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의 환국비행기, C-47기를 만나다
발행일 2015.08.19. 15:19
8월 18일 오후 3시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서울시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마련된 `70년 동안의 비행` 행사 개막식이 여의도 광장에서 진행됐다.
드디어 녹색 빛깔의 C-47 수송기가 70년 전 그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고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님을 비롯해 70년 전, 김구선생과 함께 그 비행기로 조국 땅을 밟았던 독립운동가 윤경빈 선생이 이제는 휠체어에 노구를 의지한 채 당시 여의도 공항이 있던 자리에서 감격의 재회를 하였다.

C-47기 수송기 전시 `70년 동안의 비행` 행사 개막식에 참석한 내·외빈 모습
C-47 수송기는 1940년에 제작되어 41년부터 실전에 배치된 미국의 쌍발 프로펠러 다목적 수송기로, 세계 2차 대전은 물론 중일전쟁, 국공내전 그리고 한국전쟁 등 전 세계를 누비었다고 하여 ‘Skytrain(스카이트레인)’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진 최고의 군용기이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 초기 북한에 의해 국내 대부분의 공항이 점령당한 상황에서 당시 주력이던 4발 엔진 C-54 Skymaster(스카이마스터)의 운용이 어려워지자 C-47기는 영웅처럼 나타났다. 낙동강 방어선을 치열하게 방어하던 미보병 제24사단 등에게 보급품 등 물자를 공급하고 부상병을 일본으로 후송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C-47기는 치열했던 근대 역사를 담고 있는 비행기이다
대형 활주로가 아니어도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 임무를 수행해냈던 C-47 스카이트레인을 당시 연합군들은 ‘천국의 나비(heavenly butterflies)’라고 불렀으며, C-47 수송기를 운용한 미 제21 항공수송대대는 한국전 당시 잦은 출격으로 ‘규슈집시’(Kyushu Gypsies)부대’로 불리기도 했다. 1954년이 되자 C-47은 그렇게 임무를 다 마치고 명예롭게 퇴역하였다.
한편, C-47기를 타고 김구 선생이 환국한 곳으로 알려진 여의도 공항은 1916년 일제가 여의도 백사장에 600미터의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한국 최초의 공항으로 건설되었고, 1929년 만주와 일본간 간 항공수요가 늘어나면서 중간 기착지로 ‘경성비행장’로 다시 명명되었다. 그 후, 600미터 활주로 2개와 격납고 공항터미널 등을 갖춘 근대식 국제공항으로 발전하였다.
‘경성비행장’은 1930년대 일제가 대동아 전쟁에 광분하던 시절에 군용공항으로 사용되다 해방 이후 ‘여의도 공항’으로 바뀌었다. 1947년에는 노스웨스턴항공이 일본-미국 항로를 서울까지 연장 운행하며 들렀던 공항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김포공항과 함께 미국, 홍콩, 대만 등 국제선이 운행되는 명실상부한 국제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여의도 한강공원 마포대교 부근에 가면 옛 비행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강범람으로 인한 여의도의 잦은 침수로 인해 1958년 김포공항에 민간공항의 권한을 위임하고 군비행장으로 사용되다 1971년 여의도 재개발 계획에 따라 폐쇄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곳이 다시 `70년 동안의 비행` 을 통해 주목받고 있어 새삼 감격스럽다.
지금도 여의도 한강공원 마포대교 부근에 찾아가보면 여의도 광장과 한강공원을 잇는 ‘여의도 비행장 역사의 터널’을 통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C-47 비행기의 복귀를 계기로, 광복 70주년의 기쁨과 한국 근대사를 상기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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