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모두 어르신! 건강하고 맛있는 '인생100반' 비결 (feat.동행식당)

시민기자 이선미

발행일 2024.03.15. 13:06

수정일 2024.03.15. 11:14

조회 1,843

영등포에 따뜻한 맛집이 생겼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인생100반’이다. 일부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식당을 찾아갔다. 영등포구청역 한적한 골목에 문을 연 식당은 작지만 깔끔했다.
모든 직원이 어르신인 식당 ‘인생100반’이 문을 열었다. ©이선미
모든 직원이 어르신인 식당 ‘인생100반’이 문을 열었다. ©이선미
든든한 집밥 메뉴들이 눈에 띈다. ©이선미
든든한 집밥 메뉴들이 눈에 띈다. ©이선미

점심 손님이 다 빠져나간 식당에는 한 팀만 남아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니 근처 병원 직원들인 것 같았다. 한 어르신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와 손님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영등포시니어클럽의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지원하는 ‘인생100반’ 식당 ©이선미
영등포시니어클럽의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지원하는 ‘인생100반’ 식당 ©이선미

‘인생100반’ 메뉴는 산들비빔밥과 제육정식, 된장찌개와 만둣국 등이다. 직원은 모두 어르신들이다. 조금 천천히 해도 편안해 보였다. 손님들이 거의 식사를 다 한 것 같아서 말을 건네 보았다. “자주 오세요?” “지난 주에 처음 알았어요. 우리 병원 직원들은 벌써 많이들 오셨더라고요.” “음식은 어떠세요?” “딱 집밥? 그런 맛이에요. 든든하고 좋아요.” “어르신들이 하시니까, 진짜 집밥 먹는 거 같아요.” 기자도 늦은 점심으로 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제육정식을 주문했다. 다녀간 이들의 후기에 "음식이 맵지 않아서 좋았다"는 평이 있었는데, 제육정식이 의외로 매콤했다. 오히려 식욕이 당겼다. 함께 나온 반찬과 된장국도 잘 어울려 그릇을 다 비웠다.
‘인생100반’의 대표적인 메뉴 ‘제육정식’ ©이선미
‘인생100반’의 대표적인 메뉴 ‘제육정식’ ©이선미

점심시간이 지나면 오전과 오후 근무자가 교대한다. 근무를 마친 어르신들이 환한 표정으로 앞치마를 벗고 외투를 걸치셨다.
“우리는 퇴근합니다~”

점심시간에 식당을 도우러 나온 시니어클럽 김영진 사회복지사가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보셨어요? 퇴근하실 때는 백화점에 가시는 것처럼 변신하세요.”

‘인생100반’영등포시니어클럽의 시장형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영등포시니어클럽에서는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꽃할매네’를 통해 반찬류와 샌드위치, 도시락 등을 판매해 왔다. ‘인생100반’은 ‘꽃할매네’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많은 음식을 해야 하고 현장에서 서빙도 해야 하므로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고 단체 급식 등 경험이 있는 어르신들이 우선 채용된다. 현재 20여 명이 조를 나눠 돌아가면서 근무한다. 매일 직원들이 교대하다 보니 음식 맛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늘 오는 손님들은 그런 차이 또한 반가워한다. 물론 기본이 되는 국물이나 제육볶음 양념 같은 경우는 한꺼번에 준비한다.
어르신 20여 명이 조를 나눠 근무를 하고 있다. ©이선미
어르신 20여 명이 조를 나눠 근무를 하고 있다. ©이선미

점심시간에는 영등포시니어클럽에서 지원을 나오고, 오후에는 서포터즈가 그 일을 이어서 한다. 현재 영등포시니어클럽에서는 따릉이 대여소 환경정비 등에 참여하는 '공익형' 일자리와 ‘인생100반’ 같은 '시장형' 일자리, 그리고 공공행정지원단 같은 '사회서비스형' 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오후에 근무하는 서포터즈 역시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참여자로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하나이다.

