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말차' 열풍! 더 오래전 서울서 유행했던 '이것'은?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5.09.10. 15:10

수정일 2025.09.10. 17:09

조회 3,884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39화   세계를 휩쓰는 말차 열풍, 백제의 서울에서는 떡차 열풍?
요즘 미국에서 시작된 말차 바람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시작된 말차 바람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말차 열풍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혹시 미얀마에서 나온 물건 중에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 문화에 깊이 파고들어 뿌리를 내리고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을까? 나는 녹차도 한 번 이야기 거리로 꺼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녹차는 생물학에서 쓰는 학명으로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라고 부르는 차나무라는 식물을 기른 뒤에 그 잎을 따고 그것을 가공한 후 뜨거운 물 속에서 끓여 그 물을 마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차나무가 처음 자라나던 곳이 어디냐에 대해서는 인도 북부에서부터 동남아시아 지역 일부 및 티베트와 중국 남서부 지역까지 다양한 지역이 원조일 수 있다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그렇다 보니 미얀마도 차나무가 처음 나타났을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 종종 이야기되는 지역이다. 특히 미얀마는 현대에도 차나무를 많이 기르고 차를 많이 수출하는 편인 나라라서 이런 이야기가 인기 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미얀마에서 시작된 차나무가 멀리 한국에까지 자리 잡아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요즘 미국에서 시작된 말차 바람이 세계로 퍼져 나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녹차나 차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나 고고한 삶을 추구하는 연배가 높은 학자 같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료라는 느낌이 어느 정도는 있다.

그런데 이번 미국의 말차 열풍은 오히려 20대 전후의 젊은 세대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재미난 특징이다. 언론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가 과거와는 다르게 자기 몸의 건강을 더 많이 챙기기 때문에 말차를 좋아한다는 보도도 자주 나온다. 조금 다른 방향의 설명으로는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주요 말차 업체들이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큰 SNS를 통해 말차 유행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유행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말차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의 한 말차 전문점에서 말차 라떼를 제조하는 모습
전 세계적으로 말차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의 한 말차 전문점에서 말차 라떼를 제조하는 모습

말차의 독특한 ‘색깔’ SNS 홍보 역할 톡톡…커피 대체 음료로 환영

말차로 음료를 만들면 묘한 초록색을 띄게 되는데 미국에서 인기가 많은 말차 라떼는 여기에 하얀 우유나 크림을 섞기 때문에 파스텔톤의 더욱 특이한 색깔이 된다. 여기에 보라색이나 파랑색 같은 다른 색깔 재료를 좀 더 섞으면 무슨 칵테일 같은 느낌이 나는 모습이 되는데 이런 형태의 음료를 들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확실히 눈에 뜨이기가 좋다.

아무리 SNS를 통해 음식을 홍보한다고 해도 음식의 맛과 향을 인터넷 너머로 홍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말차는 색깔, 즉 시각이라는 SNS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기에 그것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인플루언서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이미 카페인 음료로 원래 미국에 널리 퍼져 있던 커피가 자기 몸에 맞지 않거나 맛이 마음에 들지 않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녹차나 말차라는 새로운 카페인 음료를 마시면서 그것으로 잠을 깨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커피든 차든 이런 식물로 음료를 만들면 카페인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성분이 같이 우러나오기에 사람은 그것을 다 같이 먹게 된다. 그런데 만약 커피에 들어 있는 어떤 다른 성분 때문에 알레르기를 겪는다거나 자기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다면 그 대신 녹차는 몸에 맞는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조금 더 파헤쳐 보자면 녹차는 비록 그 세부 품종이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생물학에서 말하는 종 분류로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하나의 종이다. 개의 품종이 삽살개에서 푸들까지 여러 품종이 있지만 생물 종 구분으로는 개라는 하나의 종인 것과 같다.

그에 비해 커피나무는 코페아(Coffea)라는 속(genus)으로 구분되는 여러 종의 다양한 식물들을 모두 뭉뚱그려서 부르는 말이다. 넓게 보면 코페아로 분류되는 커피나무라고 할 만한 식물은 80종쯤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 80종 중에서도 가장 많이 생산되고 판매되는 종이 바로 친숙하게 들리는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라는 종이다. 그에 비해 아라비카 커피가 아닌 로부스타 커피를 만드는 종인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라고 하는 종은 코페아 아라비카와는 종이 아예 다르다. 개와 자칼이 서로 다른 종이고 개와 코요테가 아예 서로 다른 구분되는 종인 것과 비슷한 관계다.
녹차는 세부 품종이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생물학 종 분류로는 하나의 종이다. 국내 한 차밭의 수확 모습.
녹차는 세부 품종이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생물학 종 분류로는 하나의 종이다. 국내 한 차밭의 수확 모습.

