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이 잠시 깜깜해지는 순간 (ft.에디슨과 테슬라)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4.02.29. 15:18

수정일 2024.03.13. 14:41

조회 2,542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3)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에서 에디슨과 테슬라를 만나다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서울역에서 남영역을 지날 때 전기가 끊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역에서 남영역을 지날 때 전기가 끊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가 서울역에서 남영역을 지날 때가 되면, 전기가 잠깐 끊긴다면서 조명이 어두워지거나 냉방이 중단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에 전기를 잘 쓸 수 없게 만드는 무슨 방해전파 같은 것이라도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일까? 이런 구간은 서울역 근처 외에도 몇 군데가 더 있다. 청량리역에서 회기역 사이, 선바위역에서 남태령역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이 현상의 이유를 설명하자면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서울의 옛 도심 지역에서 전철이 사용하는 전기 방식과 그 바깥의 전기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방식의 전기를 받아 오기 위해 장치를 조작해 바꾸는 동안 혹시라도 무슨 사고나 고장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잠깐 외부에서 들어 오는 전기를 끊은 채로 전철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을 수리할 때 전원선을 뽑아 놓고 작업을 하고, 집안의 전기 배선을 고칠 때 두꺼비집을 내려놓고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 도대체 왜 두 지역 간에 쓸데없이 귀찮게 다른 방식의 전기를 사용하는 것일까? 그나마 선바위역에서 남태령 사이의 구간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이기 때문에 행정구역 차이 때문에 다른 방식의 전기를 사용하는 것인가, 짐작해 볼 만도 하다. 그러나 청량리역과 회기역 사이,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는 같은 서울 아닌가?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서로 다른 전기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차이가 난다는 말일까?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에
전기를 잘 쓸 수 없게 만드는
무슨 방해전파 같은 것이라도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일까?

과학자들이 마음 놓고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화학자 볼타가 처음으로 배터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볼타의 이름을 따서 전압의 단위를 볼트라고 부른다. 때문에 전기의 기본은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개발된 전기를 이용하는 여러 도구들도 대부분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기로 작동하는 물건들이었다.

TV 리모콘이나 휴대용 마우스 같은 곳에 끼워 넣는 배터리를 보면, +극과 -극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기는 +전기와 -전기가 나오는 곳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전자 제품은 보통 배터리의 +전기와 -전기를 정확하게 맞혀서 끼워야만 제대로 작동한다. TV 리모콘 등의 제품은 배터리를 거꾸로 끼우면 아예 작동이 되지 않는다. 혹시 어릴 때 배터리를 넣어서 움직이는 작은 조립식 레이싱카를 만들어서 갖고 논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터리를 거꾸로 넣으면 전기 모터가 거꾸로 돌고 레이싱카가 거꾸로 움직이는 것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가 나오는 콘센트를 보면 +나 -가 표시되어 있지는 않다. 전원선을 꽂을 수 있는 곳에 구멍이 두 개 있기는 하지만 설령 전원선을 반대로 꽂는다고 해도 가전제품은 그대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콘센트에서 나오는 전기는 +전기와 -전기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전기다. 한국의 경우, 1초에 60번씩 빠른 속도로 +전기와 -전기가 교대로 바뀌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전기를 교류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 - 표시를 해 놓지도 않고, 플러그를 반대로 꽂아도 별 차이가 없다.

많은 가정용 전자제품은 그 속에 이렇게 바깥에서 들어온 교류 전기를 내부에서 다시 배터리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평범한 전기로 바꿔 주는 장치가 달려 있다. 이런 장치를 만드는 것은 귀찮고 번거롭다. 물론 전자제품을 만드는 비용도 올라가고 무게도 무거워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쓸데없이 +, - 전기가 자꾸 바뀌어서 헷갈리기만 하는 교류를 왜 사용하는 것일까?

교류 전기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 -극이 빠르게 바뀌는 전기가 전압을 바꾸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자기 유도’라고 하는 전자기학 원리 덕택이다. 전압을 바꿔서 전기를 고압선에 실어 보내면 멀리까지 별 손실 없이 전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까 발전소에서 전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멀리 있는 도시 지역까지 고압선을 이용해서 많은 전기를 뿌려 주는 방식을 사용하려면 전압을 높일 수 있는 교류를 사용해야만 손해가 없다. 만약 고압선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배터리에서 나오는 정도의 직류를 그대로 멀리 보내면, 몇 킬로미터 정도만 전기를 보내도 거의 아무 전자 제품도 작동시킬 수 없을 정도로 손실이 심해진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교류 전기를 다루는 것이 너무 어려워 직류 전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가정용 전구를 개발해 대량 생산해 판매하면서 처음으로 전기 사업을 크게 벌인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역시 직류를 이용해서 최초의 전기 사업을 했다. 에디슨은 전구에서부터 사람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녹음기나 영화를 촬영하고 보여 주는 장비까지 전기로 만들 수 있는 별의별 도구를 다 만들었는데, 그런 식으로 전기가 갖가지 신기한 도구를 움직이는 데 쓰이다 보니 전기로 사람이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을 개발해 보자는 발상도 세계 곳곳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운행된 도시 내부의 대중교통 수단은 전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시대인 1899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한 서울의 전차가 최초의 시내 대중교통이다. 1899년이면 세계적으로도 전철이 운행된 것으로는 상당히 빠른 시기여서, 일본의 도쿄나 중국의 베이징에서 전차가 다닌 것보다도 오히려 서울의 전철 개통이 더 이르다.
돈의문으로 지나가는 전차 (출처: 돈의문 밖, 성벽 아랫마을; 역사·공간·주거)
돈의문으로 지나가는 전차 (출처: 돈의문 밖, 성벽 아랫마을; 역사·공간·주거)