영등포시니어클럽에서는 지원자들과 면담을 통해 적재적소에 일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주방에서 오후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서포터즈는 컵과 숟가락 등을 확인하는 등 식당 안을 점검한다.
서포터즈가 집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서포트즈 또한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의 일환이다. ©이선미
서포터즈가 집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서포트즈 또한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의 일환이다. ©이선미

주변에 사는 분들에게는 이미 입소문이 난 것 같았다. 구청이 바로 옆이다 보니 구청 직원들도 자주 찾고, 근처 병원 직원들도 단골이 되었다. 주변의 상인들이 아는 분들을 모시고 오기도 한다. 포장도 곧잘 해간다.

기본 메뉴들이 다 8,000원인데 65세 이상이면 1,000원이 할인된다. 친구 여럿이 와서 식사를 한 어르신들이 할인이 된다는 걸 알고는 "돈 벌었다"며 즐거워한 적도 있다.
‘인생100반’에서는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1,000원을 할인해 준다. ©이선미
‘인생100반’에서는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1,000원을 할인해 준다. ©이선미

‘인생100반’은 올해 동행식당으로 지정돼 저소득 어르신에게 식사를 제공하고도 있다. 독거 어르신 등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주 5회, 한 끼 최대 8,000 원까지 사용 가능한 급식 카드로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데, 현재 영등포구에는 총 18곳이 동행식당으로 지정돼 있다.
‘인생100반’은 저소득 어르신을 위한 '동행식당'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선미
‘인생100반’은 저소득 어르신을 위한 '동행식당'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선미

오후 근무자들이 준비를 마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후에는 라면과 꼬마김밥 등 저녁 특선도 먹을 수 있다. 꼬마김밥을 싸는 어르신의 손길이 좀 긴장돼 보였다.

“항상 큰 김밥만 싸왔는데 쪼끄만 김밥을 싸보니 쉽지 않네요. 밥 양도 그렇고 재료도 그렇고, 손에 쥐어지지도 않거든요.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죠.”

집에서 싸는 김밥에 비하면 정말 아이들 소꿉놀이 같은 꼬마김밥이라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처음 배우는 것처럼 어르신은 김밥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셨다.
오후에 선보이는 꼬마김밥 메뉴를 위해 어르신이 정성스레 김밥을 말고 있다. ©이선미
오후에 선보이는 꼬마김밥 메뉴를 위해 어르신이 정성스레 김밥을 말고 있다. ©이선미

‘인생100반’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은 다양하다. 그야말로 소일거리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생계형 취업이 필요한 어르신도 있다. 저마다 사는 게 다르지만, 식당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길 나눌 시간이 없으니 오히려 다들 잘 어울려 일하신다고 한다.  
영등포시니어클럽 누리집의 ‘인생100반’ 안내 ©영등포시니어클럽
영등포시니어클럽 누리집의 ‘인생100반’ 안내 ©영등포시니어클럽

급속히 고령화된 사회에서 노령 인구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못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청년들에게 넘겨지게 된다. 어르신들이 경험을 전하고 나눌 수 있는 이런 일자리가 지자체마다 더 확대되면 어르신 경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다.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밖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든든해지고 당당해진다. 일상의 활력이 생기니 정신건강까지 좋아진다. ‘인생100반’에서 잠시 뵌 어르신들 역시 조금 수줍지만 아주 즐거운 표정이었다. 제2, 제3의 ‘인생100반’이 기대되는 이유다. 

영등포시니어클럽 ‘인생100반’

○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로 31길 16-1, 1층
○ 영업시간 : 평일 11:00~19:00 (토·일요일 휴무)
○ 메뉴 : 산들비빔밥, 제육정식, 된장찌개정식, 육개장정식, 만두국, 저녁특선(라면&꼬마김밥, 국수&꼬마김밥, 떡라면) 등
○ 문의 : 02-6925-7089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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