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흔한 이삿날 풍경, 알고보니 400년 전 철학자의 이론이?!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5.09.24. 15:00

수정일 2025.09.24. 13:50

조회 2,433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이사 철 서울 고층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다리차
이사 철 서울 고층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다리차
  40화   이사 철 서울 풍경을 바꾼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의 연구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의 책은 지금도 꽤 널리 읽힌다. 파스칼이 자신의 생각을 짤막짤막한 글귀로 써 놓은 것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인 ‘팡세’는 한국에서도 세계 고전 전집에 흔히 포함되곤 한다.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을 명언이라고 한번쯤 들어본 경험은 있을 것이다. 바로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가 ‘팡세’에 실려 있는 파스칼의 말이다.

파스칼은 이렇게 철학적인 생각에 심취하여 좋은 글을 쓴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릴 적부터 수학과 과학에 워낙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파스칼이 어려서부터 수학을 좋아했고 출중한 실력을 보여 주었다는 이야기는 프랑스 과학사에서 유명한 일화다.

파스칼은 몸이 약한 편이었는데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스칼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너무 고민하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그 아버지는 아들 파스칼에게 최대한 수학을 가르치지 않으려 했다고 하며 볼 수 있을 만한 수학책도 다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어린 파스칼은 몰래 그냥 자신의 머릿속으로 다양한 수학에 관한 주제와 문제를 떠올려 보면서 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게다가 파스칼은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뛰어나서 10대 때 덧셈 뺄셈 계산을 도와줄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파스칼이 컴퓨터를 처음 만든 인물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10대 때 계산기를 만들기도 했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10대 때 계산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파스칼이 어른이 되었을 무렵, 유럽의 철학자들 사이에는 세상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논쟁 한 가지가 유행했다. 그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가능하냐’는 물음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이 세상이라는 것이 생겨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지구와 우주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만큼, 아무리 무엇인가를 없애고 또 없앤다고 해도 지금 완벽히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공간 같은 곳에도 공기는 있지 않냐고 이야기하곤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뜬구름 같은 주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철학과 사상이 발전하는 시대에는 이런 의문이 인기를 끌 때가 생긴다.

따지고 보면 이보다 조금 앞서서 16세기 조선의 사상가들 중에서도 이황, 기대승, 서경덕 같은 학자들은 우주의 근원이나 음, 양, 태극으로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아주 추상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품었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사상이 격변하면서 이런 부류의 새로운 문제들이 많은 사상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러니 파스칼 역시 그 무엇도 전혀 없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에 빠져 들만했다.

17세기 유럽 사상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무슨 문제든 더 명확히 실험을 해 가며 과학적으로 따지거나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 정도를 숫자로 표현해서 명쾌하게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가 같이 발달해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시 유럽 학자들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가능한가’하는 문제도 그냥 말로만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 실험을 하거나 측정한 결과를 숫자로 비교하고 계산해 가면서 문제를 분석하는 일도 좋아했다.

이런 배경이 있었으니 철학적 사색과 수학, 양쪽에서 뛰어났던 파스칼 역시 이 문제에 뛰어들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파스칼은 어떤 통 속에서 공기를 점점 빨아들여서 빼내 버린다면 그 통 속에서 공기가 사라져 가면서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여러 방면으로 연구를 발전시켜 압력이 바뀌는 데 따라서 어느 쪽이 얼마나 힘을 받게 되는 지를 계산해 낼 수 있는 멋진 방법을 개발했다.

바로 그 덕택에 지금까지도 무엇이 되었든 압력에 대해 따질 때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파스칼이 개발해 놓은 연구 성과를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일기예보에서 기압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현재 기압이 1,000헥토파스칼입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텐데, 여기 나오는 파스칼(Pa)이 바로 파스칼의 이름을 딴 압력을 재는 단위다.
서울의 고층 아파트들
서울의 고층 아파트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서울의 이삿짐 운반으로 이어진다.

