집을 수시로 확인하면 관련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남산하얏트호텔 인근에서 내려다본 후암동 전경 ©윤혜숙
남산하얏트호텔 인근에서 내려다본 후암동 전경 ©윤혜숙
후암동 골목을 내려오며 오래된 담장과 계단을 다시 바라봤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 속에서도 골목은 여전히 시간을 품고 있었다. 건축 여행은 거창한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서울의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들이하기 좋은 지금, 시간을 내어 후암동과 갈월동 일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시 발간 자료집 <후암동: 두텁바위가 품은 역사, 문화주택에 담긴 삶>과 김예슬 작가의 <서울 건축 여행>을 참고하면 좋다.

용산도서관

○ 위치 : 서울시 용산구 두텁바위로 160
○ 교통 : 지하철 1·4호선·공항선·경의중앙선·GTX-A 서울역 10번 출구에서 809m
○ 운영시간
⁲- 문헌정보실 : 09:00~20:00
⁲- 어린이자료실 : 09:00~18:00
⁲- 자율학습실 : 3월~10월 07:00~22:00, 11월~2월 08:00~22:00
○ 휴무 : 매주 둘째·넷째 주 화요일
용산도서관 누리집
○ 서울특별시교육청 평생학습포털 에버러닝 누리집

시민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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