지금은 지친 출퇴근 시간 때마다 지겹게 타는 전철이지만 1899년, 말이나 가마를 타고 다니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전철은 너무나 신기한 기계여서 전국에서 전철을 타려고 서울에 찾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1899년은 토머스 에디슨이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전구로 사업을 시작한 지 채 20년이 되지 않았을 시기다. 그만큼 19세기 후반, 전기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빨랐다. 1969년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처음 달에 착륙한 지 20년 정도가 지난 1999년에 우주로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시대가 찾아왔다고 한다면 그 정도 느낌이 날 것이다.

자연히 19세기에 운행을 시작한 전철은 대체로 다루기 쉬운 직류 전기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았다.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교류 전기를 이리저리 바꾸는 장치를 전철 속에 탑재하거나 교류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안전하게 시내에 설치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899년 서울 최초의 전철도 직류 전기를 이용해서 움직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류는 조금씩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에디슨의 라이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니콜라 테슬라가 교류를 연결해도 잘 돌아가는 효율적인 전기 모터를 개발하면서 교류로도 쓸만한 장치를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지금도 테슬라라는 말이 전기 자동차 브랜드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는 한때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시작한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에디슨은 미국 태생이고 테슬라는 세르비아 출신의 이민자라는 점, 에디슨은 실험과 현장 일에 밝은 사람이고 테슬라는 수학과 이론에 더 밝은 사람이었다는 점, 에디슨은 사업 수완이 뛰어났고 테슬라는 외계인과의 통신을 꿈꾸는 등의 몽상가 기질이 강했다는 점, 하다못해 에디슨은 여러 차례 결혼을 했는데 테슬라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점까지 두 사람은 대조되는 점이 많다. 그러면서도 둘 다 전기를 연구한 과학기술인으로 큰돈을 번 인물이고 대중들에게 신기한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으로 인기가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라이벌 관계로 둘의 사연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

마침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라는 미국 사업가에게 여러 기술을 제공했고, 결국 웨스팅하우스는 교류 전기 기술을 이용해서 에디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데 성공했다. 말하기에 따라서는 바로 그때 에디슨을 꺾은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우리가 가정에서 쓰는 전기가 교류 방식이 된 것이다.

이후 교류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서, 지금은 대부분의 전철, 열차, KTX 등등이 모두 교류 전기를 이용해서 움직이고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만 하더라도 남영역부터는 2만5천 볼트의 고압 교류 전기를 이용해서 움직인다. 그렇지만 1971년 건설된 1호선 도심 구간에는 아직도 옛날 방식의 훨씬 낮은 전압의 직류 전기로 전철이 움직이는 지역이 남아 있다.

1971년 당시만 하더라도 더 단순하고 쉽게 지하철을 개통하기 위해서는 직류가 더 좋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교류를 사용할 경우 그 시절 기술로는 교류 전기 때문에 주변 통신선이 교란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통신 관할 부서에서 걱정한 것이 1970년대 초에도 직류를 택한 이유였다고 한다.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술을 개발하며
치열하게 다투던 두 과학기술인의 작품이
100년이 훨씬 넘게 지난 지금
서울에서 잠깐 다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상상해 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마침 지하철 1호선의 직류 전기 구간은 1899년 조선시대의 서울 전차 운행구간과 많은 부분 겹친다. 1899년은 에디슨과 테슬라 두 사람 모두 활발히 일하던 시대다. 그렇다면,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를 지나며 잠깐 전기가 끊길 때 그 잠깐의 정적 동안,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술을 개발하며 치열하게 다투던 두 과학기술인의 작품이 100년이 훨씬 넘게 지난 지금 서울에서 잠깐 다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상상해 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서울역에서 출발한 전철은 에디슨의 시대를 달려가고 있다면 잠깐 전기가 끊긴 구역을 지나 전철이 남영역에 들어서면 그때는 테슬라의 시대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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