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환호 쏟아진 서울시향 '아주 특별한 콘서트' 뒷이야기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3.04.12. 14:00

수정일 2023.04.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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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던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 ⓒ윤혜숙
서울시향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던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 ⓒ윤혜숙

4월 7일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에 진입하는 외부 방문객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다양했다. 그들이 곧장 향하는 곳은 정문에서 정면으로 나 있는 계단 위의 건물이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이다. 약 2,800석으로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오늘 저녁에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아주 특별한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특별한 콘서트’는 얍 판 츠베덴 차기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 공연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의 콘서트가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서울시가 표방하는 ‘약자와의 동행’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의 하나로 '아주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윤혜숙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 프로젝트’의 하나로 ‘아주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윤혜숙

첫째, 콘서트 입장권이 전석 1만 원이다. 이른바 ‘만원의 행복’이다. 만 원이 누군가에겐 아주 큰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과 같은 고물가 시대 밥 한 끼 값도 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그런데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을 단돈 만 원에 관람할 수 있다니 크나큰 횡재라고 하겠다. 평소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으로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분들이 기꺼이 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첫 번째 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에그몬트 서곡’이었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력을 상실해갔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투혼을 발휘해서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청각장애가 생기면서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갔지만, 끝까지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베토벤의 곡을 프로그램 목록의 첫 번째로 올려둔 것은 ‘아주 특별한 콘서트’의 취지를 더욱 더 빛나게 했다. 1809년에 쓴 ‘에그몬트 서곡’은 괴테의 동명 희곡에 대한 ‘극 부수 음악’이다. ‘극 부수 음악’은 연극에 딸린 음악이라는 뜻이다. 스페인의 압제에 맞서 네덜란드의 독립을 쟁취하려 애썼던 에그몬트 백작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발달장애인 연주자 공민배와 서울시향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서울시향
발달장애인 연주자 공민배와 서울시향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서울시향

둘째, 서울시향이 발달장애인 연주자 공민배와 협연하고, 또 ‘행복한 음악회, 함께!’ 공연에 참여한 발달장애인을 비롯, 문화예술 향유에 소외된 분들을 초청했다. 서울시향은 지난 2017년 11월 최초로 ‘클래식 스페이스 함께!’라는 공연을 열었다. 2018년부터는 이 음악회를 단독 프로젝트로 전환해 매년 2회 공연을 열었다. 공연명도 ‘행복한 음악회, 함께!’로 바꿨다. 서울시향의 대표적인 사회공헌사업으로, 전문 연주자를 꿈꾸며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미래 음악가’들을 발굴해서 지원하고 있다.
공민배 군의 협연이 끝난 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공민배 군을 안아주고 있다. ⓒ서울시향
공민배 군의 협연이 끝난 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공민배 군을 안아주고 있다. ⓒ서울시향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바이올린계의 우영우’라고 불리는 공민배 군(19세)은 작년 ‘행복한 음악회, 함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되어 서울시향과 여러 번 협연한 바 있다. 멘델스존이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공민배 군이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은 기대 반, 긴장 반 그를 지켜봤다. 공민배 군은 시종일관 침착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실은 독주보다 더 어려운 게 협주일 것이다. 서울시향과 하모니를 이뤄서 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놀라울 만큼 완벽하게 자신의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가 끝난 뒤 츠베덴 감독이 공민배 군을 다정하게 안아주자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츠베덴 감독의 셋째 아들도 공민배 군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하니 공민배 군을 바라보는 눈길과 행동에 따스한 사랑이 넘쳐나고 있었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연주를 이끌어내고 있다.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연주를 이끌어내고 있다. ⓒ서울시향

셋째,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무보수로 공연하고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오스모 벤스케 감독의 후임으로 서울시향을 맡게 된 츠베덴 감독은 지난 1월 정기연주회에 이어 서울시향과 두 번째로 공연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들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사회적 취약계층과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연주회를 열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관객 입장에선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고 또 기부도 하니 일거양득의 기쁨을 누리는 셈이다.

