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꽃 숨었다" 사라진 복숭아꽃, 살구꽃…실은 다 같은 벚나무?

곽재식 교수

발행일 2024.03.13. 15:30

수정일 2024.03.13. 16:25

조회 4,391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4) 서울 거리의 벚나무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흐드러지게 핀 서울 현충원의 벚꽃
흐드러지게 핀 서울 현충원의 벚꽃

18세기 기록인 ≪경도잡지≫라는 책을 보면 당시 서울에서는 매년 봄이 되면 꽃놀이 비슷한 구경 놀이 문화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 시대 조선 사람들이 봄철 서울 명물로 꼽아 놓은 것은 성북동의 복숭아꽃, 동대문 밖의 버드나무, 서대문 천연정의 연꽃, 필운대의 살구꽃, 삼청동 탕춘대의 물과 돌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니며 그 모든 구경거리를 하루 만에 다 구경하면 봄철 풍경 감상을 잘 끝냈다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요즘 도시의 봄 꽃놀이라고 하면 아파트 단지나 거리 이곳저곳 피어 있는 벚꽃을 구경하는 것, 그 한 가지 유행만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좀 단조롭다. 비교해 보자면 오히려 18세기 조선의 꽃놀이가 다채로운 느낌이다. 나는 이런 문화가 지금 다시 부활될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어느 곳부터 구경을 시작해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돌며 구경하는지를 서로 달리한다면 꽃놀이를 더욱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하려면 거리마다, 동네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나무와 꽃을 심어서 길러야 한다. 서울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옛 구경거리들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급하게 거리에 꽃나무를 심을 때에는 그저 벚꽃으로 다 뒤덮어 버린 것이 지금 도시의 풍경이다.

나는 벚꽃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는다. 벚꽃은 일본에서 워낙 사랑받는 꽃이고, 한국의 도시에 벚꽃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일본의 영향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정작 일본 왕실에서 상징으로 사용하는 꽃은 벚꽃이 아니라 국화인데다가, 원래 한국에 벚꽃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벚꽃을 좋아하는 나라가 일본뿐인 것도 아니다.

세계 전체를 놓고 보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꽃나무가 벚나무라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나라는 아마도 ‘튀르키예’일 것이다. 왜냐하면 벚꽃의 열매가 체리인데 튀르키예는 체리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재배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세계 제1의 체리 생산국으로 벚나무를 길러 매년 50만 톤 이상의 체리를 수확한다. 때문에 튀르키예 과학자들은 다양한 품종으로 개발한 여러 색다른 벚나무를  갖고 있으며 튀르키예 농민들 중 상당수가 말 그대로 벚꽃으로 먹고 산다. 그러니 튀르키예야말로 벚꽃의 나라이고, 벚나무는 무엇보다도 튀르키예를 상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본 사람들이 장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장미를 한국 사람들만 싫어해야 한다고 여길 필요가 없듯이, 벚꽃은 벚꽃으로 즐기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왼쪽 왕벚나무(꽃자루가 김), 오른쪽 살구나무(꽃받침이 젖혀짐)
왼쪽 왕벚나무(꽃자루가 김), 오른쪽 살구나무(꽃받침이 젖혀짐)

그런데 생물학을 좀 더 살펴보면 서울에서 가장 흔한 봄 꽃나무가 벚나무가 된 것은 역시 너무나 아쉽다. 그 이유는 벚꽃의 진화와 유전에서 나타나는 계통의 특징 때문이다.

벚꽃은 ‘벚나무 속(genus)’으로 분류되는 ‘종(species)’이다. 종은 동식물의 종류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로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분류다. 그리고 속은 비슷한 종들을 묶어 놓은 조금 더 넓은 분류다. 그렇기에 보통 하나의 속에는 몇 가지 종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소나무 속이라는 분류에는 해송, 리기다소나무, 테다소나무 같은 서로 다른 종들이 포함되어 있다. 버드나무 속이라는 분류에는 왕버들, 갯버들, 수양버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속이 같으면 그냥 비슷한 생물이라고 치고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생물학에 어지간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길에서 소나무를 보고 그냥 소나무를 보았다고 하지 굳이 정확하게 “테다소나무를 보았다”는 식으로 종까지 세밀하게 구분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남산 위에 저 리기다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하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공원에는 물가의 버드나무가 보기 좋다”라고 하지, 굳이 “그 공원에는 왕버들이 보기 좋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같은 속으로 분류되는 종끼리는 얼핏 봐도 비슷하고 닮아 보인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같은 속으로 분류되는 종들은 최근까지 비슷한 생물이었고 진화를 통해 종류가 갈라져서 서로 다른 종으로 변했을 거라고 추측하곤 한다.

다시 말해, 같은 속으로 분류되는 종끼리는 좀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이 같아지고 촌수를 따져 보면 아주 먼 친척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왕버들과 수양버들은 먼 옛날에는 한 가지 생물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진화해 가면서 서로 조금씩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떤 자손은 왕버들이 되고, 어떤 자손은 수양버들이 되는 식으로 나뉘어졌다고 보면 된다.
벚꽃은 ‘벚나무 속(genus)’으로 분류되는 ‘종(species)’이다.
‘종’은 동식물의 종류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로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분류다.
그리고 ‘속’은 비슷한 종들을 묶어 놓은 조금 더 넓은 분류다.
그렇기에 보통 하나의 ‘속’에는 몇 가지 ‘종’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벚나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종에는 무엇이 있을까? 벚나무 속을 대표하는 벚나무와 함께 복숭아, 살구, 자두 등의 종이 벚나무 속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숭아, 살구, 자두, 벚꽃은 멀지 않은 과거에는 한 가지 생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해송이나 테다소나무를 소나무 속이라고 그냥 소나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할 게 없다면, 복숭아나 살구를 벚나무의 일종이라고 불러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는 말도 해볼 수 있다. 