말차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과연 차 중에서도 말차란 무엇일까? 과거 한국 언론에서 말차라고 부르던 것은 가루나 분말을 뜻하는 말(末)자를 사용해서 녹차를 가루를 내어 놓은 것을 두루 일컫는 말에 가까웠다. 이 한문 표기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다.

대개 한국에서 녹차를 먹는다고 하면 대개는 찻잎을 우려낸 물을 마시는 것이지만, 이렇게 가루로 만든 차를 사용하면 차 가루를 그대로 같이 먹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말차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녹차를 간 가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말만 봐도 미국 말차 가게에서 말차를 티 파우더(tea powder)나 그라운드 티(ground tea) 같이 차를 그냥 갈아 놓은 재료라는 말을 쓰지는 않는다.

미국의 말차 가게에서 파는 제품을 미국 사람들은 ‘맷차(matcha)’라고 부른다. 이게 무슨 말일까? 이것은 일본에서 말차를 뜻하는 말인 ‘맛챠’라는 말의 영어식 발음이다.

일본에서 말차라고 하는 제품은 한국에서 쓰는 ‘말’과는 한자를 달리해서 ‘抹茶’라고 쓴다. ‘抹’ 역시 한국식 발음은 말이고 뜻은 ‘말소한다’ 내지는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라는 뜻이라서 한국의 말차와 비슷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런 의미의 말차는 대개 차나무를 기를 때부터 차광재배라고 해서 15일에서 20일 정도에 걸쳐 햇빛으로 가리고 재배해 만들어 낸 조금은 다른 제품을 일컫는 말이다.

찻잎을 딴 뒤에 가공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냥 녹차는 살짝 잎을 볶듯이 처리하기 마련이고 이것을 한국에서는 흔히 ‘덖는 과정’을 거친다고 부른다. 그에 비해 요즘 말차라고 부르는 제품은 ‘찌는 형태’로 처리한다.
한국에서 마시는 녹차는 대개 찻잎을 우려낸 물을 마시는 것이다.
한국에서 마시는 녹차는 대개 찻잎을 우려낸 물을 마시는 것이다.

한국의 가루 차 문화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가루를 먹는 방식으로 차를 마시는 문화가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고려 시대의 최승로가 982년에 쓴 ‘시무28조’라는 글이 있다. 이것은 고려의 성종 임금에게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신경 써야 할 문제 28조항을 설명한 글이다.

그 글의 본론과는 큰 관계가 없지만 내용 중에 ‘차를 임금님께서 손수 갈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 대목이 있다. 임금이 차 마시는 일이나 차 마시는 행사에 정성을 쏟기보다는 백성을 생각하는 나랏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이렇게 시무28조에 ‘차를 손수 간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는 차를 갈아서 먹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고려 시대의 임금님들은 차를 마실 때 현대에 말하는 말차와 비슷한 모양의 제품을 마셨을 것이다.

현대의 한국에서는 녹차라고 하면 티백이 유행이지만 고려 시대의 차는 차를 뭉쳐서 굳혀 놓은 덩어리로 만들어 두었다가 먹기 전에 갈아서 먹는 방식도 흔히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뇌원차(腦原茶)’ 라는 이름으로 고려만의 독특한 차가 귀하게 취급되기도 했다. 그 정도로 고려 시대에는 다양한 방식의 차가 널리 퍼져 있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고려의 발달했던 차 문화에 대해 정리한 자료를 남긴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의 우리는 뇌원차 같은 특별한 차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떤 차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 한국의 차 문화가 시작된 것은 고려 시대부터일까? 그것도 아니다. 우선 공식적인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차나무 재배가 대량으로 이루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의 828년 기록에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김대렴이라는 사람이 중국 당나라에서 좋은 차나무 씨앗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지리산 인근에서 심기 시작한 뒤 신라에 성행했다고 되어 있다. 지금도 경상남도 하동에는 이때 차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역 일대를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라고 부르며 기념하고 있다.

커피의 세계에서 비엔나 커피나 아메리카노가 유명하다지만, 비엔나 커피가 유행한 것은 1600년대 말부터다. 한국의 차 문화 유행은 그 보다도 800년 가까이 앞서니 큰 차이가 있다. 아메리카노의 나라 미국은 아예 나라가 생긴 것이 1776년이다. 그러므로 나는 김대렴 같은 인물을 차 문화나 카페 문화와 관련해서 조금 더 브랜드화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828년 이전에는 한국에 차가 없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우선 828년 ‘삼국사기’ 기록을 자세히 보면 그에 앞서서 ‘선덕여왕 때에도 차가 있기는 있었다’는 말이 같이 적혀 있다. 선덕여왕의 시대는 828년보다 200년가량 앞서기 때문에 한국 차 문화의 시작은 한참 더 앞선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지역이 고대 백제의 수도인 서울이다.
1997년 풍납토성 인근에서 부서진 돌로 만든 절구가 발굴됐다.
1997년 풍납토성 인근에서 부서진 돌로 만든 절구가 발굴됐다.

