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 1층 녹사평 용산공원 플랫폼에서 만나 출발했다. ©문청야
- 오늘날 용산 기지 주변 등 시대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문청야
- 천장 유리 돔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지하까지 스며든다. ©문청야
"핫플인 줄로만 알았는데..." 도보해설관광에서 만난 해방촌·후암동 이야기
발행일 2025.04.10. 15:50
서울도보해설관광 2시간 코스...신흥시장·해방교회·108계단 등 근대사 명소
서울도보해설관광 ‘해방촌과 후암동, 용산기지 주변 삶의 흔적 이야기길’
서울의 중심부, 용산구의 해방촌과 후암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서울도보해설관광은 녹사평역에서 출발해 약 2시간 동안 4km를 걸으며, 숨겨진 이야기와 함께 이 지역의 진면목을 탐구할 수 있었다.
도보 코스는 녹사평역 → 한신옹기와 흔적여행길 → 동장이봉천기적비 → 신흥시장 → 해방교회 → 숭실학교 터와 경성호국신사 터 → 108계단 → 전생서터와 영락보린원 → 김상옥의사 항거 터 → 조선은행 사택지 터와 지월장 → 이태원 터 순이었다.
도보 코스는 녹사평역 → 한신옹기와 흔적여행길 → 동장이봉천기적비 → 신흥시장 → 해방교회 → 숭실학교 터와 경성호국신사 터 → 108계단 → 전생서터와 영락보린원 → 김상옥의사 항거 터 → 조선은행 사택지 터와 지월장 → 이태원 터 순이었다.
녹사평역에서 시작하는 여정
녹사평역의 용산공원 플랫폼은 일제강점기, 8.15광복 미군 주둔기, 오늘날의 용산 기지와 오늘날 용산 기지 주변 등 시대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유리 돔을 통해 지하까지 자연광이 비추는 모습이 유명해 독특한 구조로 주목받는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곳에서부터 도보 여행은 시작되었다.
해방촌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진력한 이봉천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동장이봉천기적비는 서울 용산의 동장을 역임한 이봉천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67년부터 이어져 온 한신옹기는 실향민의 삶과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또한 신흥시장은 70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전라도의 국밥집부터 경상도의 분식집까지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처음 신흥시장이 세워졌을 때는 자본이 적게 드는 옷을 짜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용산2가동 주민센터를 지나 고갯길 너머에 우뚝 서 있는 해방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1947년 피난민들의 쉼터로 시작된 해방교회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또한 108계단은 경성호국신사로 가는 입구였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상징하며, 현재는 남녀노소 쉽게 오를 수 있도록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가파른 계단으로 어르신, 유모차 이용자 등 교통약자가 오르내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로 교통약자의 보행편의를 크게 개선했다.
후암동 골목에는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1889~1923)의 항거가 새겨진 터가 있다. 일본인 마을이었던 후암동에서 드문 독립운동의 흔적이다. 그의 용기와 정신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후암동이다. 후암동은 과거의 정취와 현대적 변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골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카페와 예술 공간은 지역의 매력을 한층 더한다. 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는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방문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후암동 골목길에 유난히 붉은 벽돌집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건물들은 과거의 서울 생활 양식을 재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더욱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후암로16가길은 옛 조선은행 사택지였다. 현재는 한국은행 직원 공동 숙소인 후암생활관으로 쓰이고 있다.
후암동에는 이른바 ‘문화주택’이라는 일본식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문화주택이란 일제강점기 때 근대식으로 지은 고급 주택을 말한다. 대표적인 문화주택인 지월장은 원래 서선식산철도주식회사 상무 니시지마 신조(西島新藏)의 별장이었으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활용 중이다.
마지막 코스인 이태원(梨泰阮)은 조선시대 효종 때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한양의 역원(驛院) 중 하나로 숭례문을 나온 뒤 첫 번째 숙박시설이었다. 역원이란 관리와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서울의 해방촌과 후암동을 걷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과 삶의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는 특별한 여정이다. 도보해설사의 설명과 함께여서 더욱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이 경험으로, ‘서울’이란 이름이 가슴속에 더욱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해방촌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진력한 이봉천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동장이봉천기적비는 서울 용산의 동장을 역임한 이봉천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67년부터 이어져 온 한신옹기는 실향민의 삶과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또한 신흥시장은 70년의 역사를 간직하며 전라도의 국밥집부터 경상도의 분식집까지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처음 신흥시장이 세워졌을 때는 자본이 적게 드는 옷을 짜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용산2가동 주민센터를 지나 고갯길 너머에 우뚝 서 있는 해방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1947년 피난민들의 쉼터로 시작된 해방교회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또한 108계단은 경성호국신사로 가는 입구였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상징하며, 현재는 남녀노소 쉽게 오를 수 있도록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가파른 계단으로 어르신, 유모차 이용자 등 교통약자가 오르내리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경사형 엘리베이터 설치로 교통약자의 보행편의를 크게 개선했다.
후암동 골목에는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1889~1923)의 항거가 새겨진 터가 있다. 일본인 마을이었던 후암동에서 드문 독립운동의 흔적이다. 그의 용기와 정신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후암동이다. 후암동은 과거의 정취와 현대적 변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골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카페와 예술 공간은 지역의 매력을 한층 더한다. 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는 세대를 초월하여 모든 방문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후암동 골목길에 유난히 붉은 벽돌집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건물들은 과거의 서울 생활 양식을 재현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더욱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후암로16가길은 옛 조선은행 사택지였다. 현재는 한국은행 직원 공동 숙소인 후암생활관으로 쓰이고 있다.
후암동에는 이른바 ‘문화주택’이라는 일본식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문화주택이란 일제강점기 때 근대식으로 지은 고급 주택을 말한다. 대표적인 문화주택인 지월장은 원래 서선식산철도주식회사 상무 니시지마 신조(西島新藏)의 별장이었으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활용 중이다.
마지막 코스인 이태원(梨泰阮)은 조선시대 효종 때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한양의 역원(驛院) 중 하나로 숭례문을 나온 뒤 첫 번째 숙박시설이었다. 역원이란 관리와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서울의 해방촌과 후암동을 걷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과 삶의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는 특별한 여정이다. 도보해설사의 설명과 함께여서 더욱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이 경험으로, ‘서울’이란 이름이 가슴속에 더욱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7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신흥시장 ©문청야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젊은 데이트족도 자주 찾는 신흥시장이다. ©문청야

해방교회는 지대가 높아 서울의 다양한 뷰를 볼 수 있다. ©문청야

해방촌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해방교회는 오랜 세월 지역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문청야

신흥시장 입구에서 맞은편 길을 따라 내려오면 숭실학교 터인 해방타워와 마주하게 된다. ©문청야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해방촌 ©문청야

기존 108계단도 살려 옛 길의 정취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문청야

전생서 터는 궁중의 각종 제사때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조선시대의 관아다. ©문청야

영락어린이집 맞은편 골목길에 봄처럼 환한 벽화가 있다. ©문청야

1923년 일제강점기 당시 김상옥 의사(1889-1923)의 항거 터다. ©문청야

후암동 골목길에는 유난히 붉은 벽돌집을 많이 볼 수 있다. ©문청야

후암로16가길은 현재 한국은행 직원 공동 숙소인 후암생활관으로 쓰이고 있다. ©문청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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