얍 판 츠베덴 감독은 “저의 아들이 자폐증을 앓고 있어요. 장애인이 더는 소외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저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관객들이 큰 박수로 화답하면서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무대 위와 아래를 번갈아보면서 지휘했다.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무대 위와 아래를 번갈아보면서 지휘했다. ⓒ서울시향

세 번째 곡은 레스피기가 작곡한 ‘로마의 소나무’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레스피기는 로마를 주제로 한 여러 곡을 남겼다.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가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 유럽에서 위세를 떨쳤던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짚어보고 싶어 했다. 사회를 맡은 데이비드 리 부지휘자는 “작곡가가 되살아난 도시 로마의 다양한 모습을 그림처럼 표현한 작품입니다. 낮부터 밤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지는 로마의 시간을 음악을 통해 만나보게 됩니다”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마지막 곡은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다. ‘볼레로’는 하나둘씩 악기가 가세하면서 음색이 변화하는 양상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라벨의 뛰어난 관현악 편성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현악기 분야 단원들이 활로 현을 켜는 연주보다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피치카토 연주를 더 자주 보여줬다. “처음엔 혼자였던 악기가 특정한 리듬과 선율이 반복되면서 서로 이끌어주다가 끝내 커다란 화음을 만들어내듯 서울시향도 여러분의 참여와 응원이 더해질 때 아름다운 화합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데이비드 리가 설명했다.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정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연을 열었다. 공연장을 찾아준 관객과 서울시향이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자는 의미를 담아 누구나 쉽게 클래식을 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한 공연이었다.
사회를 맡은 데이비드 리 부지휘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서울시향
사회를 맡은 데이비드 리 부지휘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서울시향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한 시민은 “저는 서울시향 회원으로 가입해서 공연 소식을 받아보고 있어요. 츠베덴 감독이 지휘하는 공연을 두 번 연속으로 관람했습니다. 그는 꽤 열정적이고 역동적으로 지휘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의 공연도 기대하고 있어요. 오늘 대강당에서 연주한다고 해서 공연장의 환경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했어요. 하지만 서울시향의 연주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도 남았어요”라고 말한다.

또 다른 시민은 “약자와의 동행 취지에 맞고, 지휘자와 프로그램 선곡 모두 좋았어요. 특히 지휘자가 열정적으로 지휘하고 서울시향이 거기에 맞춰 역동적으로 연주해서 금요일 저녁 시간대에 어울리는 공연이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제가 산 입장권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또 그 돈으로 기부한다고 하니 공연을 즐기면서도 정말 뿌듯한 기분이었어요. 서울시향뿐만 아니라 다른 합창단이나 국악단 등 분야를 넓혀서 이런 취지의 공연을 자주 열어주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공민배 군은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 자신의 파트를 실수 없이 연주했다. ⓒ서울시향
공민배 군은 서울시향과의 협연에서 자신의 파트를 실수 없이 연주했다. ⓒ서울시향

마지막으로 ‘아주 특별한 콘서트’에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공민배 군의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공민배 군은 작년에 서울시향의 ‘행복한 음악회, 함께!’ 공연으로 첫 인연을 맺은 뒤 이번까지 서울시향과 4차례 공연했다. 이번 공연은 츠베덴 감독의 제의로 이루어졌다. 어머니는 “츠베덴 감독을 이번에 공연 연습하면서 세 번을 만났어요. 그때마다 민배를 안아주고 격려해줬어요”라고 말했다.

츠베덴 감독이 협연이 끝난 뒤 민배를 안아주는 장면은 관객들을 울컥하게 했다. 그런데 그게 처음이 아니었단다. 어머니는 “민배를 안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저를 보자 다독거려주셨어요.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키워봐서 나도 네 심정을 알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정말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사업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서울시가 행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과 함께 시민들의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도 개선되면 좋겠어요. 장애인을 불쌍하거나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지 말고 그냥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줬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무대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민배가 꾸준한 연습을 통해 실력도 키우고, 동시에 감동도 주는 연주자로 성장해야겠지요”라고 바람을 밝혔다.
서울시향이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오케스트라답게 지휘자, 연주자, 관객들 모두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윤혜숙
서울시향이 지향하는 모두를 위한 오케스트라답게 지휘자, 연주자, 관객들 모두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윤혜숙

클래식 공연을 즐겁게 관람한 뒤 공연으로 지급한 돈을 취약계층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어떨까?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내가 직접 실천하기 어렵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자, 연주자, 관객들 모두가 약자와의 동행 취지에 공감하고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공연이었다. 서울시향이 지향하는 모두의 오케스트라답게 클래식 공연에서도 서울시가 추진하는 약자와의 동행을 실천했다. 이런 공연이 확산하여 누구나 음악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
누리집
○ 문의 : 02-3700-6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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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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