언뜻 벚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어떻게 비슷한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체리 나무 즉 벚나무와 복숭아, 살구, 자두 등은 모두 씨앗이 유독 굵은 열매가 열린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봄철에 분홍색 꽃이 핀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참고로 아몬드나무 역시 벚나무 속으로 분류되는 종이다. 아몬드의 맛만 보고 아몬드가 땅콩 비슷한 식물일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몬드도 벚나무처럼 생긴 나무에서 열리는 작물이다. 자두 씨앗, 살구 씨앗처럼 생긴 아몬드 열매 속의 씨앗을 까서 우리가 먹는 아몬드를 채취하기 때문에 보통 나무 열매처럼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당연히 아몬드꽃도 벚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며, 한국 사람들이 벚꽃 구경을 하듯이 미국의 몇몇 아몬드 농장에서는 아몬드 꽃놀이 행사를 열기도 한다.
벚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아몬드꽃. 미국의 몇몇 농장에서는 아몬드 꽃놀이 행사를 열기도 한다.
벚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아몬드꽃. 미국의 몇몇 농장에서는 아몬드 꽃놀이 행사를 열기도 한다.

돌아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현대 서울에 가득한 벚나무 대신 벚나무와 아주 가까운 벚나무 속의 일종인 복숭아, 살구를 대신 길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서울 시민들이 봄꽃 하면 벚꽃을 쉽게 떠올리듯이, 과거에는 그대로 벚꽃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벚나무 속 식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친숙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고향의 봄> 가사에도 봄을 상징하는 꽃으로 “복숭아 꽃, 살구 꽃”이 맨 먼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따져 보면 재미난 것이, 자두는 벚나무 속으로 분류되는데, 자두를 ‘오얏’이라고도 하고 한자로 이(李)라고도 하므로 이성계의 후손인 조선 왕실에서 대한제국 시절에 자두꽃을 상징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즉, 오히려 일본 왕실의 상징은 벚나무와 아무 관계 없는 국화이고 조선 왕실의 상징이야말로 벚나무 속 식물의 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서울 거리에 벚나무가 많다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원래 동네마다 다른 꽃나무들이 피어 있어서 다채로운 구경거리가 되었던 여러 가지 벚나무 속 식물들의 옛 풍경이 사라져 버린 것은 무척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다. 이렇게 한번 사라진 식물들을 다시 아름다운 풍경으로 되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무를 기르고 꽃나무가 많은 풍경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멋진 건물이나 테마파크를 짓는 일은 돈만 들이면 금방 끝내서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 하지만, 공원이나 길거리의 나무를 바꿔서 시민들의 눈에 들 만큼 풍성하게 가꾸려면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이런 일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사라진 풍경을 더 멋진 모습으로 되살리고 싶다면, 과학 기술의 힘도 꼭 필요하다. 지금 당장 아무렇게나 복숭아나무를 구해서 성북동 거리에 잔뜩 심는다고 해서 그 나무들이 멋드러지게 자라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도시에서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나려면 자동차 매연과 빌딩 그늘에서도 잘 자라날 수 있는 습성을 갖추어야 한다. 보도블록 땅 밑에서 뿌리를 내리고 잘 살 수 있어야 하고, 비료나 물을 애써 맞춰 주지 않아도 건강하게 버틸 수 있어야 도시 거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서울 거리에 벚나무가 많다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원래 동네마다 다른 꽃나무들이 피어 있어서
다채로운 구경거리가 되었던
여러 가지 벚나무 속 식물들의
옛 풍경이 사라져 버린 것은 무척 안타깝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 꽃놀이를 21세기에 멋지게 되살리려면 도시 가로수로 걸맞는 복숭아나무 품종, 살구나무 품종을 찾아야 한다. 시민들이 보기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려면 나무의 높이나 가지가 뻗는 모습, 꽃의 크기나 꽃이 피는 시간도 적합해야 한다. 만약 마땅한 품종이 없다면 육종학 기술이나 생명 공학을 활용해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야 할 수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튀르키예에서 많은 체리를 수확할 수 있고 일본 사람들이 동네마다 벚꽃 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벚나무 품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쯤이 되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벚꽃만큼 아름답게 만발한 거리를 하루종일 걸으면서 동네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될까? 쉽지는 않은 일일 것 같다. 어쩌면 처음에는 길가 한 켠에 옹기종기 심은 나무 몇 그루와 복숭아를 올린 디저트를 파는 가게, 살구로 만든 음료를 파는 가게를 갖추는 정도로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시의 꽃나무에 대한 고민은 언제든 가치 있는 연구 대상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커다란 관광지를 조성하는 것도 좋지만, 가로수나 계단 같은 도시의 작은 물건들이 개성을 드러내도록 가꾸는 것 또한 돌아보면 사람들이 도시에 대해 애착을 갖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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