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쓰러진 청년에게 한 줄기 빛 '서울시 자립토대 지원' 사업

박한슬 작가

발행일 2025.07.24. 14:25

수정일 2025.07.24. 16:27

조회 4,504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보는 서울 이야기
청년 부채 탕감이라는 말에는 늘 부정적 시선이 따라붙는다.
청년 부채 탕감이라는 말에는 늘 부정적 시선이 따라붙는다.

박한슬 작가의 ‘숫자로 본 서울 이야기’ (6) 청년 부채 탕감이라는 나쁜 오해

청년 부채 탕감이라는 말에는 늘 부정적 시선이 따라붙는다. 많은 이들이 청년 빚을 떠올릴 때 분수에 넘는 소비나 무모한 주식·코인 투자, 혹은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 실패를 먼저 연상한다. 실제로 언론에서 다루는 청년 부채는 ‘영끌’이나 ‘빚투’ 같은 자극적인 표현과 결합되는 일이 많다. 언론이 청년층에 특별히 악의를 가져서라기보단, 언론고시를 통과해 기자가 될 정도의 고급 인력이 주변에서 접하는 청년 부채 사례 중엔 저런 경우가 많아서 생기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그러나 정작 부채 탕감을 신청하는 현실의 ‘금융취약청년들’은, 언론이 자주 비추는 청년상과는 거리가 멀다. 과소비나 투자 실패 때문이 아니라, 하루하루 삶에 치여서 부채를 쌓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다.

빚지는 청년의 실체는 ‘사회적 약자’

2023년 청년 채무 실태를 보면, 부모의 경제적 지원도,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사회로 내몰린 이들이 다수를 이룬다. 대표적인 예가 아동복지시설이나 쉼터에서 만 18세까지 지내다가 법적 보호가 끝나는 즉시 홀로 자립을 강요받는 청년들이다. 이들은 서류상으로는 성인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기반 없이 사회의 변두리에 내던져진다. 알바와 학업을 병행해도 월세와 공과금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서 빚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된다. 명목상으론 자취를 하면서도 본가에서 반찬을 가져오거나, 빨래를 위탁할 수 있는 대학생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렇게 쌓인 빚이 어느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나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다.

실제로 보호종료 5년 이내 청년의 금융채무불이행률은 16.2%로, 일반 청년 불이행률(0.7%)의 23배에 달한다. 서울시와 복지재단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절반 이상이 고졸 이하 학력이고, 가족으로부터 자산이나 진학 지원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고정된 거처 없이 월세방을 전전하는 이들에게, “힘들면 도와줄게”라는 말 한마디 건넬 어른조차 없다. 생활비 구조 역시 열악하다. 채무불이행 집단의 70% 이상이 월소득 150만~250만 원 사이에 몰려 있고, 생활비 150만 원 미만으로 버틴다는 이들도 80%를 넘는다. 번 만큼 바로 생활비로 소진되고, 아르바이트라도 쉬는 날엔 곧장 적자로 전환되는 구조다. 막연히 가지는 인상과는 차이가 크다.

이 문제는 보호종료 청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소득가정, 한부모가정, 지방 출신 비진학 청년 등, 이른바 언론의 시야 바깥에 있는 수많은 청년들도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전체 청년의 20명 중 1명은 소득 3년치 이상 빚을 지고 있으며, 6.8%는 다중채무를 3건 이상 보유하고 있다. 과소비나 투자 실패가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지출조차 감당하지 못해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처음 금융에 진입할 때도 위험은 이미 내재돼 있다. 1·2금융권의 소액대출로 시작해, 신용이 무너지면 절반 넘는 이들이 “기존 빚을 갚으려고 새로운 대출을 받는다”고 답한다.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가스요금, 통신요금까지 연체되며 일상 자체가 흔들린다. 물론 공식적인 빚 탕감 절차가 있긴 하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이나, 법원의 개인회생이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절차에 진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신용점수와 소득, 그리고 일정 기간 이상 연체된 상태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보호종료 청년이나 비정규직 청년들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더구나 이들의 채무 중에는 통신요금, 전기요금, 월세 등 비정형 생활채무가 적지 않은데, 신용회복위원회는 이를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 결과 상당수 취약청년이 공식 절차에 진입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남겨진다. 사업빚이나 밀린 카드값을 처리하기엔 적합한 방법일 수 있으나, 전기요금을 못 내다 빚이 생긴 청년들에게 적합한 제도는 아닌 거다.

