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로드킬', 인간과 동물이 함께 잘 사는 '길'은?

박한슬 작가

발행일 2025.10.30. 15:43

수정일 2025.10.30. 17:30

조회 2,012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국내 한 공원 인근에 둥지를 튼 야생 너구리
동물 찻길 사고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국내 한 공원 인근에 둥지를 튼 야생 너구리.
  11화   목소리 없는 약자, 동물과의 동행

개인적으로 운전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대도시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느니, 차라리 기후동행카드로 저렴하게 탈 수 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여겨서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곤 반쯤 강제로 차를 몰게 됐다. 그 많은 짐을 들고 대중교통을 타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서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기 시작하자, 보행자로 살 땐 보지 못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위엔 형체를 알 수 없게 짓이겨진 동물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흔히 ‘로드킬’(Roadkill)이라 불리는 동물 찻길 사고는 매년 증가 추이다. 5년 전인 2019년엔 연간 2만 1,000건 수준이던 전국 로드킬 발생 건수는 2021년엔 3만 7,000건, 2023년에 7만 9,000건까지 늘었다. 도로에서 죽은 동물이 4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나만 경험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 전국적으로 로드킬은 계속 늘고 있다. 대체 왜 로드킬이 계속 늘어난 걸까?

로드킬은 교통문제 아닌 생태 문제

일차적으론 도시가 확장되고, 도로망이 발달한 게 원인이다. 기본적으로 도시화는 개발되지 않은 자연을 대상으로 삼는다. 산이나 들에는 구획이 없지만, 도시에는 구획이 필요하다. 도로를 기점으로 반듯하게 땅을 나누고, 지목(地目)에 따라 개발 계획을 세워야 도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인위적인 구획을 동물은 이해할 수 없단 점이다. 들판에 검은 아스팔트가 깔려있다는 것의 의미를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하루 평균 200마리의 동물이 차에 치여 죽는 것이다. 일종의 ‘도시형 재난’이다.

더 큰 문제는 로드킬이 표면에 드러난 문제일 뿐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영역 동물이다. 각자가 영역으로 삼은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데, 유이(唯二)한 예외가 짝짓기를 위한 이동과 새로 태어난 새끼가 새 영역을 찾을 때다. 원래는 이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왕산 자락에서 살던 동물이 주변의 안산이나 남산으로 이동하는 길이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멀리 이동하지 않더라도 같은 산맥에서 다른 봉우리로 옮기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봉우리 사이에 도로가 나면서 이게 불가능해지게 됐다. 도로가 가로지른 탓에 특정한 지역에 갇히는 동물들이 생기는 것이다.

동물의 이동이 차단되면 해당 지역엔 무슨 일이 생길까. 첫째, 그 지역은 주변과 연결된 생태계가 아니라 단절된 섬처럼 바뀐다. 둘째, 그 지역 내에서만 동물이 짝을 찾으며 근친교배가 심화된다. 셋째, 결과적으로 지역 생태계가 점차 황폐해지게 된다. 그러니 이걸 벗어나려 발버둥치던 동물들이 도로로 나왔다, 차에 치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남산에 산책을 나섰다가 너구리를 만났다고 해서, 그 너구리들이 건강하게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보기가 어렵단 얘기다. 라면 포장지 말곤 너구리를 볼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단 얘기다.

생태계를 이어주는 길, 생태통로

이러한 생태적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게 ‘생태통로’(Ecological Corridor)다. 생태통로란, 도로, 댐, 도시 개발 등으로 인해 단절된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육교나 터널 형태의 인공 구조물, 또는 식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생물종의 안전한 이동과 유전적 교류를 보장하는 형태다. 1980년대 하버드 대학의 리처드 포먼(Richard Forman) 교수가 제안한 모델이다.

