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로 살펴본 장군 이순신 VS 인간 이순신
신병주 교수
발행일 2026.01.14. 15:20

이순신은 1592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17일까지 『난중일기』를 남겼다.
113화 난중일기 속 이순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순신 장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025년 11월 개막했으며, 2025년이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1545년과 같은 을사년이자,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난중일기(亂中日記)』 친필본을 비롯하여, 이순신 장검(長劍) 등 이순신 종가 유물 20건 34점을 포함하여 국보 6건 15점, 보물 39건 43점,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 9점 등 258건 369점의 방대한 규모의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순신 장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025년 11월 개막했으며, 2025년이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1545년과 같은 을사년이자,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난중일기(亂中日記)』 친필본을 비롯하여, 이순신 장검(長劍) 등 이순신 종가 유물 20건 34점을 포함하여 국보 6건 15점, 보물 39건 43점,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 9점 등 258건 369점의 방대한 규모의 전시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조,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이다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1592년 1월 1일부터 시작하여,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의 진중(陣中)일기인 『난중일기』를 남겼다. 원래 『난중일기』는 임진일기·계사일기·갑오일기 등으로 연대별로 제목을 붙인 이순신의 개인 일기였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하자면 연도별 다이어리라고나 할까? 문무를 겸비한 왕 정조는 이순신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자, 1795년 장군의 전집인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간행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친필 일기의 존재를 알고,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친필 초고본은 국보 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친필 초고와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일기에는 일정한 차이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친필 초고를 정자로 새겨 판각할 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이다. 일기의 주요 내용은 엄격한 진중 생활과 국정에 관한 감회, 수군 통제에 관한 계획, 일상생활, 가족 및 친지를 비롯하여 부하 등 주변 인물들의 상황, 부하들에 대한 상벌, 전황의 보고 등으로 임진왜란 및 당대의 사회상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난중일기』에는 전쟁 영웅 이순신의 모습 이외에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곳곳에 피력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아픔이 진솔하게 일기에 표현되어 있으며, 고락을 나누었던 군사들에 대한 애정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는 모습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난중일기』는 날짜별로 매우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거의 매일 일기를 썼기 때문에 임진왜란 기간 중 이순신이 활동한 동선뿐 아니라 그가 고뇌하는 장군의 내면적인 모습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난중일기』는 그 역사적 의미와 함께 영웅의 기록문학으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친필 초고와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일기에는 일정한 차이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은 친필 초고를 정자로 새겨 판각할 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이다. 일기의 주요 내용은 엄격한 진중 생활과 국정에 관한 감회, 수군 통제에 관한 계획, 일상생활, 가족 및 친지를 비롯하여 부하 등 주변 인물들의 상황, 부하들에 대한 상벌, 전황의 보고 등으로 임진왜란 및 당대의 사회상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난중일기』에는 전쟁 영웅 이순신의 모습 이외에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곳곳에 피력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아픔이 진솔하게 일기에 표현되어 있으며, 고락을 나누었던 군사들에 대한 애정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는 모습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난중일기』는 날짜별로 매우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거의 매일 일기를 썼기 때문에 임진왜란 기간 중 이순신이 활동한 동선뿐 아니라 그가 고뇌하는 장군의 내면적인 모습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난중일기』는 그 역사적 의미와 함께 영웅의 기록문학으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 지하에 있는 충무공이야기 전시관
준비된 장군, 이순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각종 군기(軍器)와 군사시설을 점검하고 해전에 능한 병사와 선박 확보에 주력하였다. 특히 왜란 직전에는 거북선 건조에 힘을 기울였다. 거북선을 완성한 후에는 선상에서 지자포(地字砲)와 현자포(玄字砲)를 시험 발사하는 등 왜란 전부터 만일에 있을 전투에 대비해 나갔다.