작년에 한국 사람들은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외국 사람들은 보고 크게 감탄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다리차를 이용해서 이사를 하는 영상이었다. 트럭이 아파트 단지에 나타난 뒤 사다리를 펼치고 높은 건물에 걸쳐 놓은 뒤에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를 이용해서 빠르게 이삿짐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 영상이었다. 고층 아파트가 널려 있는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장비를 이용해서 신속하게 이사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가 세계에 그다지 많지가 않다. 그래서 그 영상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공유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어느새 영상 조회수가 무려 1,000만을 돌파해버렸다. 많은 예산을 들여서 한국 문화나 한국 기술을 홍보하려는 영상을 열심히 꾸며서 만들어 올려 두어도 1만, 10만 정도의 조회수를 얻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영상으로 촬영할 거리도 되지 않아 보일 것 같은 사다리차로 이사하는 장면 영상이 가볍게 1,000만 조회수에 도달한 것이다. 지금 이 영상의 조회수는 거의 2,000만에 가까워졌다.

사다리차 같은 장비가 많이 출현해 자주 사용되려면 사다리차를 사용할 만한 높이의 고층 건물이 많아야 한다. 서울은 이런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특히 아파트 거주를 선호하고 한 도시 안에서도 이사 가는 일이 잦은 편인 서울 시민들에게 사다리차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다.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만 하더라도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한국인들만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에 비해 서울의 아파트 숫자는 2010년대에 이미 160만 채를 돌파해서 어느새 주류에 속하는 주거 방식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사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어 하루에 모두 완료되기를 바라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역시 이사 철만 되면 서울에서 사다리차가 널리 쓰일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다. 게다가 사다리차와 같은 장비를 제작하고 정비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이 한국에는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점도 사다리차를 쓰기에 유리한 점이다. 그 덕택에 다른 나라에서는 놀랄만한 독특한 한국의 이사 문화가 서울에서는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사다리차의 바닥 쪽에는 항상 수평을 유지한 상태로 높이를 맞춰주는 '아웃리거'가 좌우로 몇 개 나와있다.
사다리차의 바닥 쪽에는 항상 수평을 유지한 상태로 높이를 맞춰주는 '아웃리거'가 좌우로 몇 개 나와있다.
사다리차와 같은 장비를 보면 길쭉한 은빛 파이프 같은 모양이 여기저기에 달려 있어서 그것이 길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면서 기계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다리차의 바닥 쪽에는 보통 아웃리거(outrigger) 또는 아우트리거, 아웃트리거라고 부르는 메뚜기 다리 비슷하게 생긴 것이 좌우로 몇 개 나와 있기 마련이다. 이 아웃리거가 사다리차를 떠받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다리 각각의 길이를 길어지거나 줄어들게 조절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사다리차가 항상 똑바로 수평을 유지한 상태로 주차되어 있도록 높이를 맞춰 주는 것이다.

사다리차는 서 있을 때 수평이 잘 맞게 서 있어야만 사다리를 세워 놓고 빠르게 오르내릴 때에도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흐트러지는 일 없이 작업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평평한 바닥이라고 해도 약간은 경사가 있는 곳이 있기 마련이고 트럭 바퀴 하나가 조금 튀어나온 곳에 서게 된다든가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럴 때 바로 길이 조절이 되는 아웃리거 덕택에 이런 곳에서도 평형을 유지하며 차를 세워 놓을 수 있다.

아웃리거의 길이를 조절하기 위해 길어졌다 줄어졌다 하는 은빛 파이프를 유압실린더라고 부른다. 유압실린더의 구조는 주사기와 비슷하게 생겼다. 유압실린더에는 펌프가 연결되어 있는데 펌프를 작동시키면 그 유압실린더 속으로 펌프가 빠르게 기름을 퍼 넣게 되어 있다. 그러면 그 기름이 들어와 차지하는 공간만큼 한쪽 끝이 점점 튀어 나오면서 밀려 나오고 유압실린더는 길어지는 구조다.

