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출몰하는 거대 야생동물…누구냐, 넌!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4.11.13. 13:00

수정일 2024.11.13. 17:18

조회 74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20) 서울 야생 생태계의 왕 멧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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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인 지금의 서울 산속에서도 멧돼지가 살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2020년대인 지금의 서울 산속에서도 멧돼지가 살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

거대 도시 서울에 살고 있는 대형 야생 동물

서울에서 대형 야생 동물이 야생 상태 그대로 사는 곳이 있을까? 크기가 큰 야생 동물이 사는 곳이라고 하면 아프리카 사바나의 초원이나 남아메리카 아마존의 정글이 떠오르기 쉬울 것이다. 아무래도 천만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 같은 거대 도시에 커다란 야생 동물이 살 거라는 생각은 떠올리기 어렵다. 야생 동물의 숫자 자체가 많지 않을 것이고 있는 야생 동물이라고 해 봐야 기껏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소형 야생 동물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단 한 종의 동물은 예외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는 잘 자라날 경우 몸무게 200kg이 넘어갈 때가 흔하므로 충분히 대형 야생 동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남한에서 포획된 호랑이가 박제로 남아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사례는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보관되어 있는 표본인데, 이 호랑이의 무게를 180kg 정도로 추정하곤 한다. 국내 동물원에서 보는 호랑이나 곰의 몸무게도 200kg이 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여러 야생 동물보다도 멧돼지는 더 크게 자라날 수 있는 큰 동물이다.

이런 멧돼지가 2020년대인 지금의 서울 산속에서도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시민들의 눈에 뜨이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가 않다. 대표적으로 지난 9월 24일만 하더라도 도심의 창덕궁에 멧돼지가 나타나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10월 4일 발표를 보면, 2021년에서 2023년 사이에 멧돼지 때문에 서울의 소방 당국이 출동한 횟수는 1,470건이나 될 정도다.

게다가 2021년에는 442건이었던 건수가 2023년에는 649건으로 늘어났다. 멧돼지와 사람이 마주치는 사례는 가을 겨울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는 한데, 단순히 나누어 보면 서울에서 매일 한 건 이상은 멧돼지가 나타나 소방서에서 출동할 정도로 서울에는 멧돼지가 많다고 봐야 한다.
북한산숲체험장에서 포획틀에 잡힌 멧돼지
북한산숲체험장에서 포획틀에 잡힌 멧돼지

같은 가축이지만, ‘소’와 ‘말’과는 다른 ‘돼지’

가만 보면, 생물학 관점에서 멧돼지는 굉장히 특별한 포유류 동물에 속한다. 무엇보다 널리 키우는 가축화된 동물 중에 돼지만큼 야생 상태에서 잘 자라나고 있는 동물은 드물다. 멧돼지와 동일하게 우제류로 분류되는 소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가 가축으로 키우고 있는 소는 먼 옛날 들판에서 살고 있던 야생 소를 데려와서 사람들이 길들여 키우면서 탄생한 품종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세상의 농장에서 기르고 있는 소는 굉장히 많지만 야생 상태에서 살고 있는 소는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의 보호가 없는 야생 상태에서 소는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 역시 대단히 친숙한 가축이지만 야생에서 자기들끼리 살며 대를 이어오고 있는 말들은 멸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야생마나 들소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 야생마나 들소라고 말하는 동물들은 우리가 키우는 소나 말과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는 짐승이거나 아니면 그저 가축으로 키우던 동물이 탈출해서 살다가 발견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 역시 야생 고양이는 드물며, 야생 개라고 할 수 있는 늑대를 찾아보는 것도 한국에서는 아주 어렵다. 물론 꿩이나 타조처럼 야생에서 많이 발견되는 동물을 농가에서 키우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동물들은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한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서 아무래도 친숙한 가축으로 보지는 않는다. 완전히 가축화가 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돼지는 다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멧돼지와 가축으로 기르는 돼지를 같은 종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학술적인 종의 분류 명칭인 학명도 ‘수스 스크로파(Sus scrofa)’로 동일하다. 다시 말해 멧돼지와 집돼지의 차이는 아주 적어 다른 동물로 보지 않을 정도라는 이야기다. 소 중에서 한우가 있고 젖소가 있는 정도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할까? 혹은 개 중에서 그레이하운드 같은 사냥개와 푸들 같은 개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품종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다. 국내에는 아예 멧돼지와 가축 돼지 품종의 잡종을 만들어 멧돼지 고기를 판다는 농가들이 종종 보일 정도다.

그런 식으로 돼지들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사람과 함께 수천 년 동안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야생에서도 꿋꿋이 번성해 세계 각지에 퍼져 있다. 그리고 한국의 돼지는 그중에서도 더 특별하다. 현재 한국 축산농가에서 기르는 돼지는 대부분 영국, 덴마크 등지의 유럽에서 들여온 품종이 주류다. 재래돼지에 가까운 품종들도 20세기 이후 이런 유럽 품종들과 잡종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잡종이 아닌 재래돼지 품종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지난 2013년 창덕궁에 출몰한 멧돼지
지난 2013년 창덕궁에 출몰한 멧돼지

호랑이와 곰 사라진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멧돼지

그런데 그 와중에 재래돼지 품종을 발굴해 연구해 조사한 결과들을 보면, 한국 재래돼지는 대략 삼국시대 초기 무렵, 주로 고구려 지역을 경로로 하여 머나먼 북방 지역의 돼지 품종 중에서 크기가 작아서 사람이 운반하기 쉬운 품종이 들어와서 자리 잡은 것으로 보곤 한다. 국립축산과학원의 홍준기 선생 등의 기고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설명되어 있다.