“동헌 뜰에 화대(火臺) 돌기둥을 세웠다.”(1591년 2월 8일) 거나,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防踏)에 이르러 공사례(公私禮)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쓸 만한 것이 없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투선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기쁘다.”(1592년 2월 25일)는 기록 등에는 전쟁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전쟁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부하들에게는 엄격했던 모습도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답의 병선(兵船) 군관과 색리(色吏)들이 병선을 수리하지 않았기에 곤장을 쳤다.”(1592년 1월 16일)거나, “순천 관내를 수색하고 검토하는 일이 제 날짜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대장(代將), 색리(色吏), 훈도(訓導) 등의 잘못을 추궁해 따졌다.”(1592년 3월 20일)는 기록에서는 매사에 철저하고 원칙에 충실했던 장군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동헌 뜰에 화대(火臺) 돌기둥을 세웠다.”(1591년 2월 8일) 거나,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防踏)에 이르러 공사례(公私禮)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쓸 만한 것이 없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투선은 어느 정도 완전해서 기쁘다.”(1592년 2월 25일)는 기록 등에는 전쟁 준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전쟁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부하들에게는 엄격했던 모습도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답의 병선(兵船) 군관과 색리(色吏)들이 병선을 수리하지 않았기에 곤장을 쳤다.”(1592년 1월 16일)거나, “순천 관내를 수색하고 검토하는 일이 제 날짜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대장(代將), 색리(色吏), 훈도(訓導) 등의 잘못을 추궁해 따졌다.”(1592년 3월 20일)는 기록에서는 매사에 철저하고 원칙에 충실했던 장군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어머니와 아들, 아내에 대한 감정들
『난중일기』에는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도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어머니 변씨에 대한 그리움은 일기 곳곳에 나타난다. 1593년 5월 4일의 일기에서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지만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오래 사시기를 축수하는 술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다.”라고 하였고, 5월 5일에는 “탐후선이 들어와 어머님이 평안하신 줄 알다. 다행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어머님의 안부를 듣지 못하니 답답하다.”(1596년 8월 12일)는 기록 등에서는 전쟁 영웅보다는 어머니를 늘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1597년 4월 13일 이순신은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 하인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안으로 들어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어찌 이루 다 적으랴.”면서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아픔을 절절하게 기록하였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절절하게 감정을 표현한 이순신이었지만, 부인에 대한 입장은 자못 달랐다. 부인에 대한 언급은 6곳으로 갑오년에 3번, 을미년에 1번, 정유년에 2번의 기록이 보인다.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매우 중하다 한다. 그러나 나랏일이 이러하니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다.”(1594년 8월 30일) “아내의 병이 좀 나아졌으나 원기가 약하다 하니 걱정스럽다.”(1594년) “아내는 불이 난 뒤로 심신이 많이 상해져 천식이 더해졌다고 한다. 걱정이다.”(1595년 5월 16일)와 같은 기록에는 아내의 병을 걱정하는 인자한 남편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만, 아내의 병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려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597년 10월 14일에는 아들 면(葂)의 전사 소식이 기록되어 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였다. … 거죽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의 전사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서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고 하여 먼저 아들을 보내는 부모의 비통한 심정을 일기로 남겼다.
이순신은 가족뿐만 아니라 함께 고락을 나누었던 군사와 동료, 그리고 전쟁 속에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침에 옷 없는 군사 17명에게 옷을 주고는 여벌로 한 벌씩을 더 주었다. 하루 내내 바람이 험하게 불었다.”(1596년 1월 23일) 거나, 백의종군 길에 올랐던 1597년 5월 13일의 일기에서는 “이중익이 군색한 말을 많이 하므로 옷을 벗어 주었다.”라는 구절도 보인다.
“오랫동안 어머님의 안부를 듣지 못하니 답답하다.”(1596년 8월 12일)는 기록 등에서는 전쟁 영웅보다는 어머니를 늘 걱정하는 아들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다. 1597년 4월 13일 이순신은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금 있다가 하인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뛰며 뒹구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안으로 들어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어찌 이루 다 적으랴.”면서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아픔을 절절하게 기록하였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절절하게 감정을 표현한 이순신이었지만, 부인에 대한 입장은 자못 달랐다. 부인에 대한 언급은 6곳으로 갑오년에 3번, 을미년에 1번, 정유년에 2번의 기록이 보인다. “아침에 탐후선이 들어왔는데 아내의 병이 매우 중하다 한다. 그러나 나랏일이 이러하니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다.”(1594년 8월 30일) “아내의 병이 좀 나아졌으나 원기가 약하다 하니 걱정스럽다.”(1594년) “아내는 불이 난 뒤로 심신이 많이 상해져 천식이 더해졌다고 한다. 걱정이다.”(1595년 5월 16일)와 같은 기록에는 아내의 병을 걱정하는 인자한 남편의 모습이 드러나 있지만, 아내의 병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려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597년 10월 14일에는 아들 면(葂)의 전사 소식이 기록되어 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였다. … 거죽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의 전사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서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고 하여 먼저 아들을 보내는 부모의 비통한 심정을 일기로 남겼다.
이순신은 가족뿐만 아니라 함께 고락을 나누었던 군사와 동료, 그리고 전쟁 속에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침에 옷 없는 군사 17명에게 옷을 주고는 여벌로 한 벌씩을 더 주었다. 하루 내내 바람이 험하게 불었다.”(1596년 1월 23일) 거나, 백의종군 길에 올랐던 1597년 5월 13일의 일기에서는 “이중익이 군색한 말을 많이 하므로 옷을 벗어 주었다.”라는 구절도 보인다.