작은 절구 ‘차확’과 떡을 닮은 ‘병차’

1997년 서울 송파구의 풍납토성 인근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고대 백제의 여러 가지 유물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유물은 양도 많고 내용도 다양했기에 이곳이 고대 백제의 궁전 근처일 것이라는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결과였다. 그런데 이때 발굴된 유물 중에 부서진 돌로 만든 절구가 있었다.

절구라고 하지만 이때 발견된 유물은 고작 손바닥 만한 작은 크기였다. 이래서야 떡을 만든다거나 곡식을 찧는 용도로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유물은 약재라든가 양념 같은 것을 조금씩 빻는 용도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문동석 교수는 지난 2012년에 이런 유물은 아마 차를 가루로 가는데 쓰는 도구일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차 문화가 먼저 발달한 중국에서 비슷한 시대에 쓰던 차 빻는 작은 절구와 백제의 유물이 닮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작은 절구를 한자어로 차확(茶確)이라고 부른다. 문 교수는 2012년 기준으로 서울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지역에서 나온 백제 유물 중에 9개가 바로 차를 가루로 만드는 도구인 것 같다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문동석 교수는 서울의 백제 유적에서는 찻잔으로 보이는 유물도 같이 나오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백제의 차 문화는 신라의 차 문화처럼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백제는 서해를 건너 중국 남부 해안 지방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그렇기에 중국 남부에서 많이 생산되는 차 문화를 접할 기회는 충분했다.

중국의 역사 기록 ‘수서’에는 백제의 나라 안에 신라, 고구려, 왜인, 중국 사람 등등이 함께 사는 곳이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기도 하다. ‘수서’에서 말하고 있는 시대는 서울 풍납토성의 전성기보다는 좀 더 지난 시대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백제의 도시에서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는 문화가 있었다는 증거는 될 만하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다른 그 어느 지역보다도 백제의 서울에서 차 문화가 먼저 시작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류건집 교수는 백제 출신의 행기(行基)라는 인물이 일본의 사찰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일본의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이라는 기록에 나와 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역시 백제에 진작부터 차 문화가 발전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 주는 이야기다.

문동석 교수는 서울의 백제 시대 차 문화는 당시 유행을 고려했을 때 병차 형태였을 거라고 추정했다. 병차(餠茶)는 모양이 떡과 비슷하다고 해서 떡차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말 그대로 떡과 가까운 형태로 차를 뭉쳐서 굳혀 놓은 것을 말한다. 이 역시 가루로 갈아서 마시는 방법으로 마실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말차 음료와 비슷한 것을 1600년 전, 1700년 전 백제의 서울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을 거라는 상상도 해 봄 직하다.

물 감별사 ‘이행’이 인정했다는 한강 우중수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서울의 차 문화라고 하면 이행(李行)에 관한 전설도 꼭 한번 같이 언급하고 싶다.

옛 사람들은 차를 마실 때 어떤 물을 사용하는 지도 무척 중요하게 따졌는데, 이행은 고려 시대의 인물 중에서 물을 잘 감별할 수 있는 ‘물 맛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전국 곳곳의 물 맛을 판별하고 순위를 매겼다.

조선 시대 초의 기록인 ‘용재총화’에 따르면 고려의 이행이 전국의 물을 평가하여 ‘첫째는 충주(忠州)의 달천수(達川水)요, 두 번째는 한강의 우중수(牛重水)며, 세 번째가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우중수가 정확히 한강의 어느 즈음에 있는 물이고 어떤 특징 때문에 이행이 전국 2위로 평가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행이 차 문화가 유행했던 고려 시대의 인물임을 생각해 보면 한강 물 어디인가가 녹차를 만들기에 매우 적합했다고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세계의 어느 훌륭한 음료 문화 못지않게 서울의 아리수로 만든 녹차, 말차 음료를 서울의 카페에서 마시는 것이 깊은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료 색깔의 시각적인 매력으로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요즘의 말차 유행을 볼 때 그와 비슷하게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구해 나간다면 서울의 차, 나아가 서울의 식음료 문화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질 기회도 더욱 많아지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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