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시장을 매일 밤 재즈로 물들이는 '이곳'의 정체는?

시민기자 박지영

발행일 2023.01.30. 13:55

수정일 2023.01.31. 09:20

조회 5,916

용산구 후암로에 위치한 후암재래시장에는 라이브 재즈클럽 '사운드독'이 자리하고 있다.
용산구 후암로에 위치한 후암재래시장에는 라이브 재즈클럽 '사운드독'이 자리하고 있다. ⓒ박지영

얼마 전 외국에서 한국으로 설을 보내러 온 지인과 후암시장을 찾았다. 서울역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후암시장은 주민들과 인근 회사원들에게는 맛있는 먹거리와 유용한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동네시장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 큰 규모의 남대문시장이 있어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아니다.

한국 동네시장이 처음인 지인이었다면 당연히 서울 대표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을 가는 게 더 좋겠지만, 후암시장을 찾은 이유는 다른 곳엔 없는 특별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후암시장 내 라이브 재즈 클럽, 사운드독(Sound dog)

후암시장은 규모는 작지만 서울역에서 가깝고, 사거리 한쪽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도로를 따라 크고 작은 매장들이 연이어 있어 어떤 품목을 취급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라이브 재즈클럽 '사운드독'은 바로 이곳 후암시장에 자리하고 있다. 시장에서 와인이나 특별한 굿즈를 판다는 말은 기사로 종종 접해왔지만 재즈클럽이 있다는 말은 생소했다. 잠시 ‘시장 분위기와 어울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기우였다. 재즈클럽 사운드독은 시장과 상생하며 잘 스며들고 있었다.
후암동 골목길과 이어지는 후암재래시장은 도심 속 현대화된 재래시장이다.
후암동 골목길과 이어지는 후암재래시장은 도심 속 현대화된 재래시장이다. ⓒ박지영
보도를 따라 간판이 잘 정비되어 있어 시장에서 어떤 물건을 취급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보도를 따라 간판이 잘 정비되어 있어 시장에서 어떤 물건을 취급하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박지영
시장 대표 먹거리인 떡볶이와 순대. 제로페이와 온누리상품권 결제가 가능하다.
시장 대표 먹거리인 떡볶이와 순대. 제로페이와 온누리상품권 결제가 가능하다. ⓒ박지영

후암시장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 반 정도. 평소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공연이 진행되지만, 방문 당일은 아티스트들의 현장 조합으로 즉흥연주가 진행되는 ‘잼데이(JAMDAY)’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가 넓지 않아 좌석 사전 예약은 필수였는데, 기자도 SNS를 통해 연락처를 찾아 문자를 보낸 후, 공지된 계좌로 1인당 1만 5,000원의 공연 예약비를 보내고 좌석을 확정 받았다.

긴 공연에 대비해서 배를 채우기 위해 먼저 주변 시장을 둘러본 후, 시장 입구 분식집에 들어가 떡볶이, 순대, 튀김 등을 먹고 제로페이(모바일 상품권)로 결제했다. 분식집엔 아이와 함께 온 엄마, 어르신 등 연령대가 다른 시민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오가던 학생들이 어묵이나 튀김을 가볍게 즐겼는데 음식도 맛있고 매장도 깨끗했다. 무엇보다 시장 분식집만의 정겨움이 있어 더욱 좋았다.

모든 좌석이 1열인 음악 놀이터

재즈클럽에 들어서면 포스트잇으로 적힌 예약석이 있다. 안내를 받고 좌석에 앉아 음료를 주문하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는데, 클럽 안은 이미 사람들로 차 있었다. 드문드문 좌석에 놓인 개인 악기가 눈에 띄어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인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연주자들의 악기였다. 규모가 작아 연주자석과 관람객석이 별도로 구분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운드독 외관. 시장 안쪽 길을 따라 들어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운드독 외관. 시장 안쪽 길을 따라 들어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박지영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이라 공연 전, 후에도 머물 수 있다.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이라 공연 전, 후에도 머물 수 있다. ⓒ박지영

첫 밴드가 소개된 후 연주가 진행되는 사이, 한쪽에서는 클립보드가 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잼데이 공연에 참여할 연주자들의 이름과 악기를 적는 용도였다. 드럼, 피아노, 베이스로 구성된 첫 밴드의 연주가 끝난 후에 마이크를 잡은 연주자가 다음 연주자의 이름을 호명하면, 그가 연주하고자 하는 곡에 맞춰 필요한 포지션을 지닌 연주자를 즉석에서 물색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주자 밴드는 즉석에서 선곡하고, 즉흥 연주를 선보이는데 이것이 잼데이의 가장 큰 묘미였다.

