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단은 조선 시대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김지연
- 동쪽에는 토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단’이, 서쪽에는 곡식신에게 바치는 ‘직단’이 나란히 놓여 있다. ⓒ김지연
- 단 주변으로는 담이 둘러져 있다. ⓒ김지연
조선시대 왕이 궁보다 먼저 세운 곳, 사직단! 종로둘레길로 걸어보자
발행일 2025.05.12. 13:00
1.5km 종로둘레길 끝에 마주한 사직단, 그 역사적 의미를 찾아서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면 '사직단'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방송에 흘러나온다. 사직단이 '종묘사직을 살피시옵소서'에 나오는, 그 사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 동쪽에는 선왕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가, 서쪽에는 토지의 신 '사'와 곡식의 신'직'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한다. 사직단은 조선 시대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조선시대의 새 왕이 즉위할 때, 궁궐보다 먼저 향했던 곳이기도 하다.
화장한 날, 광화문역에서 내려 종로둘레길을 따라 목적지인 사직단으로 발걸음 향했다. 사직단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5코스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700년 넘는 조선의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풍경들로 채워져 있다. 경복궁과 광화문, 국립고궁박물관을 지나 사직단까. 문화예술과 역사적 장소가 밀집한 종로둘레길은 서울 여행자에게도, 산책을 즐기는 이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길이는 총 1.5km 남짓, 30분 정도 소요되지만 풍성한 볼거리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실제로 마주한 사직단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단정했다. 웅장한 건축이나 화려한 장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건 아니지만, 어쩐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능을 알고 나면, 이 단아한 공간이 더욱 납득이 간다. 나라의 제례가 열릴 때, 이 넓은 터를 가득 채웠을 제사 행렬을 상상해 본다.
사직단 내부의 동쪽에는 토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단’이, 서쪽에는 곡식신에게 바치는 ‘직단’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인왕산의 능선이 자연스레 흘러드는 지형 위에 배치된 이 공간은 도성을 향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단 주변으로는 담을 둘렀으며, 내부에는 신실과 신문을 세웠다. 한켠에는 전사관이 머물며 제례 준비를 총괄하는 전사청이 있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근간이 되는 농업의 풍요와 번영을 빌고, 제향인 사직제를 지냈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일 때 백성들의 희망이 되는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임진왜랑 당시,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고 사직단을 가장 먼저 불태웠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신성한 장소를 격하해 사직공원으로 만들어버린 역사도 있다.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도착한 목적지, 사직단 앞에 서니 오히려 그 절제된 조형미와 역사성이 더욱 근엄하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보다 먼저 세워진 사직단. 선선하게 걷기 좋은 날씨 종로둘레길을 걸으며 사직단과 얽힌 역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작 낯설었던 ‘사직’이라는 공간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 동쪽에는 선왕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가, 서쪽에는 토지의 신 '사'와 곡식의 신'직'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이 자리한다. 사직단은 조선 시대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조선시대의 새 왕이 즉위할 때, 궁궐보다 먼저 향했던 곳이기도 하다.
화장한 날, 광화문역에서 내려 종로둘레길을 따라 목적지인 사직단으로 발걸음 향했다. 사직단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5코스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700년 넘는 조선의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풍경들로 채워져 있다. 경복궁과 광화문, 국립고궁박물관을 지나 사직단까. 문화예술과 역사적 장소가 밀집한 종로둘레길은 서울 여행자에게도, 산책을 즐기는 이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길이는 총 1.5km 남짓, 30분 정도 소요되지만 풍성한 볼거리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실제로 마주한 사직단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단정했다. 웅장한 건축이나 화려한 장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건 아니지만, 어쩐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능을 알고 나면, 이 단아한 공간이 더욱 납득이 간다. 나라의 제례가 열릴 때, 이 넓은 터를 가득 채웠을 제사 행렬을 상상해 본다.
사직단 내부의 동쪽에는 토지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단’이, 서쪽에는 곡식신에게 바치는 ‘직단’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인왕산의 능선이 자연스레 흘러드는 지형 위에 배치된 이 공간은 도성을 향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단 주변으로는 담을 둘렀으며, 내부에는 신실과 신문을 세웠다. 한켠에는 전사관이 머물며 제례 준비를 총괄하는 전사청이 있다. 이곳에서는 국가의 근간이 되는 농업의 풍요와 번영을 빌고, 제향인 사직제를 지냈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일 때 백성들의 희망이 되는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임진왜랑 당시,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고 사직단을 가장 먼저 불태웠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신성한 장소를 격하해 사직공원으로 만들어버린 역사도 있다. 광화문과 경복궁을 지나 도착한 목적지, 사직단 앞에 서니 오히려 그 절제된 조형미와 역사성이 더욱 근엄하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보다 먼저 세워진 사직단. 선선하게 걷기 좋은 날씨 종로둘레길을 걸으며 사직단과 얽힌 역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작 낯설었던 ‘사직’이라는 공간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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