즉, 한국 사람들이 예로부터 기르던 재래돼지는 한국의 멧돼지를 그대로 붙잡아서 길들인 품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보다는 기르기 좋은 짐승을 찾아 돌아다니던 2,000년 전 무렵의 어느 모험가가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북쪽 머나먼 땅의 숲속과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좋은 돼지 품종을 찾아내서 그것을 한반도로 들여와 정착시켰다는 이야기가 조금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중국의 역사책 《수서》를 보면, 북방 이민족인 말갈족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들이 특히 돼지를 많이 키우는 풍속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고구려인들은 많은 말갈족을 다스리면서 그들 중 상당수를 고구려인의 일부로 흡수했다. 심지어 《삼국사기》에는 백제나 신라가 말갈족과 다투거나 말갈족과 교류했다는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현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백제와 접촉한 말갈족과 고구려와 접촉한 말갈족은 서로 다른 종족이라고 보는 것이 중론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백제, 신라와 접촉했던 말갈족도 상대적으로 북쪽에 근거를 둔 사람들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다면, 현대 한국인의 풍습 중에서 너무나 친숙한 돼지고기 삽겹살을 구워 먹으며 회식하는 풍속은 어쩌면 머나먼 옛날 말갈족이 한국인 사이에 흡수될 때 전수해 준 돼지 잘 키우는 기술 덕분에 생긴 선물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른다.

이 과정을 반대로 멧돼지 입장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한국의 멧돼지들은 수천 년간 세월이 흐르면서 한반도의 농민들이 외부에서 들여온 다른 돼지들을 길러서 퍼뜨리는 동안에도 별도로 야생의 산속에서 꿋꿋이 자기들의 세상을 이어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호랑이나, 곰 같은 무시무시한 동물들은 모두 쇠퇴했지만 멧돼지만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번성했다.

남한 지역에서 호랑이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는 의견이 우세한 편이며, 곰 역시 반달곰 80여 마리 정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보호와 관찰 속에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조금 살아 남아 있는 정도다. 그러나 멧돼지는 2017년 환경부 추정 기준으로 전국에 무려 30만 마리가 퍼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 이야기에는 위엄이 있는 동물로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여 쑥과 마늘을 먹으며 버티다가 그중 곰이 변해서 단군을 낳는다고 되어 있다. 모르긴 해도 아마 21세기인 요즘 시대에 단군 이야기가 탄생한다면 분명 한국인의 조상이 될 만한 동물은 단연 멧돼지일 것이다.

그러니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큰 동물은 한국인과 멧돼지 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멧돼지는 각종 식물을 잘 먹는 편이다. 2018년 9월 서울 도봉구에 출몰한 멧돼지들.
멧돼지는 각종 식물을 잘 먹는 편이다. 2018년 9월 서울 도봉구에 출몰한 멧돼지들.

각종 식물과 도토리 등 가리지 않는 '식성', '영리함' 생존에 도움

도대체 어떻게 멧돼지는 살아남았을까?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나 잘 먹고 잘 자라나는 돼지 특유의 식성이다. 사료를 먹여 키우는 가축 돼지만 생각한다면 멧돼지가 풀을 먹는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멧돼지는 초식 동물에 가까울 정도로 각종 식물을 잘 먹는 편이다. 그래서 구미에 맞으면 풀도 잘 뜯어 먹는다. 그러니 멧돼지는 나무와 풀이 많은 한국의 산속에서 잘 자라날 수 있다.

특히, 멧돼지는 도토리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참나무 계통의 나무 열매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도토리묵이라고 하는 독특한 음식이 있을 정도로 도토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다가 멧돼지는 여차하면 작은 동물까지도 잘 먹을 수 있으니 먹을 것 걱정이 덜한 동물이다.

여기에 더해, 멧돼지가 영리한 동물이라는 점도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흔히 똑똑한 동물이라고 하면 원숭이를 많이 떠올리는데 한국에서 실험관찰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필리핀 원숭이는 그 두뇌 무게가 80g 정도다. 그런데 돼지의 뇌 무게는 130g을 쉽게 넘어가곤 한다. 그러니 돼지는 일단 두뇌 크기에서부터 어지간한 짐승보다 훨씬 발달한 동물이다.

돼지는 더운 날씨에 체온을 낮추기 위해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에 더럽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원래 습성은 도리어 깨끗한 동물에 속하며, 주로 암컷 돼지들을 중심으로 새끼들을 거느리며 십여 마리에서 수십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동료들 간의 협력, 질서, 위계 등이 발견될 정도다. 이렇게 발달한 동물이니 한반도 환경에 절묘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이런 멧돼지의 습성을 우리가 잘 이용할 수 있다면 도시에서 사람과 멧돼지가 마주쳐 위험한 일이 발생하는 문제 또한 효과적으로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11월 2일 서울의 인왕산과 안산에 살고 있는 멧돼지들을 드론을 동원해 관찰한 뒤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오전에는 주로 개나리 등의 작은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멧돼지들이 쉬고 있다가 밤이 되면 좀 더 사람 사는 곳에 가까운 곳까지 나와서 먹이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서울시 당국에도 이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하는 만큼, 서울에서 멧돼지를 특히 주의해야 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차차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좀 더 연구에 투자한다면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멧돼지를 산 바깥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만드는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 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시민들과 멧돼지들이 오랜 세월 공존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생태계를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때, 다시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먼 미래에도 여전히 한반도에는 한국인과 멧돼지가 같이 번성하고 있다면서 축복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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