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도 음악은 통했다! 모두의 마음 녹인 '서울시향 작은 음악회'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4.06.21. 13:37

수정일 2024.06.21. 17:27

조회 1,582

'서울시립교향악단 작은 음악회', 서울특별시 서남병원, 서울대학교병원, 강북삼성병원 방문
강북삼성병원 로비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서울시향
강북삼성병원 로비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서울시향

“나는 행운아인 것 같아요. 내일 암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병실에만 있지 말라고 이렇게 음악회를 열어 주잖아요. 평소 건강할 때도 공연장에 가기가 쉽진 않았는데, 여기서 음악을 들으면서 힐링할 수 있어서 내일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70대 후반 위암 수술을 앞둔 환자가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가 봐요. 위암 진단을 받았던 그날은 너무나 힘들었어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거든요. 다음날 마음을 달리 먹었어요. 그동안 순탄하게 살아왔어요. 몸이 약하게 태어나서 매일 등산도 하고 늘 긍정적으로 밝게 지내려고 노력해 왔죠. 그런 나에게 지금껏 몸도 마음도 힘들지 않게 살아왔으니 하늘이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이런 시련을 주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드시 이겨내어 건강을 되찾을 거예요.”라는 그의 말에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보였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작은 음악회 현장에서 만난 환자분의 이야기이다.
병원에 있는 환자, 환자 가족, 의료진을 위한 음악을 선사했다. ⓒ윤혜숙
병원에 있는 환자, 환자 가족, 의료진을 위한 음악을 선사했다. ⓒ윤혜숙

6월 11일 낮 12시 30분, 강북삼성병원 C관 1층 로비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공연이 열렸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작은 음악회'(이하 서울시향 작은 음악회)가 병원을 찾아 환자, 환자가족, 의료진을 위한 음악을 선사했다. 서울시향은 '작은 음악회'를 통해 일반 시민은 물론 공연장으로의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실내악 공연을 펼치고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와 그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있는 병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클래식 음악은 통했다. 낮 12시에 가까워지자 로비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로비에 마련된 무대는 협소했고,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없을 만큼 객석은 비좁았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과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도 군중 속에 뒤섞여 있었다. 병원을 바삐 오가던 수많은 사람이 작은 음악회를 알리는 세움간판을 보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음역대가 각기 다른 악기가 모여서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고 있다. ⓒ서울시향
음역대가 각기 다른 악기가 모여서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고 있다. ⓒ서울시향

마치 음악치료 같다. 음악치료는 음악을 통한 치료를 뜻한다. ‘음악’이 갖는 힘은 수술 도구가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부터, 약물 처방이 관여하지 못하는 범위의 원초적인 개선을 꾀하는 치료법이다. 음악치료엔 수동적인 음악감상부터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 등 능동적인 음악 활동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

서울시향 작은 음악회는 생사를 넘나드는 병원에서 잠시나마 환자, 가족, 의료진이 음악을 들으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자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3일 서울특별시 서남병원 대강당에서, 6월 4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이번엔 강북삼성병원에서 열리고 있다.
병원에 있는 분들이 공연을 관람하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윤혜숙
병원에 있는 분들이 공연을 관람하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윤혜숙

'작은 음악회'에 걸맞게 병원 1층 로비에 작은 무대가 마련되었다. 무대의 규모에 맞춰서 악단도 적은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플루트 송연화, 오보에 류경균, 클라리넷 정은원, 바순 최종선, 호른 김병훈, 하프 박라나가 연주자로 나섰다. 

이번 음악회에서 연주자들은 <헨델의 하프 협주곡 Bb장조 Op.4-6 1악장>, <베리 맥킴의 피콜로 협주곡 2악장>, 엔니오 모레꼬네의 <넬라 판타지아>, 해럴드 알렌의 <Over the Rainbow>, 이홍렬의 <섬집아기>, 구노의 <아베마리아>, <어게이의 5개의 쉬운춤곡 1, 3, 5악장>, 영화 <사운드오브뮤직> 메들리 등을 연주했다. 첫 곡으로 연주한 하프를 제외하곤 음역대가 높은 악기에서 낮은 악기 순으로 곡을 편성했다. 
서울시향은 6월에 세 곳의 병원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윤혜숙
서울시향은 6월에 세 곳의 병원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윤혜숙

프로그램의 곡을 하나씩 연주할 때 사회자가 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려줬다. 공연 전에 무대에 놓인 하프를 만져보고 싶어 했던 어린아이가 무대에 올라와서 하프를 만져보기도 했다.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가 가까운 작은 음악회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어린아이에게 이것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넬라 판타지아>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로 알려져 있다. 영화 <미션>에서 신부 가브리엘이 오보에로 이 곡을 연주하자 적개심을 가진 원주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해럴드 알렌의 <Over the Rainbow>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다. 작곡가가 노을진 하늘을 바라보면서 영감을 받았고,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노래했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호른으로 연주했다. 호른은 금관악기에 속하지만, 때에 따라선 목관악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바흐가 작곡한 평균율을 기반으로 작곡한 곡이다. 목관 5중주로 두 곡을 연주했다. <어게이의 5개의 쉬운 춤곡 1, 3, 5악장>,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메들리이다.
무대는 협소했지만 로비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서울시향
무대는 협소했지만 로비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서울시향

한 곡씩 연주가 끝날 때마다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 앞쪽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 많은 사람이 서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환자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큰 수술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어요. 오늘 공연을 관람하면서 긴장이 해소되면서 음악에 빠져들었어요. 저처럼 병마와 싸우는 환자에게 힐링을 주는 곡들로 선곡한 것 같아요. 지금의 평온한 마음이 내일의 수술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바입니다.”라면서 서울시향과 병원에 감사를 전했다.

공연이 끝나고 보니 병원 로비 구석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거기에 사람들이 하얀 메모지에 쓴 글이 열매가 열리듯 달려 있다. 메모를 찬찬히 살펴봤다. 병원에서 투병 중인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쓴 글이다. “엄마 우리 엄마 수술 잘 회복되어서 나랑 재밌게 살아요.”라는 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공연 직전에 만난 암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주는 응원의 메시지인 듯했다. 아무쪼록 그 분의 수술이 잘 끝나서 예전처럼 건강하게 회복하길 간절히 기원했다.
엄마의 회복을 응원하는 딸의 메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윤혜숙
엄마의 회복을 응원하는 딸의 메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윤혜숙

서울시향은 공익 차원에서 시민을 위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작은 음악회'에 이어 '우리동네 음악회', '퇴근길 토크콘서트', '행복한 음악회, 함께' 등을 통해 서울 시내 전 자치구 곳곳을 찾아가고 있다. 공연장으로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의 공연은 연주자들에겐 어려운 과제이자 도전이다. 그들의 연주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하지만 시민을 위해서 서울시향 단원들은 기꺼이 수고를 감내하고 있다.

흔히들 클래식 공연의 문턱이 높아서 부담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향은 정규 공연 외에 시민을 위한 무료 공연을 개최함으로써 클래식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병원을 찾아가서 펼치는 공연이야말로 병마와 싸우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병으로 인한 근심을 덜어주고,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준다. 또한 촉각을 다투는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에게도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서울시향이 주관하는 시민을 위한 공연 일정표가 있다. 이 일정표를 참고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무료 공연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이 또한 서울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즐거움일 것이다. ☞ 2024 서울시향 공익 공연 및 사업 일정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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