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마을굿, '밤섬 부군당제'를 가다

시민기자 조한상

발행일 2024.02.16. 09:00

수정일 2024.02.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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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굿은 마을의 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굿이다. Ⓒ조한상
도당굿은 마을의 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굿이다. Ⓒ조한상

설 다음날, 아직은 다소 쌀쌀한 아침 10시. 마포 창전동에서 열리는 밤섬 부군당 도당굿을 보러 갔다. 도당굿은 마을의 태평과 풍요를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굿의 하나로, 마포 창전동에서 열리는 도당굿은 밤섬 이주민들과 그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밤섬은 고려 시대 유배지로 약 6백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며, 섬 어귀 바위언덕에 수호신을 모신 부군당이 있어 해마다 굿을 해 왔다고 한다. 1968년 여의도 개발 사업 때 밤섬이 폭파된 후 약 60여 세대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이어 오고 있으며, 특히 지난 2005년에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밤섬 부군당 도당굿은 1968년 여의도 개발 사업 때 밤섬이 폭파된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조한상
밤섬 부군당 도당굿은 1968년 여의도 개발 사업 때 밤섬이 폭파된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조한상

어렵게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벌써부터 익숙한 타악기 소리들이 들려온다. 아파트 단지의 한쪽에 차려진 작은 공간에는 벌써 제사 상차림이 완료되어 있고, 그 입구와 주변에는 시루떡과 명태포, 그리고 왠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삼지창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이주 당시 함께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이 명판에 새겨져 있어서, 이 공간의 유래와 당시의 분위기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크게 불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비록 한양 가까이에 살았지만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일제 치하를 거쳐 한국전쟁을 지나 1968년까지 조상들의 얼과 함께 살아 오던 삶의 터전을 근대화란 시대의 이름 아래 떠나야만 했던 상황을 상상해 본다면, 어쩌면 당시에는 그만큼 절실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도당굿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제사 상차림 Ⓒ조한상
도당굿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제사 상차림 Ⓒ조한상
장구 가락에 맞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가 흘렀다. Ⓒ조한상
장구 가락에 맞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가 흘렀다. Ⓒ조한상

굿은 먼저 당주를 맡은 사람의 집에서 당주굿을 하며 시작한다. 먼저 무당들과 악사, 제관들이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행위를 하는데, 이는 부정을 막는 의례로 다른 지역의 '돌돌이'와 유사한 기능이라고 한다.

그렇게 다시 부군당으로 돌아오면, 이윽고 장구 가락에 맞춰 무당의 소리가 시작된다. 언뜻 또렷하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결국 마을의 대소사와 관련해 여러 신들에게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얼굴에서 여유와 웃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요 어르신들로 보이는 세 분에게 다가가 그들의 소원을 물어 보고, 위로하며 걱정 말라고 하는데, 그 중 한 분은 백발의 모습으로 취직 좀 하고 싶다는 말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 주셨다.
처음으로 마을굿을 경험해 보았다. Ⓒ조한상
처음으로 마을굿을 경험해 보았다. Ⓒ조한상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지켜본 마을굿이었다. 비록 도시에서만 살아온 시간들이었지만 잘 돌이켜보면 분명 어린 시절 어느 순간에선가 굿을 하는 순간을 지나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문득 이런 행사를 찾아오게 된 것일까. 그것도 과학과 이성의 시대를 넘어 어느새 최첨단의 정보통신이 인공지능과 우주여행의 시대를 열고 있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나이 먹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키오스크 앞에서 어렵게 음식을 주문하는 시대이지만, 그런 시기 속에서 자꾸만 생각이 더 이상 앞으로 가기를 꺼려하게 되는 시대, 오히려 더 많이 과거를 지향하며 그 속에서 편안함과 미소를 찾게 되는 시기를 맞이했다는 생각을 외면하기 어렵다.

또 어쩌면 그 시간들 속에서 현재가 아닌 다른 차원에 대한 의미와 기대를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신이란 이름으로 무시하고 지나쳐 버린 시간들 속에 지금이라도 함께 찾아보고 싶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싶은 것일지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분명했던 것은, 이 기회를 통해 여전히 가족과 주변분들에게 모두 편안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기도했다는 점이다.
도당굿이 열린 밤섬 부군당제 Ⓒ조한상
도당굿이 열린 밤섬 부군당제 Ⓒ조한상

시민기자 조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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