이런 부품 속에서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떻게 기름을 퍼 넣었을 때 얼마만큼 유압실린더가 길어 지고 길어진 끝이 얼마 정도의 힘을 떠받칠 수 있는가 하는 정도를 미리 치밀하게 계산해 놓으면 펌프를 세밀하게 작동시켜서 정확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힘으로 트럭 한켠을 들어 올려 수평을 잡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바로 그 기름을 퍼넣는 정도, 압력, 힘의 관계를 계산할 때 파스칼이 개발해 놓은 계산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파스칼의 계산 방법을 활용하는 유압실린더는 아웃리거 외에도 대단히 많은 기계 장치에 굉장히 널리 쓰인다. 사다리차에서는 사다리를 들고 각도를 조절하는 장치에도 이렇게 길어졌다 줄어졌다 하는 쇠파이프가 붙어 있는데 역시 유압실린더를 이용하는 장치다.

덤프트럭이 짐 싣는 칸을 들었다 내리는 장치라든가, 굴착기의 팔이 사람 팔 관절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데에도 길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유압실린더가 붙어 있다. 하다못해 쓰레기 운반차량이 문을 열고 퍼 담아 놓은 쓰레기를 눌러 놓는 데에도 유압실린더가 쓰인다.
버스를 타 보면 버스 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를 타 보면 버스 문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를 타 보면 버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할 때마다 무엇인가 격렬하게 김이 빠지는 소리나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것이 같이 들리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시 그 소리가 도대체 왜 들리는지 궁금해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소리 역시 파스칼의 과학과 연결되어 있다.

버스 문에서는 기름 대신에 공기를 퍼넣는 펌프를 이용한 비슷한 장비를 이용한다. 이런 장비를 공압실린더라고 부른다. 공압실린더 역시 유압실린더와 마찬가지로 길어졌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해 문을 밀었다가 당겼다가 하면서 버스에서는 문을 조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하느라 특유의 소리가 나는 것이다. 무심히 넘어갈 수 있는 버스 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지만 그 소리 속에 사실은 400여 년 전 무의 세계와 우주의 탄생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다 압력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 낸 파스칼의 정신이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은 기계 공업이 발달한 편인 나라이며 유압실린더에 사용할 수 있는 기름을 개발하고 다룰 수 있는 석유 화학 기술의 저력도 충분한 나라다. 유압실린더는 센 압력을 받아도 물 샐 틈조차 생기지 않는 상태로 튼튼하게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제품을 만들려면 강한 재료를 정밀하게 잘 가공하는 기술도 중요한데 이 역시 한국 과학기술인들이 갖추고 있는 장점이다. 그렇기에 믿고 쓸 수 있는 품질이 뛰어난 유압실린더를 잘 만들고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해 제품을 수출하는 일은 한국 산업계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덕택에 지금도 유압실린더와 그것을 활용하는 여러 한국산 기계 부품과 장비가 수출 상품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20세기만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장비를 잘 만들 수 있는 나라로는 주요 유럽 선진국들이 손꼽혔다. 하다못해 사다리차의 사다리만 하더라도 너무 무거우면 싣고 다니며 높이 펼치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너무 약하면 무거운 물건을 실으면 부러지기 때문에 잘 만들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가볍고 튼튼한 재료를 구해 잘 가공해 거대한 사다리를 만들어 장착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다리차 같은 장비는 독일 업체 기술로 개발한 고장력 알루미늄 합금을 이용한 제품이 인기 있었다. 스웨덴 업체 기술로 개발한 가벼운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든 사다리도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언급되었다. 지금은 국내 업체들의 수준도 여러 분야에서 상당히 향상되어 있다.

이처럼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도 그 속에 담겨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산업 발전, 경제 발전을 위해서 해볼 수 있는 일은 많다. 현대 사회에서 서울 같은 대도시의 모습은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풍경조차 조금만 그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그 속에서 기술 산업의 다양한 지식과 기회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런 지식과 기회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생각하는 갈대라는 말과 무척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카카오톡 채널 구독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