난중일기 중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원균과 유성룡에 대한 상반된 감정
임진왜란일 일어난 시기 경상우수사였던 원균(元均, 1540~1597)에 대한 격한 감정이 일기 곳곳에 나타나 있는 것도 주목된다. 1593년 2월 22일의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끝내 구하지 않았으니 아주 괘씸하였다.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를 두고 경상도 수사 원균을 나무랐지만 통탄할 일이다. 오늘의 분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모두가 경상도 수사 원균 때문이다.”는 기록, 1593년 5월 14일의 “수사 원균이 나타나서 술주정이 심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배 안 모든 군사들이 놀라고 분개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의 허튼짓을 차마 입으로 말할 수가 없다.”는 기록 등에는 원균에 대한 강한 불신이 나타나 있다.
원균은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를 하고 전사하였는데, 7월 21일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패배한 정황을 물었다. ‘원균이 적을 보자 먼저 육지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육지로 달아나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대장의 잘못을 말하는 건 차마 입으로 옮길 수 없고 다만 살점이라도 뜯어 먹고 싶다고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균의 부하들이 무능한 지휘관에 대해 격하게 비판한 내용까지 일기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순신은 자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해 준 류성룡(柳成龍:1542~1602)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었고, 일기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나타난다. 1592년 3월 5일에는, “좌의정 류성룡이 편지와 함께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란 책을 보내 왔다. 수륙전과 불로 공격하는 전술 등에 관한 것이 낱낱이 설명되어 있었다. 참으로 만고에 보기 드문 뛰어난 저술이다.”고 기록되어 있고, 1593년 6월 12일에는 “유정승(류성룡)의 편지가 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시작한 1597년 4월 1일에는 류성룡이 하인을 보내 문안하였으며, 다음날인 4월 2일에는 “어두워질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과 이야기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나왔다.”고 한 기록에서 보이듯 두 사람의 친분은 대단하였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우정과 무한 신뢰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또 하나의 힘이었다.
원균은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를 하고 전사하였는데, 7월 21일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패배한 정황을 물었다. ‘원균이 적을 보자 먼저 육지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육지로 달아나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대장의 잘못을 말하는 건 차마 입으로 옮길 수 없고 다만 살점이라도 뜯어 먹고 싶다고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균의 부하들이 무능한 지휘관에 대해 격하게 비판한 내용까지 일기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순신은 자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해 준 류성룡(柳成龍:1542~1602)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었고, 일기에도 이러한 내용들이 나타난다. 1592년 3월 5일에는, “좌의정 류성룡이 편지와 함께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란 책을 보내 왔다. 수륙전과 불로 공격하는 전술 등에 관한 것이 낱낱이 설명되어 있었다. 참으로 만고에 보기 드문 뛰어난 저술이다.”고 기록되어 있고, 1593년 6월 12일에는 “유정승(류성룡)의 편지가 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풀려나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시작한 1597년 4월 1일에는 류성룡이 하인을 보내 문안하였으며, 다음날인 4월 2일에는 “어두워질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과 이야기하다가 닭이 울어서야 헤어져 나왔다.”고 한 기록에서 보이듯 두 사람의 친분은 대단하였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우정과 무한 신뢰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또 하나의 힘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을 관람하는 사람들
난중일기의 자료적 가치
『난중일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장군 이순신이 쓴 진중일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치열한 격전이 있었던 날도 일기는 거르는 법이 없었으며,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이틀 전인 11월 17일의 일기까지 기록되어 있다. 『난중일기』를 통하여 임진왜란의 구체적인 경과와 전술, 병사들의 심리 등 전쟁의 여러 정황들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이면서도 결단력 있는 품성의 소유자였던 장군의 가족애와 부하들에 대한 모습까지 알 수 있다.
『난중일기』는 무엇보다 이순신이 전쟁 중에 벌어진 상황들을 거의 매일의 일기로 남긴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만큼 치밀하고 꼼꼼한 장군이었음을 보여주는 한편, 『난중일기』로 인하여 영웅의 모습은 더욱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과 장군으로서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 있는 『난중일기』의 번역본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현재 이순신의 생애와 활동을 관련 유물로 보여주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을 찾아보면서, 장군의 흔적을 보다 생생하게 접했으면 한다.
『난중일기』는 무엇보다 이순신이 전쟁 중에 벌어진 상황들을 거의 매일의 일기로 남긴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그만큼 치밀하고 꼼꼼한 장군이었음을 보여주는 한편, 『난중일기』로 인하여 영웅의 모습은 더욱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과 장군으로서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 있는 『난중일기』의 번역본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현재 이순신의 생애와 활동을 관련 유물로 보여주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을 찾아보면서, 장군의 흔적을 보다 생생하게 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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