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한강공원이 들려 주는 삼개나루 이야기

시민기자 최용수

발행일 2024.04.15. 10:11

수정일 2024.04.15. 16:30

조회 1,881

'밤 깊은 마포 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 하나 / 첫사랑 떠나 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마포(麻浦)'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1968년 은방울자매가 노래한 대중가요 <마포종점>이다. 1899년 개통하여 1968년 11월 폐선한 서울 전차 마포~청량리선의 서쪽 종점인 마포 차고지와 연인을 떠나보낸 서글픈 마음을 쓸쓸한 밤풍경을 통해 표현한 트로트 명곡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당인리 발전소, 여의도 비행장 등 당시 서울의 모습이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됐고, 서울시를 대표하는 노래로 마포어린이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마포어린이공원에 있는 마포종점 노래비 Ⓒ최용수
마포어린이공원에 있는 마포종점 노래비 Ⓒ최용수

그런데 마포는 어떤 곳일까? 진짜 마포 이야기를 한강공원에서 만났다. 마포대교 북단, 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을 따라 일산 방향으로 내려가면 쌍돛배 1척을 만난다. 조선 시대 삼개나루를 상징하는 쌍돛배이다.

삼개나루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 최대의 항구 삼개나루는 한자 '麻'(삼 마)와 '浦'(개 포)를 빌려 '麻浦(마포)'라고 기록했고, 지금은 삼개나루를 마포나루라고 부른다. 쌍돛배 주변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마포의 이야기가 조형물로 소개되어 있다.
마포대교 북단 한강공원에는 마포나루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형물 쉼터가 있다. Ⓒ최용수
마포대교 북단 한강공원에는 마포나루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형물 쉼터가 있다. Ⓒ최용수

① 한양의 대표적 명승지 마포나루

'서호의 짙은 화장 서시와도 같은데 / 복숭아꽃 가랑비가 푸른 물가에 오는구나 / 배를 저어 돌아오니 물이 겨우 반 삿대나 불었는데 / 머뭇거려도 황학은 보이지 않더니 / 문득 저기 날아오는 한 쌍의 백구'

쌍돛배 좌현에 새겨진 조선 전기 시인 서거정의 <마포범주>(麻浦泛舟)라는 시(詩)이다. 마포는 예로부터 풍경이 아름다워 마포팔경(麻浦八景)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특히 마포나루로 돌아오는 수많은 범선(帆船)의 모습 '마포귀범'(麻浦歸帆)은 빼어난 마포나루 풍경을 상징한다.
조선 시대 마포나루를 상징하는 마포 한강공원의 쌍돛배 조형물 Ⓒ최용수
조선 시대 마포나루를 상징하는 마포 한강공원의 쌍돛배 조형물 Ⓒ최용수
쌍돛배 좌현에는 마포나루 절경을 노래한 옛 시 <마포범주>가 있다. Ⓒ최용수
쌍돛배 좌현에는 마포나루 절경을 노래한 옛 시 <마포범주>가 있다. Ⓒ최용수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호수처럼 보여 마포나루 주변 한강은 ‘서호(西湖)’라 불렸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뱃놀이도 하고,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는 등 풍류를 즐기는 시인 묵객이 자주 찾았다는 설명이다. 

진경산수화 대가 겸재 정선은 1741년 <경교명승첩>에 마포팔경을 담아냈을 정도라니 당시 풍경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명승지 마포에 대한 설명은 음성(오디오)으로도 들을 수 있다. 
마포 일대 절경을 그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동호서호도> 제1폭 Ⓒ최용수
마포 일대 절경을 그린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동호서호도> 제1폭 Ⓒ최용수

② 경강상인과 마포 삼주(麻浦三主) 이야기

‘경강(京江)’이란 조선 시대 뚝섬 일대에서부터 양화나루 사이에 흐르는 강을 ‘서울의 강’이라는 의미로 부른 이름이다. 당시 경강에서 활동하며 부를 축적한 상인을 경강상인이라 불렀다.

경강상인은 시전상인과 선상 사이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객주업, 배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운업, 얼음을 매매하고 관리하는 장빙업, 국가에 세금으로 내는 곡물(조세곡) 운송 등 다양한 직종이 있었다.

경강은 점차 전국 시장의 중심이 되면서 마포에는 쌀과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와 상점이 빽빽하게 들어차 조선의 유통 중심지로 발전했다. 수많은 배가 드나들던 마포나루에는 뱃사공, 장사꾼 등이 북적거렸고, 전국 각지의 물자가 모여들어 대규모 시장이 생겼다.