이를 서울에 도입하면 이런 식이다. 남산과 관악산 같은 곳들은 주요 서식지이고, 강변북로나 남부순환로, 장충단로 같은 곳들은 서식지 간의 생물 흐름을 막는 장벽이다. 그러니 이런 장벽을 우회할 수 있도록 생태통로를 만들어야,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통로 사업은 자주 반발에 부딪힌다. 단지 동물을 위해 그런 시설까지 지어야만 하냐는 거다. 그렇지만 생태통로의 가치는 단순히 '동물 복지'에만 있지 않다. 생태통로는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로가 나면서 생긴 생태적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생태통로가 고안됐다. 사진은 국사봉 녹지연결로
도로가 나면서 생긴 생태적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생태통로’가 고안됐다. 사진은 국사봉 녹지연결로
가장 대표적인 게 연결된 생태계에 의한 환경 정화 기능이다.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서식지들을 각자 고립된 형태로 두는 게 아니라 동물의 이동, 그리고 동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매개되는 식물의 이동을 통해 생태계의 이동성이 강화되면 개별 서식지의 생물다양성이 증가해 외부 오염이나 기후 변화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높아지게 된다.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대기 오염을 정화하는 기능이 커진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형 녹지연결로는 여기에 추가적 효과까지 덧붙는다. 서울형 모델은 다른 지역의 동물 전용 통로와 다르게 폭 10m에서 20m에 이르는 다리 위에 '사람을 위한 보행로'(약 2m)와 '동물을 위한 이동로'(최소 7m)를 함께 조성했다, 두 통로 사이엔 울타리와 다층구조의 수목 식재를 통해 둘을 분리하는 구조다.

이런 방식을 택하면 동물이 이용해야 할 통로에 등산객이 무단으로 출입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차단되는 한편, 도로로 인해 끊겼던 서울둘레길, 등산로, 공원 산책로를 단절 없이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 동물 생태통로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등산과 산책을 즐기는 서울 시민들의 복지도 증진되는 구조다.
국사봉 녹지연결로는 시민을 위한 산책로와 동물의 이동 통로가 분리되어 있다.
국사봉 녹지연결로는 시민을 위한 산책로와 동물의 이동 통로가 분리되어 있다.

비인간 동물과의 동행

그렇다면 과연 생태통로는 제대로 작동하는 걸까. 전국 국립공원이나 고속도로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실증을 마쳤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지리산 시암재 생태통로’다. 5년 간의 무인카메라 모니터링 결과, 총 548마리의 야생동물이 이 통로를 이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용 동물의 '질'이다. 이곳에서는 멸종위기종 Ⅰ급인 반달가슴곰을 비롯해 Ⅱ급인 삵, 담비 등 한반도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최상위 포식자들이 꾸준히 관찰되었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동물들이 생태통로 이용을 점차 학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공원 내 12개 생태통로를 대상으로 한 환경부의 분석 결과를 살펴보자. 2012년 통로 1곳당 평균 163회였던 야생동물 이용 빈도는 2016년 505회로, 4년 만에 약 3.1배 증가했다. 이는 동물이 통로를 학습하고 세대에 걸쳐 생태통로라는 ‘안전한 길’을 자손 세대에 전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태통로 사업을 먼저 시행했던 주요 선진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실효성이 입증된 셈이다.

서울시에서도 이미 성공 사례는 나왔다. 2024년 9월 준공된 동작구 '국사봉 녹지연결로'는 양녕로로 단절되었던 국사봉 숲을 이었다. 폭 10.9m의 이 연결로는 시민을 위한 산책로와 동물을 위한 이동로를 울타리로 명확히 분리하여, 인간의 보행 편의와 동물의 안전한 이동을 동시에 확보했다. 최근 완공된 강동구 ‘샘터길 녹지연결로’ 역시 일자산과 방죽공원을 잇기 위해 기존 3m의 낡은 육교를 15m 폭의 '혼합형' 녹지연결로로 재탄생시킨 사업이다. 전국 단위에서의 성공을 서울시에서 계승하고 발전시킨 형태다.

서울시는 그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품는 시도를 이어왔다. 그런데 도시에 거주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고, 도시의 가장 약자도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도시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서식지를 가로지르는 도로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동물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그런 동물들을 돕는 동시에 서울 시민의 복지도 증진하는 형태로 생태통로가 완성된다면 서울시는 한층 원숙한 의미의 ‘약자와의 동행’을 달성하게 된다. 서울 곳곳의 녹지축 연결 사업이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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