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기록 없는 '그림자 아동' 지킨다…'위기 임산부' 지원

박한슬 작가

발행일 2025.10.23. 15:30

수정일 2025.10.23. 18:19

조회 919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서울시가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를 열고 선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가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를 열고 선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10화   출생신고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

2023년 여름, 정부는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치만 보면 2,123명으로 많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미 사망했거나 생존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태였다. 의료기록, 예방접종 이력, 교육 등록 등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국가의 보호체계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 2천 명을 넘는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출생 미신고 아동의 임신과 출산이 공적 체계의 관리 범위 밖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임산부 복지 제도는 혼인한 여성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배우자의 직장보험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보험,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이 연계된 고용 기반 복지, 출산장려금 지급을 위한 기준중위소득 심사 등은 모두 결혼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낳는 상황은 애초에 제도 설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 외국인, 미혼여성, 가정폭력 피해자 등 전통적 가족 보호망 바깥에서도 임신은 발생한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순간 감당해야 할 비난과 낙인을 우려해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통계에서만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위기임산부’의 등장

이 실태를 파악하고 보호하고자 도입된 개념이 바로 ‘위기임산부’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임신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 없는 여성을 공적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이 개념을 토대로 제정된 것이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2023.10.31.)이다.

초기에 해당 법이 주목받은 이유는 ‘보호출산’ 조항 때문이다. 이른바 ‘익명 출산’을 통해 낙태나 영아살해를 막자는 취지인데, 법 제정 당시 언론의 관심도 이 대목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 법의 핵심은 단순히 산모의 신원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보호출산은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다. 사회적 고립이 극단에 이른 상황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고도 출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구를 열어두는 조치다. 정말 중요한 건, 임산부가 그 단계까지 내몰리지 않도록 미리 보호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전 개입을 규정한 제도가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체계’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털어놓기까지의 공백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단지 ‘산모’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 여부를 고민하는 여성까지 제도적으로 포섭한다는 점에서 기존 산모 중심 복지와 궤를 달리한다.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사업 추진체계
제공되는 복지도 적지 않다. 24시간 비밀 상담망, 사례관리 중심의 지원 프로토콜, 주거·의료·양육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 연계 지원 체계를 갖춰 단순한 행정 서비스라고 보기도 어렵다. 보호출산으로 내몰릴 위험이 큰 여성을 총체적으로 돕기 위한 통합 대응 체계다.

출산과 양육이 ‘가능한 선택지’로 남기 위해선, 그 선택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심리적·물리적 여유가 보장돼야 한다.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은 바로 그 여유를 만드는 일종의 ‘사전적 복지 개입’이다. 법적으로 임신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상담이 가능하고, 상담이 시작되는 즉시 사례관리가 연계된다. 의료, 주거, 심리, 양육 분야의 지원이 필요에 따라 제공되며, 필요한 경우 쉼터나 보호시설도 즉시 연결된다. 임신 여부를 고민하는 모든 여성이 지원 대상이다.

그간 우리 복지정책은 대개 결과가 확정된 이후에 지원이 이뤄지는 후행적 방식이었다. 소득이 없음을 입증한 저소득층, 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 이미 출산을 마친 산모 등만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나쁜 결과가 확정된 후에야 도움이 가능했다. 그러나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체계는 임신과 출산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공적 개입을 사전에 실행한다는 점에서 기존 복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전국 최초로 위기임산부 통합지원 나선 서울시

물론 정책은 법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복지는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 조직과 공간이 맞닿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는 예외적으로 빠르고 선도적인 대응을 보였다. 서울시는 특별법이 시행되기도 전인 2023년 9월부터 ‘위기임산부 통합지원 시범사업단’을 운영했으며, 2024년 8월에는 전국 최초로 별도 공간과 전담 조직을 갖춘 ‘서울시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를 정식 개관했다.
타 지자체들이 기존 미혼모 보호시설을 담당 기관으로 삼는 데 그쳤다면, 서울시는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하고 전문상담 인력 10명을 충원했다. 기존 시설에 업무를 추가 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신 갈등과 위기 출산을 전담하는 전용 조직을 신설한 것이다.

특히 24시간 운영되는 상담체계는 단순 콜센터 수준을 넘어, 전화·카카오톡·현장방문 등을 포함한 다채널 방식으로 작동하며, ‘상담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사례관리가 자동 연계’되도록 설계돼 있다.

성과도 뚜렷하다. 센터 개관 전 시범운영 기간이었던 2023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서울시는 총 206명의 위기임산부에게 2,700건이 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의료비, 쉼터 연계, 아동용품, 산후도우미 등 다양한 지원 항목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상당수가 본인 스스로 상담을 요청한 사례였다는 점이다. 자발적 요청에만 개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강제성도 없다.

이 정책의 실효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보호출산을 고민하다 상담을 통해 일반 출산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바꾼 사례들이다. 익명으로의 출산을 고려하던 임산부가 충분한 상담과 지원을 받은 뒤 직접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경우가 있어서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출산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누군가 등을 떠민 게 아니라, 낳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래서 이 정책은 저출산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출산이란 선택지를 돕는 행정

출산은 선택이라지만, 그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이들이 늘어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지금처럼 커졌다. 그렇다면 출산이란 선택이 가능하게끔 돕는 역할은 사회가 맡아야 한다. 서울시의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은 단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태어날 생명과 그 곁의 삶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가깝다. 가장 밑바닥이 튼튼해질수록 선택 가능한 폭이 넓어지니, 거시적으로 출산율이 오르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복지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포섭하고, 차별이나 낙인의 우려 없이 안전하게 상담과 지원이 연결되는 체계를 만든 서울시의 사례는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시정 철학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서울시의 개입이 빨랐기에, 새 생명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사업 포스터

서울시 위기임산부 통합지원센터

○ 24시간 핫라인
- 전화 1551-1099 (전국 : 국번없이 1308)
- 카톡 채널 : 위기임산부 상담지원
○ 상담 후 전문기관으로 연계 : 출산지원시설, 위기임산부 쉼터, 아동복지센터 등
○ 맞춤형 서비스 제공 : 입양 또는 시설보호, 출산, 산후조리, 아동 양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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