뱃사람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면서 상품 보관, 물품 중개를 하는 객주(客主)가 한강 포구 가운데 유일하게 마포에서 생겨났다. 또한 뱃길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주(堂主)와 유흥가인 색주(色主)까지 생겨나면서 마포의 번영을 이끌었다. 이들을 일컬어 ‘마포삼주(麻浦三主)’라 하였고, 강변북로 담벼락에 설치된 그림에서 삼주를 볼 수 있다.
객주, 당주, 색주의 마포삼주 이야기 조형물 Ⓒ최용수
객주, 당주, 색주의 마포삼주 이야기 조형물 Ⓒ최용수

③ 어물과 상품 유통의 중심지 마포

조선 시대에는 포구와 나루, 섬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났다. 당시 한강변에도 조류가 도달하는 지점을 기점으로 위·아래 상권으로 구분되었다. 

마포는 서강, 용산 등과 함께 아랫강 상권에 속했다. 특히 수심이 깊고 유속이 일정하여 배로 운반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어 마포나루는 자연스럽게 서해안과 한강 상류를 연결하는 상품 운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포대교 북단 한강공원에 있는 엣 마포의 다양한 이야기를 말해 주는 조형물들 Ⓒ최용수
마포대교 북단 한강공원에 있는 엣 마포의 다양한 이야기를 말해 주는 조형물들 Ⓒ최용수

19세기 지리학자 김정호의 <경서오부도>와 <대동지지> 등에서도 당시에 형성된 4개의 뱃길을 잘 보여 준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뱃길과 북쪽의 의주, 개성 등에서 강화도와 인천을 통해 들어오는 3개의 뱃길이 있었다.

조선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던 한양, 도성 안까지 빠르게 해산물과 곡물을 나를 수 있는 항구인 삼개나루(마포나루)는 수도 한양의 최대 물류 중심지였다고 한다.
마포대교 북단에서 게단길을 따라 내려오면 오른쪽 일산 방향에 조형물 쉼터가 있다. Ⓒ최용수
마포대교 북단에서 게단길을 따라 내려오면 오른쪽 일산 방향에 조형물 쉼터가 있다. Ⓒ최용수

④ 마포 사람들의 생활상

마포는 젓갈, 소금, 생선, 건어물 등 해산물의 집산지였다. 그 중 새우젓의 거래가 많아 ‘마포 새우젓 장수’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당시 세간에는 '목덜미가 까맣게 탄 사람은 왕십리 미나리 장수이고, 얼굴이 까맣게 탄 사람은 마포 새우젓 장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미나리를 파는 동쪽 왕십리 사람들은 햇빛을 등지고 오게 되어 목덜미가 까맣게 탔고, 서쪽인 마포에서 새우젓을 팔기 위해 도성 안으로 갈 때는 햇빛을 마주하며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마포 새우젓 장수’라는 말이 남아 있으니 유명세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조선 시대 번창했던 마포나루 사람들의 생활상 모습 Ⓒ최용수
조선 시대 번창했던 마포나루 사람들의 생활상 모습 Ⓒ최용수

이 외에도 마포는 조선 초기부터 젓갈류와 미역, 생선 등 수산물 상인이 많아 소금 창고(염창)가 많았고, 젓갈 담는 항아리를 만드는 동막골(또는 독막)이 발달했다.

17세기에 들어 한양의 인구가 폭증하자 소금 수요가 많아지면서 한강 일대에는 새롭게 마포 염전, 경염전, 마포 염해전이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마포구 도로명 ‘독막길’은 독 짓는 마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포구의 도로명 '독막길'의 유래를 설명해 준다. Ⓒ최용수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포구의 도로명 '독막길'의 유래를 설명해 준다. Ⓒ최용수

마포 한강공원은 조선 시대 마포를 알 수 있는 한 권의 야외 역사책이다. 이곳 외에도 1백리 한강공원을 가다 보면 곳곳에 다양한 역사 문화 유적이 남아있다. 잠두봉(절두산)과 양화나루, 여의도 비행장과 공군의 아주머니 권귀옥 이야기, 노량진의 용양봉저정과 전적비, 흑석동 효사정 등 숨은 볼거리가 넉넉하다.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고 마는 것들, 자세히 보면 한강공원이 품은 역사 이야기가 보인다.
마포대교 남단 한강공원에 있는 여의도 비행장 이야기 Ⓒ최용수
마포대교 남단 한강공원에 있는 여의도 비행장 이야기 Ⓒ최용수
마포나루 인근 양화나루 한강공원에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 Ⓒ최용수
마포나루 인근 양화나루 한강공원에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 Ⓒ최용수

즐겨 쓰는 말 중 하나로 '가성비(價性比, cost-effectiveness)'가 있다.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지급한 가격에 비해 얼마의 효과를 얻는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급기야 심리적인 만족감까지 중시하는 ‘가심비(價心比)’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강공원에 설치된 역사 문화 조형물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다. 이들에 대한 가성비를 높이는 것은 오롯이 시민들의 몫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형물을 살펴보자. 서울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1백 리 한강공원 곳곳에 역사 문화를 알려주는 조형물이 있다. Ⓒ최용수
1백 리 한강공원 곳곳에 역사 문화를 알려주는 조형물이 있다. Ⓒ최용수

시민기자 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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