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이 간 자리, 서울에서 찍은 미드가 흥행한 이유

임명묵 작가

발행일 2025.03.13. 15:47

수정일 2025.03.13. 17:25

조회 2,446

임명묵 작가 타이틀
오징어게임 영희
2024년 연말에 전세계인의 스크린을 장악한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영희. 사진은 지난 2024년 광화문마켓.
전 세계에서 주목 받는 한국의 문화를 신선한 통찰과 지식으로 풀어낸 책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 작가가 <내 손안에 서울>의 새로운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드라마, 예능, 웹툰 등 다채로운 콘텐츠들을 재료 삼아 한층 더 깊이 우려낸 대중문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K-컬처를 읽어드립니다 (1) 서울에서 촬영한 미국 드라마의 등장

2024년 연말에 전세계인의 스크린을 장악한 작품은 단연 <오징어 게임 시즌2>이다. <오징어 게임>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세계적 메가 히트를 한 K-콘텐츠의 상징이었으니 그 속편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먼 옛날처럼 들리는 팬데믹과 락다운이 없는 상황에서, 시즌 2가 전작인 시즌 1의 엄청난 신드롬을 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물론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서 신드롬도 빠르게 꺼지는, 일반적인 히트작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갔다.

2025년 1월 13일부터 1월 26일까지,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순위 3위로 내려가며 다른 작품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런데 K-컬처의 관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드라마는 1위를 차지한 서부극 <사나운 땅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신에 그 <오징어 게임>을 누르고 시청 순위 2위에 오른 드라마 <엑스오, 키티>였다. 2025년 1월에 공개된 <엑스오, 키티> 역시 이번이 두 번째 시즌인데, 이미 2023년에 처음으로 공개된 시즌 1도 당시 넷플릭스 시청 순위 2위까지 기록했으니 역시 비슷한 흥행세를 이어가는 셈이다.

<엑스오, 키티>의 줄거리는 전혀 특별한 것이 없다. 많은 시청자가 이미 익숙할 여성향 하이틴 드라마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마저 제친 흥행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엑스오, 키티>는 스토리나 배우보다도, 작품의 배경 자체가 흥행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미국에서 만든 하이틴 드라마지만, 아시아인이 주연이고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엑스오, 키티>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제니 한이 2014년에 출간한 청소년 소설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파생 작품이다. 이 소설은 2018년에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드라마판은 당시에도 성장하고 있던 서구의 아시아 이민자 커뮤니티와 아시아 문화 애호가들을 팬층으로 삼으며 백인 사회에서도 꽤나 호평을 받았다. 원작자가 한국계이기 때문에 드라마 또한 주인공도 한국계 혼혈이라는 설정을 따라 제작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배경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달리, <엑스오, 키티>는 아예 ‘캐서린 송 코비’라는 전작 주인공의 동생이 서울에 있는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강남, 잠실, 명동, DDP, 한강공원 등 서울의 명소들이 나오고, 배경음악으로 K-POP이 깔리면서 ‘한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주지만, 스토리 자체는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전혀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아주 충실히 따라간다.
넷플릭스 콘텐츠 ‘엑스오, 키티’, 서울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넷플릭스 콘텐츠 ‘엑스오, 키티’, 서울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균형

그래서 한국 시청자들은 도리어 <엑스오, 키티>를 보면서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국내 일반 고등학교와는 제도가 다른 국제학교라지만, 한국인이 보기에는 너무 ‘말이 안 되는’ 장면들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에게 느껴진 위화감은 오히려 해외 시청자들에게 <엑스오, 키티>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어차피 외국인 시청자들은 한국을 대중문화로만 접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고, 위화감을 느낄 여지도 없다. 대신 오히려 자신들에게 익숙한 생활 문화가 한국, 특히 서울이라는 낭만화된 아시아 도시 공간에서 연출되니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균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엑스오, 키티>는 해외, 특히 서구권 사회가 한국과 서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투명한 지표이기도 하다. 과거 일본 문화나 홍콩 문화가 서구권에서 큰 인기를 끌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영미권 문화나 유럽 문화에 열광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사회의 진면목을 깊게 관찰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일 수밖에 없다. 대다수는 해외 문화에 빠져들 때, 해당 국가에 자신들이 보고 싶은 이미지를 투영하여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낸다. 오리엔탈리즘이 지금보다 노골적이었을 1967년에 일본을 배경으로 나온 <007 두 번 산다>는 대표적인 유사 사례다. 이 작품에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보여준 미래적 모습과, 서양인이 생각하는 신비로운 동양 전통이 남아 있는 낭만적 땅으로 묘사되었다. 이후에도 일본은 서구인들이 자신들 문화의 어떤 점에 열광하는지 면밀히 파악하고 그에 맞춘 문화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냈다.

물론 이제는 오리엔탈리즘의 시대가 아니고, 문화 간 소통이 더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굳이 해외에서 상상하는 새로운 한국의 이미지를 그 시절처럼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 마케팅에 기대지 않더라도 한국 문화는 내수용 문화도 글로벌하게 수출하여 청중을 얻어내는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현재 K-컬처 인기가 지속된다면 <엑스오, 키티> 같이 한국을 배경으로 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담아낸 해외 콘텐츠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한국과 서울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는 것은 그들에 대해서, 또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 <엑스오, 키티>가 한국을 너무 무성의하게 묘사했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저 사람들은 한국을 저렇게 상상하는구나’라고 여유를 가지며, 한국과 서울의 어떤 다양한 모습을 또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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