라이브 연주를 좋아하지만 심도 있게 듣는 편은 아니었는데, 곡을 잘 몰라도 리듬에 몸을 맡기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이날의 기억은 아주 좋았다. 똑같은 밴드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연주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날은 악보 없는 즉흥 연주에, 낯선 조합의 연주자가 하나의 팀을 이뤘을 때의 시너지까지 더해져 기대 이상의 재즈를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공연을 보는 내내 무림 고수들의 대결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모인 연주자들이 즉흥으로 곡을 연주하며 기대 이상의 재즈 연주를 만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모인 연주자들이 즉흥으로 곡을 연주하며 기대 이상의 재즈 연주를 만날 수 있었다. ⓒ박지영
연주자들은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이, 각자의 퍼포먼스로 재즈의 멋을 보여주었다.
연주자들은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이, 각자의 퍼포먼스로 재즈의 멋을 보여주었다. ⓒ박지영

즉흥 재즈 연주를 만날 수 있는 라이브독은 20여 명 정도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공간이 크지 않아 모든 좌석이 1열이다. 연주를 마친 예술가와 옆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연주 실력과 퍼포먼스가 좋은 뮤지션들이 많아 사장님께 여쭤보니, 이런 연주자 잼데이에는 국내·외에서 공부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부터 실제 프로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주자들까지, 새롭고 재미있는 연주를 꿈꾸며 찾아온다고 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하우스 밴드로 활동하는 드러머가 참여하기도 했다. 때문에 잼데이에는 재즈클럽 안에 일반 관객보다 연주자들이 더 많아서 음악과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를 나누며 소통하는 장면을 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단다.
연주자들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곡을 선정하고, 연주 포지션을 상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주자들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곡을 선정하고, 연주 포지션을 상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지영

연주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장내가 정리되면, 클럽 사장님은 공연과 관련한 이야기로 관객과 1:1 소통을 시작한다.

'사운드독'은 패션 계통에서 일했던 사장님이 상주하며 운영하는 재즈 클럽으로, 이곳에서 5년 11개월째 영업 중이라고 했다. 사장님과 스태프 한 명이 운영, 영업, 응대를 하며 매일 다른 연주자를 초청해 공연하는데, 그 비용을 공연 입장료와 클럽에서 판매하는 음료들로 충당한다. 그 비용만으로는 클럽 운영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사장님께선 “그만큼 재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클럽을 열었고, 이곳은 돈이 아니라 예술을 공유하는 곳이다”라고 답했다.

‘사운드독’이라는 가게 이름이 색달라 의미를 물으니 자신의 이름자에 소리 ‘성’이 있어 ‘사운드(sound)’라 칭했고, 개띠라서 ‘독(dog)’이 되었단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분들이 수시로 오가며 클럽 분위기가 환기되었고, 관객 역시 예약석이 비워질 때마다 음악소리를 듣고 찾아온 시민들에게 자유롭게 양도되었다.
'잼데이'를 통해 연주자끼리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잼데이'를 통해 연주자들끼리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이 확대되면 좋겠다. ⓒ박지영

작지만 소중한 서울의 일상 명소

공연 종료 후 시장길을 따라 나올 때의 기분은 들어갈 때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날이 풀리면 시장 골목까지 음악소리가 퍼지고 좌석도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외국 친구에게 서울을 소개하고 싶거나, 서울의 색다른 공간을 체험하고 싶을 때, 혹은 재즈를 가깝고 편하게 친구와 즐기고 싶거나, 퇴근길에 문득 재즈가 그리운 날이 있다면, 후암시장에 있는 재즈클럽 사운드독으로 가보면 어떨까? 시장의 대표 먹거리인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재즈 음악의 조합은 후암시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라이브 재즈클럽 '사운드독(Sound dog)'

○ 주소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104길 77(후암재래시장 내)
○ 영업시간 : 월~토요일, 18:00~24:00
○ 공연 일시 : 월~토요일, 20:00~22:00, 2월부터 매주 토요일 17:00-19:00, 20:00~22:00 2회 공연
○ 공연 관람료 : 1만 5,000원
사운드독 인스타그램
사운드독 유튜브 채널

시민기자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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