개인회생도 진입장벽이 높다. 가장 큰 문제는 변제 능력이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수년간 꾸준히 갚아야만 회생이 가능하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개인회생 승인자의 월평균 변제금은 약 90만 원에 이른다. 월소득 150만 원이 채 안 되는 청년들에게는 사실상 생계의 절반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회생 절차에 들어가도 그 기간 동안 신용카드 사용, 신규 대출이 제한된다. 경제적 회복을 위한 제도지만, 실제로는 생계 불안과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공식 절차를 밟아 성공적으로 탈출하는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여전히 제도 밖에서 혼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과소비나 투자 실패가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지출조차 감당하지 못해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소비나 투자 실패가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지출조차 감당하지 못해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 리터러시’ 부족은 원인이 아닌 결과

이런 현실에서 ‘금융 리터러시’의 부족을 강조하는 건 공허할 뿐이다. 금융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개인의 능력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받거나, 능숙한 부모의 도움을 통해서 키워지는 경우가 많다. 체계적인 금융 교육 없이 경제적 의사결정을 전적으로 떠맡아야 했던 청년에게 금융 리터러시가 부족해 그렇다는 비난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청년들을 보호하고자, 서울시는 2023년부터 ‘금융취약청년 재기지원사업’을 펴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회생법원, 서울시복지재단이 함께 설계한 이 사업은,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거나 변제를 마친(또는 예정된) 청년을 지원 대상으로 삼는다. 핵심은 단순한 빚 탕감이 아니라, 재무 상담과 교육을 통해 청년이 스스로 자신의 재정 상태를 이해하고, 다시는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데 있다.

물론 해당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긴 하다. 참여자만 놓고 보면 2023년에는 150명, 2024년엔 140명 수준이었다. 서울시 내 채무불이행 청년이 최소 수천 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5%도 포섭하지 못한 수치다. 게다가 공식적인 채무조정 절차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 특히 제도 밖에 있는 생활채무 위기 청년은 여전히 빠져있긴 하다. 그럼에도 이 사업이 지닌 정책적 의미는 분명하다. 금융취약은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출발선이 달라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는 걸 이해하고, 이를 공공(公共)에서의 적극적 교육을 통해 벌충하려는 시도기 때문이다. 전국 최초로 이런 지원제도가 자리 잡은 것이야말로, 약자와의 동행이란 서울시 표어가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방증이다. 게다가 교육만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총 100만 원 규모의 자립토대 지원금이 함께 지원되기 때문인데, 액수가 크진 않더라도 채무조정 직후 한 푼이 아쉬운 청년에게는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교육과 지원의 균형을 잡은 거다.

실제로 청년 동행센터에서 해당 제도의 수혜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살펴보면, 금융취약청년의 57.5%는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냈다고 응답했다. 청년 부채 문제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가 금융취약청년 재기지원 사업에서도 재차 확인되니 사업의 필요성도 스스로 증명된다.

특히나 전체 채무청년 중 89.9%가 생활비 목적으로 빚을 졌다고 하니, 실패와 재기의 과정을 함께 견딜 수 있는 진짜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일과 가정에서 충분히 금융 리터러시를 키우지 못하는 청년들을 재교육해 기회의 균등을 벌충해주는 건 정말 소중한 정책이다. 사회가 ‘실패한 청년’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시도가 서울 바깥의 지자체로도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 서울시 청년 자립토대 지원사업 안내 ☞ 서울복지포털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